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잠만 잔 것 같다. 눈을 뜨자 벌써 도착한 익숙한 풍경에 어,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내자 옆에서 바비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어? 하고 묻는 바비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바비가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다.
" 언제 도착했어요? "
" 조금 전에. "
" 그럼 깨우지…. "
" 자는 모습이 예뻐서 구경 좀 하느라. "
부끄러운 기분에 양 볼을 괜히 손바닥으로 감싸곤 바비의 눈을 피하는데, 언제 덮어둔 건지 무릎 위에 올려진 담요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가요, 하는 내 말에 바비가 먼저 내린 뒤에 내 쪽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무릎 위의 담요를 조심스럽게 다시 의자 위에 올려두곤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볼과 목을 간지럽혔다.
" 먼저 들어가십시오. "
바비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슬그머니 바비의 손으로 내 손을 뻗었다. 같이 가요. 그 손을 꽉 잡자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렸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향기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 집이다. 아무리 여행이 좋다곤 하지만 그래도 집이 제일이었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 바비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손을 잡은 채로 엉거주춤 신발을 벗던 바비가 손 좀,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안 놓을래, 하는 내 말에 바비가 어이가 없단 듯 웃으며 겨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손은 여전히 꼭 잡은 채였다.
" 손 잡고 있는게 그렇게 좋습니까. "
" 좋아요. 전에 말했잖아요, 나 손 잡는 거 좋아한다고. "
내 말에 바비가 웃으며 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멈칫, 잠깐 움직임을 멈춘 바비가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왜요…? 바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나도 순간 숨을 참았다.
" 이제 들어오는구나. "
신문을 반쯤 펼친 채로 신문이 아닌 나와 바비를 바라보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멍하니 아빠만 바라보고 있는데, 날 바라보던 아빠의 시선이 바비와 잡은 내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 …아빠? "
" 응. "
" 회사 안 갔어요? "
" 조금 있다 갈 거다. "
보던 신문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은 아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이번에는 아빠의 시선이 바비에게로 닿았다. 바비는 나와 잡은 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아빠의 시선을 가만히 받고만 있었다.
조금은 굳은 듯한 아빠의 표정이 낯설어서 입술을 살짝 깨물자 아빠가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좀 앉지.
아빠의 말에 바비가 먼저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을 따라서 거실로 간 뒤 조심스럽게 몸을 앉히자 바비도 내 옆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앉혔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먼저 입을 뗐다.
" 그러니까 말예요, 아빠…. "
" 지금까지 둘이 같이 있었나? "
" 그렇긴 한…. "
" …네. "
대답 하려는 나를 막고 바비가 네, 하고 작게 대답했다. 바비의 대답에 아빠는 내가 아닌 바비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바닥에만 시선을 고정한 바비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지 싶어서 말을 하려던 내 팔을 바비가 다시 한 번 살짝 잡았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꼭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꾸만 입밖으로 변명 아닌 변명들이 나올 것만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 …둘이 사귀나? "
" ……. "
" 내가 생각하는 그런게 맞냐고 물었네. "
" 네. 맞습니다. "
바비의 대답에 아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힐끔, 올려다본 아빠는 무슨 표정인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잠깐 눈이 마주친 아빠는 바비가 아닌 내게 물어왔다.
" 얼마나 됐지? "
" …얼마 안 됐어요. "
내 대답을 들은 아빠의 표정이 참 묘했다. 웅얼거리듯 입을 움직였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는데 내 팔을 잡은 바비가 조금 더 꽉 내 팔을 잡아왔다. 잔뜩 굳은 바비의 표정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바비가 내 팔을 잡고 있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아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생각 외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나와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침묵의 의미가 무엇일까, 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만 자꾸 둥둥 떠다녔다.
그래…. 알았다. 그 한 마디와 함께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바비와 나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회사 가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내 물음에 아빠가 평소와 다름 없이 다정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올게. 그 웃음에 그제야 내 표정도 조금은 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잘 다녀오세요. "
내 인사를 받곤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향하는 아빠의 옆으로 K가 와서 섰다. 나와 바비를 힐끔 바라본 K는 내게 작게 고개를 숙인 뒤 아빠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와서 작게 숨을 뱉곤 바비를 힐끔, 바라보자 바비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현관을 향해 몇 걸음을 옮기던 아빠가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살짝 몸을 틀어 바비를 바라보았다.
