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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는 아버지가 미웠다. 어머니를 울리는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다. 한번씩 큰 소리가 날때마다 우는 동생들을 달랬다. 나는 동생들을 재운 뒤 흐느끼는 어머니에게로 가 작은 등을 안아드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버지처럼 아내를 울리는 사람이 되지않기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뒤 나는 야구선수가 되었다. 나의 큰 키와 잘생긴 외모. 그리고 실력은 나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주었다. 나는 많은 여자들에게 대쉬를 받았지만 신중하게 만나고 신중하게 사귀었다. 여자친구를 안 사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차갑게 대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고양이 같다고 좋아했으나, 곧 나를 떠났다. 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화려한 스타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외로웠다.

 나의 경기를 단 한번 보러 온 뒤 두번 다시 오지 않는 아버지. 아직까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유없이 불편한 어머니. 세상에는 오직 야구와 나,  혼자 인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욱하는 성격이 무서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극도로 예의바르게 대했다.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날 싫어할까봐 난 그렇게 예의바르게 대했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이것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 선배와 후배의 위계 관계가 선명한 이곳에서 나의 예의바름은 좋게 소문이 났다. 난 그럴수록 나를 감추고 살았다.

 

어렸을 적,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일까, 나의 이러한 면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가끔은 사람을 대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안 좋은 말을 장난식으로 내뱉을 때에, 난 겉으로는 웃엇지만 속으로는 상처받았다.

나는 야구에 매달렸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무수한 연습들은 나의 실력에 도움이 되었지만, 무리한 연습량은 나에게 부상을 안겨주었다. 감독님은 나에게 무조건 쉬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쉬면서도 나의 연습은 계속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말 평범한 날. 널 만나지 않았다면...평범한 날...

 

난 어느날 재활훈련과 연습을 마치고 밤 늦게 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고적한 밤거리에는 어느새 벚꽃이 무수하게 피어있었다. 차가운 나조차도 까만 밤의 풍경에서 아스라한 가로등의 노란 불빛에 비치는 꽃잎들에 넋을 놓았다. 그리고...난 그 사이로 걸어가는 너에게...한눈에 반했다.

 

정말 우연히도 넌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너의 출근시간을 체크하고 따라나갔고, 마주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주쳤다. 그래서 난...

너에게 다가갔다. 이전의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뜨거운 모습으로.

넌 한국사람이었고,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교부 직원이었다. 너는 나의 대쉬에 굉장히 당황해했다. 그리고 불편해했다. 당시 한 일 관계는 얼어붙고 있었고, 대사관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나의 다가옴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의 교통사고 이후 우리는 맺어졌다. 한국 대사관을 에워싸고 있는 혐한 시위대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한 너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불렀다. 나는 너의 전화에 모든 것을 놔두고 달려갔다. 나는 내가 다친 것처럼 아프고 슬펐다. 나는 진심을 다해 너를 간호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주었다.

나의 마음을 본 너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난 너를 놓아줘야했다. 너를 위해서.

 

나는 너와 불같이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아주 간소하게 결혼한 나와 너는 일본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다. 나는 모든 애정을 너에게 쏟아냈다. 그리고 너에게 애정을 갈구했다. 어느 심리상담가가 나를 애정결핍이라고 칭했던것처럼. 네가 아무리 애정을 쏟아부어도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메이저리그에 연락을 받았다. 역대 메이저리그에 간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금액이 제시되었고, 2부리그가 아닌 바로 1부리그 진입이었으며, 팀 역시 미국 내에서 상위권 다툼을 하는 아주 좋은 팀이었다.

나는 너에게 의논했다. 난 기회를 잡고싶었다. 그리고 네가 나의 의견에 따라주길 원했다. 하지만...너는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 외무부 소속 직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었고, 그곳의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너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그곳의 직원이 된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 역시 강했다. 그래서 내가 너의 일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말했을 때, 너는 난색을 표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건데. 그 때는 그것이 너무나 서운했다. 나는 너의 애정을 미친듯이 갈구하고, 너와 한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데. 너는 아닌것 같아서...나는 너무나 서운했다.

