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혈육의 연애에 대한 고찰
요즘 우리 오빠한테 특이점이 좀 온 것 같음.
...핸드폰 보다가 이유 없이 웃으면서 존나 행복해하질 않나.
"어, 여보세요?"
엄마 있을 때 전화 오면 슬쩍 눈치 보고 나가서 받고. 다년간 태어나보니 오빠인 김도영을 봐온 나의 결론은
닥치고 연애임. 상대도 알겠어. 아마도
"주말 잘 보냈어?"
나를 살리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이름쌤... 그러니까 두 달째 나에게 영어를 주입시켜 주시는 내사랑 과외쌤이라는 거임.ㅠㅠㅠㅠ 김도영 도둑놈의 새끼 어디 우리 선생님을 건드려ㅠㅠㅠㅠㅠ 선생님이 너 같은 놈 만날 급이 아닌데ㅠㅠㅠㅠㅠㅠ
아, 잠시 추태를... 다시 정신을 차려서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이름쌤을 향한 김도영의 관심은 마치... 가랑비 같은 거였음. 있는 줄도 몰랐다고. 지금 좋아 죽는 걸 보면 대체 두 달 전에는 저 마음을 어떻게 참았나 싶음. 소름 돋는 놈. 아무 것도 모르고 코가 꿰인 나의 이름쌤이 걱정스러워서 내가 숙제를 할 수가 없다 정말로...
두 달 전으로 like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보면 내 성적에 드디어 불안감을 느낀 어머니께서 급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구한 과외 선생님이 지금의 이름쌤 되시겠음. 처음 만났는데 난 약간 그걸 느꼈어... 신이 나한테 안 준 미적인 부분과 공부 머리는 다 이름쌤이 가진 거 아닐까...? 다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응. 그래서 난 좀 슬펐어?
게다가 수업도 너무 잘 해주는 거임 우리 쌤 체고야...ㅠ 이해를 못 하는 건 내 탓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도 설명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더 쉽게 설명해주려고 하고... 쌤... 미안한데 제 바닥이 여기라 지하까지는 못 파요...
쌤이랑 나랑 꽁냥꽁냥 잘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묘하게 쎄함을 느낀 건 과외쌤을 처음 마주친 김도영의 얼굴을 봤을 때였음.
매번 오빠놈 알바 시간이랑 과외 시간이 겹쳐서 쌤은 나한테 오빠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김도영 알바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샤라방방 수업하러 오신 쌤이랑 김도영이랑 정면으로 마주친 거임~ 김도영 집에서 입는 흰 티에 추리닝 바지 입고 있었는데 개쪽팔렸겠다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우리 쌤이 그런 걸로 티 내거나 안 좋은 생각할 사람 절대 아니라서ㅠ 또 천사미소 날려주시면서 '안녕하세요~' 해주셨다 아잉교... 내가 보기엔 김도영 그 때 K.O 당한 것 같음. 첫눈에 반했다에 내가 엠도시 쟌희의 포카를 걸겠음; 이것은 내 인생을 걸겠다와 비슷한 말임.
아무튼 그 날 과외 끝나고 김도영한테 말로 존나 쳐맞음 진짜; 아니 지가 집에서 그렇게 있어놓고 왜 나한테 그 난리일까... 정말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게 김도영 아마 신인류 아닐까... 빡치게 옆에서 너무하다 진짜 ㅇㅈㄹ 하는데 오빠만 아니었어도 방에 감금 시켜놨음. 우리의 3살시절 옛정을 생각해 참는 것임.
"너무하다, 너무해."
"더하면 너무한 게 뭔지 뼈저리게 알려준다 내가."
"야, 너는 과외가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지."
"말했거든. 듣는 둥 마는 둥 한 게 뉘신지."
개빡쵸.
그 날 이후로 김도영은 아주 열과 성을 다 해서...
"뭐냐 존나 고깝게 집에서 웬 셔츠."
