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Love
: 사랑에 빠진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Special 下
"하루. 할머니랑 잘 있어야 해. 할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알았지?"
하루를 엄마에게 맡긴 뒤, 목에 차고 있던 마이크를 풀었다. 이미 꿈나라로 떠난 하루는 대답 대신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잠에 든 하루를 고쳐 안고는 내게 어서 가보라는 고개짓을 했다. CF 촬영이 있었다. 나는 스텝들에게 인사를 끝으로 준비 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피곤해. 본의 아니게 호빵하고 틀어진 하루여서, 내적인 피로가 가득했다. 사실 피로라고 하기도 뭐한 자괴감 같은 감정이었다. 아닌 걸 알면서도 왜 괜히 투덜거렸을까. 뭐 이런. 매니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제가 듣던 재즈곡의 볼륨을 낮췄다. 하여튼 김태형. 이 사람 저 사람 피곤하게 한다. 나는 매니저에게 노래 크게 들어도 괜찮다고 말하고는 두 눈을 감았다. 전보다 커진 음악이 차 안을 채웠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차의 시동이 꺼져있었다. 도착한 건가. 근데 왜 안 깨웠지. 나는 눈을 덮고 있던 팔을 뻗었다. 일어나야 했으니까. 그런데 팔을 뻗은 반경 내에 무언가 툭 하고, 팔둑에 닿았다. 뒷자리에 누군가 있는 모양이었다. 스타일리스트인가. 나는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로, 눈만 움직였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언제부터 이 차에 있었는지 모를 호빵이었다. 헛것을 본 건가 싶어 눈을 여러번 감았다 떠도, 여전히 호빵이었다. 뒷자석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나를 멀뚱이 바라보던 그녀는 저를 바라보는 내가 재밌는지, 마냥 키득거렸다. 그녀는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제 작은 손으로 내 양볼을 잡고는 이마에 잘게 입을 맞췄다. 거꾸로 뭐 하는 거야.
"할 거면 입술에 해줘야지."
"싫은데?"
"너무하다."
"귀여워."
연애 때도 잡혀 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내가 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뭐. 놀리지도 못한다. 내게 귀여워하며 푸스스 웃은 그녀가 순식간에 좀 더 몸을 숙여, 내 아랫입술을 짧게 물었다 놓았다. 그녀가 이럴 줄 알았던 나는 그녀가 멀어지지 못하게 손을 뻗어, 동그란 뒷통수를 끌어안았다. 순간 몸이 휘청한 그녀가 내쪽으로 무너졌다. 나는 이때다 싶어 조금 전보다 훨씬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살 것 같다. 길어지는 입맞춤에 내 입술을 아프게 깨물고 멀어진 그녀는 어느덧 내 옆으로 와서 앉고는 제 입술을 어루만졌다. 립스틱 새로 사가지고 자랑하려 했는데! 달싹이는 입술이 붉은 색으로 번져 있었다. 예쁜 거 샀네.
"예뻐."
"다 지워졌을 거 아니야!"
"하나도 안 지워졌어."
"... 거짓말."
"진짜야. 그대로야. 예뻐. 예뻐."
"진짜?"
"응."
그러니까 나한테 와. 나는 옆 좌석에 앉은 호빵에게 두 팔을 힘껏 벌려보였다. 내 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그녀가 얄궂게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녀는 나와 마주본 상태로 내 얼굴 곳곳에 제 입을 맞추고는 내 가슴팍에 기대어, 오늘 나와 하루없이 어땠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는데, 다들 나보고 아줌마 됐다구. 막 그랬어. 쇼핑 가서도 하루랑 오빠 것만 사니까, 내 것도 좀 사라고. 그래서 하루랑 오빠 살 거 다 산 다음에 립스틱 이거 샀어! 근데 이거 너무 진하지 않아? 애기 엄마가 이런 거 바르면, 좀 그렇잖아. 그치?"
좀 그렇긴 무슨. 엄청 잘 어울리는데. 비록 지금은 다 번졌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그녀의 목덜미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더 사지. 왜 립스틱만 샀어. 옷도 사고. 가방도 사고. 사고 싶은 거 다 사지. 나는 차마 건네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녀의 목덜미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앙. 그러자 작은 몸이 내 위에서 달싹이며 나를 밀어냈다. 강아지야? 하루도 안 하는 걸, 오빠가 하는 거야? 나는 또 하루와 나를 비교하는 호빵이 밉다가도, 하루와 나 때문에 많은 걸 잃은 것 같은 그녀가 마음에 쓰였다. 그냥 호빵으로도 제일 예쁜데, 왜 자꾸 누구 엄마. 누구 부인 하려고 할까.
"하루랑 나 호빵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어."
"촬영 잘 했나보네?"
"촬영 없어도, 호빵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어. 나 아빠잖아."
"그럼. 하루 아빠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호빵 남편도 하고. 하루 아빠도 하니까. 호빵도 그래."
"응?"
"호빵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하루 엄마하고 내 부인해."
"아니야. 나 별로 하고 싶은 거 없어."
