내가 태아이던 시절까지 합해 내 인생 19년 동안 나의 남자, 나의 사랑은 일명 '옆집 오빠' 인 윤기 오빠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윤기 오빠가 세컨드가 되어버렸다. 오빠가 알면 실망하려나. 아니야, 나 하나쯤 오빠 안 좋아해도 오빠 주위에는 여자들이 많으니까 그 여자들 중 한 명이랑 잘 사귀겠지. 하지만 그 오빠는 여자에게 관심이란 관심은 개미 똥 보다 적다. 여자를 좋아하는 거긴 할까. 아무튼, 나는 현재
인형탈 알바생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인형탈 알바생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w. 꽃이핀 골든
몇 달 전인 고2 시절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친구들과 놀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지만 이제 레알 고3 수험생이란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친구들과 마치 내일이 없는 아이들처럼 인사를 하고 무거우면 무거웠지 절대 가벼운 마음이 아닌 마음을 끌어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갑작스러운 현타에 창가에 팔의 대어 턱을 괴고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매일 보고 지나가는 거리인데 오늘따라 달라 보이지. 집과 학교의 거리가 먼 탓에 버스로 통학하는데 중간에 우리 엄마 가게를 지나간다.-우리엄마는 화장품 로드샵을 운영하신다.- 마침, 가게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정차했을 때. 가게 앞에서 강아지 인형탈을 쓴 알바생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아, 저 사람이 엄마가 새로 고용했다고 자랑하던 알바생인가. 엄마가 귀엽게 생겼다고 막 그랬는데.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의 타이밍에 알바생이 탈을 벗고 뒤를 돌아보는데
아니, 미친. 존나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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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 잠을 청해봐도, 티브이를 봐도, 오버워치를 해도, 인강을 봐도 그 알바생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심지어 다음날이 되어 하교를 하는 지금도 알바생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추운 겨울인데도 땀에 젖어 인상을 찌푸리며 땀을 닦던 그 손길과 표정. 섹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비로소 나도 섹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치명적인 거. 버스를 기다리며 어제 그 알바생 때문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와, 세상 모든 섹시를 혼자 드시네."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물론, 내가 한 말이고 내가 생각한 말이지만 쪽팔렸다. 버스를 기다리던 내 아래 학년들이 날 바라봤고 여러 사람들이 날 바라봤다. 나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쪽팔림에 고개를 숙였다. 3분 후에 도착한다는 버스가 올 기미가 보이지가 않는다. 3분 왜 이렇게 길어. 몇 번 발장구를 치다 보니 3분이 지나갔는지 버스가 왔다. 나는 재빨리 버스에 올라탔다.
엄마 가게 앞에서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카드를 찍고 설렘 반 걱정에 반인 마음을 쓸어내렸다. 제발 알바생이 있기를. 드디어 결전의 역에 도착했다. 뒷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이것봐, 귀엽지?"
"개새끼 존나 한심하다."
(내적 샤우팅)
친구로 추정되는 남자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던 알바생이었다. 진짜 어제 그 치명남 맞나요. 코피가 흘릴 것만 같았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는데 친구로 추정되는 안경 쓴 남자.-이하 안경남- 안경남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경남은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알바생은 재롱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나를 마주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 안 그래도 떨렸던 심장이 더 떨렸다. 알바생의 표정은 마치 라잌 뭐 용건이라도 있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냥 집으로 가야지 하고 뒤를 돌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 일까. 평소에 용기란 용기는 똥만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용기가 알바생을 보니까 용기가 생겼나보다. 내가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
"아..그게 아! 제가 립스틱을 살껀데요! 무슨색이 어울릴까요?"
아, 진심 죽고 싶다. 말해도 뭐 이딴 개똥같은 말을 했냐.
분명 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뭐 이딴 애가 다 있나 생각할 것이다. 이상하게 쪽팔림보다 속상한 마음이 컸다. 덤으로 눈물까지 차올랐다. 이건 뭐지.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 쪽팔려. 인생.
"음.."
고민하는 듯한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에 검지와 중지 손가락 사이로 알바생을 바라보았다.
"학생은 오렌지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게 나와 알바생의 첫 만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