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잖아, 이렇게 와."
"응?"
"좋은 날, 좋은 날씨에, 좋은 하늘에, 좋은 신을 신고, 그렇게 나한테 돌아와."
말을 마친 너는 또다시 해사하게 웃으며 내 손을 그러쥔다.
열이 오른건지 이전보다 더더욱 따뜻하게 감겨오는 손의 느낌에 널 보고 웃으면, 넌 내 웃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더더욱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한 채로, 손은 서로의 손은 맞잡은채로, 우리는 그렇게 웃는다.
김민석 (18)
황국(黃國) 태위(太尉) 김민준의 막내아들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죽마고우(竹馬古友)
"좋은 날에, 좋은 날씨에, 좋은 하늘에, 좋은 신을 신고, 그렇게 나에게로 돌아오면, 그때의 우리는"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11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제! 발
"빨리 좀 따라와!"
"내가 나가서 날뛰지 말랬지, 꼬맹이."
"민석이 너는 키 작아서 이 정도도 못따라오지?"
"시끄러워. 너보다 크다니까, 자꾸 맞을 짓 할래?"
"맨날 때리고."
"그게 뭐 아프다고 엄살이야."
"아프거든, 진짜, 진짜로 아프거든!"
내 말에 눈썹을 몇번 실룩거리더니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여간 매서운게 아니다.
쳇, 진짜로 아픈데, 진짠데. 아플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심하다는듯 나를 쳐다보는 얼굴이 참, 곱기도 곱구나 민석아.
그 예쁜 얼굴에다 대고 화를 낼수도 없어 꾹꾹 눌러참는 내 표정이 웃겼는지 볼을 쿡쿡 손가락으로 찔러온다.
하지 말라며 손을 쳐내도 이내 실실 웃으며 불굴의 의지로 볼을 쿡쿡 찌르는데, 정말이지, 초딩이 따로 없다.
"뭐, 먹고 싶은거라도 있어?"
"있으면 사줄거야?"
"사줘야지, 꼬맹이가 먹고싶다는데."
"나 단거 먹고싶은데.."
"달달한거?"
"응, 달달한거 먹고싶어."
"꼬맹이는, 꼬맹이네 역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엉성하게 잡고 있던 손을 바르게 고쳐잡더니 내 손을 잡아끈다. 꼴에 남자라고, 힘은 좋구나 싶어 그 억센 손길에 질질 끌려갔다.
새로 신은 신발이 혹여나 더러워질까 걱정되 어정쩡한 걸음으로 겨우겨우 민석이의 뒤를 쫓아갔다.
좋은 곳에 가라고 사준 신발인데, 더러워지면 슬프잖아. 친구가 준 선물을.
"빨리 좀 걸어,"
"아, 갑자기 왜 그래, 조금만 천천히!"
"그 집은 오래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아, 그래도, 보폭 좀 줄여!"
단걸 먹고 싶다던 내 말에 눈을 반짝이던 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달달한건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지, 무슨 특별한 가게라도 있는 것 마냥 제가 더 신이나서는 내 손을 강하게 그러쥐고 성큼성큼 앞서나간다.
아무리 네 키가 별로 안크더라도 나보다는 훨씬 큰데, 네가 그렇게 걸으면 내가 어떻게 따라가 이 멍청아! 하고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얗고 뽀얗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잔뜩 신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 눈에 훤해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 삼켰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배려없이 무작정 손을 잡아끄는 손길에, 이거봐 결국 이럴 줄 알았어. 복잡한 시장 한복판에서 나는 그 긴 치마를 밟고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붙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간 것을 알았는지 민석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몸을 뒤로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자빠진 내 몸을 봤는지 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다가오는데, 그 얼굴이 꽤나 다급해보여 아픈 그 와중에 웃음이 나왔다.
"아야,"
"괜찮아? 안 다쳤어?"
"씨이, 살 까졌잖아.."
"미안해, 내 잘못이야. 많이 아파?"
새카맣고 반질반질한 눈동자 가득 내 무릎에 대한 걱정의 시선을 담아내며 이리저리 다리를 살펴보는 그 눈빛이 조금 민망해 괜히 볼을 긁적거리며 괜찮다-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양 눈썹 사이 미간을 좁게 좁히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끙-소리를 내며 한참동안 내 상처 부위를 빤히 바라본다.
한참이 지나서야 결심이 섰는지 갑작스레 내 손목을 살며시 그러쥐고 몸을 살짝 일으켜 세우더니 나에게 등을 보인채로 쪼그려 앉는다.
업혀-짧게 말하고는 묵묵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빨리 업히래도-라며 나를 재촉한다.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고 민석이의 등 위에 슬쩍 몸을 눕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 남자구나 이자식.
"꼬맹이 밥 잘 안먹지."
"잘 먹어어.."
"말 안 듣고 거짓말 할래?"
"알겠다, 뭐."
"꼬맹아."
"응?"
나직하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답하면 푸흐흐-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민석이는 읏차-하며 내 몸을 다시 위로 끌어올려 업는다.
성큼성큼 민석이가 움직일 때 마다 몸이 흔들거리는 불편함에 민석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어깨를 가볍게 그러쥐면 민석이는 이 나쁜 손은 뭐냐며 찰싹 손을 가볍게 친다.
그에 내가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또 입술 내밀래-하며 은근한 말투로 심중을 쿡쿡 쑤셔온다. 귀신 김민석.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
"그러게."
정말 장날은 원래 이런건지, 아니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내가 나온 오늘만 이런건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중학생때였나, 친구따라 간 콘서트에서 사람 바다 속에서 겨우 헤엄치며 이리저리 휩쓸려다녔던 기억이 샘솟을 정도로 정말이지 거리는 인산인해의 수준이었다.
