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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랍콩] 풀꽃 | 인스티즈

 

 

 

  

  

  

  

그쳤던 비가 맹렬한 기세로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원식은 우산을 쓰고 수트를 차려입은 채였다. 꽃다발을 손에 쥐고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원식은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버스가 앞에 세워지자 느릿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원식은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버스 손잡이를 잡았다. 손가락에 닿아오는 감각이 묘하게 시렸다. 원식은 생각했다. 닿아오던 작은 손을, 하얀 손가락을. 버스는 작고 외진 시골마을에,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몸뚱이를 내려주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것 마냥 마을은 그대로였다. 고요히 흐르는 강가도, 흐드러지게 핀 풀꽃들도, 앵두나무도, 살던 집도.  

  

원식은 앵두나무 뒤쪽에 펼쳐진 산을 올랐다. 천천히 오르고 또 올라 산 중턱 즈음에 다다라서야 원식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여전히 그대로인 그의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안녕, 하고.  

  

  

  

  

[랍콩] 풀꽃  

by. 진라면  

  

  

  

"에이, 씨. 비 한번 더럽게 많이 오네."  

  

축축하게 젖은 바짓단을 말아올린 원식은 어머니가 잘라오라고 시킨 앵두 가지들을 품 안으로 더 끌어안았다. 옆 집 동희어머니가 아이를 가졌다고 앵두로 무얼 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개새끼를 데리고 놀다가 제대로 듣질 못 했다. 시커먼 우산을 고쳐잡은 원식은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했다. 정신없이 내리는 빗줄기가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나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이 동네에서 포장이 된 도로는 물이 스미지 않아 원식의 신발이고 양말을 모두 적셔가고 있었다. 원식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강쪽을 바라보았다. 빗줄기 때문에 시커먼 강이 이질적이었다. 강이 넘기라도 하면은 큰일일 것인데, 혀를 쯧 차던 원식은 뒤에서 들려오는 빵! 하는 경적소리에 어깨를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삿짐 트럭, 그리고 이 시골 깡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승용차. 어째서 이 시골에 이사를 온다는 말인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제가 길 중간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원식은 뒤로 세걸음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 두대를 보다가 늦었다고 화를 낼 어머니를 생각한 원식은 걸음을 빨리 했다. 찰박찰박거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났다.  

  

원식은 어머니께 앵두가지 한 아름을 안겨주었다. 제 등짝을 때리며 옆 집이 서울에서 이사를 왔으니 짐 옮기는 것이나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에, 원식은 아까 그 까만 승용차를 떠올렸다. 물이 차 찔꺽찔꺽 소리를 내는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다른 운동화로 갈아 신은 원식은, 어머니가 제 손에 들려준 반질반질한 수박 한 덩이를 낑낑거리며 들고 옆 집으로 향했다. 이삿짐 센터의 상표와 전화번호가 등짝에 크게 새겨진 형광색 조끼를 입고 분주하게 짐을 옮기는 남자들을 바라보다가 주인 아저씨로 보이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 옆 집 사는 김원식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아, 반가워."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우산을 들고, 흐트러짐 하나 없이 서 있는 정장에 금시계,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아저씨. 얼굴에 드리워진 약간의 주름살도 그 외모에는 아무런 피해도 끼치질 못 했다. 평상에 수박을 올려놓고 멋쩍게 뒷머리를 문질렀다. 그 깔끔한 자태에, 목 늘어난 티셔츠에 운동복 반바지를 입은 제 모습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시커먼 우산이 같았는데 참으로 달랐다. 아저씨는 내게 웃어보였다. 웃으면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것이 꽤 소년같았다.  

  

  

"몇 살이니?"  

"올해 15살이에요."  

"아, 우리 아들이랑 동갑이구나, 강을 보고 싶다고 떼를 쓰길래 강가에 데려다 주긴 했는데, 우리 아들이 몸이 약해서... 혹시 가서 같이 있어주거나, 데리고 와 줄 수 있니?"  

"네? 아, 뭐... 네."  

