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용국이 또 골 넣었어. "
" 김용국 진짜 축구했으면 국대각. "
" 근데 쟤 전교 3등 아니야? "
" 헐 진심? 쟨 못하는게 뭐래? "
턱을 괸 채로 남자애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있는 김용국을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나와 다르게 내 근처에 앉아있던 여자애들이 김용국에 대해 칭찬을 넘어 찬사를 늘어넣기 시작했다.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고. 흔히들 엄친아라고 불리는 김용국이 못하는 건 사실 차고 넘쳤다. 글씨 쓰는 걸 발에게 양보했는지 글씨도 지지리 못쓰고, 잠만 잤다하면 귀가 폐업을 했는지 아침에 끔찍이도 못 일어나고. 아, 젓가락질도 못한다. 그 흔한 엑스자 권법마저 변형해서 자기 스타일대로 특이하게 잡는 애라고, 김용국은.
속으로 용국이를 흉보던 것도 잠시, 아직 하복 체육복을 입기엔 좀 (많이) 무리인 4월 사랑하는 엄마가 동복 체육복을 깜빡하고 다 빨아버리는 바람에 하복 체육복을 입은 나는 그냥 얼어죽기 일보직전이였다. 위에 맨투맨 입는 게 허용이라 다행히 반팔 반바지차림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여전한 반바지를 입어 휑한 내 다리는 추위에 달달 떨리고 있었다. 아, 교실 들어가고 싶다. 그때 김용국에 대해 실컷 떠들던 여자애들이 일순간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아까 김용국이 골을 넣었을때처럼 한 곳에 집중되어있었다.
천천히 그런 여자애들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우리반 여자애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있는 스탠드를 향해 김용국이 자기 후드집업 주머니에 양 손을 꽂은 채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 김여주─ "
" ... ? "
" 이거 갖고 있어. "
" 아, 왜. "
" 나 더워. "
여기까지 걸어오는게 갑작스런 행동이였는지 남자애들이 김용국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김용국은 그 부름에 대꾸 한 번 없이 스탠드 앞까지 걸어와 내 이름을 불렀다. 춥고, 지루하고. 날 부르는 김용국을 쳐다보자 대뜸 자기가 입고 있던 후드집업을 벗더니 내게 휙─ 던졌다. 자기 더우니까 나보고 가지고 있으라고.
내가 네 짐꾼이야? 라고 묻기도 전에 김용국은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다시 축구경기에 끼기 위해 운동장으로 향했다. ... 뭐야? 어벙하게 김용국의 후드집업을 손에 들고 있으니 여자애들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로 꽂힌다. 아악, 난 세상에서 시선집중되는게 제일 싫은데.
" 그러고보니 김여주가 용국이랑 많이 친하지? "
" 둘이 사귀고 있을걸? "
" 아, 정말?? "
" 사귀겠지, 맨날 붙어다니고. 등하교도 같이 하던데? "
... 하. 이쯤되면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지친다. 친하지를 않으니 내게 직접 묻지는 못하고 들으라는 듯 속닥대는 대화를 그냥 못 들은 척 하는 걸 택했다. 여전히 턱을 괸 채로, 그리고 무릎엔 김용국의 후드를 덮은 채로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릎에 덮을게 생겨서.
애매한 용국씨
A
" ... 다니엘오빠, 제가 오빠 많이 아끼는 거 알죠? "
" 그럼, 알지. 그니까 그만 도망가고 손목이나 내미시지? "
" 솔직히 너가 조금 늦게 냈잖아. 무효야, 이번 판. "
" 응, 아니야~ "
내 양 손목이 원래 색을 잃고 새빨갛게 변하다못해 부어오르기 시작한 건 가위바위보를 하면 져본 적이 없다는 강다니엘의 말에 시작된 일이였다. 정말 말도 안되게 여섯판의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모두 내가 다 졌다. 괜한 오기때문에 그만하자는 강다니엘을 붙잡아 마지막 한판이란 생각으로 했는데 또 졌다. 욱씬대는 손목에 망설이다가 복도로 도망쳐나왔다. 그런 나를 쫓아 뛰는 다니엘에 더 필사적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달리는데 내 맞은편에서 매점빵을 입에 문 채로 걸어오는 김용국을 발견했다. 나이스 타이밍, 김용국.
