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러운 기분에 엘리베이터 안에 타며 입고 있던 옷을 조금 더 여몄다. 분명 그저께 까지만 해도 봄, 봄, 봄 같았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기 짝이 없었다. 환절기를 맞이하는 내 옷은 너무나도 얇았고 덕분에 감기 바이러스를 얻은 건지 온몸이 으슬거렸다. 목도 간지럽고, 기침도 조금씩 나고.
목적지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때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준회가 나를 발견하곤 반가운 표정을 지어왔다.
“이제 와?”
“응.”
고개를 끄덕이곤 신고 있던 구두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높은 건 아니었지만 나름 굽이 있었던 신발을 신어서 그런 건지 땅을 밟자마자 발에서 편안함이 몰려왔다. 노곤한 기분에 으, 하고 작게 신음을 흘리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준회가 어깨에 수건을 감곤 물었다.
“아파?”
“어?”
“이리 와봐.”
내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은 준회가 나를 거실로 이끌었다. 쇼파 위에 내 어깨를 눌러 나를 앉히곤, 저는 몸을 구부려 앉아 나와 눈을 맞춰온다.
“체온이 높아.”
“얼마나?”
“37.4야. 감기 걸린 거야? 기침은 안 했어?”
“조금? 딱히 안 한 거 같은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준회를 향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대답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는데 다시 내 어깨를 제 손으로 꾹 누른 준회가 내 어깨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내 이마를 향해 뻗었다. 이마 위에 올라오는 준회의 따뜻한 손길에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준회를 바라보자 준회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로 날 바라보는 표정은 참 미묘했다.
“감기일지도 몰라.”
“피곤한 거 말곤 다 괜찮은데.”
“옷은 왜 이렇게 얇게 입고 나간 거야. 오늘 추운데.”
“요 몇일 안 추웠잖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는걸.”
쏟아지는 잔소리에 피실 웃으며 다시 한 번 몸을 일으켰다. 나를 따라 몸을 일으킨 준회를 올려다보며 나 정말 괜찮아, 하고 말하자 준회가 어깨를 으쓱했다.
“표정 좀 풀어. 안 아프다니까.”
“걱정 되니까 그러지.”
조금은 풀어진 표정으로 답하는 준회를 보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씻고 올게. 내 말에 준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부엌에 선 준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축축한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곤 조심스럽게 식탁의 의자를 빼서 몸을 앉히자, 의자를 끄는 소리에 준회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뭐 해?”
“라떼.”
“고구마 라떼?”
“응.”
준회의 대답에 베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라떼 중에서도 고구마 라떼를 특히 좋아하는 내가 아플 때마다 준회는 별다른 말 대신 따뜻한 라떼를 만들어 주곤 했다. 다 만들어진 건지 하얀색 머그잔을 내 앞 식탁에 내려놓은 준회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새삼스럽게 궁금한 건데, 이런 걸 만드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내 물음에 준회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입력되어 있는 정보야.”
“백과사전이네, 우리 준회.”
“겨우 그런 거랑 비교해? 듣는 휴머노이드 섭섭하게.”
준회의 답에 피실 웃으며 앞에 놓인 잔을 양손으로 감싸 들었다.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으로 라떼의 달콤한 맛이 퍼졌다. 내 맞은 편에 앉은 준회가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곤 내가 라떼를 마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게 닿아오는 준회의 시선이 참 나긋했다.
다 마신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자 준회가 맞은 편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내곁으로 다가온 준회는 이마를 살짝 덮은 내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겨주었다.
“피곤해. 일찍 자야겠어.”
내 말에 준회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앉은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자 준회가 내 뒤를 졸졸 따라 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운 채로 준회를 올려다보자 준회가 이불을 내 목까지 덮어주었다.
“불 꺼줘?”
“응.”
“그래. 잘 자, 주인님.”
“너도.”
내 짧은 답에 작게 웃은 준회가 이어서 말했다.