" --이도 알고 있나? "
갑작스러운 아빠의 물음에 아빠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바비가 잠깐 아빠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직 모릅니다. 그 대답에 아빠는 생각에 잠긴 듯 바비를 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도 알고 있냐고…? 내가 뭘 몰라…?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채로 아빠와 바비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둘 다 나에겐 시선조차 주질 않는다.
그래, 그렇군. 고개를 살짝 끄덕인 아빠는 입을 꾹 다물곤 다시 몸을 틀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바비는 그런 아빠의 뒷모습에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 무슨 말이에요…? "
아빠가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한 뒤에 바비를 바라보며 묻자, 바비가 그제서야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바비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무슨 얘긴데요, 하고 더 물으려다가 바비의 표정을 확인하곤 목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애써 삼켰다. 조금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바비는 애써 나를 보며 웃어보였다. 그런 바비의 모습이 왠지 평소보다 더 작아보여서 조심스럽게 바비의 손을 향해 내 손을 뻗자 바비가 내 손을 잡아왔다.
" 미안해요. 아빠 때문에…. "
" 아가씨가 뭐가 미안해. "
" 그냥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우리 잘못한 건 없는데 꼭 죄 진 것 같이 그래. "
내 말에 바비가 잡지 않은 손으로 내 머리를 살짝 쓸어 넘겼다. 살짝 웃는 바비의 얼굴이 약간은 굳어져 있었다.
" 내가 미안해. "
" 뭐가요…? "
대답 대신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던 바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경호원이 아니었으면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그런 바비의 모습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바라만 보았다. 속상한 기분이었다. 늘 그렇게 듬직하고 커보이기만 하던 바비가 지금은 작아보였다. 기죽은 듯한 모습으로 웃는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조금 더 꼬옥 잡았다.
* * *
" 한 번만요, 응? "
내 말에도 바비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단호한 그 말투, 그 표정은 어제 보았던 힘 없는 바비의 모습이 아닌 평소의 바비 모습 그대로였다.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앉혀선 내게는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로 책상 위의 서류들에만 시선을 고정한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남자도 없어요. 다 여자 애들 뿐이야. "
" 그래서 안 된다고 한게 아닌거 아시잖습니까. "
" 술도 많이 안 마실게요. "
" ……. "
" 진짜 생일 축하만 해주고 올게요, 네? "
생일 파티 한 번 가는 것도 이렇게 허락을 받고 가야하나 싶었지만, 바비가 날 걱정해서 안 된다고 하는 거라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번 클럽과 다를바 없는 장소에 분명 바비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얘들은 왜 자꾸 그런데서 파티를 하냔 말야….
내 말에 짧게 한숨을 쉰 바비가 그제야 내게로 시선을 돌려왔다. 어, 나 봤다. 배시시 웃으며 바비와 눈을 맞추자 바비가 참 나, 하는 말과 함께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안 돼. 여전히 고개를 저은 그는 앉은 몸을 일으켜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졸졸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그에게 칭얼거렸다. 일찍 들어올게요. 진짜야. 축하만 해주고 온다니까요. 나 왕따 만들 거에요?
내 말은 못 들은 척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탁자 위의 잔에 한 잔 따른 바비가 물을 몇 모금 꼴깍이곤 나를 바라보았다. 눈꼬리를 축 내린채로 바비를 바라보니 바비가 손으로 내 눈 위를 덮었다.
" 그렇게 보지 마. "
" 아, 오빠아…. "
내 오빠 소리에 내게 닿아있던 바비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린 바비가 눈에 올려두었던 손을 뗐다. 나와 시선이 닿고, 다시 한 번 오빠, 네? 하고 물어오는 내 질문에 바비가 이번엔 내 입술을 꾹 잡았다. 딱딱하기만 했던 바비의 표정은 조금 풀어져 있었다.
" 진짜 필요할 때만 오빠 소리 하네. "
입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비에게 으으, 하며 놓아달란 의미로 칭얼거리는 소리를 뱉었더니 그제야 바비가 웃으며 내 입술을 잡은 손을 놓았다.
