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여인이 들어와 흔들어 깨우는 것 부터,민석이 루한의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는 것 까지. 그리고 루한이 천천히 눈을 떠 민석을 한번 내려다 보고 잔잔히 미소를 띄는 것 까지.루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여인에게 눈 인사를 한다. 여인이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천천히 두 손을 올려 입을 뻥긋 거린다.
‘잘’
여인이 오른 손바닥으로 왼 팔등을 스쳐 내린다. 루한은 머릿속으로 생각해 냈다. 루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여인은 한 번더 웃으며 루한을 쳐다본다. 루한은 민석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었다. 조금 더 자. 루한은 양반다리를 한 채 제 허벅지에 민석의 머리를 천천히 옮겨 들었다. 꾸물거리며 자리를 잡던 민석이 두 손을 앙증맞게 모아 얼굴 옆에 둔다. 루한의 허벅지에 닿는 민석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잤니?’
여인은 오른 주먹을 쥐고 오른쪽 머리옆에 대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젖혔다.루한은 활짝 웃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드니 루한의 몸도 같이 흔들린다. 삽시간에 루한의 몸이 굳었다. 루한의 작은 몸이 흔들리자 루한의 허벅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민석의 머리가 작게나마 흔들린걸 보았기 때문이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서 천천히 방 밖으로 나갔다. 민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루한의 입꼬리가 루한도 모르게 올라가 있었다. 어젯 밤 제 품에 안겨오던 민석의 얼굴과, 땀이 축축하게 배여 이불을 적시던 마주잡은 두 손이 생각나서 였다. 루한은 손을 뻗어 민석의 볼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부드럽게 느껴져오는 민석의 볼이 분홍빛을 띈다.
루한의 다리가 시원해지더니 이내 쥐가 나 버렸다. 루한은 아랫입술을 윗니로 꼬옥 깨물어가며 고통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다. 민석의 머리를 옆으로 비켜 치울 수도 있었지만 루한은 꿋꿋이 민석의 머리통을 제 허벅지에 두고 있었다. 민석이 조금 움찔거리며 머리를 움직였다. 다리에 바로 전해져오는 저릿함에 루한은 미간을 좁혀 고통을 받아들였다. 민석이 고개를 완전히 들어 팔을 뻗어 더듬거렸다. 바로 만져지는 루한의 어깨를 둥글게 만졌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두 아이는 어느 한 곳에 털썩 앉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민석과 소리가 들리지 않는 루한은 작고 오동통한 손을 꼬옥 붙잡고 루한이 눈이 되어, 민석이 귀가 되어, 고아원 뒤뜰로 천천히 걸어갔다. 좀 더 아름답고 다채로운 풍경을 보려면 고아원 입구가 가장 아름답고 예뻣지만 둘은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루한의 작은 배려였다. 고아원 입구의 예쁘고 향기가 가득한 꽃들은 민석이 만질 수 없었다. 만지고, 소리를 들어야 하는 민석에게는 다채롭고 활짝 핀 꽃보다는 직접 손으로 만지고, 바람에 흔들이는 들꽃의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았으니까. 들꽃과 풀꽃들이 가득한 뒤뜰은 둘만의 특별한 놀이터였다. 루한이 민들레를 찾아 꺾어주면 민석이 천천히 더듬거리다가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후 하고 불었다. 가끔은 바람이 반대로 불어와 하늘로 폴폴 날아가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민석의 얼굴에 잠깐 앉았다.루한은 민석의 손을 잡고 가만히 민석만 보았다. 얼굴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나면 민석이 활짝 웃었다. 그러면 루한도 따라서 웃었다.
“점심 시간이에요!”
민석이 순간 몸을 움츠린다. 민석을 쳐다보고 있던 루한이 놀란가슴에 민석의 어깨를 두드리니 민석이 활짝 웃는다. 박수를 한번 친 민석을 보고 루한이 안심된다는 눈빛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수를 한 번 치면 자기를 따라오라는 뜻이었고, 두 번을 치면 어디있냐는 뜻이었다.박수는 소리를 듣는 민석과 볼 수 있는 루한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언어였다. 루한이 민석의 손을 잡고 뒤뜰에서 나와 고아원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루한이 밟는 흙모래들이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낸다. 정면을 보고있는 민석이 귀와 마주잡고 있는 손에 모든 감각을 몰두한다.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민석의 입가를 움직이게 하는 루한의 발소리는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번에는 다른 여인이 루한과 민석을 맞이한다. 천천히 안내를 따라 급식실로 들어섰다.
“너! 앞이 안 보인다면서! 눈동자가 흰색이야! 괴물같아”
“게다가, 네 친구는 귀도 안들린다면서! 귀머거리!”
고아원의 아이들은 모두가 착하지 않았다. 고아원의 아이들의 공통점은 부모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삐딱하게 틀어진 약한 마음들이 세모눈을 뜨고 묵묵히 밥을 먹고있는 민석을 손가락질 하며 말을 쏟아낸다. 남자아이 세 명은 루한과 민석의 동갑내기 정도로 보였지만 덩치는 훨신 더 크고 우람했다. 민석은 오로지 귀로만 느껴지는 그들의 말투와 발음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옆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던 루한은 여전히 급식판에 고개를 박고 수저로 밥을 뜬다. 제 손보다 더 큰 숟가락이 한번 휘청한다.
“쫄았어, 쫄았어~”
루한이 놀란눈으로 민석을 쳐다보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민석의 얼굴이 루한의 까만 눈동자 안에 가득 차올랐다. 민석은 루한의 손을 잡았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던 루한은 민석의 급식판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민석의 급식판 앞에는 적어도 50마리는 돼 보이는 까만 개미들이 밥알 위를 기어다녔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혹시 민석이, 저걸 먹었던게 아닐까.
뒤뜰로 뛰쳐나온 루한과 민석이 가만 들꽃 앞에 앉았다. 꼭 벼같이 생긴 길죽한 줄기에 털이 송송 난 강아지 풀이었다. 루한은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민석의 손에 강아지 풀을 꺾어 손에 쥐어주었다. 민석은 꽉 쥐고 있던 손을 놓아 강아지 풀을 바닥에 던졌다. 왜 그래, 하며 물을 수도 없는 루한은 답답한 가슴만 쿵쿵 치다가 민석의 어깨를 툭툭 치고 두 손으로 강아지 풀을 막 꺾기 시작했다. 민석이 점점 불안해진 마음을 안고 자신의 발 앞을 천천히 더듬었다. 루한, 루한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던진 들꽃을 보고 루한이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민석이 땀이 밴 손에 흙이 잔뜩 묻도록 바닥을 더듬었다. 입 안을 기어다니던 끔찍한 개미의 느낌에 민석은 몸을 떨었다. 바닥을 더듬다 만진 개미 때문에 민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어딘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루한, 루한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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