“내 꿈도 꿔.”
준회의 말에 피실 웃음이 나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으휴, 진짜, 하고 중얼거리자 준회가 피식 웃곤 방의 불을 껐다.
방 안이 깜깜해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깐 서서 나를 바라보던 준회는 그대로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방 안에는 시계의 초침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스르륵, 잠에 빠지려던 그 때, 갑작스러운 이미지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쳤다. 조금 전 날 바라보던 걱정이 묻은 구준회의 눈빛.
그냥 작은 의문이 들었다. 준회는 나를 걱정한 것일까? 진심으로? 로봇이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걸까?
준회의 그 눈빛은 로봇에게 입력된 감정 중 하나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베개로 얼굴을 조금 더 파묻었다.
10
일어나자마자 온몸에 힘이 없었고, 어제부터 간질거리던 목은 따끔거려오기 시작했다. 저녁에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아둔 물을 한 모금 꼴깍 마시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몸을 일으켜 앉아 손에 든 잔을 옆으로 내려놓는데,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준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일어났어?”
“으응.”
내 대답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준회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내게로 손을 뻗은 준회의 손 위에는 하늘색 알약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이거.”
“뭐야?”
“감기약 같은 거야. 목 아프잖아, 아니야?”
다 안다는 듯 말해오는 준회의 목소리에 작게 웃으며 준회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
“내가 모르는 게 어디있어. 더군다나 주인님에 관한 거라면 뭐든.”
“말은.”
준회의 대답에 다시 한 번 피실 웃으며 준회가 내민 약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조금 전 내려놓았던 물잔을 다시 들어 입 안에 물을 머금은 뒤, 알약과 함께 그대로 꼴깍 삼켰다. 쓴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약이라서 괜히 쓰게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입을 몇 번 우물거렸다.
“병원은 안 갈 거야?”
“안 가도 괜찮아.”
짧게 대답을 하곤 옆에 올려져 있던 노트북을 내 무릎 위로 가져왔다. 내 행동에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준회가 살짝 인상을 썼다.
“뭐 해?”
“확인할 게 있어서.”
노트북 화면이 켜지고 가장 먼저 메신저에 들어갔다. 휴대폰을 어디 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 메신저를 켜자 회사 동기가 아침 일찍 보낸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아프다고 대신 말해놨어, 푹 쉬어. 고마운 마음에 베시시 웃곤 메신저를 종료하자 양팔로 팔짱을 낀 채로 날 내려다보던 준회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주인님.”
“왜.”
“주인님은 노트북이 그렇게 좋아?”
“노트북이 좋은 게 아니야.”
“그럼?”
“일이 많은 거지. 맡은 일이 있고 그걸 다 하기 전까진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니까.”
내 대답에 준회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거짓말.”
“에?”
“안 좋아하면서 종일 노트북만 붙잡고 있는단 말야?”
애 같이 왜 이러실까. 준회를 올려다보며 피실 웃곤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날 밤 편집을 하다 말았던 이미지를 다시 수정하기 위해 익숙한 단축키를 누르는데, 여전히 그 자세로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준회가 바로 근처에 놓여져 있던 의자 위에 몸을 앉히곤 침대와 조금 더 가까이 의자를 끌어왔다. 내게 더 다가온 준회가 다시 한 번 나를 불러왔다.
“주인님.”
“또 왜 불러.”
“궁금한 거 있어.”
“뭐?”
“주인님은 내가 좋아, 노트북이 좋아?”
뭐? 나도 모르게 짧게 되물으며 준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꽤나 진지한 얼굴로 물어오는 준회의 질문에 준회를 바라보던 나는 짧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참 나. 이런 어이없는 질문은 또 뭐야.
내 웃음에 준회가 대답을 독촉하듯 응? 하고 되물어왔다. 누가 더 좋아?
“기계가 기계를 질투해?”
