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야."
"으응?"
"오늘도 나가는거야?"
"아..응! 잠깐 윤기가 만나자고 해서."
"걔는 왜 자꾸 널 찾아."
"그..그러게! 하하. 그럼 나 다녀올게!"
오늘도 얼버무려 주인의 시선에서 나왔다. 조만간 들킬 것 같다. 나 아직 주인한테 아르바이트한다는 얘기 못했는데. 다음에는 더 강화된 변명을 생각해보겠어. 아주 잠시 동안만 윤기의 이름을 빌리자. 미안해 윤기야. 나중에 맛있는 거 쏠게.
"어이~ 골든씨. 좋은아침!"
"사장님 제 이름은 골든이가 아니라 김탄소에요. 김탄소. 엄청 많이 알려들렸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난 골든씨가 편해."
카페에서 불리는 내 이름은 골든씨. 내 이름 석자가 멀쩡히 있고 내가 메는 앞치마에도 명찰 표에 [김탄소] 라고 쓰여있는데 굳이 골든씨라고 부르는 사장님이다. 처음에는 잘생기고 조금은 특이하고 젠틀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거기에 아재개그 좋아하고 엄청 엄청 특이하고 분홍색을 좋아하고 아기자기 한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시는 분이다. 진짜 진짜 특이해. 나는 알바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알았더라도 했겠지만 한 달 월급을 받고 그만둘까 심각하게 생각 중이다. 내가 알바를 한지 2주가 지나가고 월급날이 벌써 다음다음 주 코앞까지 왔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일을 한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나는 내가 무엇에 흥미, 관심이 있는지를 발견하지 못 했다. 이건 뭐 중3이 고등학교를 어디로 진학하여 취업을 할 것인가 대학을 갈 것인가 고민하는 것보다 심각한걸? 나는 한숨을 쉬며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딸랑-
손님이 왔는지 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쪽을 바라보았다.에 저 손님 또 왔네. 여기 단골손님이었는지 매일 온다. 하루하루 안본 날이 없는 것 같아.
"어..아메…"
"아메리카노 한잔 맞으시죠?"
"아, 네."
"매일 아메리카노만 드시네요?"
"네??"
매일 이 시간에 오시잖아요. 그리고 매일 아메리카노만 드셨잖아요. 아니에요? 하는 내 물음에 손님은 얼빠진 표정을 짓다 웃음을 지어보며 수긍했다
"맞아요."
*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은 손님은 말할게 있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뭐 제에게 말씀하실거 있으세요?"
"아 그게."
"저기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아니요?"
아니요.라는 나의 대답에 손님은 다행이라며 코트 주머니에서 노란 쪽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쪽을 처음 봤을때부터 관심이 생겼어요."
"..."
"그래서 매일 왔었요. 그 쪽 보려고."
"..."
"그거 제 번호인데."
노란 쪽지를 펴 보니 정말 [010-1994-0912]라는 번호가 떡 하니 적혀있었다. 내가 손님을 올려다보니 손으로 전화기 모양으로 만들에 귀에다 가져다 대고 흔들었다.
"연락해주세요."
"..."
"기다릴게요."
이거 뭐지. 나 방금 번호를 받은 건가? 나는 멍 때리며 남자를 계속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웃음을 지며 커피를 들고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아! 하고 내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제 이름은 김남준이에요."
반인반수 골든리트리버 너탄 X 주인 정국
I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남준씨는 반인반수가 아니었다. 그에게서는 반인반수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뭐, 인간이라고 꺼려하는 건 아니다. 남준씨가 얼마나 센스 있는데! 진짜 착한 사람 같았다. 처음 번호를 받았을 때 나는 연락을 보낼 경로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의 핸드폰으로 전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하루를 넘겼다. 바로 그 다음날에 그가 카페에 왔다.
'왜 연락 안해줬어요? 나 차인건가?'
'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 연락을 하지 못했어요.'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하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양볼에 들어가는 보조개도 있는 미소였다.
*
항상 그는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카운터 앞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커피는 다 식어가는데 한입도 마시지 않았다. 나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런데 남준씨는 반인반수 아니지 않나요?'
'네.'
'저희 카페는 반인반수전용이라 인간이 마실만한 커피는 없는데.'
'...'
'같이 사는 반인반수라도 있어요?'
'아니요?'
'네?'
'저번에도 말했지만 탄소씨 보려고 맨날 와서 일부러 주문한거에요.'
나는 저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주인이랑 비슷하게 말하네. 주인도 저런 말 잘하는데. 그의 말에 당황한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본 건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당황했나보네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건 아니였는데.'
'...'
'이번주 토요일에 약속같은거 있어요?'
'아니요?'
