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섯명의 남자가 모인 방안은 온기 하나 없이 싸늘했다. 둥글게 모여 앉은 그들을 비추는 전등빛은 금방이라도 꺼질듯이 불안 불안한 모양새였다. 학연은 잠시 모여 앉은 그들을 둘러 보는 듯 싶더니 이내 자세를 편하게 바꿔 다리를 꼬았다. 그 자리에 모인 그 어떤 누구도 선뜻 먼저 말을 뱉는 법이 없었다. 숨소리 마저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가끔씩 얕은 기침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학연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가만히 있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계획을 세울 껍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연은 아주 조금, 미간을 좁히고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어 반대 방향으로 꼬았다. 하지만 그 자세 역시 그다지 편해보이지 않았다. 학연은 대답이 돌아올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볼까, 하다가 얼마안가 포기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열개의 눈동자가 학연에게로 몰려 들었다.
"스파이가 필요해요."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학연이 살짝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정적이 그들 사이에 자리 앉을 무렵, 이번에는 재환이 선뜻 입을 열었다. 열개의 눈동자가 이번에는 재환에게로 향했다.
"그일. 제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엔씨?"
"......"
"좀 자신있는데, 시켜 주실래요?"
학연은 그런 재환의 말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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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이 죽어가는 골목에 발을 들인 것은 오로지 '복수'를 위한 것 이었다. 학연은 자신의 아버지를 뼈 속 깊게 까지 증오하고 경멸했다. 학연의 아버지는 학연에게 있어서 난폭군이었고, 한명의 살인자였다. 학연에게는 형제가 있었다. 나이차이는 조금 많이 났지만, 늦둥이였던 학연을 부모님 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던 형제였다. 학연의 어머니는 학연을 낳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의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으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학연의 아버지는 학연에게 있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매를 들었다. 아직 걸음마도 체 떼지 못한 학연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학연의 아버지는 틈만나면 학연을 폭행했다. 그 작고 어린 아기를. 어머니의 죽음은 학연의 탓이 아니었다. 그것 역시 학연이 아버지의 품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스스로 밝혀냈던 진실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학연의 아버지의 원수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 즉, 학연은 무고한 어린 아이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학연의 아버지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자신의 죄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 죄없는 학연에게 죄를 물었다. 역지사지, 였다.
학연과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형제는 아직 보호받아 마땅찮을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괴롭힘 당하는 학연을 보호 해 주려 항상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뼈마디가 부러지더라도 끝까지 학연이 쇠몽둥이에 맞지 않도록 끌어 안아서라도 보호하곤 했다. 학연의 아버지의 폭행은 학연이 자라 가면서 더욱 난폭해 졌고, 잔혹해 졌다. 학연의 날개뼈 죽지에 남은 흉터 자국이 그 증거였다. 학연은 고작 보기 흉측한 흉터만 남았다고는 하지만 학연의 형제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손에 무참히 살해 당했다. 사인은 아마 두개골 파열 및 과다 출혈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죄는 학연이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했다. 그래서, 학연은 돈을 들고 도망쳤다. 아마 학연이 죽어가는 골목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학연은 지금쯤 공개 수배 되어서 경찰들의 수색에 몸한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다녀야 했을 수도 있다. 죽어가는 골목은 그런의미에서 학연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장소였다. 이보다도 안전한 은신처는 없다. 그것이 학연의 생각이었다.
확실히 죽어가는 골목은 경찰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원래 골목 자체가 노숙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경찰들은 어느 한 기점 으로 부터 죽어가는 골목을 관리하는 것을 포기 하였다. 아마 그들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었다. 더럽고 귀찮은 노숙자들을 이곳 저곳 밖에 두는 것 보단 저 골목 안에 모조리 쑤셔 넣어 두는 것이 더 편하겠지. 하지만 죽어가는 골목은 단지 집없는 자들의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상상이상으로 추악한 자들이 모인다. 학연은 도망길에 오르면서 흘려 들은 이런저런 얘기들에 죽어가는 골목에 대해 더더욱 흥미를 가졌다. 그리곤 죽어가는 골목을 자신의 시작점으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나는 새롭게 시작한다. 학연은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 도망쳐 나오면서 빼돌린 상당한 돈으로 정보를 얻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장 간략하게 리스트를 뽑아냈다.