" 그럼 11시 전에 들어오실 겁니까. "
" 11시요? "
" 예. "
" 11시는 너무했다, 진짜. "
" 싫으면 관두십시오. "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한 바비가 다시 책상 앞으로 가기 위해 내게서 몸을 돌렸고, 그런 그의 팔을 재빨리 잡았다. 다급한 내 행동에 바비가 피식 웃곤 다시 내게로 몸을 돌려 섰다. 입술을 삐죽이며 퉁해진 목소리로 11시까지 들어올게요, 하는 내 대답에 바비가 피실피실 웃었다.
" 데리러 갈게. "
" …알았어요. "
" 제 전화 꼭 받으십시오. "
그의 말에, 볼에 바람을 불어넣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마시던 물잔을 내려놓으며 내 머리를 한 번 흐트러트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반가운 인사가 절로 나왔다. 다들 웃으며 인사를 마치고 간단한 생일 파티까지 끝낸 뒤, 늘 그렇듯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옷 이야기, 학교 이야기 등으로 한참을 재잘거리던 중에 갑작스럽게 친구 한 명이 내게 물어왔다. 맞다, 너 연애한다며?
" 에? 누가 그래? "
" 김동혁이 그러던데. 너 연애 한다고. "
친구의 말에 몰랐던 몇 명의 친구들이 진짜? 하고 되물어왔다. 아, 김동혁은 진짜…. 왜 그런 얘기를 해선! 자리에 없는 김동혁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되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갑작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는 내 연애 얘기로 바뀌었다. 누구야, 뭐야, 왜 말 안 했어?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내게 밀려오자 순간 당황스러운 기분에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잠깐만, 하나씩 물어.
" 얼마나 됐어? "
" 어, 한 달…? "
" 연상이야? 어떻게 만났는데? "
" 연상이야. 그냥, 어….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망설이는데 쏟아지듯 물어오는 질문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잠깐만! 하며 당황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애들이 질문을 멈추곤 킥킥대며 웃었다.
" 치사해, 너 왜 우리한텐 한 마디도 안 하고 김동혁한테만 말했어? "
" 어쩌다보니 그런 거야. "
" 사진은 없어? "
옆에 앉은 친구가 물어오는 질문에 잠깐 몸을 멈칫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보니까 사진도 없네…. 내 말에 친구가 뭐야, 하고 말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이름은?
어….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하던 중에 때 맞춰 주문했던 안주가 나오고, 그렇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흐지부지되었다.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바비 이름…. 그렇다고 '바비'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좋던 기분이 살짝 울적해졌다. 언제쯤 바비는 내게 이름을 알려줄까.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바비에게 약속했지만 괜히 울적한 마음에 앞에 놓여진, 술이 반쯤 담겨진 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몇 모금 꼴깍였다. 쓰기만한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절로 인상이 써졌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으며 금방 만들어져 나온 안주를 입에 하나 넣었다.
여자들의 수다가 늘 그렇듯 이야기의 주제는 금방 또 바뀌었다. 잠깐 잠잠해진 내 연애 이야기에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비에 대해 친구들이 묻는대도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것들은 얼마 없었다. 바다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모르는게 더 많구나. 입술을 삐죽이며 조금 남아있던 잔의 술을 다시 한 번 쭉 꼴깍였다.
울리는 휴대폰의 소리에 덮어두었던 화면을 바라보자 바비의 번호가 반짝였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자 바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열한시 입니다.
" 벌써요? 그렇네…. 알았어요. 금방 나갈게요. "
- 앞에 있겠습니다.
바비와 짧은 통화를 마치고 끊으려는데 갑작스럽게 옆에 있던 친구들이 내 휴대폰을 가져갔다. 뭐 해! 하는 내 말에도 뭐가 그렇게 웃긴지 친구 한 명이 휴대폰 마이크 부분을 살짝 막곤 입모양으로 내게 물었다. 남자 친구? 하는 물음에 줘어, 하고 칭얼대는데 내 말에도 친구들은 저마다 휴대폰으로 한 마디씩 하기 바쁘다.
안녕하세요! 전 --이 친구에요! 근처에 계신 거면 잠깐 들렀다 가세요, --이가 저희한텐 남자 친구 얘기 안 했거든요!
뭐라고 자꾸만 말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겨우 휴대폰을 뺏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다시 받자 아직 전화가 끊기지 않은 건지 피식 웃는 바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친구 분들이 아가씨랑 닮으셨습니다.
