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년
01
「아, 미치겠네. 또 늦으면 진짜 좆되는데…」
학연이 세차게 숨을 몰아쉬었다. 손목시계는 여덟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학연의 다리와 팔은 힘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달리기는 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차학연이라지만 지각해서 맞아 죽는 것보다는 뛰다 숨차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학연은 생각했다.
평소에 게으름 부리는 성격이 아닌데도 학연은 지각을 자주 하고는 했다. 나름대로 자신은 시간 맞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시계를 보면 아슬아슬한 시간일 때가 굉장히 많아서, 뛰어서 학교 등교하는 건 이제 거의 차학연의 일상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자신도 왜 그렇게 생각했던 것과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학연은 많았다.
어쨌든 학연의 학교 등교 시간은 여덟 시 십 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고, 오늘은 정말 제대로 지각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학연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학주의 손맛을 잘 알고 있는 학연은 미친 듯 뛰어 거의 학교 앞에 다다라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여덟 시 팔 분. 학교와 학연이 서 있는 인도 사이에는 조금 넓은 도로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고, 잘하면 지각하지는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차학연이 무작정 도로로 뛰어들었다. 분명히 그 때 차학연의 눈 앞에는 차가 없었다.
도로에 뛰어들자마자 바로 옆에서 귀를 시끄럽게 찢어 버릴 것 같이 울리는 마찰음에 학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그랗던 눈이 한층 더 동그랗게 커졌다. 트럭이었다. 탁한 푸른빛을 띈 대형 트럭이 학연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운전사가 당황한 채로 미친 듯 크락션을 눌러댔지만 학연의 발은 누구나 그렇듯 자신을 금방이라도 깔아뭉갤 듯한 대형 트럭을 바로 앞에 두고 안타깝게도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학연의 눈동자 가득 푸른 트럭이 가득 들어찼을 때, 차학연은 생각했다. 죽는구나.
눈을 감았다. 눈 뜨고 죽은 시체로는 발견되기 싫었던 학연이 슬쩍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학연에게는 일어나지 않았고, 자신을 타이어 밑에 깔아 뭉갤 것 같던 대형 트럭은 학연의 몸에 닿지 않았다. 오히려 살랑이는 여름 실바람만이 학연의 얼굴을 간지럽힐 뿐이었다. 내가 죽었나, 싶어 학연이 슬며시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아까의 도로가 있었다. 차학연은 아직, 인도 위에 서 있었다. 멍하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도로를 바라보던 학연이 무심코 습관처럼 손목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덟 시 팔 분.
「…어?」
도로로 뛰어들기 바로 전의 시간이 학연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꿈 속을 걷듯 아무것도 머릿속에 정상적으로 입력되는 것이 없는 느낌에 학연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도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치어 죽일 것 같았던 탁한 푸른빛의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학연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트럭이 일으킨 악취 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몇 올 흩날리고 나서야 차학연은 지금 자신이 아주 잠깐이지만 과거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연이 신호등을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초록불로 반짝 하고 빛을 내는 신호등에 자신이 등교 중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학연이 다시금 발걸음을 빨리 했다. 일단 그건 그거고, 지금 중요한 건 지각을 하지 않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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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몇 분이지만 지각을 한 차학연이 흠씬 두들겨 맞아 얼얼한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교실의 이목이 단번에 저에게로 집중되는 바람에 학연이 멋쩍게 웃으며 총총 걸어들어와 제 자리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학연의 옆자리에서 가만히 수업을 듣고 있던 택운이 자리에 앉아 아파 죽겠어, 라며 중얼중얼 불만을 토로하는 학연을 미소를 띈 채 쳐다보았다.