  

  

멋쩍게 목례를 하고 뒤돌아선 원식이 터벅터벅 강가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든 생각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내달렸다. 강이 넘을지도 모르는데, 그 근처에 있다는 것은... 원식은 내달리는 속도와 비바람 때문에 뒤로 휙휙 넘어가는 우산을 길가에 내던져버렸다. 강을 따라 뛰다보면 남자아이 하나가 보였다. 화가 난 강은 평상시보다 더 높은 곳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아이를 삼켜버릴 것 같은.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고 있는 옆얼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식은 제 까무잡잡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색 우산을 쓴 아이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굉장한 미남, 하지만 아버지가 조금 딱딱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아이는 말랑말랑할 것 같았다. 또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유약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원식은 제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도자기 인형을 떠올렸다. 고개를 숙이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쌍커풀진 큰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가 떠졌다. 동그라니 잘 뻗은 콧대와, 도톰한 입술. 아까 땄던 앵두가 문득 생각났다. 이마를 덮고 눈을 찌르는 긴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하얀 손이 유난히 작았다. 또 얇은 가디건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은 기이할 정도로 얇았다. 도자기 인형, 도자기 인형같은 애.  

  

  

"그만 쳐다봐, 닳아."  

"누, 누, 누가 봤다고!"  

  

  

풋, 아이는 한 쪽 입꼬리만을 올려 웃었다가 그마저도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원식을 돌아보고, 손을 뻗었다. 하얗고 작은 손, 손등에 파란 멍이 든, 군데군데 상처가 난 하얀 손.  

  

  

"잡아줘, 여기 미끄럽더라. 오다가도 두 번이나 넘어질 뻔했단 말이야."  

"그러게 여길 왜 와, 비도 오고 춥고. 강이라도 넘었으면 어쩌려고."  

  

  

밭일을 도와 울퉁불퉁해진, 까무잡잡하고 선이 굵은 원식의 손이 작은 손을 붙잡았다. 역시나 말랑말랑한 손이었다. 원식은 저도 모르게 슬몃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하늘색 우산을 원식에게로 기울였다. 그리곤 우산을 원식에게로 넘겨주고서, 회색 가디건 소매를 당겨 원식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고, 앞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그 하얀 얼굴을 내려다보던 원식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아이의 등을 보고 잡고 있는 손을 당겼다. 아이는 쉽게 당겨져 왔다. 무게감이 없었다.  

  

  

"비 맞으면 감기걸린다."  

"너, 이마가 되게 잘 생겼다."  

  

  

흐흐, 실 없는 웃음을 지어보인 아이가 문득 몸을 떨었다.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몸이 약해서... 라는 옆집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 원식은 아이의 손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앵두가지를 안고 뛰어오던 거리를 이번엔 도자기 인형같은 서울 남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원식은 하늘색 우산을 좀 더 옆쪽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서울 살다가 왔냐."  

"응."  

"왜 왔냐, 이런 시골 깡촌에."  

"그냥... 여기는 공기도 좋고, 예쁘잖아."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작고 하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암묵적인 신호인 듯 해 원식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집 근처에 던져두고 온 우산은 비바람에 날아갔는지 오는 길에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두 소년은 두 집의 가운데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들어가라."  

"있지, 이름이 뭐야?"  

"김원식."  

"나는 이홍빈, 옆집 사니까 자주 놀러가도 돼?"  

  

  

멋쩍게 고개를 끄덕인 원식이 하늘색 우산 아래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홍빈, 동글동글하니 무지하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원식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우산을 잃어버리고 비를 맞고 다녔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몇 대를 더 맞았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털며 나오다가, 비가 와서 깨끗히 씻겨 집에 들여놓은 개새끼의 턱을 간질였다. 헥헥거리며 저를 올려다보고 재롱을 떠는 모양새가 아까 저를 올려다보는 이홍빈을 떠올리게 해서, 원식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실실 웃어댔다.  

  

  

  

  

  

*  

  

  

  

  

비가 그쳤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코를 골아가며 잠을 자던 원식은 건넛마을 재환이가 저를 우렁찬 목소리로 부를 때에서야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나가면 축구공을 들고 방실방실 웃고 있는 재환이 보였다. 옆에는 귀찮아하는 택운도 있었다. 원식은 여직 젖어있는 풀밭을 ㅂㅏ라보다가 축구복 바지에 얇은 져지로 갈아입고는 재환에게서 공을 뺏어들었다. 통, 통 공을 튀기며 풀밭으로 나갔다. 여직 물기를 머금고 있는 잔디밭은 뛰거나 공이 닿을 때마다 물을 튀겼다. 비가 그치고 나서의 찬 듯 한 바람이 소년들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축구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택운이 공을 뻥, 찼다. 그리고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홍빈이?"  