차려입기 시작함. 대체 김도영에게 사랑이란 뭐길래 사람 하나를 이상한 사람에서 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걸까... 여러모로 이름쌤은 대단한 사람이었음. 세상에 쟤 옷 갈아입을까 고민 하는 것 좀 봐... 꼴보기 싫어라...
그리고 쌤한테 친절한 척 하는 것도 짜증나ㅠ 언제부터 알았다고 살갑게 인사를 해?ㅜ 우리쌤 집에서 친한 사람 나뿐이어야 한다고ㅠ
"오빠가 되게 친절하시다."
"더위 먹어서 그래요."
"그래?"
개드립도 다 받아주는 나의 이름쌤... 남매 취향을 나란히 탕탕 저격 해주시고는 나날이 숙제를 쌓아주시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은 좋지만 숙제는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그걸 면전에 대고 이야기 할 담력은 없으니까 그냥 닥치고 할게요? 관둔다고만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과외가 시작하는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굳~이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고 계시는 방돌이 김도영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주책이 저런 거구나... 티 안 내는 주접이 저런 거구나... 싶은 거임.
그리고 그런 생활이 일주일 정도 지나간 날부터, 김도영의 본격적인 밑작업이 시작 됩니다.
☆★It's 염병 t.i.m.e★☆
"야."
"싫어."
"너희 선생님 애인 있어?"
"그게 왜 궁금한데?"
"내가 관심 있으니까."
"그 관심 접어두길 바라. 쌤이 너무 과분해서 당신은 기각."
"...3만원."
"에이 왜이래, 돈도 잘 쓰는 사람이."
그래서 5만원에 합의를 보고 제가 둘 사이의 일회용 까마귀가 되어주기로... 그러니까 그, 오작교요. 응. 오작교보다는 연애조작단에 가깝긴 하지.
"쌤 저 사적으로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응, 뭔데?"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 없는데. 왜, 좋은 사람이라도 있어?"
그 말에 그냥 아하하 그냥요 선생님 인기 많을 것 같아서 하고 진심을 던졌지만 우리 쌤 하하버스 탑승해서 자기 예쁘고 잘난지 몰라... 선생님, 최고예요.
"애인 없대."
그 말 한 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 좋은 김도영 보면서 김치찌개 집 사장이나 하지 뭣하러 카페 알바를 하고 그런담... 싶다가도 저게 진짜 참사랑인가 싶기도 하고. 짝사랑을 돈주고 하는 놈도 있으니 이게 세상이 망하려고 그러나...
그리고 김도영 그 이후로도 물밑작업 오지게 하는데 제가 짜증이 나는 이유는
[뭐야 방금 왜 웃었어?]
[아 소름돋으니까 그만 엿들어;;]
[야 엿듣는 거 아니고 들려서 듣는 거야]
[퍽이나]
이건 뭐 거의 셋이서 수업하는 수준임. 김도영 엿 먹이고 싶을 때마다 쌤한테 카페에서 수업하자고 하는 방법이 새로 생겨서 좋긴 하다만 그래도 저러는 건... 아니 그냥 김도영이 이러는 게 짜증나; sibal... 제 과외선생님이라구요...
그리고 머지 않아 김도영의 새로운 특기를 찾음. 신인류적 친화력. 고딩때 학생회장까지 하려던 거 보면 끼는 알겠다만.
"데려다줄까?"
"됐네요. 날도 더운데 나오지 마."
저기 소곤소곤 말해도 다... 들리는데...? 언제 둘이 친해졌어...? 일찌감치 둘이 동갑인 건 알았지만 김도영이 선생님한테 말 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존나 당황타서 물어보니까 김도영 ㄹㅇ 당당해버림.
"아, 번호 내가 물어봤어."
"반말은 뭔데?"
"동갑인데 언제까지 존댓말 할 순 없잖아."
그제서야 머리에 막 신호가 울리는 거임~ 아 우리쌤 코가 꿰였구나... 하필이면 저 놈에게... 이걸 어쩌징... 뱀한테 야금야금 먹히는 토끼를 보는 느낌이야...센세... 도망쵸...