「또 지각했어?」
「아, 내가 지각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들어봐 있지… 아!」
「차학연 조용히 안 해? 지각한 주제에 말이 많아!」
특유의 쨍알쨍알 수다를 시작하려던 학연에게 자그만 분필을 정확히 명중시킨 선생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여전히 입은 댓발 튀어나온 채로 가방에서 주섬주섬 교과서와 필통을 꺼내 정리하는 학연을 빠안히 바라보고 있던 택운이 자그맣게 웃었다. 니가 맨날 지각하는 거야 일상다반사니까. 들리지 않게 속닥속닥 학연에게 속삭인 택운이 자신을 홱 째려보는 학연에게 아주 작게 혀를 내밀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칠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 택운의 하얀 옆얼굴을 바라보던 학연 역시 픽 웃고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열어 놓은 창문에서 기분 좋게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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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맛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속 배가 고프다고 옆에서 중얼거리는 택운에 아우 가자 가, 매점 가면 될 거 아냐! 라고 매점으로 택운을 결국 끌고 온 학연이 정작 제가 더 신나서는 늘어선 빵들에서 눈을 못 뗐다. 이거 먹을까, 아냐 저게 더 맛있어 보이는데. 한껏 들떠 쨍알거리는 학연의 옆에서 조용히 소신껏 피자빵과 커피우유를 집어든 택운이 학연의 품에 그것들을 건넸다. 결국 고민한 보람도 없이 늘상 고르던 바나나우유를 집어든 학연이 다짜고짜 품에 넘겨진 피자빵과 커피우유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택운을 다시 쳐다보았다. 빤빤하게도 학연을 멀뚱하니 바라보고 있는 택운을 보고 학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 어쩌라는 거냐.」
「사줘.」
「야 너 진짜-」
너무도 당당하게 사 달라 말하는 택운의 얼굴을 보고 발끈한 학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곧, 뭐, 늘 그래왔듯이 학연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것들을 전부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삼천원. 학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도 삼천원, 이라고 툭 내뱉으시는 매점 아주머니의 말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제 피 같은 삼천원을 건넨 학연이 피자빵을 던지듯 택운에게 주고선 투덜거리며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 옆에 앉아 헤실헤실 웃으며 피자빵 봉지를 뜯는 택운을 밉지 않게 째려보고는 제 손에 들린 둥그런 바나나우유를 뜯어 한 입 마셨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털린 제 주머니 사정도 잊고는 행복한 미소를 짓던 학연이 아, 했다.
「나 오늘 죽을 뻔했다?」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뭘 죽어.」
「아니 지각해서 뛰어오는데 그 뭐냐, 트럭에 치일 뻔 했거든? 막, 진짜, 눈앞에 트럭이 있었는데 진짜 나 죽는구나 생각했다니까.」
「근데 왜 안 죽었어.」
그러니까, 아니 잠깐만 그럼 나보고 죽으란 거냐? 학연이 바락 소리를 지르며 택운을 퍽퍽 때렸다. 장난, 장난. 맞은 부분을 주무르며 택운이 작게 웃었다. 어쨌든 말야, 들어봐. 근데 너 이거 안 믿을 거 같은데. 계속 웅얼거리며 얘기를 주저하는 학연에 택운이 뭔데, 빨리 말해 봐. 하고 재촉했다.
「트럭이 나 치려는데, 눈 감았다 뜨니까… 아 씨 나도 안 믿기는데, 시간이 뒤로 돌아가있더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씨발 이거봐! 안믿는댔지 내가. 아 진짜야. 나도 안 믿겨 아직까지. 근데 진짜야.」
정말로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울분을 토하는 학연의 얼굴을 한심하단 듯이 빤히 쳐다보던 택운이 피자빵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병원 가 봐라.」
「아, 아아악 존나! 아 진짜 나 못 믿어? 진짜 시간이-」
「잠깐 헛거 본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너무 급하게 달려오다가 산소 부족해서 잠깐 정신착란 일어난 거야.」
단호하게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택운의 표정에 잠깐 발끈한 학연이 아 너 진짜, 하고 다시 택운에게 투덜거리려다가 정말로 자신의 말을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택운 특유의 무표정을 보고는 손에 쥐고 있던 바나나우유를 만지작거렸다. 분명히 그건 현실이었다고 생각했다. 차가 눈 바로 앞까지 다가오는 순간도, 당황한 운전수가 경적을 미친 듯이 눌러대는 모습도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에. 하지만 확실히, 21세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건 맞았다. 어떤 사람이 시간여행을 했다는 고등학생 말을 믿어주겠어. 택운의 강경한 부정을 듣자, 의심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정말로 잠깐 헛것을 본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학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진짜 헛거겠지?」
「어.」
…그래, 정말 헛것을 본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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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시달소 1편을 들고 돌아왔어요!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 라뷰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