  

  

풀썩, 주저앉는 하얀 다리 옆에 축구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놀라서 한 달음에 뛰어간 원식이 홍빈의 얼굴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택운과 재환도 놀라서 달려와 원식의 뒤에 섰다. 눈을 몇 번 깜빡이던 홍빈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옆에서 볼품없이 굴러다니던 축구공을 잡아 원식에게 힘껏 던진 홍빈은 몸을 일으켜 뛰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축구공을 받아든 원식은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홍빈을 따라서 뛰기 시작하였다. 몸이 약하다던 홍빈은 얼마 안 돼서 멈춰 서 있었다. 가까이 가니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그 등을 두드려주고 있으니 고개를 든 홍빈이 확, 원식의 가슴께를 떠밀었다.  

  

  

"너 짜증나, 제일 싫어!"  

"아니, 내가 뭘..."  

  

  

이내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는 홍빈을 바라보다가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원식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그를 바라보다가 까무잡잡한 손을 동그란 머리통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쓰담쓰담, 둔탁하고 조금은 어색한 몸짓으로 그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었다. 홍빈은 눈가가 빨갛게 부은채로 원식을 바라보다가 이내 또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너네 집에 갔는데, 너 여기 있다고 그래서 너 찾으러 왔더니 공이나 맞고. 어지러워 죽겠어. 너 때문이야, 네가 제일 미워!"  

  

  

서럽게 우는 모양새가, 금새 그칠 것 같지는 않아 원식은 눈을 꿈뻑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은 토끼풀꽃이 홍빈이 주저 앉은 잔디밭 근처에 피어있었다. 우는 걸 내버려두고 몸을 일으키니 홍빈은 훌쩍거리며 원식을 올려다보았다. 몇 걸음을 걸어가 토끼풀 줄기를 잘라낸 원식이 홍빈의 자그마한 손을 끌어당겼다. 멍이 든 손등이 위로 가도록 한 원식은 토끼풀을 집어 홍빈의 약지손가락에 줄기를 감았다. 서툰 손길로 줄기를 묶어낸 원식은 손가락에 아슬아슬하게 달려있는 풀꽃반지에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우리 어머니가 하던 대로 했는데, 모양이 좀 이상하네."  

"..."  

"마음에 안 드냐?"  

"이게 뭐야, 여자애같이."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홍빈이 옷을 대충 털면서 원식을 바라보았다. 너때문에 공 맞았으니까 나랑 놀아줘. 하는 말에 원식은 산 아래에 크게 자리한 앵두나무를 떠올렸다. 따서 주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원식은 산 아래에 크게 자리한 앵두나무에 홍빈을 데리고 갔다. 빨갛고 탐스러운 앵두가 열린 가지를 뛰어서 잡은 원식은 가지를 죽 늘어트려 잡고 홍빈을 불렀다.  

  

  

"손 대봐, 여기."  

"응?"  

"얼른!"  

  

  

홍빈은 쭈뼛쭈뼛 다가와 가지 아래에 조그만 두 손을 내밀었다. 왼 손 네번째 손가락에는, 여전히 위태롭게 풀꽃반지가 걸려있는 채였다. 가지를 손으로 감싸 그대로 주욱 쓸어내려 홍빈의 손 안 가득 앵두열매를 담아준 원식은 늘어트렸던 가지를 놓았다. 위 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리던 나뭇가지가 떨어트린 잎사귀가 홍빈의 머리위로 올라앉았다. 그 머리를 흐트려놓아 잎사귀를 떨어트려 놓은 원식이 하얀 손 가득히 담긴, 빨간 과즙을 머금고 있는 앵두를 한 알 집어 홍빈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으으, 시다."  

"아직 덜 익었나?"  

"아냐, 나 신 거 좋아해."  

  

  

아아, 아기새가 모이를 달라 조르듯 입을 벌리는 홍빈의 입 안에 원식이 앵두 몇 알을 집어 쏙 집어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씨를 과육 안에서 발라내는 홍빈을 바라보던 원식이 가디건을 입고 있는 얄쌍한 팔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졸졸 끌려가는 홍빈과, 마냥 신난 듯 그를 끌고 가던 원식이 다다른 곳은 작은 정자였다. 강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정자. 원식은 홍빈의 손에서 제 손으로 앵두를 옮겨 담았다. 홍빈은 정자 난간을 부여잡고 강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강을 좋아하는 것 같아 데리고 왔는데, 역시 데리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에 원식은 흐뭇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난간을 붙잡은 손에는 벌써 시들어버린 풀꽃반지가 여전히 끼워져 있었다.  

