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변환이 잦습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눈부신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나의 어여쁜 연인에게 향하던 중이었다. 퇴근이 살짝 늦어지는 바람에 바삐 자동차 엑셀을 밟으면서도 곧 너를 볼 거란 생각에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차를 타기 전 확인했던, 언제 오냐는 너의 투정 가득한 문자가, 그 말풍선이 다시금 머릿속을 채운다. 조수석 자리에는 네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가, 네게 건네 줄 예쁜 꽃다발이, 너를 닮은 하얀 색의 선물상자가 놓여 있다. 그래 오늘은, 내가 너의 연인이 되고 또 네가 나의 연인이 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널 위해 준비한 것들을 모두 네게 건네며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의 전부가 되어 줘서 고마워. 그럼 넌 그 예쁜 얼굴로 예쁜 웃음을 지어보이겠지. 그러고는 내게 무슨 대답을 해 주려나. 쾅.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내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그것을 이해하기도 전에 내 몸이 힘없이 운전대 위로 축 처졌다. 힘을 주려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머리에서 얼굴을 타고 무언가 따뜻한 게 흘러내린다. 겨우 초점을 맞춰 확보한 시야 그 안으로 깨진 조수석 유리창이 눈에 늘어온다. 그 깨진 창 너머 웅성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나 교통사고를 당했구나.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것은 내 머리에서 나는 피구나. 새삼 깨닫는다. 자꾸만 축 처지는 고개를 따라 힘없이 시야를 옮기면 바닥에 떨어진 채 뒤집혀진 케이크 상자와 비닐 포장 속에서 바스라지고 만 꽃잎과 나의 피로 추정되는 빨간 것이 군데군데 묻어 흉측해진 선물상자가 보인다. 아, 모두 네게 주려고 했던 것인데. 전부 다 망가져버린 것만 같아 매우 속상하다. 잠이 온다. 자면 안 되는데. 네게 가야 하는데. 네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잠에 빠져들지 않으려 애를 써 보지만 자꾸만 계속해서 눈이 감겨온다. 끝내 정신이 몽롱해지고야 만다. 최우주에게 가야 하는데. 아론 씨, 아니, 죄송한데 오늘 하루만 너라고 할게요. 오늘 하루만 존댓말도 좀 치울게. 나 지금 너무 화가 나서 그래. 화가 나는데도 화를 내지 못하겠어. 너를 기다리는 동안 느꼈던 그 떨림과 설렘과 예쁜 감정들은 어느 순간 허무함과 허탈감과 씁쓸함으로 변질되고야 말았어. 그 모든 서러움이 쌓이고 쌓이다 넘쳐 눈물로 흘러내려. 너를 기다리면서 내가 참 많이도 행복했나봐. 슬픔으로 바뀌어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려도 난 끝없이 슬프네. 사실 아직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곧 온다며. 예쁘게 입고 잘 기다리고 있으라며. 나 그래서 밀려오는 잠을 찬물로 세수를 해 가며 억지로 눈을 뜨고 있었어. 나 그래서 네가 이전에 내게 잘 어울린다 해 줬던 그 검은 원피스 입고 기다리고 있었어. 근데 너, 이럴 거면 곧 온다고 하지 말지 그랬어. 예쁘게 입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하지를 말지 그랬어. 이러니까 나 지금 꼭, 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기 위해 잠들지 않았던 것 같잖아. 너의 장례식을 예상이라도 한 듯, 검은 옷이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오늘의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어. 눈을 뜨면 네가 내 눈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난 악몽을 꿨다며 너의 품에 파고들어 칭얼대고, 너는 그런 나를 달래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 눈을 뜨면 이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나는 그저 네 옆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에도 우주는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 3일 내내 우주는 울기만 했다. 장례식에 온 그 누구도 그녀만큼 아파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아론의 가족이 우주를 달래고 있었을까. "이거, 그쪽 것 같아서..." 장례식 일정을 마치고 눈물을 겨우 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우주를 잡은, 아론의 동생이 딱 품에 들어올만한 박스 하나를 우주에게 건넸다. 우주는 저 못지않게 초췌해진 아론의 동생을 보며 다시 눈물을 터트렸다. 고마워요. 우주는 그렇게도 울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주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또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큰 박스를 넘겨받는 것 그뿐이었다. 아론 씨의 마지막 선물을, 내게 배달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이건 아마도 다시는 없을 유일한 내 마음 속의 그 사람이겠죠. 그렇게 남겠죠. 더없이 소중한 그 박스를 꽉 끌어안으며 우주는 속으로 아론을 삼켰다. 여전히 이 모든 게 지독하게 잔인한 악몽인 것만 같았다. 돌아온 집은 여전했다. 그래서 우주는 더 쓸쓸했다.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나섰던 3일 전의 그 집 그대로였다. 제가 아론을 위해 준비해 둔 쇼핑백도, 그 쇼핑백 속 선물도, 탁자 위 함께 마시려 했던 와인도, 읽어주려 했던 편지도 모두.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우주는 다시 주저앉았다. 잔뜩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아론을 기다리던 제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지난 3일 간 수없이도 많이 무너졌었다. 수없이도 많은 눈물을 쏟아보냈었다. 이제는 좀 괜찮겠지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또 무너져 우는 걸 보면. 오늘이야, 오늘만 마지막으로 무너져 울 거야. 오늘이 마지막이야. 아론 씨가 그걸 원할 거야. 오늘까지만 원없이 울고 내일은 울지 않을 거야. 아론의 동생이 건네 준 박스를 열어 들어있던 것을 확인하며 우주는 울었다. 제가 사 오라고 했던 치즈 케이크는 케이크 상자 속 잔뜩 뭉개진 채, 평소에 그가 저와 잘 어울린다 얘기해줬던 꽃은 꽃잎이 다 떨어진 채, 아마도 제 선물이었을 ㅡ무엇이 들었는지 모를ㅡ 하얀 선물상자는 피로 얼룩진 채 그 박스 속에 들어있었다. 그 세 가지 중 어느 것에도 아론이 깃들지 않은 것은 없었다. 꽃잎조차 없는 꽃 줄기들을 꺼내어 화병에 꽂았다. 뭉개진 치즈 케이크를 꺼내어 억지로 꾸역꾸역 전부 다 먹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전부 삼키자마자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참으려 했으나 우주는 결국 화장실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비워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치즈 케이크를 모두 게워낸 우주는 입을 헹구며 거울 속 제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 쓰다. 당신은 그렇게도 내게 품어지기가 싫었나 봐. 내게 준 케이크조차 나는 제대로 삼켜내질 못하니. 다시 거실로 가 피로 얼룩진 하얀 상자를 꺼내들었다. 도무지 이것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시리다. 눈을 감았다. 암울하다. 이게 당신이 없는 내 심정이다. 물끄러미 그 하얀 상자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래 이건, 다음에. 물론 그러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 아픔이 조금 무뎌지면, 그 때 열어야겠다. 지금은 당신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아프니까.
까맣게 물든 밤하늘 |
지우주입니다 예전에 썼던 거라 수정을 한다고 했는데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굳이 공지를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새 글을 올린 이유를 물으신다면 음... 일종의 뇌물이에요 저 예쁘게 봐 달라고...❤ 그럼 2주 뒤에 다시 올게요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