'그러면 나랑 만나서 놀래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였다. 설마 이게 데이트 신청이라는 건가. 아닌가? 나는 고민했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주인이 약속이 있어서 외출한다고 했었고 나는 휴가다. 점장님이 지방에 내려가야 해서 강제휴가다. 그러므로 나는 굉장히 무료할 것 같았다. 티비 보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럼 돌아다니면서 주인 선물도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요, 그럼.'
*
그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거의 다 와간다. 저기 시계탑 밑에서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분명 그인 것 같다. 많이 기다린 건가? 나는 그를 향해 뛰어갔다. 오늘도 날 맞이해주는 웃음은 한없이 맑았다.
"천천히 걸어와도 되는데."
"많이 기다린거에요?"
"아니요. 나도 방금 왔어요."
"다행이다. 얼른 가요."
그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는 것이 진짜 오랜만이다. 나는 아직 주인이랑 영화 못 봤는데. 다른 사람이랑 먼저 보네. 내 모든것에 있어서 오랜만이고 처음 하는 일들은 주인이와 먼저 하길 바랐는데. 그 점에선 아쉬웠다. 아직 영화 시간이 남았다는 남준 씨의 말에 나는 그럼 그 밑에 상가들 많던 더 구경하자고 대답했다. 그는 내 말에 무엇이든지 오케이를 외쳐줬다.
역시 시내여서 그런지 상가들이 많았다. 악세서리샵도 있고 빵집도 있고 지나가던 커플도 많고. 상점 안에 들어가 구경도 했다. 토끼 머리띠, 곰돌이 머리띠. 별에 별게 다 있다. 신기해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탄소씨!"
"네?"
"이거 한번 써 보면 안돼요?"
"응? 토끼머리띠?"
남준 씨는 하얀 길쭉한 귀를 달고 있는 토끼 귀 머리띠를 내 앞에 가지고 왔다.
"포메리안같은 조금한 강아지귀는 없으니까 토끼. 탄소씨 얼핏보면 토끼도 닮았는데."
태어나서 토끼 닮았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내가 토끼를 닮았다고? 나는 의아해하며 토끼 귀 머리띠를 받아 들었다. 아 조금 써보기 꺼렸는데 그래도 궁금하니까 한번 써보았다. 거울, 거울 봐야지.
"헐."
"탄소씨, 진짜 토끼같다."
"헐. 나 진짜 토끼같아요."
"내 말 맞죠?ㅋㅋㅋㅋ귀엽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토끼 같았다. 나는 골든리트리버인데 어떻게 토끼 모습이 보이는 거지. 인간의 외형과는 상관없는 건가. 나는 토끼 머리띠를 벗어 내려두었다.
"야, 김탄소. 너 여기서 뭐하냐?"
"아악! 깜짝이야!"
거울에 비친 민윤기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꼽고 아니꼽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를 가진 민윤기가 거울에 비쳐 말하니 정말 귀신같았다. 나는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뒤돌아 민윤기를 노려보았다.
"보면 몰라? 머리띠 쓰고 있었잖아."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그럼, 뭔데.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묻고싶은건데. 옆엔 누구."
그는 윤기를 향해 간단한 목례만 했다. 윤기는 나를 보던 눈빛보다 더 깔고 남준 씨를 훑어보았다. 얘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놀래는 건데.
"너 왜 여기있어?"
"작업 끝내고 집가는 길에 개인가 돼지인가 토끼머리띠 쓰고 헤벌레 하고 있길래. 설마 김탄소인가 하고."
"이게 죽을 하하, 남준씨 소개가 늦었죠? 이쪽은 제 친구 민윤기 라고해요."
"김남준입니다."
"민윤기."
아니 저 싸가지 진짜 어디 안가네. 나는 윤기를 노려보았다. 윤기는 나와 남준 씨를 향해 말했다
"데이트 중?"
"뭐?"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나는 놀란 눈을 떠 그를 올려다보았다.
"참나, 김탄소 너 이제 큰일났다."
"왜."
"모르지 나도."
"이게 또 이상한 소리하네?"
"난 간다."
여전히 고양이 새끼가 개소리를 한다. 확 그냥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까 보다.
*
그와 그 상점에서 나와 또 돌아다녔다. 나도 구경을 많이 했지만 내가 나온 이유는 주인의 생일선물을 고르기 위해 나온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정 고르지 못하겠으면 그한테 남자들은 무엇을 선물해주면 좋아하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좀 더 돌아다녀 보고..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액세서리 숍이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자동으로 그곳을 향했다. 가게를 열고 들어가니 액세서리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 많고 많은 액세서리 중에 우리 주인의 것이 있을 것 같았다.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보다 눈에 띄는 팔찌가 있었다. 연한 하늘색의 줄과 진한 남색의 줄이 서로 교차되어 묶여있는 팔찌. 우리 주인 요즘 하늘색 무지 티 많이 입고 다니는데. 나는 이 팔찌를 보자마자 이걸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선물해주게요?"