" 미안해요. 시끄러웠죠? 아, 얘들이 내 휴대폰을 막 들고가선…. "
- 괜찮습니다.
"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나갈게. "
- 아닙니다.
" …네? "
- 거기 계세요.
마지막 말과 함께 갑자기 끊긴 전화에 멍하니 친구들만 바라보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아, 너네 왜 그랬어! 내 말에 마냥 내 반응이 귀엽다는 듯 애들이 웃으며 날 놀렸다. 남자 친구 목소리 좋더라. 그 말에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조금씩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바비는 왜 나오지 말라고 한 거지…. 챙겨두었던 코트를 무릎 위에 가만히 올리곤 끊긴 휴대폰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오늘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친구가 잔을 들었다. 한 잔 해, 한 잔! 다들 취기가 약간은 오른 건지 한층 더 시끄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모두 다 잔을 들었다. 앞에 놓여진 내 빈 잔에도 술이 채워지고, 채워진 잔을 들어 친구들의 잔과 부딫혔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을 입에 가져다 대려는데, 갑작스럽게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잔을 비우다 말고 내 옆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 …왜…? "
그 곳은 왜 바라보나 싶어서 나도 고개를 돌리는데, 언제 온 건지 내 옆에 선 바비가 웃으며 내 술잔을 잡아 테이블 위로 놓았다.
" 술 안 마신다며. "
" 바… 아, 아니, 오빠? "
당황한 내가 바비를 올려다보자 바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모두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닿아있다는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바비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잡자 바비가 내 손을 꽉 쥐어왔다. 그리고는 웃으며 날 바라보는 그 눈빛 그대로 내 친구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안녕하세요. "
" ……. "
" --이 남자 친구입니다. "
갑자기 등장한 바비에 다들 놀란 건지 안녕하세요, 하는 짧은 인사를 뱉으며 우리 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 또한 멍한 표정으로 바비를 바라보자 내게로 시선을 돌린 바비가 내 볼을 살짝 툭 쳤다.
"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
" 어, 그러니까, 좀 놀라서…. "
" 가자. 시간 늦었어. "
바비의 말에 여전히 조금은 멍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비가 내 코트를 들었다. 내 어깨 위로 코트를 덮어준 바비가 내 어깨에 팔을 걸곤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 실례 좀 하겠습니다. "
" ……. "
" --이 먼저 좀 데려갈게요. 12시까지 집에 데려다 줘야 해서요. "
씨익 웃는 바비의 모습에 친구들이 괜찮아요, 하는 말과 함께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바비가 살짝 고개를 숙여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 뒤 내게 속삭였다. 가자. 먼저 걷는 바비의 걸음에 맞춰 걸음을 옮기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제대로 입지 않은 코트 때문에 추워서 몸을 작게 떨자 바비가 내게 코트를 제대로 입혀주곤 내 코트의 앞을 여며주었다.
" 뭘 그렇게 멍하게 있습니까. "
" …네? "
" 조금 더 놀고 싶으신데 이렇게 제가 와서 아쉬우십니까. "
피식 웃는 그를 바라보다 그의 소매를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그런 거 아니야. 바비를 향해 고개를 몇 번 젓곤 그와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애들이 오라고 해서 온 거에요? 내 말에 바비가 피식 웃었다.
" 네. 친구 분들이 보고 싶다고 하시길래 갔습니다. "
다정하게 날 바라보는 바비의 시선이 좋아서 배시시 웃는데, 물끄러미 바비를 보고 있으니 조금 전 바비에 대해 친구들이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사진은 없어? 이름은?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 그 목소리에 바비만 바라보고 있으니 바비가 날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하는 질문에 바비의 양쪽 소매를 잡은 채로 바비와 마주보고 섰다.
" 애들이 바비 이름 물었는데 대답 못 했어요. "
" ……. "
" 사진 보여달라고도 했는데, 사진도 없어…. "
" ……. "
" 그냥. 그래서요. "
" ……. "
" 아무 말도 못 한게 속상해요. "
칭얼대듯 말하는 내 말에 바비가 잠깐 아무런 표정 없이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뭐가 웃긴 건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내 팔을 당겨 나를 자기 품에 안았다.