 

너는 미 대사관으로 이전 신청을 하겠다고 했고, 나에게 먼저 미국으로 가라고했다. 하지만 우리 둘다 그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몰랐다. 나는 두려움 반, 설레는 마음 반을 품고 미국으로 향했다. 영어는 이전부터 공부했기 때문에 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됬던 것은 영어도,야구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성격과 미국인들의 성격이었다.

내가 가진 동양인으로서의 소통방식과 그들이 가진 서양인으로서의 소통 방식은 너무나 틀렸다. 나는 그 팀내의 실력파 선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지만, 소통 문제는 어떤 것 보다도 날 힘들게 했다.

난 또다시 외로워졌다. 그리고 차가워졌다. 난 네가 필요했지만 너는 내 곁에 없었다. 전화통화. 스카이프는 나에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는 크게 싸웠다.

 

"난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넌 아니야? 나 돈 많이 벌잖아. 내 벌이로 만족 못해서 일 그만 못두는거야?"

 

난 너의 자부심을 알면서도 심한 말을 했고, 너는 잠시 말을 하지 않은 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타쿠야. 지금 너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야. 이성 찾고 나중에 얘기하자.]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고, 너는 며칠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다. 나는 가끔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아버지처럼 술을 마시고 화를 낼까봐,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날 싫어할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내 마음이 외로울수록, 나는 연습했고, 내가 피폐해질수록 나의 성적은 다시 올라갔다.

그러던 중, 네가 왔다. 미 대사관은 지원자들이 많아 그 동안 시간이 걸리 수 밖에 없었다고 너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네가 온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 했었다.

난 애정결핍증상이 있었고, 너의 애정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쏠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미 대사관의 업무는 주일 대사관과의 업무와 많이 틀렸다. 그리고 업무량도 많이 차이가 났다. 너는 과중되는 업무량에 지쳐 들어오기 일수였고, 나 역시 계속되는 소통부재와 연습에 지쳐있었다. 나는 오직, 너밖에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너는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이 있었다.

너의 직장동료들은 한국인이었고, 너와 같은 업무를 했다. 너와 하루종일 같이 있었고, 너의 피곤함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나는 아니었다. 나는 오직 너 하나였다.

 

나는 너를 졸랐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나의 마음을 더 채워달라고. 나에게만 관심을 쏟아달라고. 나는 너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넌 내건데, 내 여자인데. 너의 직장이 나에게서 널 뺏어가는 것 같았다. 너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지만, 난 멈출수 없었다. 난 일부러 아픈척했고, 너에게 짜증냈다. 너는 내가 짜증을 낼때, 관심을 보여주었고, 힘들어했지만 날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었고. 나는 그럴수록 너를 괴롭혔다.

 

"다른 선수들은 아내가 몸에 좋은 것도 챙겨주고 직접 마사지도 해준다고하는데. 너는 뭐야! 날 위해서 해준게 뭐야!"

"타쿠야..."

"너 혹시, 바람피는거야? 너 요즘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내가 전화하면 받지도 않아! 집에 오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기 바쁘고! 왜, 나 하나로는 만족 못해? 그래서 너희 엄마처럼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는거야?!"

 

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의 사랑 때문에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녀를 홀로 키웠고, 그녀는 내가 아버지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녀는 그 날 이후 날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내가 아무리 고함쳐도 그녀는 차갑게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를 괴롭힐 때 나에게는 잠깐씩 관심이 왔고, 나는 너의 경멸이라도 받고 싶어 점점...

 

"타쿠야! 싫어! 저리가! 싫다고! 만지지마!"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나는 차가운 얼굴의 너를 낚아채 내 밑에 눕혔다. 내 키는 188이었고 너는 160을 겨우 넘기는 작고 마른 여자였다. 너는 힘으로 날 당해낼 수 없었다. 난 너의 옷을 뜻어내고 스타킹을 찢어버렸다. 명백한 부부간 강간이었다. 계속해서 몸부림치는 너를 나는 때려버렸다. 난 내 손바닥에 와닿는 엄청난 열기와 마찰감, 그리고 붉은 핏자국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너의 입가가 터져 나의 손에 피를 묻힌 것이다. 너의 뺨은 처절하리만치 붉어져있었고 놀란 눈은 나에게 고정되어있었다. 내가 멍해진 사이 너는 나를 밀치고 외투를 입은 채 집을 나섰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그 거울안에는 나의 아버지가 서있었다.