"아, 네! 괜찮나요?"
"남자가 끼는거에요?"
"네!"
"탄소씨가 선물해주는거라 그런지 팔찌가 더 이쁘네요."
그는 진짜 언어 마법사 일지도 모른다. 어쩜 하는 말 하나하나 꿀이 묻어있는 것 같다. 우리 주인도 그런데. 그런데 내가 아는 고양이 한 놈과는 정 반대. 칭찬해주는 그의 말에 기뻐 예쁘게 포장된 팔찌를 가방 안에 조심스레 넣어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 팔찌를 받고 좋아하는 주인의 얼굴을 얼른 보고 싶어.
*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슬프네요."
"그러니까요. 진짜 울뻔 했다니까요?"
"탄소씨 울었으면서."
"아아, 봤어요? 아 진짜..."
[죽어도 너야.]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국내 영화로 지금 가장 핫한 영화다. 반전 있는 영화라고 평이 많고 좋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짧게 말하자면 주인과 반인반수 사이에서 생긴 사랑 이야기다. 나도 반인반수이고 함께 살고 있는 주인이 있는지라 영화에 몰입이 더 잘 됐고 주인공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반전에서 슬픔이 존재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 했다. 눈물을 흘린 내 모습을 봤다는 그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언제 봤데. 영화관이 얼마나 어두운데.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탄소씨 진짜 귀여웠어요."
"그런말 하지마세요.부끄러워요."
"알겠어요, 알겠어."
알았다며 내 머릴 쓰담는 그였다. 남준 씨를 볼 때면 주인이 자꾸만 생각난다. 어쩔 땐 주인과 그가 겹쳐 보인다. 주인도 내 머리를 자주 쓰담어 주는데 그가 쓰담어 줄 때와 주인이 쓰담어 줄때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그는 그냥 아무것도 없고 순수한 흰색이라면 우리 주인이는 분홍색과 하늘색에 가까운 것 같다.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나는 사양했다. 서로의 배려에 사양하다 내 고집에 그가 백기를 들었다. 우리는 만남의 장소가 된 카페 앞까지 함께 오고 헤어졌다. 오늘 즐거웠어요. 내일 또 만나요. 안녕.
*
집에 들어오니 주인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영혼 없이 보고 있었다.
"어! 주인! 아, 아니 정국아. 일찍 들어왔네?"
"9시가 일찍은 아닌거같은데."
"어..그런가?"
"..."
"..."
오늘따라 주인이 이상했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러지. 태형과 싸운 건가. 아니면 민윤기? 그 고양이 새끼랑 우리 주인이랑 자주 싸우긴 하지만 싸웠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어디 다녀와?"
"어?"
"어디 갔다 오냐고."
"아..잠깐 친구랑 영화보고. 뭐, 이것저것..?"
"..그래?"
"...응"
하하 호호 웃으며 티브이 안에선 유명 가수들과 엠시가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 한 분위기에 주인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괜히 나는 방에도 못 들어가고 서서 주인의 눈치만 봤다.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없는데..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다 주인은 피곤해서 먼저 자겠다며 티브이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지나쳐 갔다. 또 이 감정은 뭐지? 옛 주인이 날 놀이터에 버리고 갔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쏟아 올랐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괜스레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불안감이 날 덮쳐오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주인의 발끝에 닿고 있었다. 주인의 방 문 앞까지 걸어가던 발걸음이 멈췄다. 이내 뒤를 돌아 주인이 날 불렀다.
"김탄소."
"..어?"
"나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 조심. 그리고 나중에 알바 같은 거 안 해도 돼. 알았지?"
주인의 말에 나의 머릿속이 뒤엉켜버렸다. 주인이는 다 알고 있었나?
-
안녕하세요. 오늘은 13월 2일이네요! 저는 절대 2017년을 부정하려고 하는게 아니랍니다!(사실은 부정) 어떻게 다들 한 살 맛있게 드셨나요? 저는 정말 맛없더라구요. 헤헤.
이야 이제 카페글이 한편 남았고~ 정국이편도 나와야 하져. 하지만 저는 고민이에여. 정국이편을 먼저 들고 나올것인가. 그냥 카페글을 마무리 짓고 정국이 편을 가져올것인가. 뭐가 더 흐름에 맞을지...흠(깊은 고민) 뭐 둘다 쓰다보면 어떠케든 되겠져 뭐^ㅁ^ 너무너무 걱정하지 마쎄여!!!
저 댓글 하나하나 다 잘 읽고있어요! 진짜 힘이 된다능...정말 기분 좋다능..헤헿 댓글 써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려요!!
사랑스러운 주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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