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틀요괴 05
그러니까, 사정을 들어보니 이거였다.
점심 즈음이 되자 배가 고파서 뭔가 탐험을 해본답시고 바닥에 내려왔는데,
갑자기 내 침대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단다.
(이불 밑에 휴대폰을 두고 갔었다. 아마도 진동이 울렸던 듯)
거기에 호기심과 모험심이 발동하셔서
바늘.. 아니 칼로 이불을 팍 팍 찍으면서 암벽 등반을 하셨던 거다.
쓸데없이 혈기를 불태워 결국 침대 위로 올라왔는데
이상한 소리는 이내 끊기었고
허무한 마음에 이불 위에서 쉬고 있었단다.
"근데 집주인의 담요에서 좋은 향기가 나지 뭐야.
그래서 그 향기에 깜빡 잠이 들어버렸어."
"향기는 무슨 개뿔.. 땀 냄새밖에 더 나냐?"
"아냐! 분명 포근한 느낌의 향내가 났다고."
"됐고, 앞으로 내 물건에 함부로 바늘.. 아니 칼 찍지 마."
나는 동동을 그다지 혼내지 않았다.
용서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내가 엄마한테 죽을 듯)
절대로 향기라는 말을 들어서 기분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책상 위 보틀 옆에 동동을 살포시 내려주고,
수수깡 포장을 뜯어서 수수깡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리고 색깔별로 분류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분홍, 하양.
옆에서 동동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와아~ 이게 뭐야?"
"이거? 니 몽둥이."
나는 수수깡을 자르고 철심으로 고정시키며
집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직사각형 형태로 벽면을 만들고 지붕을 만들었다.
좀 부실해보이지만 그런대로 통나무집 같다.
"야, 이리와서 들어가봐."
나는 손짓하며 동동을 불렀다.
몽둥이란 말에 보틀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더라.
"ㅇㅇ아, 저녁 안 먹니?"
"아씨 깜짝야."
엄마가 방 문을 열고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보틀과 동동을 몸으로 가렸다.
엄마가 책상 위의 수수깡을 발견했다.
"너 그 나이에 아직도 그런거 갖고 노니? 공부는 안 해?"
"이...이거 공부랑 관련된 거야.
그...세포 구조의 변화 과정을 나타내는 거야."
나 뭐래....ㅎ...
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허리를 더 비틀고 굽혀서 필사적으로 동동을 가렸다.
허리에 경련 일어날 것 같다.
"....세포 집이 이렇게 생겼나보지?"
엄마는 그렇게 말 하곤 몸을 돌려 나가려는 듯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미친 요괴새끼의 예술 작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머! 얘, ㅇㅇ아! 이게 다 뭐니!?"
사자 갈기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내 이불을 발견한 것이다.
주렁주렁 술을 달고 있는 이불은 엄마에게 큰 충격을 줬나보다.
나는 빛의 속도로 머리를 굴려서 변명 거리를 생각했다.
"그... 실밥이 하나가 튿어지니까 저렇게 되던데?"
"말도 안 돼. 어떻게 실밥 하나로 이렇게까지 되니?"
엄마는 내 이불을 들고 나가면서도 계속
'이상한데, 이상한데'를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방 문을 닫고 책상 위 동동을 찾았다.
눈치빠른 동동은 보틀 뚜껑을 꼬옥 끌어안고는
책장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야, 다 보이거든?"
내 말에 동동이 움찔- 했다.
동동은 고개만 쏙 내밀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지붕 던지지 말아라! ....몽둥이도."
뭐 저런 게 사람을 죽이겠다고.
쟤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내가 김한빈을 공부로 이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