" 흑기사!! 흑기사 찬스!! "
나와 무려 두뼘 가까이 차이가 날 정도로 키가 커 나를 금방 따라잡은 강다니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김용국의 등 뒤로 몸을 피신하며 흑기사를 외쳤다. 나는 김용국의 팔을 붙잡고 있었고, 강다니엘은 김용국의 팔을 잡은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졸지에 우리 사이에 낀 채로 입에 빵을 물고 있던 김용국이 우리 사이에서 나와 강다니엘을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나한테 눈짓으로 물었다. 뭐야? 용국이와의 10년 짬밥으로 그 눈짓을 읽어내고 나는 대답대신 다니엘이 잡고 있던 손목과 그가 잡고 있지 않은 손목 모두를 김용국 눈 앞에 흔들어보였다.
" ... 손목 왜이러냐? "
" 강다니엘이 이랬어.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쉐키. "
"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 강제로 떄린 거 같잖아! "
" 아 몰라, 나 더는 못 맞아. 봐봐, 지금 여기 붉다못해 푸르다니까? 백퍼 멍 들듯. "
내 손목을 잡아 확인하는 김용국을 뒤로 하고 다니엘과 무효판으로 타협을 하기 위해 아무말 대잔치를 열고 있었다. 원래라면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겠는데, 지금 고통에 뜨끈한 내 손목을 생각하면 억지를 부릴 수 밖에 없었다. 유도만 7년을 한 강다니엘의 손힘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였으니까. 내 억지에 일일이 반박하던 강다니엘이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 질린 표정을 짓다가 김용국을 툭 치며 물었다. 진짜 얘 흑기사 할래?
" 용국아, 널 10년을 알았지만 오늘이 제일 멋지다. "
역시 김용국은 말보단 행동이지. 다니엘의 물음에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는 표정으로 교복 와이셔츠 소매를 걷는 김용국에게 속이 훤히 보이는 아부를 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물론, 그런 나를 쳐다보며 어이가 없단 표정을 숨기지 않는 용국이였다. 평소라면 표정을 왜 그따위로 짓냐고 껄렁댔겠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니 그냥 멋쩍게 웃어줬다. 그때 강다니엘이 용국이의 옅은 구리빛 손목을 잡더니 검지와 중지를 바짝 붙여 복도에 따악─! 소리가 울릴정도로 그 손목을 내리쳤다. 으, 아프겠다. 용국이의 피부가 하얀 편도 아닌데 강다니엘의 손가락이 닿았던 부분이 한 눈에 보일정도로 붉게 물들어있었다. 강다니엘의 손힘은 대체 얼마나 쏀거야? 말그대로 난 경악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목을 털며 짧게 표정을 찡그린 김용국이 걷어 올렸던 소매를 다시 내리며 내게 물었다.
" 너 그거 모르지? "
" 어? 뭘? "
" 너 가위바위보할때 맨 처음 무조건 보자기만 내는거. "
" ... !? "
" 바보냐, 진짜. "
인생을 18년동안 살면서 처음 안 사실이였다. 그러고보니 여섯판 내내 강다니엘은 가위만 냈었다. ...사기 당한 기분이라는게 이런 걸까. 놀람 반 억울함 반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김용국을 바라보자 아까 강다니엘이 그런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나와 강다니엘을 지나쳤다. 그런 용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휙 고개를 돌려 강다니엘을 쳐다보니 다니엘은 걸음을 슬금슬금 옮기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 얄미운 모습에 주먹을 야무지게 쥔 뒤 바로 강다니엘의 옆구리에 꽂았다. 그나저나 얜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한건지 무슨 벽에다가 주먹을 꽂는 줄 알았다.
워낙 내가 손아귀 힘이 없어서 분명 아프지도 않았을텐데 금방 엄살을 부리는 강다니엘을 버려두고 걸음을 빨리해 벌써 저만치 앞서나간 용국이를 따라잡았다.
