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ta
신부(神父)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신부ㅡ
02
새벽 미사에 참례, 라기보단 준면을 보기 위해 일찍이부터 성당에 발을 들인 세훈이 무겁게 감겨오는 눈꺼풀을 애써 치켜뜨며 준면을 찾아 성당 내부를 훑었다. 미사 전 준비를 하기 위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준면이 교복 차림으로 나타난 세훈의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세훈에게 다가왔다. 세훈아?
“신부님.”
“아침 일찍부터 학교는 어쩌고.”
“학교 가기 전에 오려고 일찍 일어났어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세훈에 무어라 말하려던 준면이 입을 꾹 닫으며 말을 아꼈다. 이내 세훈과 같이 생긋 미소 짓던 준면이 세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속삭였다. 이따 보자. 저를 세워둔 채 미사실로 들어서는 준면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던 세훈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문장을 애써 꾹꾹 짓눌러 가며 찬찬히 준면의 뒤를 따라 미사실로 들어갔다. 신부님이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라는 말은 참기로 하자.
“…이 모든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지루하기만 했던 시간을 혹여 준면이 볼세라 애써 사람들의 행세를 조금이나마 따라 하며 졸음을 참아내던 세훈이 마침기도가 끝나고 준면이 퇴장하자 마음이 급한 듯 눈치를 살피며 벌떡 일어나 미사실에서 빠져나왔다. 채 제대로 매지 못한 가방을 손에 든 채 빠르게 준면을 찾아 걷던 세훈이 준면의 형상을 발견하고선 놓칠세라 긴 다리를 휘적휘적 저어가며 준면에게 다가갔다.
“신부님.”
“어, 고생했어 세훈아. 얼른 학교에 가렴.”
“아침 안 드셨으면 저랑 아침 먹어요. 저도 안 먹었는데.”
“너 학교 안 늦었니?”
의심쩍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꼬리를 올리는 준면에 세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로 준면을 이끌었다. 얄팍한 준면의 흰 손목이 세훈의 큼지막한 손에 가득 들어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한 준면이 세훈을 나무라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세훈에게 끌려가다시피 걷던 준면이 곰곰이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세훈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오려던 잔소리도 쏙 들어가더라.
“손은 좀 놓고 걷자. 자세가 이상하잖니.”
불쑥 튀어나오는 준면의 말에 세훈이 고개를 돌려 준면의 시선을 마주했다. 작게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 없이 저를 쳐다보는 세훈에 준면의 입가가 미약하게 벌어졌다. 아아, 정말이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안 잡을 테니까 부지런히 따라오세요, 신부님.”
저에게 미소 짓고 있는, 세훈으로 인하여.
*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세훈은 중학교 끝물에 다다라 있었으며, 준면과는 나날이 가까워져 갔다. 그래봤자 나누는 말 수가 조금 더 늘어난 것뿐이겠지만. 한동안 친구들과 이리저리 놀러다니느라 성당에, 정확히는 준면에 소홀해진 세훈이 거의 석 달 만에 준면을 보기 위해 성당에 들어섰다. 어느새 경건한 분위기까지도 익숙해져 버린 성당에 콧노래를 부르던 세훈이 어렴풋이 보이는 준면의 형상에 살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신부님.”
“……….”
침묵. 세훈의 얼굴을 굳은 표정으로 마주하던 준면이 말을 꺼내기는커녕, 침묵을 유지하며 세훈을 말없이 바라봤다. 어색한 준면의 반응에 도리어 당황하던 세훈이 준면에게 다가가 굳어있는 준면의 어깨를 살살 쓸었다. 왜 그래요, 신부님. 저의 몸에 세훈의 손이 닿은 후에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준면이 세훈에게 애써 미소로 화답하며 몸을 돌렸다. 처음 보는 준면의 분위기에 세훈은 그저 말없이 멀어져가는 준면의 형상을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세훈의 모습엔 어느새 준면을 올려다보는 눈빛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웃기게도, 단 석 달 사이였음에도 이제는 준면이 세훈을 올려봐야 했다.
야외 벤치에 앉아 작게 숨을 내쉬는 준면을 멀리서 바라보던 세훈이 찬찬히 다가와 준면의 옆자리에 앉았다. 움직임 없이 곁눈질로 저를 쳐다보는 준면에 세훈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분명 세훈의 음성에는 준면을 걱정하는 마음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세훈도 고맙지 않다는 듯 그저 말없이 고개를 작게 좌우로 내젓던 준면이 고개를 틀어 세훈을 빤히 바라봤다. 위태로이 흔들리는 준면의 눈빛이 세훈의 얼굴을 잔뜩 훑고 있었다.
“…알겠어요, 알겠어. 이제 꼬박꼬박 미사 드리러 오면 되잖아요.”
세훈은 신앙심, 정확히는 준면에 대한 마음이 한결같았기 때문에 전과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준면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세훈을 대하는 준면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해졌음에 있었다. 준면을 어르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세훈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준면이 세훈을 향해 나중에 보자며 웅얼거렸다. 세훈의 표정이 미묘하게 웃음기를 서리고 있었다. 아마도 준면의 소리보다 성당 주변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바람의 소리가 더 컸던 거 같다.
무거운 발걸음을 타박타박 옮기던 준면이 경건한 분위기를 잔뜩 내뿜는 십자가 앞에 우뚝 섰다. 아아ㅡ 그래, 나는 죄악(罪惡)을 저지르고 있었구나. 준면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소년의 잔상은 여전히 준면의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입술을 짓누르듯 꼭 깨물고 있던 준면이 한참을 망설이며 움찔거리던 입을 그제야 찬찬히 열었다. 불안한 움직임으로 계속해서 입을 축이던 탓에 준면의 입술이 조금은 버석하게 잔뜩 갈라져 있었다. 죄악임을 알면서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부디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확실한 죄악으로 변질되기 전에 얼른 사라지기를.
-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와 인티 글잡에서 동시 연재되는 글입니다.
* 이 글에는 브금을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털썩.
제가 무교인지라 성당에 관한 것들이 틀린 게 종종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럴 땐 댓글에 피드백 남겨주시면 빠르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에 틀린 거 알려 주시면서 도움 주시는 독자님들과 재밌다고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하트
참고로 피에타는 단편으로 완결 낼 수 있을 거 같아요! 5~6화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거 같네요
물론 급전개가 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그래도 질질 끄는 것보단 낫..겠죠?
그나저나 3편도 다 썼는데 언제 올리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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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희귀하다는 모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