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졌어? 재차 묻는 친구 녀석의 물음에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미 만취가 되어 있는 나를 말리는 손길을 뿌리치고는 다시 잔을 들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 들어가던 술이 오늘은 왜 이렇게 급하게도 들어가는지. 병도 있는데 몸 좀 생각하며 마시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을 논 사람처럼 술잔을 기울였다. 잔에 술을 따르는 일 조차 사치로 느껴져, 병을 들고 마시자 녀석이 병과 잔을 뺏어 뒤로 감추었다. 내놔, 새끼야…. 어차피 죽을꺼, 그냥 오늘 죽을꺼니깐. 속은 아까 전 부터 쓰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말짱했다. 뒤로 감춰진 병을 빼앗아 생각없이 마셔댔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심장은 아려왔다. 술집 안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은 메아리 처럼 조용히 울렸다. 눈에 보이지 않자 더욱이 그리워지는 이승현을 그리기 위해, 탁자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생각했다.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 얼굴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흐릿한지. 누군가의 끊임없는 전화로 인해 허벅지에 아련한 진동이 오고 있었지만, 심장의 아리는 진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였다. 이승현의 얼굴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그 뿐일꺼다. 그렇게 그렸던 얼굴이 이제는 조금도 기억 나지 않으니, 답답해서 우는 걸 꺼야. 내 자신에게 되도 않는 변명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지용아, 울어?”
“시끄러워…….”
“이럴꺼면 왜 헤어진거야.”
“어차피 내가 죽으면 헤어지는데, 그냥 미리 헤어진게 뭐가 어때서 지랄인데.”
“죽긴 너가 왜 죽어? 그딴 소리 하지마, 좀.”
“내가 병신이냐? 의사가 삼개월 목숨이라고 한 거 모를 줄 알아?”
“…그건 또 언제 들었어. 그새끼 존나 돌팔이야. 다른데 가 보면 다를꺼야.”
“뭐하러 그러냐. 어차피 죽을꺼, 남들보다 일찍 죽는 것 뿐인데.”
“제발 그렇게 무기력한 소리 좀 그만 하라고! 너 이승현 더 보고 싶지 않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더 보고 싶어하면 뭐가 달라져?”
수술하자. 지용아 수술하면 살 수 있데. 응? 내 손을 애타게 잡는 녀석을 피하고는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섰다. 나도 다 알고 있었다. 수술을 할 돈도 없거니와, 수술을 한다 해도 살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것을. 아까부터 눈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쯤 이승현은 뭘 하고 있을까. 아마도 나를 욕하고 있겠지. 그 맨날 누워 있던 쇼파에 누워서 울고 있으려나. 예상보다 빨리 헤어져버려서 당장 잘 곳도, 머무를 곳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나에게 유일한 재산은 오직 이승현뿐이였다. 이 나이 먹도록 뭣 하고 살았는지, 애인한테 피해나 주고…. 생각 할 수록 이승현에게 난 늘 짐이였던 것 같아서 차라리 헤어지길 잘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을병이 아니였어도, 이승현과 나는 헤어지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내 병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후들거려, 다시 그 자리에 풀썩 앉았다. 다른곳에 가 있는게 맞는 거겠지. 머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심장은 하루만 더 보자고 나를 조르고 있었다. 하루만, 딱 하루만 더 보고 그때 정말 헤어지라고 나에게 미친듯이 요구하고 있었다.
“너네집 신세 좀 지자.”
“지용아 우리 병원가자. 치료하면 되잖아.”
“왜? 암 말기 환자라서 집에 두기도 싫냐? 싫음 말어 새끼야.”
“진짜 넌 말을 해도…. 그럼 약속해. 다시 진단 받겠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움직이자, 술기운이 확 돌아 어지러웠다. 병원에서는 음주를 절대 금하라고 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에겐 미안한 일이였지만, 당장은 아려오는 내 심장이 먼저였다. 몸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간혹 숨 조차 쉬기 힘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지만, 머리는 살고 싶다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승현이 보고 싶다고, 조금 더 보고싶다고 끊임없이 애원하고 또 매달렸다.
* * *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내 몸에 링거가 꽂혀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선을 대충 뽑고, 주위에 보이는 A4 용지에 급하게 글을 썼다. 제목은 유서였다.
[유서라기도 뭐하지만, 일단 제목은 유서고 부제목은 이승현에게야. 그러니깐 이승현, 지금 읽고있는 너한테 쓰는 편지라고 자식아.
옛날에는 유서 쓰는 사람들 되게 이해가 안 갔는데, 막상 닥치니깐 이거 되게 기분 이상하다. 너가 읽는 거 맞겠지? 그냥 너한테 쓰고 싶은 말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음…. 승현아. 일단은 내가 정말 미안했어. 내가 갑자기 말도 없어지고, 집에도 잘 안들어오고 그러는거 다른 이유 없었어. 그냥 내가 죽는다는게 조금 이상해서 그랬던 거였어. 넌 아마 말할꺼야. 왜 말 안했냐고?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니 승현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내 마음 조금만 더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나 만나러 너무 늦게 오지마. 나 너무 심심할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오지도 말고. 내 말 무슨 말 인지 잘 알지? 사실 지금 너가 너무 많이 보고싶다. 너랑 있는 동안 너한테 짐만 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고마워. 그리고 유서니깐 말 해도 되겠지? 사실은 말이야. 사실, 나 너무 살고싶어. 너무 살고싶다 승현아. 너가 날 잊는 것도 무섭고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것도 너무 무서워. 근데 제일 무서운건, 너가 아프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달래줄 거라는 그 사실이, 너무 무섭다. 나 질투 많은 거 알지? 그러니깐 이승현아, 형 너무 빨리 잊지 말아라. 또…마지막으로, 너무 사랑해. 이승현. 승현아. 이승현아, 형이 많이 사랑해. 알고있지? 아, 원래 손재주도 없고 편지도 어색해서 길게는 못 하겠다. 무슨 유서가 이럴까. 그냥 너한테 알리고싶었어. 내가 널 얼만큼 사랑했는지는 다 못 쓰겠지만, 적어도 너가 날 사랑했던 만큼 이상으로 사랑했다는 거 알아줬음 좋겠어. 정말 마지막으로, 사랑해.]
몇 글자들은 눈물에 얼룩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무섭구나, 죽는다는 사실이…. 난 아려오는 심장을 부여 잡고, 편지를 두어번 다시 읽은 후에 봉투에 넣었다. 심장은 아직도 꾸준하게 이승현을 그리고 있었다. 이승현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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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편에서 지용이 욕했던 분들 모두 후회하시겠죠? 이런 아침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스트.. 한번쯤 써보고 싶었숨돠 절 너무 미워하지 마쎄요!!! 사랑해요 알러뷰 쬭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