" 언제부터 안거야? "
" 뭘. "
" 나 보자기만 내는거. "
" 10년동안 그거 모르는게 더 대단하겠다. "
" ... 뭐야, 근데 왜 말 안해줬어? "
" 그래야 내가 이기잖아. "
그 순간 김용국한테 가위바위보에 패해 가방을 들어준다거나 했던 지난 과거가 영화 필름마냥 차르륵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강다니엘에게 농락당했을때보다 두배는 더 억울했다. 아니 두배가 뭐야, 적어도 10년치정도의 억울함을 느꼈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뉘앙스때문에 더 그랬다. 미적대며 걷는 내 걸음에 맞춰 걸어주고 있는 용국이를 세모꼴로 눈을 뜬 채로 흘겨보자 김용국이 대뜸 내 앞에 자기 손을 내밀어보이는 거였다. 이번엔 내가 뭐냐는 듯이 눈짓을 하자 복수의 기회를 주겠단다.
" 오─ 진짜? "
" 어, 진짜. "
" 그럼 콜이지! "
그렇게 교실로 걸어가며 한 가위바위보의 결과에 나와 김용국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져줄 마음이였는지 가위를 낸 김용국의 손과 그 가위 앞에 반박의 여지 없이 쫘악 펴져있는, 보자기를 낸 내 손때문이였다. 습관의 무서움을 이렇게 경험하게 될 줄이야. 너무 황당해서 그대로 굳어있다가 김용국을 힐끔 보자, 얘를 어떻게 하면 좋냐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김용국과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 ... 너 지금 나 비웃었지? "
" ... 아닌데? "
" 맞는데? 입꼬리 방금 막 이랬는데? "
" 아니야. "
" 아, 그럼 한 판만 더 해. "
누가 봐도 나 웃음 참고 있어요─ 표정이면서 아니래. 급하게 고개를 내 반대편으로 돌리는 김용국의 표정은 아주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정도로 웃음 참는 표정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다시 고개를 내쪽으로 돌렸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덤덤한 표정이였으니 뭐 트집 잡을 수도 없었다. 한 판만 더하자고 말했더니 김용국이 내 오른쪽 손목을 잡아 자기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그러고보니 가만히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용국이의 폼이 어쩐지 이번 쉬는시간 내내 봤던 강다니엘의 폼과 똑같아도 너무 똑같았다. ... 뭔가 불길한데?
" 너 방금 졌잖아. "
" ... 그렇지? "
" 한 판 더 하고 싶으면 정당히 한 대 맞고 하던지. "
" ... 아, 용국아. 오늘 날씨 좋다, 그치? 이런 날 너의 오랜 친구를 때리면 되겠니? 어? 그니까.. 그.. 레드썬! "
... 역시나. 나는 다급하게 용국이에게 잡힌 내 오른쪽 손목을 비틀어 그의 손아귀에서 빼내려고 애를 쓰며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급기야 잡히지 않은 왼손으로 딱! 소리를 내며 레드썬까지 외쳤으니 내 다급함은 꽤 진실되었다. 했던 운동이라고는 어릴때 수영밖에 없으면서 김용국의 손힘은 강다니엘 못지않게 장난 없었으니까. 그런 김용국에게 아직도 얼얼한 손목을 내어준다면? 어으, 생각도 하기 싫었다.
내가 정신없이 늘어놓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용국은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내 손목을 칠것처럼 검지와 중지를 붙인 자기 손가락을 허공에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내 내 이마를 가볍게 미는 거였다. 김용국의 손이 허공에 올라가자마자 눈을 재빨리 감았던지라 예상 밖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다시 떴을땐 김용국은 그냥 웃고 있었다. 물론 비웃는 건지 진짜 웃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말그대로 김용국은 날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물론 그 웃는 표정은 금방 사라져 언제나처럼 내가 '티벳여우'라고 놀리는 특유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아마 비웃었던 모양이였다.
" 봐줬다─. "
그 상태로 김용국은 봐줬다는 말 따위를 하며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동시에 여전히 잡고 있던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벌써 수업에 늦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평소라면 내 손목상태가 어떻든 이겼다는 사실에 신났을 애가 왜 이러나 싶기도 했지만, 나는 단순히 수업종이 울려서라고 단정지었다. 다음교시는 수업에 늦게 들어오는 애들만을 골라 50분내내 괴롭히는 문학의 시간이였으니까.