"이제 내가 너보다 이름이랑 더 친할 걸?"
개빡쵸.
그 이후에 내가 둘 사이의 요상한 기류를 느낀 건 비단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약간 김도영의 마음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있음.
우리쌤ㅠ 나한테는 쌤이지만 공식적인 사회적 지위는 대학생이란 말임. 시험기간+과제에 내 과외까지 겹치면 선생님은 말 그대로 죽음의 기간을 견디는 거야... 난 수행평가 기간도 못 견겨서 죽내 사네 하는데 사람이 그걸 견디면서도 나한테 늘 그랬던 것처럼 친절해 이름쌤이 체고야...
그래도 마음이 버티는 거랑 몸이 버티는 거랑은 다르다고. 수업 하는데 내가 문제 풀다가 선생님 시선이 안 느껴져서 보면 꾸벅꾸벅 졸고 있어ㅠ 뭔지 모르겠는데 좀 귀여워ㅠ 그래서 내가 먼저 쉬는 시간을 제안 했음. 약간 나를 위한 것도 있었는데 쌤이 수업에 지장 줘서 미안하다고ㅠㅠㅠㅠ 생각해줘서 고맙다고ㅠㅜㅠ 하더니 엎드려서 자는데 침대를 내어드려야 되나 ㄹㅇ 고민. 근데 이미 잠드셔서 방해될까봐 닥치고 방에서 나옴...
대충 거실에서 핸드폰 보면서 시간 때우다가 슬슬 들어가야지 싶을 때 방에 갔는데
그러고 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깨달았지. 아... 주접 떤, 아 아니 세기의 사랑이네...
하지만 난 지극히 3자라서 일방적인 짝사랑 같았던 김도영이 무슨 수를 썼길래 둘이 사귀게 된 건지는 잘 모름.
"데려다줄까?"
"맘~대로 하세요~"
대화가 그렇게 바뀐 걸 보고 눈치를 챘을 뿐이야. 아무래도 그냥 적당히 썸 타다가 알아서 만났겠지 싶은데. 사실 김도영이 티만 안 냈으면 의심만 하고 사귀는 것도 몰랐을 거임. 자꾸... 커플냄새를 풍기고 다니잖아요...; 누가봐도 나 연애해서 너무 행복해요를 얼굴에 박아서 다님. 동생은 고3이라 인생에 대해서 고민(아님) 하고 있는데.
수업 하다가 쉬는시간이라 내가 화장실 가려고 잠깐 방에서 나오면 그건 또 언제 봤는지 쏙 들어가서
"너 출입금지랬는데."
"보고 싶은데 어떡해."
"아 김도영 진짜."
...그래 너 좋겠다 사랑꾼 새끼야.
내가 19년간 김도영과 모든 생활을 함께 한 사람으로서 김도영이 연애하는 거 본 적이 한두 번은 아닌데. 저렇게까지 좋아서 애가 하이텐션인 건 본 적이 없고요? 저러다 우리 쌤 쟤랑 오래 연애할까봐 좀 무섭고 그래.
"야, 진짜 사랑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망치는구나..."
"너 이름이한테 쓸데없는 소리 같은 거 하지 마."
"...손에서 핸드폰이나 놓고 말씀하시지."
이제는 숨기려고 하지도 않아ㅠ
"야 너 이름쌤한테 잘 해라."
"내가 알아서 해."
"괜히 헤어져서 이름 쌤 과외 못 오게 하면 죽어 진짜."
"너 이름이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뭰섕괜~"
이젠 질투까지 하고 난리... 나한테 깝치면 안 될텐데... 김도영은 종종 자신의 위치를 잊곤 하는 것 같아...
"야."
"왜."
"나도 영어 과외 받을까."
지랄하네.
-이거 쓰고 나니까 과외선생님 도영이 보고 싶은데 약간 미쳐버린 것 같기도 하고...
-도영쌤 못잃어 병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 중증 같으니까...
-아 근데 암호닉 그거 좋더만유 다들 저 누구예요! 하시는데 자기소개 하는 것 같고 약간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