 

 

 

 

그 뒤로 난 너를 보지 못했다. 너의 동료들은 네가 한국으로 갔다고 했다. 난 너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었다. 그리고 빌고싶었다.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고.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나의 겉모습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야구선수였지만, 내 속은 썩어문드러져있었다.

 

어느날. 경기를 끝내고 집에 들어온 날 난 네가 미친듯이 보고싶었다.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었다.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고, 너의 집으로 찾아갔다. 긴 시간의 비행의 피곤함은 너를 만나는 기쁨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나는 너를 향해 달려가던 중. 너를 만났다. 나는 너를 보자 내가 인지할 새도 없이 숨었다. 차마 너에게 지은 죄가 있어서 쉽게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너의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한건지, 너는 아주아주...활짝...크게 웃었다.

 

마치 나와의 만남이 시작된 그날처럼.

 

 

 

나는 너를 보내줘야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보내주는게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너에게 이혼서류를 보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는 정리 할것이 없었다. 너는 나와의 결혼 관계를 가족 외에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었고, 결혼 이후 발생된 거주지 문제로 우리 둘의 혼인신고가 실수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혼 절차는 혼인 신고가 최종적으로 마무리 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엄청나게 간단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나와의 관계를 빨리 끊고 싶어했다. 우린 서류적 관계를 모두 정리했고, 너는 미국의 집에서 너의 흔적을 모두 가방에 담았다.

하나만..하나만 남겨주면 안돼? 나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등을 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네가 이 집에서 딱 첫 발자국 내딛었을 때, 난 크게 말했다.

 

"행복해..그리고...미안해..."

 

그녀는 대답없이 집을 나섰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난 너와의 이별 이후, 메이저리그의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있던 집으로 가자, 난 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찍은 너의 작은 사진 한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가슴 깊은 곳에 품고다녔다.

 

 

 

나는 어느 날 밤. 연습을 끝내고, 무의식 적으로 벚꽃 길을 걸었다. 가로등에 비친 꽃들을 보며 몇년만에 살짝 미소지었고,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며 소원을 빌었다.

 

널 마지막으로...널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환영이라도 좋으니. 보게해달라고. 난 부질없는 소원을 빌고 다시 걸었다. 그 때였다.

 

"타쿠야!"

 

나는 밤거리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거짓말처럼...마치 꿈처럼 네가 서있었다. 너는 나와 처음 만난 날 입었던 셔츠와 청바지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너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있었다.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나에게 지어주고 있었다.

 

"정아...정아!정아!"

 

나는 너에게 달려갔다.

 

나의 마지막 사랑. 내 영원한 주인인 너를 안기 위해. 나는 달려갔다. 그리고...난..

 

 

 

 

"뉴스속보입니다. 어제 밤 9시. 연습을 끝낸 뒤 귀가하던 인기 야구 선수 테라다 타쿠야 선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cctv 분석 결과, 테라다 선수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 들어 일어난 사고라고 발표했습니다."

 

 

 

 

 

타쿠야는 괴롭히고 아련해야 제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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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타쿠야ㅠㅠㅠㅠㅠㅠ
9년 전
느드
ㅠㅠ타쿠야 미안ㅠ
9년 전
독자2
저 지금shape of my heart 듣고 있었는데 글이랑 완전 잘어울려요ㅠㅜ 타쿠야 너믄 안쓰러워서 울뻔했어요ㅠㅜ 작가님은 어쩜 이렇게 항상 제 취향저격하는 글을 써주시는지ㅠㅜㅠㅠ
9년 전
느드
타쿠야는 제글에서 언제나 영고탘 이네요ㅎ 좋아해주셔서 고마워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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