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핀잔
SPECIAL ; 딸기잼
"희망 아빠!"
마당 빨랫줄에 걸린 이불 뒤로 숨으며, 그를 불렀다. 그러자 나를 따라온 희망이 역시 제 이불 뒤에 몸을 감추며, 나를 따라 작은 입을 열었다. 희망 아빠! 나는 희망이를 향해, 희망이는 아빠라고 해야지! 하니, 희망이가 그를 닮은 두 눈을 배싯 접고는 웃으며 답했다. 희망이 아빠니까! 희망 아빠 해도 괜차나!
"... 아침부터 뭐해."
그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아무 신발이나 신고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깼네. 저 남자가. 희망이는 제 아빠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는 엄마. 숨어! 하며, 이불 속에 제 얼굴을 묻었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귀여워. 내 새끼.
"엄마! 엄마도 이케 숨어야지!"
희망이는 저처럼 숨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는 내 손을 잡아 끌어, 제 빨랫줄에 걸린 자신의 작은 이불 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러자 내 쪽으로 걸어오던 그가 멈칫하고는 제자리에 서서 말했다. 정희망. 엄마 주세요. 희망이는 저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에 희망이랑 엄마 업서요! 하고, 내게 조용히 하라는 듯 제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댔다. 나는 희망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희망아. 근데 우리 왜 숨어야 돼? 하며.
"... 숨은 거 아니야!"
"지금 우리 숨은 건데?"
"아니야. 이거는 숨은 거가 아니고..."
"응. 숨은 게 아니고?"
"잠깐 사라져따! 이거야!"
"응?"
"귀신놀이야. 귀신놀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희망이의 말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냐는 듯,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예뻐 죽겠어. 희망이는 제 볼에 잘게 입을 맞추는 나를 따라 내 볼에 제 입을 맞추다가, 이내 제 코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엄마. 희망이 제일 예쁜 데에도 뽀뽀!' 제 아빠를 똑닮은 코를 가진 아이라, 매일 희망이 코는 왜 이렇게 예뻐. 하고 칭찬을 해준 덕인가. 희망이는 제 예쁜 코에 입을 맞춰주는 걸 좋아했다. 나는 아이의 말대로 그럴까? 하며 희망이의 코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러자 언제 우리 곁에 온건지, 이불을 단숨에 들춰낸 그가 우리를 바라보며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희망이를 밉지 않게 흘기고는 제 소매로 자신의 코를 쓱 문지르더니, 무릎을 굽혀 내 앞에 앉았다.
"나도 제일 예뻐. 여기."
그의 검지 손가락이 제 코를 가리켰다. 설마 자기도 해달라는 거야?
"희망이처럼 해달라고?"
"당연한 거 아니야? 저 코 누가 물려준 건데."
"얼씨구."
"빨리 나도 해줘. 제일 예쁜 데 뽀뽀."
나는 사뭇 진지한 그의 태도가 귀여워 정말 입을 맞춰줄 심산으로, 그의 양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희망이는 무엇에 심술이 났는지 제 아빠의 어깨를 작은 두 손으로 툭 밀었다. 덕분에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는 두 눈을 뜬 채로, 희망이를 바라봤다. 희망이는 제가 한 행동에 스스로 놀라며, 작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가 왕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희망이의 눈물바람에 당황한 내가 아이를 안아들고 달래기 시작했지만, 그는 내 품에 있던 희망이를 빼앗아가서는 품이 아닌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 행동에 더욱 서러워진 아이가 내게 두 팔을 뻗어왔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희망이의 두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정희망. 똑바로 서야지."
"... 아빠. 미워!"
"미워도 안 돼. 희망이가 먼저 아빠 밀었잖아요."
"... 아빠가, 엄마, 희망이껀데!"
"울지말고, 말 똑바로."
나는 아이를 조금도 달래주지 않는 그가 답답했지만, 희망이를 위한 일이니까. 희망이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 새끼. 코 빨개졌어. 희망이는 제 아빠의 말대로 울음을 그치려, 작은 입술을 깨문채로 히끅거렸다. 저러다 입술에 상처 나겠다. 나는 희망이의 입술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내 손을 잡아채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두라는 뜻이겠지. 붉어진 아이의 얼굴과 가쁜 숨을 내쉬는 작은 몸을 보니, 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 좀 안아주지.
"다 울었어?"
조금은 진정이 된 듯한 희망이에 그가 무릎을 더욱 굽히며,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희망이가 제 눈꼬리에 맺혀 있던 눈물방울을 씩씩하게 닦아내고는 말했다.
"아빠가 엄마는 희망이껀데."
"... 그런데."
"코쪼! 해달라고 해짜나! 코쪼는 희망이만 하는건데..."
"코쪽이 왜 너만 하는 거야."
"... 엄마가 희망이 코가 제일 예쁘다고 해쓰니까!"
"임마. 그 코 누가 준건데."
"코 희망이꺼야!"