***
" 어디가? "
" 방송실. "
" 오늘 갈 필요 없다며. "
" 후배가 홍보영상 만드는 것 좀 도와달래. "
" 언제 끝나는데? "
그야 나도 모르지. 언제 끝나냐는 김용국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걔가 오늘 어디까지 편집을 끝내고 싶은지에 달렸으니까. 곧 있을 축제때문에 밴드부의 유일한 보컬인 김용국이나 방송부의 부장이자 아나운서인 나나 둘다 학교만 끝났다 하면 정신이 없었다. 원래 오늘같이 방송부 모임이 없으면 밴드부 연습실에서 시간 떼우다가 용국이와 같이 집을 가는게 일상이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갑작스런 도움요청이 들어오면 종종 따로 가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 대답에 김용국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에 나도 대충 손을 휘저어주며 연습실을 나오는데 교복치마 주머니에서 짧은 진동 여러번이 느껴졌다. 이 타이밍에 전화를 할 얘는 내게 도움을 청한 후배밖에 더 없겠거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핸드폰 화면엔 [방송반 1학년 박지훈]이 떠있었다.
" 여보세요? "
- " 누나, 지금 어디세요? "
" 나 지금 밴드부 연습실 나와서 올라가는 중. 컴퓨터는 켜놨어? "
- " 그게─... 아니요. 제가 방송실 열쇠가 없어서 못들어가고 있어요. "
" ... 헐. 열쇠 내가 갖고 있구나.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
학생들이 하교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 그 휑한 복도에 혼자 어색히 서있을 지훈이가 상상이 되어 전화를 바로 끊으며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갔다. 그렇게 헉헉대며 방송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 복도로 몸을 틀자, 방송실 앞 벽에 기대어 핸드폰을 하고 있는 지훈이가 보였다. 그런 지훈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날 보자마자 바로 허리 숙여 인사하려길래 급하게 손사레를 치며 방송실 앞으로 뛰어갔다. 난 항상 편한 관계를 지향했기때문에 (그러니 용국이와 다니엘에게 동성 취급을 받지) 누가 내게 깍듯이 예의 차리는 것에 알레르기 증상을 보였다. 손에 모토 단 것처럼 빠르게 흔드는 지금처럼 말이다.
그런 내 행동에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였다가 편 지훈이에게 어정쩡한 미소를 날려준 뒤 방송실 문에 걸려있는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오랜 시간 사용된거라 드문드문 녹이 슨 자물쇠를 빼내며 비밀번호 형식의 자물쇠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짧게 했다. 학교에서 안해줄게 분명하니까 내 용돈을 털어야겠지─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며 방송실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키자, 지훈이가 의자 두개를 끌고와 내게 의자 하나를 내밀었다.
" 오, 땡큐. USB는 가져왔어? 아니면 그냥 메일? "
" 백업하느라 둘 다 있긴 한데, 편하게 메일로 보낸 걸로 작업할까요? "
" 나야 뭐 상관없어. "
상관없다는 내 말에 바로 네이버로 들어가는 지훈이였다. 하긴 메일이 편하긴 하지. 영상을 다운 받는 동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른 방송부 애들이랑 있을 때 몰랐는데, 묘하게 어색했다. 그래서 괜히 핸드폰 배경을 껐다 켰다하며 영상이 다운되고 있는 퍼센트를 힐끔거렸다. 영상이 60%정도 다운이 되었을때 다니엘에게 카톡이 왔다. 평소라면 그냥 읽고 말았을텐데 좀 어색해서 바로 카톡 대화창으로 들어갔다. 자기 침대에 누워있다가 돼지바가 땡겨서 편의점을 가고 있다는 강다니엘의 카톡에 'ㅋㅋㅋㅋㅋ' 같은 시덥잖은 답장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 근데 누나도 밴드부에요? "
" ... 누구? 나? "
" 네. "
" ... 내가? 당연히 아니지. "
... 내가 밴드부라니.
