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18)
황국(黃國)대부호(大富戶) 황국의 큰 손 도형원의 장남
"이런 곳에서 이리 만났으니 이것도 인연(因緣)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대와는 어딘가에서 만난듯한 기분좋은 착각이 듭니다
김민석 (18)
황국(黃國) 태위(太尉) 김민준의 막내아들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죽마고우(竹馬古友)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면, 대나무 같은건 모조리 불태워버릴테니까."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13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제! 발!
"부인,"
"아, 도련님께선 어찌된 일이십니까."
"지아비가 부인을 찾는데에 특별한 연유가 필요합니까."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등을 돌리며 나를 불러오는 정혼자라는 사람에 놀라 뒤로 한발자국 물러나면 싱긋이 웃으며 나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온다.
그에 화답하기 위해 슬쩍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뒤에서 큼큼-하는 헛기침 소리가 난다.
가볍게 무시하고 눈이 마주친 찬열에게 다시 눈웃음을 건네면 옷을 주욱 잡아당기는 느낌에 결국은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왜그래?"
"누구야?"
"누군지,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부인,"
"예?"
"그리 설명하시면 밉습니다, 분명 이름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아아, 송구합니다."
민석이에게 설명을 하려던 내 말을 부드럽게 가로막더니 그 큰 눈을 반쯤 접어 웃어보이며 속삭이는 그 행동에 얼빠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민석이에게 이사람을 소개했다. 네가 축하해줬잖아, 내 정혼자 될 사람, 박찬열.
민석이의 입술이 실룩이더니 피식-웃음을 터트린다. 영문을 몰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 찬열이라는 사내는 민석이와 시선을 마주하고 싱긋 웃는다.
"귀공께서는 누구십니까."
"그러게요, 뭐라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으니 제 아비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것이 옳을듯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태위(太尉) 김민준의 막내아들, 김민석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저보다 연배가 아래이니 말을 낮추어도 되겠습니까?"
"초면인 사람에게 하대(下代)를 받는 취미는 없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웃어보이는 찬열이의 표정에 왜그러냐며 민석이의 팔을 툭 치면 덥석 내 손을 잡아온다.
놀라 눈이 휘둥그레해져 쳐다보면 나와 눈을 마주하며 씨익, 정말이지 말 그대로 하얀 이를 드러내어 보이며 씨익 웃어보인다.
그러고는 내 손을 쥔 손의 아귀에 힘을 주더니 고개를 돌려 찬열이를 바라보고 아까와 같이 씨익 웃는다.
"이 아이는 저를 죽마고우(竹馬古友)라 칭합니다."
"그러십니까."
"이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저와 이 아이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와 이 아이의 사이를 죽마고우(竹馬古友)라 일컫습니다."
"본디 남녀간의 우정은 지켜지기 어려운 법일진대, 대단하십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으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죽마고우(竹馬古友)라는 이름은 참 좋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가릴 수 있으니."
"그리 사이가 막역한 친우가 있질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딱하신 분입니다."
"그대와 그러한 사이가 되고 싶다면, 허(許)하실 것입니까?"
"글쎄요, 죽마고우(竹馬古友)라도 되어 드리리까."
"그것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전에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둘이, 싸우는 건가. 묘하게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석이의 얼굴을 보면 그렇지만, 음, 글쎄, 재밌다는듯 빙글빙글 웃고있는 찬열이의 표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하기에는 가볍게 통통 튀던 민석이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아 있어서,
그 말갛던 표정이 갈빛으로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한입 한입을 오기로 내뱉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입술을 보면 마음이 불안했다.
"대나무를 아십니까."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대나무의 속이 비어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부디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또 한번 민석이의 눈빛이 쨍하니 가느다랗게 휘어졌다. 온 얼굴을 찡그려가며 활짝, 정말이지 활짝, 웃어보이는 그 얼굴에 반해
슬쩍 눈웃음을 치며 입술 끝, 꼬리를 말아올려 웃는 찬열이의 얼굴은 여유롭기 짝이없다.
지금 정말 둘이 싸우기라도 하는건가. 어째서. 왜? 오늘 처음 만났다며. 이름도 집안도 얼굴도 서로 모르더니.
"대나무는, 속이 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 좋지 않습니까, 속이 비었으니 그 속에 아무런 의미도 담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딱딱하게 이어지는 민석이의 말에 이번에는 싱글싱글 웃고있던 찬열이의 표정이 굳어진다. 억지로 끌어당겨져 웃는 입꼬리 끝이 파드득 떨린다.
피식-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민석이는 그런 찬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지 나에게 슬쩍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몸을 돌린다.
경쾌한, 하지만 무거운 그 발걸음에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 됬다며 손을 저어 보인다.
"들어가, 내일 올테니까."
"아직도 화난거 아니지? 화 풀린거지, 응? 그치?"
"너한텐, 화 안났으니까 그만 들어가, 기다리잖아."
