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한 캠퍼스의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의 찬 기운과 함께 정신이 맑아지는 하루의 기분 좋은 시작.
그렇게 강의를 들으러 가는 도중의 짧은 기분 좋음은 강의실에 도착하자마자 깨져버렸다.
'도경수!'
강의실에 들어가려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노래를 듣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문 옆에 딱 붙어버렸다.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강의 시작 전까지 매점 가 있을까..'
호텔에서의 그 격정적인 밤 이 후에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쳐서 돌아보았다.
"야, 신제희. 내 연락 왜 안받아."
"헉! 세,세훈아."
"내가 그렇게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도 없고. 우리 제희 어디서 뭐하고 다니시길래 그렇게 바쁘신가?"
"야야, 쉬잇! 목소리 낮춰!"
"허얼? 넌 내 연락 그렇게 씹어놓고 나더러 조용히 하란 거야?"
"아 진짜! 조용히 좀!!"
"읍?!"
결국 나는 안되겠다 싶어 세훈이의 입을 막고 질질 끌어 강의실 주변에서 벗어났다.
강의실 안에서 도경수가 슬며시 미소 짓는 것도 못 본 채 말이다.
"푸하! 아 조그마한 게 힘은 겁나 세서!"
"흥, 조그마한 데 힘 센 걸로 치면.."
"뭐?"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연락 못 받아서 미안해."
"..? 뭐야 설마 그게 끝? 하! 내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 줄 알아?"
"그럼? 뭘 더 해? 연락은 못 받았지만 이렇게 네 눈 앞에 잘 살아 있음 됐잖아."
"아 진짜. 야, 신제희 너 걱정하느라 나 여기 주름 진 거 안 보여?"
세훈이는 매끈한 볼을 내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눈 씻고 찾아봐도 결점을 찾아볼 수 없는 피부에 손을 갖다 대어 살짝 꼬집었다.
"네, 안보입니다만? 어디요? 여기? 저기?"
"아!아! 아파! 됐고! 나중에 버블티나 사."
"어머, 지금 가난한 자취생을 상대로 삥 뜯는 거야? 그것도 집안 잘 사시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닌데? 나의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으려는 것 뿐이지. 이게 어떻게 삥이야?"
세훈이와 투닥거리는 사이, 누군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안녕! 제희랑 세훈이!"
"안녕하세요, 종대선배님."
귀여운 외모의 종대선배님은 입꼬리가 매력적인 남자였다. 최근에 파마를 하더니 외모가 더 어려 보였다.
"일찍 왔네? 아, 제희야. 지금 강의실로 가봐."
"네? 왜요? 교수님 오셨어요?"
"아니, 경수가 너 찾던데? 보면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했거든."
순간 종대선배님이 말한 이름에 소름이 쫙 끼쳤다.
도경수 이 능구렁이 바람둥이가 학교 안에서까지 일을 벌릴 셈인가?
"아, 네.. 알겠어요."
김종대가 가고 난 뒤 세훈이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네가 경수 선배랑 친했던가?"
"어? 아니, 절대로."
"그럼 왜 부르지? 공부 때문에 그러는 건가. 가보자."
"아 응. 후.."
공부 때문에 부르는 것 일리가 없...
"제희야. 여기 욕구단계이론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여기 앉아볼래?"
"아.. 범죄심리학이요?"
"응. 아직 교수님은 안 오셨고 궁금해서."
도경수는 후배와 함께 학구열을 불태우는 선배의 가면을 쓰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나에게는 그것이 설레면서도 긴장을 타게 만들었지만.
나는 그가 궁금한 것에 답하기 위해 그의 옆에 살짝 떨어져서 앉았다.
세훈이는 다른 친구를 만난다며 눈치 없이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가장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까지 이르려면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거쳐야 한다는 것이죠."
"흠, 그럼 너랑 나는 이제 1단계인 성적 욕구는 채웠으니
2단계인 안전욕구를 채우기 시작하면 되는 건가?"
..!!
그럼 그렇지.. 이 인간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리 깔며 조용히 속삭였다.
"선배라 불리기 싫어요? 사람들 앞에서 험한 말 듣고 싶나 봐요?"
"음, 높은 목소리도 어울렸는데 낮은 목소리도 매력 있네."
"적당히 하시죠. 선배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안 넘어가요."
"내가 무슨 노력을 해?
이상하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는데."
"..."
그에게 반박하고 싶었으나 문득 마주친 시선에 나는 피하지도 못하고 그의 눈빛 공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그를 좋아했던 거, 아니 좋아하는 거 맞다.
처음 봤을 땐 그저 연예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동경해서 감히 나 따위가 넘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사는 그런 연예인.
그런 그가 여자들을 갈아치운다는 소문을 들었을 땐 더 단념했다.
빛나는 별 옆에 금방 사라질 운석이 가당치 않는 것처럼.
정신차려. 신제희.
그의 눈빛에 넘어가면 안 돼.
하룻밤 같이 했다고 매달리는 그런 여자들 수준이랑 똑같고 싶어?
밀어내.
떨쳐내.
거부해!
흠. 어떻게 2화가 뚝딱하고 나왔네요.
처음 쓴 글인데도 잘 읽어주셔서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ㅎㅎ
다른 작가님들 작품을 보니 암호닉이란게 있던데..
그래서 암호닉을 받으려합니다!
제가 이 연재가 얼마가 갈지 잘 모르겠지만 틈틈히 글 쓸게요ㅠ
저는 오늘 한 연예가중계 복습하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