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세차게 퍼붓고있다. 나는 멍하게 앉아 조그만 베란다 사이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있다. 무릎을 끌어안고서 머리를 묻은채로 빗소리를 들으며 긴긴 한숨을 쉬던 나는 두 눈을 꼭 감아버린다. "김윤주. 나쁜년." 오늘은 언니의 기일이다. - 비가 내린다. 그날도 비가 내렸었는데. 우산을 들고 한참을 밖에 서있던 나는 겨우겨우 우산을 접고 김윤주가 잠들어있는 곳으로 발을 들인다. 2년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찾아오지 못했던 나를 반기듯 사진속의 김윤주는 참 이쁘게도 웃고있다. 한때는 내가 끔찍하게 사랑해 마다않던 그 얼굴. "이재환이 여길 올줄은 몰랐네." 한상혁이었다. 이제 막 들어온건지 옷 여기저기를 털며 빗물을 떨치고있다. 그제야 나는 김윤주의 옆자리에 눈이 갔다. 우연인건지 일부러 그런건지 익숙한 얼굴을 한 남자의 사진이 보인다. 힘빠진 헛웃음이 나왔다. "일부러 이러려고 한건 아닌데. 어쩌다보니까 둘이 붙어있는거 있지. 차라리 잘됐지, 뭐. 윤주누나가 바라던거니까." "그래. 김윤주가 늘 바라던거였지." "너 우리형 이렇게 자세히 보는건 처음이지? 형이 나보다 더 잘생겼어." 한재혁. 사진속 웃고있는 남자는 지독하게도 한상혁과 닮아있다.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김윤주와 한재혁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죽도록 사랑하던 여자와 그런 여자가 죽도록 사랑하던 남자. 나는 정말로 김윤주가 나를 사랑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윤주는 내 돈을 사랑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면서 나를 사랑하는척 했다. 나는 다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그때는 정말로 김윤주가 좋았으니까. 그런 나에게서 김윤주가 떠났다. 한재혁과 함께 도망쳐버렸다. 사랑의 도피라는 허물좋은 목적으로 떠나버린 둘은 비가 오던 날에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죽어버렸다. 나를 떠난 댓가라고 생각했다. 나를 떠나서 벌받은거라고 생각했다. "윤주누나가 우리집에 올때면 나를 보면서 김여주 얘기를 했었어. 자기한테도 나만한 여동생이 있는데 너무너무 이쁘다고. 사진까지 보여줬는데 진짜 이쁜거있지." "그래서 일부러 김여주 찾아 전학온거야?" "말도 안되겠지만 한번도 보지도 않았는데. 그냥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김여주가 좋은거야. 근데 이재환이 괴롭히는 애가 김여주라는 소문이 계속 들리더라? 그때 알았지. 아, 윤주누나를 그렇게도 사랑했다던 애가 내 중학교때 절친이었던 이재환이었구나 하고." "김여주를 좋아해?" "응. 나 여주 좋아해. 근데 재환아. 너도 그렇잖아. 너 윤주누나 핑계 삼아서 일부러 여주 괴롭히는거잖아. 김여주 좋아하는거 인정하기 싫어서." 잊고있었다. 한상혁은 말을 돌려서 할줄 모른다. 지나치게 솔직한 녀석이다. 김윤주를 좋아하던 나를 김여주가 좋아했다. 음악실 앞에서 나와 김윤주를 엿보고있다는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김윤주가 죽고난뒤로 나는 김여주를 괴롭혔다. 김윤주와 똑 닮은 얼굴을 하고서 날 쳐다보는 시선이 싫었다. 나를 떠난 김윤주가 미워서 김여주도 싫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다시 또 쉽게 김여주를 좋아해버린 내가 싫었다. 김윤주처럼 김여주도 떠날까봐 겁이 나는 내가 싫었다. "김여주는 김윤주가 나때문에 죽은줄 알아. 한재혁이 누군지 알지도 못해." "그럼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유리하다는건가? 김여주는 너를 미워하니까. 맞지?" "김여주는 앞으로도 몰라야하는 사실이라는거야. 너가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그래야 김여주를 괴롭힐 수 있으니까. 그래야 김여주가 나를 쭉 미워해서 나를 좋아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 나도 김여주가 떠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애초에 나에게 오지도 못할 김여주가 더 낫다. ..그래야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더 커지지않을거니까. 비는 점점 더 세차게 퍼붓고있었다. - 죄송해요 많이 짧죠ㅠ 재환이 시점에서 한번 써봤습니다! 이번주에 병원에서 치료받느라 정신도 없고 그래서 글을 빨리 올리지 못했어요ㅠ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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