여기서 코쪽이라 하면, 코에 뽀뽀 하는 것을 의미했다. 희망이는 말을 하면서도 서러움이 차오르는지, 다시 히끅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좀 져주지. 그러자 그 역시 희망이의 작은 어깨가 달싹이는 게 마음 아팠는지, 희망이에게 두 팔을 뻗었다. 아빠한테 오세요. 하면서. 그러자 희망이는 머뭇거리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희망이를 향해 웃으며, 빨리 가야지! 하고 입을 벙긋였다.
"아빠도 코쪽 하려는 게 싫었어?"
"... 으응."
"그래도 아빠를 밀면 안 되지. 그치?"
"... 아빠 아파써?"
"그럼."
"... 미, 미안해!"
내 말을 끝으로 제 아빠의 품에 쪼르르 달려가 안긴 희망이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해! 하며. 희망이의 오열 섞인 사과에 당황한 그가 괜찮다며,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아이는 좀처럼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아빠 때려써. 내가 쿵쿵 때려써. 미아내. 아빠 아파. 등의 말을 반복하며. 숨이 넘어갈 듯이. 그는 제 품에서 세상 미안하게 우는 희망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한 팔로 아이를 안고는, 다른 한 팔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해 했으니까 괜찮아. 그만 울어. 희망아.
**
"... 희망이 자?"
"응."
그렇게 힘을 줘서 울더니, 결국은 지쳐서 잠에 들었나보다. 그는 희망이를 안은 채로, 곧장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의 볼에 선명한 눈물 자국이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아침은 일어나면, 점심이랑 같이 해서 먹여야겠네. 그는 희망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저를 따라 들어온 내 어깨를 쥐고는 '나가자.'하고 속삭였다. 나는 그의 말대로 아이의 방을 벗어남과 동시에 그가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그러자 그는 제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맞네. 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애를 그렇게 울리냐. 아빠가?"
"뭐가 별 게 아니야."
"아빠 좀 밀 수도 있지! 아프지도 않았으면서."
그는 내 말 별다른 대답없이 냉장고를 살피다가 물었다. 포도잼 어딨어? 나는 그를 밉게 흘긴 뒤, 냉장고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그는 백허그를 하는 것처럼 내 뒤에 서서는 내 어깨 위에 제 턱을 묻었다.
"남자애들은 힘 함부로 쓰는 거 아니라고, 알려줘야 돼."
"그래도 그렇게 울 때까지, 안아주지도 않고."
"안 그러면 나중에 너한테도 힘 쓴다니까. 희망이 조금만 더 자라면 너보다 힘 쎄져."
"그럼 그때 혼내면 되지."
"그때 혼내면 늦어. 지금부터 알려줘야지."
"잼 저깄다."
그는 냉장고 가장 위에 있는 잼을 꺼내고는 내 몸을 돌려 말했다. 그래서 나는 코쪽 안 해줘?
"미워 죽겠어."
"응. 나도 사랑해."
무슨 말을 해도 사랑한다는 답으로 돌아올 걸 알았기에, 잼을 든 그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그의 콧망울에 짧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하며.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냉장고 문을 닫고는 싱크대로 향했다.
"토스트 해줄게."
"나는 포도잼 싫은데?"
"그럼."
"딸기잼으로 해줘!"
"집에 딸기잼 있어?"
"없지!"
"그럼 기다려. 사올게."
"뭘 사와. 장난이야."
"그래도 사올게. 희망이도 딸기 더 좋아하잖아."
"됐어. 귀찮은데 무슨."
"아니야. 들어오면서 빨래도 걷어오지. 뭐."
귀찮지도 않나. 잼 사러 언제 나갔다가 와. 하지만 그는 정말로 다녀올 심산인지, 안방에서 모자 하나를 푹 눌러쓰고는 내 앞에 섰다.
"심부름 가니까 코쪽 해줘야지."
"알았어."
여전히 신혼처럼, 내가 원하는 건 다 해주려는 그가 고마웠다. 그래서 거하게 코쪽이나 한 번 해줘야겠다 했는데, 모자챙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허리를 숙이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제 말과 다른 코쪽 대신 깊은 입맞춤을 이어갔다. 급작스러운 입맞춤에 그의 정강이를 아프지 않게 걷어차자, 그는 입술을 맞댄 채로 푸스스 웃고는 말했다.
"딸기잼 사올게."
루즈한 차림으로 캡모자 하나를 쓴 채로, 딸기잼을 사러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행복했다.
**
안녕하세요. 다정한 핀잔으로 인사드리는 건, 오랜만이네요! 오늘이 다정한 핀잔으로 여러분과 만난지, 324일이 되는 날이에요! (벌써...ㅜ_ㅜ) 곧 있으면 1년이네요. 시간 정말 빠르죠? 다정한 아이들로 시간을 나눴던 게, 정말 얼마 전 같은데...!
아이들은 딸기잼 하나에도 행복함을 느낄 정도로 여전히 다정하게,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기억 속 아이들도 이렇게 설레게! 살고 있기를 :)
제가 있는 곳은 비가 오네요. 집 근처 카페 2층에서 다정한 핀잔을 쓰면서, 비 오는 걸 보고 있자니. 정말 행복해요! 여러분에게 이 행복이 전해졌기를 바라면서! 다정한 핀잔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