"내일 와, 꼭 와!"
가볍게 고개를 끄덕-하더니 쓰고있던 갓을 한번 스윽 잡아당기며 고개를 슬쩍 숙여 인사한다.
등을 돌려 걷는 모양새가 정말이지, 나비가 따로 없구나.
나비가 신이 났는지 펄럭이는 날개자락은 그대로인데 천적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어찌 걷는 모양새는 그리 묵직하고 다급하기만 해, 어째서.
"부인,"
"예?"
"친우라는 분께서 부인을 정말이지 많이 아끼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송구할 따름입니다."
"부인-"
"예?"
"저는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십니까."
"한번 제 손에 들어온 것은 놓는 법이 없지요."
"그 정도 욕심도 없어서야 사내 대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부인,"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지금 그리 말씀하신 것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싱긋이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을 종용하는듯한 그 말투에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반응에 더더욱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가며 씨익-웃어보인다.
그에 반해 형형히 빛나는 새카만 눈동자가 그득히 들어찬 커다란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아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부인,"
"아, 예, 네?"
"그리 가만히 서 계시면 내민 손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멍하게 그 이질적인 느낌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잠시, 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올리면 내 앞에 커다란 손이 들이밀어져 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더 들어올리면 이번에는 커다란 눈을 접어가며 웃고있는 말간 얼굴이 펼쳐진다.
결국 그 손 위에 가지런히 내 손을 올려놓으면 반대편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는 손길이 퍽 부드럽다.
제 앞에 서 어벙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제 정혼자라는 여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찬열의 눈빛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다정한 눈빛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은 찬열 본인 뿐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 따위가 어딜, 감히, 내 앞에서, 으득- 들리지 않게 조용히 이를 간 찬열이 입술로 분노를 감춰 물며 싱긋이 웃었다.
붉게 빛나는 햇빛 아래 노랗게 빛나는 도포자락이라 평소에 봤으면 아름다운 나비임에 틀림없구나 감탄했겠지만
어딜, 자신의 것을 넘보는 것에 한해 찬열에게 있어 용서란 없었고 자비란 없었다.
노란 나비의 날개를 죄다 찢어놓으면 제 옆에 서서 아름답게 웃는 제 정혼자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 뭐, 그 얼룩진 얼굴도 결국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인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찬열이 씨익 미소지었다. 붉게 칠해진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하얀 이가 드러났다 입꼬리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세훈아!"
"아,"
갑작스럽게 손을 강하게 쥐어오는 탓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덜컹거리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세훈이의 얼굴이 반가워 소리를 질렀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란 표정을 해보이는 세훈이의 얼굴에 덩달아 환히 웃어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옆에 서있던 찬열이에게로 뭔가를 건낸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드는 행동에 둘을 번갈아 바라보면 세훈이는 그새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나에게서 등을 돌려 사라진다.
"둘이, 아는 사이였던가요?"
"그런것은 아닙니다, 놔두고 온것이 있어 잠시 부탁했을 뿐입니다."
"그러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저희 집의 아이입니다, 놔두고 오신 것이 있으시다면 직접 가셔도 됬을 일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정말이지, 부인께서는 호위무사 하나하나에게까지 그리 크게 정을 내어주시는 모양입니다."
기분이, 좋질 않았다.
눈 앞에 보이는 다정한 얼굴은 변함이 없었지만, 내 손을 잡은 부드러운 손길은 여전했지만,
삐뚤어져 올라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날선 목소리가, 그 날선 목소리가 담고 있는 목소리보다 더더욱 날선 그 말투며 내용 따위가,
나를 무시하는 건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지, 신경을 긁어댔으니까.
'단순한 호위무사 아이가 아닙니다, 다음부터 그리 말씀하시는 것은 삼가해 주십시오."
"기분이 나빴다 하시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날이 아닌듯 하니 다른 날을 기약하시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살짝 숙여보이는 그 얼굴에, 왠지 모르게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 내가 뱉을 말을 모조리 토해내고 등을 돌려 사라지면,
그 묘한 느낌의 시선으로 내 등 뒤를 계속해서 바라보는건지 등이 따가운 기분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유가 어찌됬든, 기분이 좋질 않았으니까. 세훈이가, 보고싶었다. 단순히 그것 뿐이었다.
야무지게 제 할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가버리는 제 정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찬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는 환하게 웃어보이는 그 묘한 이질적인 얼굴을 알고는 있는건지, 찬열의 입꼬리는 더더욱 올라갔다.
빙긋이 웃는 그 입꼬리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더니 소리없이 입을 두어번 들썩이고는 차게 식은 목소리가 입 틈새로 새어나온다.
"나비에 이어 새끼 늑대라-좋지 않은 조합입니다."
박찬열 (20)
황국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장남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정혼자
"자라는 꽃에 송충이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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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이제부터 당분간계속 받을게요! 따로 저한테 묻지 않으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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