지훈이의 질문을 용국이가 들었다면 비웃다못해 박장대소를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강다니엘은 더 나아가 박장대소하는 김용국 옆에 주저앉아 바닥을 치며 폭소를 하고 있겠지. 내가 꽤 뛰어난 박치인걸 둘이 제일 잘 아니까. 여하튼 기겁을 하며 아니라는 내 대답에 지훈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래서 갑자기 그게 왜 궁금했냐고 물으니 (진짜 궁금했다) 매번 내가 밴드부 연습실에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아. 내가 밴드부 보컬인 애랑 엄청 친해서 자주 놀러가거든. "
" 그 눈이 이렇게 생긴... ? "
" 응. 좀 티벳여우 닮은 애. "
살짝 자기 눈을 옆으로 해보이는 지훈이에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보였다. 그리곤 티벳여우를 닮았다는 부연설명도 해줬다. 진짜 어쩜 그렇게 티벳여우를 닮았는지. 한창 티벳궁녀가 떴을때 하루종일 그 사진을 용국이한테 보여주며 미친듯이 웃어댔던 기억이 뒤이어 떠올랐다. 근데 용국이가 질색을 하는 바람에 결국 하루였나, 이틀 놀리다 말았었는데. 내 말에 누군지 알겠다는 듯 지훈이가 아까처럼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을때쯤 영상이 다 다운되었다는 창이 떴다. 어색한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나라 괜히 부산을 떨며 영상 편집 프로그램과 영상을 동시에 켰다.
" 이게 축제때 오프닝에 쓰인다는 거야? "
" 네, 엔딩은 아직 영상만 찍어놨어요. "
" 와, 오프닝은 내가 손댈게 없어보이는데... . 어떤게 도움이 필요한거야? "
" 축제 서는 팀들 뒤에 배경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팀들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배경작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
오프닝은 정말 내가 감히 손보기도 미안할정도로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체 내 도움이 어디가 필요한건지 진심으로 모르겠어서 물으니 내 칭찬에 쑥스러워하던 지훈이가 내게 축제 팀 리스트가 적힌 에이포 종이를 내밀었다. 배경작업,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데─. 싫은 티를 안내려고 애쓰며 종이를 쓰윽 훑어보다가 용국이 이름을 발견했다. 두 곡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주구장창 신나는 팝송만 해서 정승환의 너였다면을 할 줄은 몰랐다. 다른 한 곡은 뭐냐고 물어도 스포하기 싫다고 죽어도 대답을 안해줘가지고. 근데 이렇게 알게 될 줄이야. 고집있게 안알려주던 용국이가 생각이나 그냥 계속 모른 척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훈이와 각 참여조별로 뮤비 비스무리한 걸 찍어서 배경영상으로 쓰는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한창 하다보니 어색함따위는 금방 사라졌다. 물론 뮤비 찍는 건 현재 날짜가 애매해서 총 12팀중 4팀정도만 해서 하는 걸로 결론을 냈다. 한창 축제 이야기를 빙자한 사적인 이야기(그래봤자 서로 고딩이라 모의고사였다)를 주고 받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 ... 오늘 기상예보에서 비온댔었나? "
" 이번주에 중간중간 비온다고는 했었어요. "
" 아으아─ ... 망했네. "
" ... 누나 무슨 동에서 살아요? "
사실 기상예보같은 걸 확인하는 편은 아니였다. 시험기간에나 시간떼우려고 보고 평소엔 엄마가 아침에 알려주는 대로 우산을 들고 가거나 했으니까. 아주 세차게도 쏟아지는 비에 표정을 구기고 있자 대뜸 내 옆에서 네이버 로그아웃을 하던 지훈이가 무슨 동에서 사냐고 묻는거였다. 나? 나 가 동에 사는데. 내 대답에 지훈이가 살짝 웃으며 그럼 자기랑 같이 가자고 대답했다. 자기도 거기 산다고. 엄마야. ... 얘는 얼굴도 천사같이 생겨서 진짜 천사 아닌가. 아니면 내가 날 놀리는 낙으로 사는 김용국과 강다니엘에 너무 길들여져있어서 이런 호의가 낯선걸까. 나는 그래도 되냐고 다시 한번 더 조심스럽게 물었고, 지훈이는 망설임 없이 그래도 된다고 대답했다.
... 엄마, 얘 천사 아니야?
오버액션을 조금 섞어서 지훈이에게 감동 받아하다가 어두컴컴해진 창밖에 대충 시간을 확인하니 8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 그럼 우리 슬슬 집에 갈까? "
" 그럼 제가 뒷정리하고 나갈테니 자물쇠 주세요. "
" 오키. "
뒷정리라 해봤자 컴퓨터와 불을 끄고 문을 잠구는 거라 지훈이에게 자물쇠를 넘겼다. 컴퓨터 화면까지 끄는 지훈이를 바라보다가 먼저 나가있을 생각으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져있는 가방을 한쪽 어깨를 걸쳤다.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지훈이에게 말하며 방송반 문을 열었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 이제 끝? "
" ... 오우, 야! 나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잖아! "
학교괴담에서나 나올법한 그 어두컴컴한 복도에, 김용국이 아까 지훈이가 기대어 서있던 벽에 기대어 서있어서. 깜짝 놀라 아직도 쿵쾅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 채로 연락도 안하고 여기엔 왜 서있냐고 묻자, 용국이가 자기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흔들어보였다. 그 행동에 교복 주머니에 고히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하자 [나 방송실 앞] 이라고, 용국이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그것도 무려 한시간 전에.