"체계적인 조직을 형성해야 해."
그렇게 선발 된 것이 특정 인물 살인을 맡을 김원식 (¿ 라비), 특정 인물 시체 처리를 맡을 정택운 (¿레오), 폭탄 및 총기 테러를 맡을 이들 중 대표 이재환 (¿켄), 폭탄 및 총기 테러로 인해 생긴 시체 처리를 맡을 죽어가는 골목의 악동들의 대표 이홍빈 (¿홍빈)과 한상혁 (¿혁).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적은 숫자 역시 아니었다. 학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내부 구성이 체계적이고 탄탄한 만큼 학연도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더, 지능적으로. 더 야비하게 굴지 않으면 나의 목이 잘린다. 학연은 자신이 독을 품은 독사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가진 이 독을 품고 있다가 마지막에 분사한다. 학연은 자신있었다. 제 아비의 무차별적인 폭행을 받으며 자라오면서 배운 것이라곤 그런 것 밖에 없었으니까.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부의 사람들은 학연이 가진 '돈' 으로 사들이면 됐었고, (학연에게는 아버지에게 맞아 목숨을 잃은 형제가 몰래 자신을 위해 남겨준 막대한 큰 돈이 있었다.) 죽어가는 골목의 사람들은 학연의 특유의 달콤한 꼬드김으로 꾀어 내면 됐었다. 학연은 가장 먼저, 택운과의 거래를 성사 시켰다. 골목 가장 구석진 곳에서 큰 몸을 잔뜩이나 웅크리고 숨죽여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있는 택운에게 두툼한 빵과 따뜻한 우유를 건넨 학연이 택운에게 자신이 거처에서 지낼 것을 물었다. 물론 처음은 당연하다는 듯이 매몰차게 거절 당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학연이 아니었다. 학연은 기어코 택운을 자신의 거처로 데리고 왔으며 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물론,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도와만 준다면 언제든지 배를 부르게 해줄 것이라는 말만 덧붙였을 뿐이다.
"많이 배고프죠, 택운씨는."
"....."
택운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학연은 능숙하게 택운의 눈빛이나 간단한 고개짓 만으로도 대답을 유추해 냈다. 택운은 확실히 학연을 경계하고 있는 듯 싶었지만 학연은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어짜피 자신이 택운에게 친절한 이유는 그닥 깨끗한 목적은 아니니. 학연은 허겁지겁 제 배를 채우는 택운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 역시 따뜻한 우유 한잔을 마셨다.
두번째는 원식이었다. 학연은 여자를 벽에 강하게 밀치고 입을 맞추다가 능숙하게 여자의 목을 꺾는 원식의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원식은 자신의 옷에 튄 핏자국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뭐냐는 듯이 학연을 바라 보았다. 학연은 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랑 같이 일 하지 않을래요? 그리고, 당연한 거절. 원식은 일이라는 형식에 묶이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눈치챈 학연이 제 옆을 지나쳐 가려는 원식에게 흘리듯이 말을 건넸다. 저는 당신의 취미를 존중합니다. 원식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학연은 가볍게 웃으며 제 이름을 말하고는 원식에게서 멀어졌다.
세번째는 홍빈과 상혁의 무리였다. 그들은 학연의 단 한마디에 모두 일에 동참하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껏 놀 수 있도록 해드리죠."
학연이 그들에게 한 말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재환은 유일하게 학연에게 먼저 다가온 인물이었다. 학연은 일차적으로 재환을 경계했다. 하지만 곧 재환이 죽어가는 골목의 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받아 드렸다. 무엇보다도 재환은 중요하게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학연은 나머지 인력들은 모조리 돈으로 사드렸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계획아래 이 일을 끝마칠 것이었다. 학연이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웃었다. 택운은 제 입 가득 과일을 넣어 씹다가 학연을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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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골목의 암호닉은 따로 받을꺼예요!
♥ 요구르트님 ♥
그밖에 신알신 해주신 분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