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한시간도 못 잔 것 같은데. 옆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커풀을 겨우 들어냈다. 앞에서 소란스럽다고 지랄을 하시는 전정국의 귀에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대로 잠들었었는지 맞은 편에서 나를 또 구경하고 계시는 정국. 지금 안 그래도 일어나기 싫어서 죽겠는데 왜 아침부터 내 신경을 돋구실까. 나는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고 정국의 얼굴만 노려 보았다. 내가 성격 다 누르고 잘 해주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피곤함에 찌든 뇌가 자꾸 고개를 숙이라고 명령질을 해대서 목에 전혀 힘이 안 들어갔다. 손으로 겨우 머리를 받치고 잠을 몰아내려 애쓰고 있는데, 나를 가만 둘 생각이 없는지 옆에서 정국이 계속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아침상을 내오 거라."
"뭐래 미친……."
나도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누구 상을 차리라고 지금. 그 와중에 또 화려한 전정국의 도포에 눈이 부셔왔다. 아침부터 눈에 무리 오잖아, 라면 같은 새끼야. 대충 식탁 위에서 수분을 다 날리고 계신 식빵 한 장을 입에 물려주니 도로 식탁에 내려놓고는 다시 징징거린다. 아니 저 침 뭍은 걸 누가 처리하라고. 내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는지 다시 빵을 집어 들긴 하더라. 사람이 인정머리가 없네, 예를 지키질 못하네 떠들어 대는 정국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한 대 날리고 싶었다.
저 새끼는 날 얼마나 밑으로 보길래 저렇게 명령 질일까. 괜히 상하는 자존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적에서 살아 숨 쉬는 천사와 악마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리는 듯했다. 야, 이 새끼 벌벌 떠는데, 왕의 위압에 눌린 건 아니냐. 천사야 네가 뭐 좀 해봐. 그 착한 본성으로 아침상이나 차리지 그래. 하얀 볼따구에 차마 손을 날리지 못한 나는 찌질하게도 속으로 악마니 뭐니까지 동원해가며 찐따 같은 상황극만 벌이고 있었다.
"상궁을 시켜 한 상 차리거라. 지금 나를 굶기는 것이냐."
"상궁이 어딨어요, 여기에."
"그래, 기대도 안 했노라."
옆에서 깝치는 정국의 입에 물려있는 빵을 거칠게 빼앗았다. 입 주위에 식빵 가루를 남기곤 정국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굶어야 하는 위기를 느낀 것인지 다시금 흔들리는 동공. 사실 내가 빡쳐서 몸이 떨리는 건지 저 새끼가 떠는 건지는 잘 판단이 안 되지마는. 정국의 표정이 울상이 된다. 나는 식빵을 식탁에 내던지며 갑질 행세의 고함을 질렀다.
그냥 굶어,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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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우측이 좋겠구나."
"이 쪽 말입니까."
오늘이 크리스마스이자, 방학 시작 첫날이었기에 교복은 안 빌려왔다. 이런 넓은 배려심으로 추운 밖으로 뛰쳐나갔다 온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다시 한숨만 나왔다. 잘 주무시고 계신 졸업생 선배님까지 깨워가매 여분의 사복을 받아 왔건만, 잠시 자리를 비운 새에 집 안엔 괴한이 한 명 더 늘어 있었다. 내 모자를 가지고 잘만 놀고도 계시는 두 명의 상투를 양손으로 쥐어 잡고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패대기 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참았다. 그래도 나는 여자가 아닌가. 상대는 남자 두 명이고. 쟤네가 아무리 멍청해도 내가 덤벼들면 가드 올릴 게 뻔한데, 그럼 휘둘리는 쪽은 저기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었다.
하루 사이에 내가 한 십 년은 늙은 듯 했다. 이러다 보살 되겠어. 오늘이 크리스마스고 나발이고 정말 곧 골로 갈 듯했다. 물론 내가 사서 고생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마는, 애초에 얘가 우리 집에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이 정신 없는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지진 않았을 거다. 잘생겨서 봐주는 거다, 진짜로.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꺄르르 웃어대며 패션쇼를 펼치고 계시는 두 분.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잘생긴 남정네들 나온 개꿈으로 치부하면 끝이니까.
"야, 전정국."
"무엄하다."
이 새끼가. 어쭈 노려보네.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건데, 요. 그래도 왕이라 그런지 습득력 하나는 빠르다. 물론 나를 어떻게 컨트롤 해야 하는지 깨달은 듯해서 문제이지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절대 지지 않을 거야. 이 현대 사회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거니까. 하면서 나는 금방 시선을 돌렸다. 이건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고 내가 아직 남정네랑 눈을 마주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암, 그렇고말고.
아 자존심 상한다, 자존심 상해. 혼자 속으로 꿍얼거리고 있는데, 정국과 함께 놀던 괴한 한 명이 내 쪽으로 걸어와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인사를 하는데, 그 와중에 남자의 머리에 얹어져있던 내 모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이런 덤앤 더머들을 진짜……. 어정쩡한 상태로 인사를 하는 나를 보며 정국은 뒤에서 또 애처럼 웃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당황스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저 둘이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기분.
내가 누구냐는 뜻으로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거리는 정국. 내일이 없나 보다. 쟤는 왜 어제부터 저렇게 깝을 칠까. 딱 현대 남자 고등학생의 표본이었다. 더 이상 설명하면 그게 입이 아플 정도로 너무나도 딱 들어맞았다. 아무튼, 그 얄미운 모습에 내가 이번엔 정말 저 뺨다구를 날려버리겠다 하며 주먹을 꽉 쥐는데, 마침 타이밍 좋게도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충 보니까 정국보다는 키가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어른스럽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아, 예."
편하게 진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는데 뒤에서 정국이 그건 자신만 부를 수 있는 거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어차피 그렇게 부를 생각도 없었는데. 뜻밖의 게이득. 뭔가 정국과는 다르게 풍겨오는 듬직함에 나는 조금 누그러진 눈빛으로 석진을 쳐다보았다. 뒤쪽에서 정국이 자기만 빼놓고 얘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또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질문은 고사하고, 더 스캔도 하기 전에 우린 정국의 맞은 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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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받습니다 =)
편의점 썰 또한 가볍게 쓴 글이라 곧 끝마칠 예정입니다!
한분 한분 전부 답글을 못 달아드리는 점 정말 죄송합니다 8ㅅ8
개인별 예고편도 얼른 써내야하는데 (먼산)
참 할일이 많아진 것 같네요. 물론 사서 고생.
모바일에선 사진이 좌우로 늘어져가지고 읽기가 불편하던데 8ㅅ8.. 해결 방안 아시는 분 계시나요?
그리고 저는 글잡 잘 돌아다닙니다.
간혹가다 다른 작품에서 제 작품에서 신청하셨던 암호닉을 쓰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런 건 조금 신경 써 주셨으면 해요.
작가 입장에선 굉장히 속상하거든요.
암호닉이 겹쳤겠거니, 생각하려 했지만 말투까지 비슷해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
그 점은 이해해주시고, 조금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