" 야... 그냥 들어오지. "
" 외부인 출입 금지라며, 너가. "
" 아니 그러긴 한데... 근데 왜? "
빽하면 나 방송하는 거 구경하겠다고 구경오는 김용국과 강다니엘에게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철벽을 쳤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래도 그렇지, 얘는 무슨 한시간씩이나 이 어둠속에서 미련하게 서있어. 왠지 모르게 미안해져서 춘추복 마이의 소매를 만지작 대고 있는데 용국이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몇 년이 지나도록 인정하기 싫지만 키차이때문에 김용국이 거의 내게 팔을 편하게 올린 상태였다) 입을 열었다.
" 혼자 가려니까, 너무 허전해서. "
갑자기 이게 무슨. 힐끔 김용국을 쳐다보니 지도 수습하기 힘든 멘트를 친 건 알았는지 먹쩍은 미소를 지은 채로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괜히 낯간지러워져서 내 어깨에 둘러져있는 김용국의 팔을 치우려고 했으나 뻔하게도 역부족이였다. 꿈쩍도 안해. 오히려 내가 치우려고 하면 할수록 팔에 힘을 주길래 결국 치우려고 애쓰던 내 손을 내렸다.
" 허전은 무슨─. "
" 농담이고, 내 팔 올려둘데가 없어서. "
" ... 죽을래? "
그럼 그렇지.
내가 주먹을 쥐어 들어올려보이자 웃음을 흘리는 김용국이였다. 내가 여기서 때려봤자 강다니엘처럼 엄살 부리는 김용국의 모습만 볼게 물보듯 뻔해서 결국 올렸던 내 손을 내렸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밴드부 연습을 했다면 항상 교복차림이였는데, 지금 김용국은 아디다스 츄리닝 바지에 흰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마치 집에 다녀온 것처럼. 그래서 집을 다녀왔냐고 물으니 씩 웃으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흔들어보인다.
" 비 오길래. "
" ... ? "
" 너 비 맞는 거 싫어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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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 |
안녕하세요, 드래곤 수프입니다. 우선, '친절한 영민씨' 연재공지나 연재되던 글에 남겨주신 모든 댓글 감사히 잘 읽었어요. 구구절절 이야기 하지 않을겁니다. 그치만 제게 감사하다고 해주신 것만큼 저도 감사해요. 여러모로, 진심으로요. 애매한 용국씨는 전에 언급했다시피 ★클리셰★ 학원물이구요, 학원물에 서브 남주가 빠지면 서운하잖아요? 서브남주, 있습니다. 근데 이미 제목에서 대놓고 남주가 있어서 제목에 추가할 생각은 없어요.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본격 제목이 스포인 스토리... . 그러니 남주가 아닌 서브남주 찾기가 될 것 같기도하고... 그러네요ㅋㅋ 1화라 주 캐릭터들 설정잡는 내용이라 임팩트는 없는 것 같네요ㅋㅋㅋ 이거야 말로 망한 것 같아요...ㅎㅎ.. 그리고 암호닉은 새로 받겠습니다. 취향따라 글을 보게 되는 거니까요. 전에 신청하셨던 거랑 같은 암호닉이면 따로 [] 붙이시지 않고 바로 댓글로 암호닉 언급해주시면 다음편부터 암호닉 확인 올릴게요! 덧, 댓글에 간혹 노래가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앞으로 모든 글의 밑에 적어두겠습니다. 좋은 노래를 공유할 수 있게되서 기뻐요..! 오늘도 프듀의 밤인데, 오늘은 부디 악편 당하는 연습생이 없으면 좋겠네요. 모두 즐거운 프듀 밤이 되시길! |
BGM |
샤이니 - Good Good Feel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