"없긴 왜 없어. 영화관 가고 싶으면 가고, 혼자 미술관 가고 싶으면 가고. 다 해도 돼."
"..."
"아무것도 포기 안 해도 돼. 응?"
"... 그럼 하루는 누가 봐. 아직 어리잖아."
"하루 봐 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야?"
"뭐... 그러면 나도 조금은 편하겠지?"
**
"왜 압바가 와써?"
"아빠가 하루랑 집에 가고 싶어서?"
"엄마는? 엄마는 모하는데?"
"엄마 아 예쁘다 하러 갔어."
"아 예뿌다?"
"응."
드라마도 종영했겠다. 적어도 육 개월에서 일 년은 쉬면서, 육아와 가사를 담당할 생각이었다. 그녀한테는 아직 말 안 했는데. 뭐. 싫다고 하지는 않겠지. 하루는 저를 데리러 온 내가 어색한지, 집에 가는 길 내내 제 엄마를 찾았다. 아빠 서운하게.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따금씩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싸인과 사진을 요청해왔는데, 하루는 그게 마냥 신기한지 멀뚱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압바 테레비에 나와서 사람들이랑 찰칵 하는거야?
"아빠 잘 생겼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멋져요. 해주는 거야."
"아빠보다 희망이가 더 잘생겨써!"
"... 그게 누구야."
"유치원 짝꿍인데 희망이를 좋아해. 내가!"
"동갑이야?"
"웅. 친구야. 근데 희망이가 자꾸 나 괴롭혀서... 내가 쪼금 속상해."
"괴롭혀? 막 때려?"
"안니. 그냥 나한테만 막 간질간질 하구... 볼에다가도 막 이케이케 낙서하구."
"희망이가 하루 좋아하나보다."
"진짜?"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파드득 멈춰 선 아이였다. 뭐야. 희망이가 좋아해주는 게 그렇게 좋아?
"희망이가 하루 좋아해? 진짜?"
"응. 아빠가 엄마한테 맨날 그랬어. 좋아해서."
"좋아하는데 왜 괴롭혀!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아빠가 잘 몰랐어."
"아빠가 잘모탰네."
"아빠도 알아. 그러니까 하루도 희망이한테 가서 말해."
"모라구?"
"좋아하면 괴롭히는 거 아니고, 좋아해. 이렇게 고백하는 거라고."
"... 부끄럽자나."
"그래도 괴롭히는 건 나쁜 거야. 좋아하면 좋아해. 하고 말 해야지."
"... 그치?"
"그럼."
"아라써. 내일 말 하께."
**
Girl View
유치원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덕분에 작은 유치원 운동장 안이 모처럼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오빠는 하루가 데리고 온 남자친구 희망이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막연한 슬픔에 잠겨 있었다. 언젠가 둘이 며칠을 밤 늦게까지 속닥이면서 연애상담 했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희망이라는 친구는 하루를 금이야 옥이야 아주 귀하고 소중하게 대해주었다. 그냥 맨바닥에도 못 앉게, 제 작은 점퍼를 깔아주기까지 하면서. 더울까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람까지 만들어주었다. 저 나이 때는 보통 좋아하면 괴롭히고 장난치는 걸로 표현하지 않나. 나는 희망이의 손을 잡은 채로 멀어지는 하루를 바라보다 오빠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나라 잃은 줄 알겠다. 나는 오빠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아이 같은데? 하루한테 잘 해주고. 어? 누구랑 다르게. 괴롭히면서 좋아하는 거 티내지도 않고! 누구보다 낫다. 나아. 그러자 오빠의 큰 눈이 순식간에 억울함으로 차올랐다. 저거 내가 다 알려준 거야! 진짜로!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한테 쏠리는데, 오빠의 큰 목소리에 또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이 닿았다. 괜히 운동회 복잡해질까봐 오지 말랬더니, 단숨에 일을 때려치워 백수가 된 배우 남편은 굳이 굳이. 아침 일찍부터 가족 모두를 깨웠다. 그리고 최대한 배우가 아닌 것처럼 해보겠다며 이 모자 저 모자를 번갈아 쓰며, 행색을 바꿔댔다. 뭘 해도 그 얼굴이 어디 안 가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아빠들의 줄다리기가 있을 예정입니다. 원아의 아버님들은 전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모자를 푹 눌러쓴 오빠가 일어섰다. 나 왜 벌써부터 좀 창피하지. 하루는 제 아빠를 데리고 가기 위해, 작은 몸을 뒤뚱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빠는 잘 하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장난스러운 윙크를 끝으로 하루에게 향했다. 사람들 틈에 섞인 오빠는 존재감이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눈에 튀었다. 아니. 다 가렸는데, 혼자 연예인이야. 뭐야. 흙바닥도 레드카펫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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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줄다리기 규칙 설명 듣는 중인 하루 아버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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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에요! BF로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러분이 반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오늘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러블리네로 찾아왔네요. 모든 작품 속 아이들은 전부 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종종 기억해주세요! 저는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고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럼 또 금방 뵈어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