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물소리가 났다
비 냄새가 나의 지구를 채우고
나는 우산도 우비도 없이
그저 몸 이곳 저곳을 적셨다
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들이 폐를 짓누를 듯
온통 차올랐을 때
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아가미를 뻐끔거렸다
비늘이 돋기 시작한 팔뚝에선
물컹한 생선 비린내가 나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어릴 적의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는
깨닫지도 못한 채
마냥 물에 취해 몸을 띄운다
차마 세탁하지 못한 때 묻은 순수는
넘실거리는 빗물에 다 씻겨내려
나는 다시 태아가 되어 양수에 잠긴다
터무니 없지만서도 나는 물고기가 되었다
꿈꾸던 은빛 비늘을 가지고 매끄럽게 호흡하다
빗물 속 웅크린 나를 바라보며 지느러미를 살랑댄다
잊지 않을 기억들만이 물 속에 둥둥 떠다닌다
처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시작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