익숙한 향기에 그 품에 안겨 얼굴을 부비자 바비가 피식 웃으며 내 등을 토닥여왔다. 자꾸만 웃는 바비에게 왜 웃어요, 하고 중얼거리는데도 바비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걸어가자는 내 말에 바비는 내 옆에 서서 걸음을 옮겼다. 집 근처 공원에 도착해 잠깐 쉬어가자는 의미로 벤치에 앉자 바비가 내 앞에 마주보고 섰다.
벌써 몇 번째, 횟수로 세어보자면 5번은 훌쩍 넘을 횟수였다. 바비를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신발 끝으로 애꿎은 바닥만 툭툭 치며 웅얼거렸다.
" 오늘도 바비 이름은 안 알려줄 거죠? "
대체 언제 알려줄 거에요. 이름 한 번 알려주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구…. K도 그렇고 그쪽 사람들 규칙 중에 개인 정보 공개가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딱히 바비의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기에 혼자 칭얼대듯 말을 이어가는데 내 맞은편에 서있던 바비가 몸을 낮췄다.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바비는 나보다 눈높이가 낮은 곳에서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다정하게 맞춰오는 바비의 시선에 입술을 웅얼거리자 바비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 정말 모르겠어? "
" …뭘요? "
" 내 이름. "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개를 저으며 투덜대듯 나온 내 대답에 바비가 웃었다. 그리고는 내 볼을 향해 손을 뻗어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 기다릴게, 이것도. "
" ……. "
" 아가씨가 기억해낼 수 있을 때까지. "
자꾸만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바비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자 바비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내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내가 기억해 내요…? 일어선 바비를 올려다보며 되묻는 내 물음에 바비가 웃으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내 볼을 잡은 바비가 다정한 손길로 내 볼을 살살 쓰다듬다가 그대로 몸을 숙였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술에 짧게 닿았다 떨어진 바비가 피식 웃으며 다시 몸을 세웠다.
"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될려나, 우리 아가씨. "
" ……. "
" 갈까? 이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바비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닿아온 바비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니 차가운 바깥과는 다르게 바비의 온기가 닿았던 자리는 따뜻했다. 뭐라고 더 물으려다 입을 꾹 닫곤, 그렇게 머리 속에는 알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 채운 채로, 바비의 걸음에 맞춰 집으로 향했다.
안녕 여러분! uriel 입니다
14화를 늦게 들고와서 죄송해요..(시무룩) 죄송함의 의미로 14화를 올리는 대로 15화를 쓸 예정이에요
이렇게 좀 괜찮을 때 왕창 써둬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ㅎ_ㅎ
어, 변명 아닌 변명을 좀 하자면 오늘 글이 늦은 건, 그리고 앞으로의 글이 조금 늦는 건 아마 제 눈과 노트북 때문일 거 같아요
멀쩡하던 노트북이 방학 되고 이리저리 많이 치여서 그런지 제 기능을 잘 못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글에도, 늘 글을 마무리지을 때 썼던 하트 모양도 못 넣구 ㅠ_ㅠ.. 뭔가 늘 하던 걸 안 하니까 찝찝한 기분
게다가 원래 좀 안 좋던 눈이 더 안 좋아져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가 어려워요 ㅠ_ㅠ.. (시무룩)
오늘은 좀 괜찮긴 한데 안 보일 땐 아예 안 보여서 큰일! 병원은 다녀왔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이런 저런 이유들 덕분에 메일링도 이렇게 미뤄지게 되었네요
개한빈 메일링에 관한 글은 모두 보셨나요? ㅎ_ㅎ 10일 기준으로 제 댓글 위까지 메일 주소 남겨주신 분들께는 모두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나머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은 추후에 메일을 다시 보내드리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할게요
혹시나 제 댓글 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중에서 메일을 받지 못하신 분들은 메일주소나 메일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셨으면 해요
발송 실패라고 되돌아오는 메일이 몇 개가 있더라구요 ㅠ_ㅠ
어.. 그럼 전 얼른 15화 쓰러 갈게요!
예전에 아가씨 6화 들고오기 전에, 제가 5화 올리면서 곧 들고올 6화가 기대되고 두근두근 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세요?
오늘도 그래요
15화 두근두근!!!!! 드디어 이걸 쓰다니!!! 하는 기분 ㅎㅅㅎ
얼른 올게요, 사랑해요 (하트가 없으니 말로 대신할게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