그걸 민석이도 느꼈는지 나를 업고 계속해서 걸어가던 민석이는 후-하며 한숨을 내쉬더니 길 구석으로 가 내 몸을 땅에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단거 먹고 싶다고 했지."
"응!"
"그럼 여기 잠시만 있어, 움직이지말고"
"응? 왜?"
"사람들 많은데 너 업고 움직이면 오래 걸리니까, 빨리 가서 사올테니까 꼼짝말고 서있어."
"나,나 혼자 여기?"
"우리 꼬맹이 다 컸지? 잠시만 있어, 진짜 빨리 갔다 올테니까."
"천천히 먹어도 괜찮은데, 그냥 같이,"
"우리 꼬맹이 먹고싶다는데 빨리 대령해야지."
내 손을 부여잡고 눈을 마주하며 말해오는 민석이의 행동에 결국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씨익 웃으며 착하네, 하며 머리를 쓰다듬더니 몸을 돌려 저 멀리 뛰어간다.
노란 도포자락이 가볍게 팔락이는 모양새가 참으로 어여쁘다, 생각하며 그것을 지켜보고 있기도 잠시, 달음질이 빠른건지 이내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쉬워
괜히 입맛만 쩝쩝 다시며 이미 사라진 뒷모습을 머리 속에 계속해서 되뇌이고 되뇌이기를 반복했다.
혼자 여기서 뭘하지 하고 생각하기도 잠시 나는 내 몸을 간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민석이는 꼼짝말고 가만히 서있으라, 그리 말했지만 바쁘게 여기저기를 오고가는 사람들 무리 속에서 나는
불편한 다리 한쪽을 바닥에 질질 끌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필 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서있었던 가게에서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더니 무리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면 키가 작았던 나는 그 건장한 남성들 사이에 파묻힌 대로 그들이 움직이면 움직이고 멈추면 멈추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헤쳐나올 시도라도 했겠지만 벌겋게 부어올라 욱신거리는 발목 탓에 그저 인상을 찌푸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참 멀리까지 끌려왔구나, 싶었던 그때. 내 몸을 여기까지 끌고온 남자 무리들은 또다시 우르르 어느 곳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균형을 잃은 내 몸은 몇번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더니 결국은 길바닥 한복판에 나동그라졌다.
"아얏.."
욱신거리는 엉덩이 탓에 인상을 찌푸리며 낮게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던 그 때, 눈 앞에 하얀 손이 들이밀어졌다.
그 하얀 손이 끝나는 손목 언저리 부터는 폭이 넓은 연한 물빛의 도포자락이 그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 참 예쁜 한복이구나-생각하던 찰나 내 앞에 들이밀어져 있던 손이 잡기를 재촉하듯 가볍게, 살짝 움직였다.
"내민 손이 민망하니, 한번 잡아주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참 바보 멍청이 같은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박터지는 소리를 낸 나는 귓전을 울리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순간적으로 먹먹해진 눈이 갑갑해 눈을 두어번 깜박였다.
눈물이 후두둑-떨어져 내린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줄기가 두갈래 세갈래로 나눠져 이리저리 볼을 타고 흐른다. 아아,
"어, 어찌 눈물을 보이십니까,"
작지만 선이 고운 하얗고 말간 얼굴, 둥그렇고 커다란 선량한 빛을 띤 새카만 눈동자,
그 두 눈 사이에 참 이쁘게도 솟아오른 단정한 콧날에, 약간, 윗부분이 찌그러진 하트 모양의, 그 입술.
너구나, 너야. 이제서야 너를 만나게 되는 거구나. 왜, 왜 이제서야 내 눈 앞에 나타나, 어째서.
나는 너와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것을 버리고 이 세상으로 떨어졌는데, 너는, 너는 왜 이제서야 내 눈 앞에 그 예쁜 얼굴을 보여줘.
가슴이 먹먹해져오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손을 들어올려 주먹으로 가슴팍을 팍팍 내리치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아이가 나에게로 손을 뻗더니 내 팔을 낚아챈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러면 안돼요, 하더니 생긋이 참 예쁘게 웃으며 내 손을 다시 놓아준다.
그래, 그런 웃음이었다. 연한 분홍빛의 두꺼운 아랫입술이 빙긋이 올라가며 가볍게 얇팍한 윗입술까지 끌어올려 그 가우데가 슬쩍 벌어져 하얀 이가 환히 보여지는, 그런 웃음.
나는 네 그런 웃음에 내 마음을 모조리 내어 줬는데, 나와 다시 만나자 마자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나는, 나는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해.
"으,..흐으..아,흑,"
지금 당장이라도 입을 벌려 네 이름을 외치고 싶었다. 도경수, 경수야. 그 한마디를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네가 또 그때의 무표정한 얼굴을 내보일까봐, 지금 네 얼굴을 뒤덮은 그 어색함이 감도는 이쁜 미소가 사라져 버릴까봐.
너와 함께한 그 행복하기만 했던 짧은 기억들이 정말 한 여름 밤의 헛된 꿈일 뿐이라는 걸 나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꼴이 될까봐.
그날 밤, 내 몸을 뒤덮은 고통들이 다시 돌아와 내 몸을 괴롭혀 나를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에,
그렇게 나는 끝끝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경수야, 하는 그 짧은 한마디가 계속해서 입안을 돌고, 돌고, 돌았다.
도경수 (18)
황국(黃國) 대부호(大富戶) 황국의 큰 손 도형원의 장남
"그리 우시면 고운 얼굴이 다 못나질지도 모르니 눈물을 멈추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암호닉(이제부터 당분간 계속 받을게요! 따로 저한테 묻지 않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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