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나은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은은 학교의 유명인사였다. 학교마다 한명씩 있다는 ㅇㅇ고 여신 쯤 되는 수식이 붙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얼굴에 따라다닌다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행실 때문이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나올 것 같은 입술에선 걸쭉한 말투가 나왔고, 원피스가 잘어울릴 것 같은 몸에는 늘 체육복이 걸쳐져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도서관에서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면서 책을 읽을 것 같은 얼굴로,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운동을 섭렵했다. 남자애들은 나은의 성격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그저 예뻐서 좋아했고, 여자애들은 얼굴과 달리 내숭 없는 털털한(무서운) 모습에 나은을 좋아했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모두가 나은의 곁에 몰려들었다.
소문이야 자자했지만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홍빈이 나은에게 빠지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왠지 그날따라 날씨가 좋은 것 같은 느낌에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공이 굴러간 곳이 하필이면 배드민턴 코트 쪽이었다. 가까이 있던 홍빈이 자처해서 공을 가지러 코트로 다가가는데, 여자애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여학생이 바로 나은이었다. 교복은 어디에 팔아먹은건지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늘 길게 늘어트리고 다니던 긴 생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었다. 코트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정없이 강한 스매싱을 꽂는데, 왠지 모를 동요가 홍빈의 마음 속에서 일렁였다. (도대체 왜 그걸 보고 반한건지 본인도 아직까지 잘 모른다) 축구공을 주울 생각도 하지않고 멍하니 그 모습들을 바라만 보고있었는데…
' …어, 어? '
' 방해하지말고 빨리 공 가지고 꺼져. '
그 뒤로 끈질기게 나은을 따라다녀 결국 사귀게 된지 올해로 벌써 5년째였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헤어진다는 남자의 군생활 기간도 기다려주었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좀 거칠긴 하지만 착하고(?), 결정적으로 꽃신까지 신어준 나은에게 불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없었었다, 얼마 전까지는.
불만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은에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은이 절대로 치마를 입지않는다는 것이였다. 여자라고해서 맨날 치마만 입으라는 건 아니지만, 스무살 꽃다운 아가씨가 게다가 얼굴 몸매 어느하나 빠지지않는 여학생이라면 다들 치마를 좋아하지않나? 홍빈이 5년동안 나은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본 건 교복을 제외하고 딱 한번 뿐이었다. 둘이 사귄후로 처음 맞는 나은의 생일 날 홍빈이 사준 원피스. 그래도 성의를 생각했는지 정말 딱 한번만 입어주었다. 얼마전에 나은의 집에 놀러갔을 때 강아지집 바닥에 깔려있던 천쪼가리가 그 원피스랑 비슷했지만 홍빈은 별로 신경쓰지않았다. 그깟 치마 안입으면 어때, 바지 입어도 이쁘니까 괜찮아! 물론 가끔가다 치마도 한번씩 입어주면 좋겠지만.
" 어? "
" 앞으로 먼저 걸어가 보라고. "
왠지 왜 먼저 가라고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에, 나은이 쭈뼛쭈뼛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그냥 본 것도 장난 아니었는데, 뒤에서 보니까 진짜 더 가관이다. 치마가 너무 짧아서 손으로 잡아주지 않으면 계속 올라가 아예 엉덩이를 다 내놓을 기세였고, 하이힐은 말그대로 너무 하이(high)해서 본인도 불편한지 비틀비틀 댈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짜증나는 건…
" …아, 씨발. 야, 너 뭘 봐? "
주변 남자들이 하나같이 얘만 쳐다본다는거다. 옆에 여친을 두고서도 나은의 뒷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에게 욕을 퍼부어준 홍빈이 구두 때문에 아직 멀리 가지 못한 나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던지듯이 쥐어주었다.
" 이건 왜, 왜 줘… "
" 왜 줘? 너 진짜 몰라서 묻냐, 지금? "
" ……. "
" 앞으로 그런 옷 입고 나올거면 집 밖으로 나오지마. "
요즘엔 한밤중에 클럽에서도 그런 싼티나는 옷은 안입어. 할 말만 하고 돌아선 홍빈이 그대로 거침없이 집으로 가는 길 쪽으로 갔다. 말이 좀 심했나 싶었지만, 지난번에 좋게 말하니까 뭐가 문제인지 점점 심해지는 거라고 생각한 홍빈이 다시 쿨하게 걸어가려다가 멈춰섰다. 다시 돌아가봐야 하는건가, 제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고민하던 홍빈이 지금 만날 수 있냐고 문자를 남긴 친구의 연락에 다시 돌아섰다. 아, 나도 모르겠다.
" 너 나은이랑 싸웠냐? 아니지, 너 나은이한테 화냈지. "
" 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
왠일로 술마시자는 연락이 아니라 낮에 부른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의자에 엉덩이를 붙히기도 전에 날라오는 질문에 홍빈이 놀란 기색을 비췄다.
" 아니, 나는 그냥… "
" 그냥 뭐. "
" 그냥 우연히 만나서 너랑은 잘 지내냐고 물어봤는데 잘 지낸다길래… 솔직히 걔가 애교같은 거 부리는 성격도 아니고, 남자같이 또 맨날 바지만 입고 다니니까… 좀 더 예뻐졌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래서 그냥 한번 슬쩍 미끼를 풀어본 거였지… "
근데 이렇게 덥석 물어버릴 줄 몰랐네, 하하하. 난 진짜 그냥 너가 치마 입은 여자를 더 좋아할 거라는 말 밖에 안했, 헙. 홍빈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더듬더듬 이어나가던 원식이 홍빈이 아무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자,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가 아차싶었다. 사실 홍빈이 치마 입은 여자가 더 좋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근데 그냥 보통 남자라면 그렇지 않을까하고 말한 거 였는데… (순전히 자기 취향) 원식의 말에 가만히 눈을 부라리던 홍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던 카페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 김원식, 일단 나중에 봐. 넌 뒤졌어. "
전화도 안받고, 집에도 없다. 가장 친한 친구 몇명한테 연락해봐도 다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나은에게 자켓을 줘서 약간 추웠었는데,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녀서 땀이 줄줄 흘렀다. 일단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무턱대고 찾아다니는 건 그만하고, 집에 가서 연락이나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도착한 집 앞에 왠 덩어리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멀리서 실루엣만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은 모양새에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홍빈이 천천히 걸어갔다. 팔에 파묻혀있던 머리가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슬며시 든다. 헉, 깜짝이야. 화장이 번져 얼굴이 검은 눈물 범벅이었다. 약간은 오싹한 모양새에 뒷걸음질 칠 뻔 했지만 그래도 많이 울었던 흔적이 안쓰러워 다시 가까이 다가가 헝크러져 있는 머리를 만져주었다. 화장 지울 생각은 못하고 우는 바람에 다 번졌던 주제에 옷 갈아 입을 생각은 한 모양이었다. 귀여워.
" 이렇게 추리닝만 입은 게 더 이뻐. "
" ……. "
" 화장 번져도 이쁘니까, 앞으로 그런 짓 하지마. "
" ……. "
" 대답. "
" …응. "
아니면 한복 사줄테니까 그것만 입고 만나던지. 덧불혀지는 농담에, 나은도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비록 번진 화장 때문에 좀 무서운 얼굴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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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우와 엄청 오랜만에 돌아왔어요ㅠㅠ 어떤 분이 인피니트 불편한 진실로 홍빈나은 보고싶다고 해주셔서 쓴 픽! 기승전 (((김원식))) 여태까지 나오지않은 멤버로 보고싶은 소재 있으시면 다 말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