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PANDORA)
넌 깜깜한 밤 같았어. 나는 그 위로 떠오르는 별이 되고 싶었어.
눈을 뜨니 오후 세시였다.
아무리 주말이라도, 이렇게까지 늦잠을 잔 적은 없었는데.
몸을 일으키자 세상이 덜컹, 하고 흔들린다.
생각해보니 어제 종일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그래서인가. 유난히 시야가 흐려보이는건.
움직이는 걸 포기하고 다시 침대로 들어와 누웠다.
간혹 오늘처럼 몸이 무겁거나 아플 때가 있었지만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병원은 살고 싶은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니까.
몸이 아픈 건 언제나 견딜만한 정도의 고통이었다.
나에게는 삶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으니까.
여섯 시, 일곱 시.
나는 해가 저물도록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온 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지만 움직일 기운도, 의지도 없었다.
순간 나를 안아주던 너의 생각이 났다.
난 빛나는 너의 배경이 되어줄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지원이를 떠올리자 가슴에 열이 났다. 나는 냉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 안에 있어? 잠시만 나와봐 "
이 시간에 나를 찾을 사람이라면, 김지원이다.
안에 있어. 근데 대답할 기운도 없어.
몇 번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멀어지는 네 발자국 소리에 서운해지면 안되는데, 내 마음은 자꾸만 냉정을 잃으려는 것 같다.
" 미안한데, 무단 침입 좀 할게. "
간 줄로 알았는데 바로 옆에서 지원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열려 있던 내 방의 창문을 마저 열어젖히고는 사뿐하게 뛰어넘는 너의 모습이 흐릿하다.
" 뭐하고 있나 해서 찾아와봤는데 인기척이 안들려서. 네가 어딜 나갔을리도 없고. 혹시나 해서 정원을 한바퀴 돌았는데, "
" ... "
" 내 말엔 대답도 안하고 누워있는 게 서운할 뻔 했는데. "
말을 다 맺지도 않고 너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 거기 119죠? "
다급한 네 목소리가 흩어지더니 내 세상이 캄캄해졌다.
눈을 떴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춥고, 어두운 방 안에 나는 홀로 갇혀있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늘 어두운 공간 속에 갇혀있었지만, 오늘은 이 느낌이 낯설다.
나, 죽은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너의 모습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삶과 죽음은 차이가 없었다. 어두웠고, 추웠고, 외로웠다.
그렇게 저주했던 삶이었다.
그토록 고대했던 죽음이었다.
그런데 왠지 나는 후련하지가 않았다.
이제와서 왜, 뭐가 미련이 남아서 나는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니, 삶과 죽음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곳에는 별이 없다. 나를 위해 빛나주던 네가 없었다.
끝까지 삶은 나에게 너무 잔인했다.
이럴거면, 이럴거면 그 앨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텐데.
나도 빛나고 싶다는 바람같은거,
너를 보며 가지는 희망같은거, 몰랐다면,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희망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기적이겠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은 또다른 고통일 뿐이다.
나는 그곳에 앉아 소리도 나지 않는 울음을 뱉아내었다.
....살고 싶어요. 그 애가 보고싶어요.
내 눈에 마지막으로 담겼던 너의 얼굴이 못내 아쉬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앉아서, 살고 싶다는 힘없는 아우성만 질러댈 뿐이었다.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병원 냄새.
피부에 닿아오는 공기가 낯설게 느껴져 숨을 몰아쉬었다.
" 괜찮아? 정신이 들어? "
다급하게 내 쪽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지원이의 모습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이 얼굴을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몰라.
나는 네 얼굴만 마주했을 뿐인데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꼬박 하루 내내 정신을 못차렸어, 너. 열이 펄펄 끓는데,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잖아. 병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데. "
" 미안.. "
" ..뭐가 미안해.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다. 힘들었지.. 열 내릴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 "
지원이는 내 한쪽 손을 꼭 잡고 내 손에 자기의 얼굴을 댔다.
손등에 닿아오는 지원이의 숨결이 느껴졌다.
" ..지원아..나.. "
" 쉿. 말하지 마. 말하지 말고 더 자. "
" ...살고 싶었어. "
내 말에, 나를 잡은 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 세상이 어두운데...내가 죽은건가 싶어서 무서웠어. "
" ...그럴리가 없잖아 바보야.. "
" 몇 년을.. 내 삶을 저주하면서 살았는데.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 .... "
" ...살고 싶어졌어, 나. "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가가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붉었다.
우리는 한참 침묵을 지켰다.
병원의 공기 사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떠다녔다.
지원이는 말없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리고 몸을 숙여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끝이 없이 깊은 검은 방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나처럼 불행한 아이는 만들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재앙이었어요.
엄마를 죽인 살인마였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말로는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았대요.
...그게 아빠를 더 괴롭게 만들었겠지요.
아빠가 스스로 등진 삶의 무게 때문에, 나는 죄인의 낙인을 지울 수 없었어요.
시멘트 위에서도 꽃은 피어나는데,
나는 비옥한 흙 위에 피어난 잡초 같았어요.
땅도, 물도, 공기도,
나를 위한 게 아니었어요.
잡초는 영원히 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만약, 만약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에게는 하나의 작은 별도 허락되지 않은 걸까요?
저도 살고싶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
안녕하세요 33312예요!
처음에 5편 정도의 중?장편?으로 생각했던 판도라가
정말 예상대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있네요!
정말정말 별일이 없는한은 다음화에 완결을 내려고 생각중이에요
사실 계절 시리즈를 끝내고 다음에 뭘 쓸지 고민했는데
악동 뮤지션의 작은별을 듣다가 가사에 감명받아서
이 스토리를 구상하게 된거였어요..☆★
진짜 즉흥적으로 글을 휘갈긴거라 중간중간 어려움이 많았어여 뭔가 갈수록 망글이 되어가는..!
잔잔하고 예쁜 노래를 가지고 이렇게 음울한 글을 썼습니다ㅠㅠㅠㅠ
매일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ㅠㅠㅠ다들 너무 고마운거 알죠
사랑합니다..알럽유..
암호닉
김지원 님
김밥빈 님
구닝 님
귤 님
오늘도 제 사랑을 듬뿍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