  

  

"너도 이리와!"  

  

  

홍빈은 환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 손짓했다. 난간에 매달려 흐르는 강을 바라보던 두 소년은 이내 눈을 맞추고 웃음을 터트렸다. 홍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원식의 손 안에 가득 담긴 앵두를 정자 난간에 조심스레 올려둔 홍빈은 비어버린 손 안에 제 손을 채웠다.  

  

  

"서울에는 이런 강이 없어, 전부 다리로 둘러싸여 있고, 까맣고. 칙칙하고."  

"..."  

"사실 나 아파, 되게 아파서 여기 온 거야. 사실 치료 그만 두고 요양하겠다고 할 때부터, 죽는구나. 난 이제 죽겠지. 했거든."  

"그런 생각 하지마라."  

"응, 이제 안 해. 나 살고 싶어, 오래오래 살아서, 이렇게 매일 너랑 놀고, 나중에 크면 우리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고, 서울구경도 하고 싶어."  

"..."  

"네가, 네가 좋아. 원식아."  

  

  

옷자락을 쥐던 작은 손, 다가오던 하얀 얼굴. 감기던 눈과 내려앉던 속눈썹. 제게 입을 맞춰오는 소년을 끌어안은 소년은 생각했다. 여직 봐 오던 강가나, 산의 풍경과는 비교도 못 할 절경이라고.  

  

  

  

  

*  

  

  

  

꿈같던 입맞춤 이후, 원식은 홍빈을 볼 수가 없었다. 집 앞에서 서성거려 보아도 이 시골에선 이질적이게도 굳게 잠긴 대문이 원식을 반겨주었고, 저를 찾아오거나 놀자고 칭얼거리는 홍빈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원식은 대문 손잡이를 쥐고 몇 번 흔들어보거나, 대문 앞에 주저앉아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풀이 죽어 제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모두 신기루였던가, 도자기 인형같던 하얀 얼굴도, 손가락에 매어주었던 풀꽃도, 그 목소리도, 전부 거짓이었던가.  

  

원식이 옆집 대문 앞에 주저앉아 기다린지 일주일이 되던 날, 원식은 홍빈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답답해 찾은 정자에는 회색 가디건을 입은 홍빈의 뒷모습이 있었다. 야, 너...! 하는 원식의 음성에 홍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빨갛게 부은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눈에 띄게 홀쭉해진 얼굴과 하얗게 갈라지고 터버린 입술. 손등에 짙어진 멍과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양새에 원식은 뒷말을 더 이상 이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 아파, 하던 홍빈의 음성이 귀에서 웅웅, 울렸다. 홍빈은 하얗게 튼 입술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 전에 원식은 홍빈을 품 안 가득 안아버렸다. 어린 마음에도 이 모습이, 이 눈물이 무얼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원식은 아무 말도 하질 못 했다. 작은 손이 원식의 머리통 위로 닿아와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툴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을 느끼며 원식은 한참을 울었다. 울지마, 울지마. 작은 음성이 시려웠다.  

  

  

  

  

*  

  

  

  

  

꽃다발이 놓여진 봉긋하게 솟아오른 무덤은 작았다. 열다섯 소년은 여전한 모습으로 여기 묻혀 있으려나, 나는 이리도 자랐는데. 원식은 국화꽃다발 위로 작은 토끼풀을 올려놓았다. 그리곤 그 옆에 풀썩 누워버렸다. 눈에 가득 담겨오는 하늘이 시렸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뜬 원식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열다섯, 도자기 인형같던 그 소년이 제 옆에 누워 웃고 있었다. 그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고, 입을 맞춰보았다. 여전히 소년은 웃고 있었다. 앵두같은 입술로, 큰 눈을 접어가며. 원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명찰을 꺼내었다. 레지던트 김원식, 그 명찰을 회백색의 가디건에 달아주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잔디 위로 금속성의 명찰이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원식은 명찰을 쥐고, 그를 제 가슴 위에 꾹 품어냈다. 눈을 감은 원식의 머리칼 위에 하얀 나비가 내려앉았다가, 날개를 두어번 살랑거렸다. 그리곤 끝없는 하늘로 날개를 저어 몸을 올렸다. 어쩌면, 소년이 있는 곳으로.  

