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루한의 팔을 덥썩 잡았다. 잠에 깊게 빠진 루한은 그 느낌에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민석은 덜컥 겁이나 천천히 루한의 몸을 더듬었다. 손 끝 마디, 손바닥 지문 하나하나에 루한의 온기가 느껴진다. 까끌하게 느껴져오는 천 조각과 미세하게 민석의 손가락에 대였다.조금씩 루한의 체온을 따라 민석의 손이 어설프게 위로 올라간다. 보드라운 루한의 옷 느낌을 지나 더 보드라운 루한의 목이 만져진다. 말랑말랑한 루한의 목이 따뜻했다.민석은 밤새 악몽을 꿨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민석의 눈은 루한과 다르게 후천적 장애였다. 하지만 버려진건 루한과 같았다. 민석의 부모님은 민석이 배에 있을때에 자주 싸웠다. 가벼운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급기야 이혼의 위기까지 온 민석의 부모님은 조용히 민석을 포기하고자 했다. 지우자고. 그냥 낙태를 해 버리자고. 그렇게 결심한 두 부부는 다음 날 산부인과를 들렸다.산부인과를 뛰쳐나오듯 나온 사람은 민석의 아버지였다. 임신8개월차에 접어든 민석의 어머니는 무거운 배를 받치고 천천히 산부인과를 나왔다. 둘 사이는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보통 5~6개월 사이가 낙태고 그 후로는 살인입니다. 어머니.”
의사의 말을 듣고 한동안 민석의 어머니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을 질끈 감아 메어오는 목을 억눌렀다. 옆에서는 민석의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결심하셨다면 그때 오십시오. 딱딱하고 자비없는 의사의 말투는 결국 민석의 어머니에게 한 줄기의 소나기를 내리게 만들었다.
“나, 낳을거야.”
“정신나간 소리하지마. 살인을 하든, 폭행을 하든 애 지워”
“나 혼자 키울게, 응? 낳을래. 낳고 싶어”
그날 밤 민석의 아버지는 민석과 민석의 어머니를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민석의 어머니는 천천히 침대에 걸터앉아 많이 부푼 배를 천천히 쓰다듬으셨다. 민석의 어머니가 눈을 감음과 동시에 투둑 눈물이 흘러 배에 내렸다. 침이 끈끈해진다.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민석에게 말을 했다. 배 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는 민석에게. 아주 다정하고 사랑스럽다는 목소리로 민석을 부르면서 그렇게 말을했다.
“아가, 엄마는 너 꼭 낳아서 혼자 잘 기를거야. 네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나를 부르고, 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뱃 속에 있는 민석은 그날 새벽 탯줄을 제 목에 감아버렸다. 어머니의 말이, 그렇게 다정하고 사랑스럽다는 목소리의 말이. 지금으로는 유효하지 않는 그런 말인걸 알았더라면 그날 새벽 민석은 탯줄을 꼭꼭 죄어 스스로 숨을 끊었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와 희망이 지금의 민석을 만들어버렸다. 소리가 들리지않는, 고아원에 맡겨지는 그런 일을 알았더라면. 그 선택이 민석의 어머니에게도 민석에게도 조금은 행복해 지지 않았을까. 민석의 어머니는 혼자서 민석을 낳았다. 핏덩이 같은 민석을 보고 어머니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출산의 기쁨, 자식을 얻었다는 화려한 느낌. 그런 감정에서 북받쳐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민석의 어머니의 눈물은 분명 핏덩이 같은 자식의 앞 미래를 내어다 본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민석은 다른 아이와 다를 것 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성장 해 왔다. 그러나 민석의 어머니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수축해져 왔다. 그리고는 차디 찬 한강물에 자신을 던짐으로 인해 어머니의 눈물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귓가에 조용하게 박수소리가 짝짝 울렸다. 민석은 화들짝 놀래며 손을 뻗었고 루한이 그 작은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민석은 으레 악몽을 꾸었고 그럴때 마다 민석은 루한의 팔을 덥썩잡아 흐느껴 울고는 했다. 민석에게는 너무 모질고 견디기 힘든 꿈이었다. 차라리 선천적장애라면, 그렇게 태어나기 전 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더라면 꿈에서도 안 보일텐데 하늘은 민석에게 행운을 주지 않았다.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이 조용히 민석의 볼을 만져온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솜사탕같은 꿈일 수도 있지만 민석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보기싫은 존재였고, 또 그만큼 그리운 인물이었다.그냥 나즈막하게 민석의 이름을 부르는 것 조차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루한의 팔이 천천히 민석의 머리와 어깨에 감싸져 온다. 민석과 같은 나이의 루한이었지만 조금 더 의젓하고 듬직한건 루한이었다. 단순히 눈이 보여서 그런것이 아니었다. 민석이 루한의 품에 파고들어 크게 냄새를 들어마쉰다. 루한의 냄새가 민석의 몸속에 가득 차 들어 있으면 민석은 그제야 온 몸에 팽팽했던 긴장을 풀었다. 루한은 민석의 이마에 짧게 뽀뽀를 했다. 이 곳 고아원의 여인이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말캉하게 닿아오는 입술의 감촉이 좋아 민석은 한참이나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악몽을 꾸었던 민석의 손이 촉촉하게 젖어들어 이불의 가장자리를 차분히 적셨다.그리고 또 다른 손, 민석의 오른손과 루한의 왼손도 땀으로 젖어들어 두 손이 미끌려졌다. 땀이 범벅이 되어 이제 손을 놓을 법도 한대 루한과 민석은 다음날 아침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
上은 전체적으로 루한이 이야기 였고 上2는 민석이 이야기였네요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우는 팬들 울지 말라고 위로하는 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