  

  

  

  

  

  

*  

  

  

  

  

홍빈의 어머니는 십수년이나 꺼내보지 못 했던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려 낡아 여기저기 닳아있는 상자를 열었다. 장난감과 작은 옷가지들이 가득한 상자 속에서 어머니는 일기로 보이는 작은 책을 발견했다. 병원에 갔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어린 소년이 썼다기엔 너무도 암울했던 내용들이 일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어머니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눈물을 흘려내었다. 그리곤 어머니는 마지막 장에서 일기를 품에 안고 우셨다. 그것이 제 자식인 것 마냥. 꼭 끌어안고.  

  

말라서 군데군데가 바스러진 토끼풀이 엉성하게 테이프로 붙여진 옆장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는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하느님!  

  

  

잔인한 신께서는 어찌 그 작은 목숨을 앗아갔다는 말인가.  

  

  

  

  

  

  

  

  

  

역시 모바일로 쓰면 잘 안 써져요... 엉엉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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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 진짜 이거 너무 순수하면서 슬픈 막 그런 애잔한 이야기네요.......... 시골소년 원식이와 서울소년 홍빈이가 어쩜 이리도 상상이 잘 가는지............ 둘의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그 여리고 어린 아이의 목숨을 그렇게 쉽게 앗아가셨는지.......... 오늘 글도 너무 잘 읽고 가요, 작가님 오랜만에 오셨네. 보고싶었어요:)
9년 전
독자2
홍빈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우리도자기인형ㅠㅠㅠㅠㅜ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ㅠㅠㅠㅠ오늘이모의고사라걱정많았는데힐링물은아니지만힐링하고갑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랍콩너는love....♥
9년 전
독자3
파리채에요...아 작가님...진짜....홍빈이랑 원식이 소년같고 순수한 모습이 너무 눈에 아른거려서 더 슬프네요....이 시간에 작가님 때문에 찡찡 울고 있자나여...ㅠㅠㅠㅠㅠㅠㅠ 어쩐지 프롤로그부터 아련해써....흡....아 진짜 이 글 너무 슬퍼요....진짜 제가 실제로 아는 사람 이야기인것 마냥 되게 슬프네요....ㅠㅠㅠㅠㅠㅠ 작까님 대체 이런 분위기는 어떻게 내는거에요...? ㅠㅠㅠㅠㅠ 순수하고 예쁜 두사람이라 더 슬퍼요 아팠던 홍빈이 생각에 의사가 된 원식이라니...마음아파...하..ㅠㅠㅠㅠ 작가님 나 운거 어떻게 할거에요 찡_찡 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4
여보에요! 헐.. 너무 아련하잖아요ㅠㅠㅠ 열다섯 소년들의 예쁜 사랑이 이제는 추억으로 밖에 남지 않아버린 그 슬픔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거예요ㅠㅠㅠㅠ 레지던트 김원식 명찰도 진짜 아련하고.. 작가님 글 읽고 힐링되서 오늘 모의고사 잘 보겠다!ㅋㅋㅋㅋ
9년 전
독자5
무슨말씀이셔요!!! 글 굉장히 좋은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순수한모습이생각네요 ㅠㅠㅠㅠ 첫사랑은 오래오래 기억되니만큼 아련하고 순수하로 그러네요 ㅠㅠㅠㅠ
9년 전
독자6
무슨말씀이셔요!!! 글 굉장히 좋은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순수한모습이생각네요 ㅠㅠㅠㅠ 첫사랑은 오래오래 기억되니만큼 아련하고 순수하로 그러네요 ㅠㅠㅠㅠ
9년 전
독자7
아...진짜...슬프다...우리홍빈이.
9년 전
독자8
우째요ㅜㅜㅜㅜㅜㅜㅜㅜ아...진짜 오랜만에 좋은글 보고가네요ㅜㅡ
9년 전
독자9
진짜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랍콩으로 힐링하고 갑니다!
9년 전
독자10
ㅠㅠㅜㅜㅜㅜㅠㅜㅜㅜㅜㅜㅠㅜㅜㅜㅜㅠㅜㅜ아련하고 뉸물나고 홍비나ㅜㅜㅠㅜㅜㅜㅜㅠㅠ
9년 전
독자1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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