되묻는 내 물음에 준회의 눈썹이 움찔했다. 다시 살짝 인상을 쓴 준회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나를 향해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기계라고 부르지 마.”
“…왜?”
“나는 기계가 아니야.”
준회의 말에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진지한 얼굴의 준회와 눈을 맞추곤 그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로봇이잖아.”
“휴머노이드야.”
“…….”
“그냥 기계도 아니고 그냥 로봇도 아냐.”
“…….”
준회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곤 준회를 바라만 보자, 준회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내가 로봇인 게 싫어.”
“…….”
“주인님.”
“응.”
“주인님 눈에도 나는 그냥 로봇으로밖에 안 보여?”
“…….”
“내 주인님 눈에도 나는 그냥 움직이는 고철덩어리일 뿐이야?”
뭐라고 말을 더 이어가려던 준회는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냥 고철, 그리고 그냥 로봇. 준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너는 내게 그냥 그런 휴머노이드일까. 네가? 준회가, 과연 내게 그냥 로봇인 것일까.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고민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준회는 앉은 몸을 일으켜 섰다.
“36.5도.”
“……어?”
“열은 다 내렸어.”
그 말과 함께 방을 나가려는 듯 몸을 돌린 준회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 말고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회야.”
“그래도 감기가 올 수도 있으니까 일은 그만 하고 쉬어.”
그 말과 함께 내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로 다시 고개를 돌린 준회는 방을 나갔다.
11
불편한 마음에 결국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 하고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입고 있던 티셔츠 위로 가디건을 걸치곤 닫힌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흘러내릴 듯한 가디건을 대충 손으로 올리곤 거실로 걸음을 향하는데, 당연히 거실에 앉아있을 줄로만 알았던 준회가 없다.
“준회야.”
내 부름에도 돌아오는 대답 없이 조용하기만 한 거실. 방에 있는 건가? 비어있는 거실을 지나쳐 준회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 들어간다. 짧은 말과 함께 준회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비어있는 침대. 그리고 불이 꺼진 책상. 준회는 방 안에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대로 다시 방문을 닫곤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준회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거실 안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 때,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찾고 있던 인영이 보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거실을 향해 걸어나오던 준회는 나를 발견하곤 물어왔다.
“주인님?”
“…….”
“왜 그러고 있어?”
준회의 모습을 확인하고 목소리까지 듣고나서야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냥, 하고 짧게 답을 하고 준회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으니 준회가 피실 웃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곤 흘러내린 가디건 때문에 드러난 내 어깨를 다시 가디건으로 덮어주었다.
“일은 다 했어?”
“대충은. 씻고 나온 거야?”
“응. 센터에 좀 가려고.”
“센터?”
“어제 토스트기 쓰다가 손가락을 좀.”
준회의 말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준회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펴진 손가락들과는 다르게 굽혀진 채로 펴지지 않는 준회의 새끼손가락에 시선이 머물렀다. 부서진 걸까. 걱정되는 마음에 아프진 않아? 하고 묻자 준회가 피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플 리가 없잖아.”
준회의 말에 아, 하는 바보 같은 소리와 함께 준회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로봇인 게 싫다던 준회에게 또 다시 로봇이라는 걸 상기시켜 준 것만 같아서 입을 꾹 다물자 준회가 내 걱정을 느낀 건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아파요, 주인님.”
준회의 반응이 귀여워서 그제서야 살짝 굳어있던 얼굴을 풀자 준회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같이 갈까?”
“어? 진짜?”
“응.”
“주인님 컨디션 안 좋잖아.”
“괜찮아.”
내 말에 준회가 조금 전보다 더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 같이 가줘, 주인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옷 입고 나올게. 기다려.
서비스 센터에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오랜만에 함께 차를 타고 나가는 거라 그런지 준회는 차를 타고 움직이는 내내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부드럽게 움직이던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비스 센터 앞에 도착했고, 먼저 차에서 내린 준회는 내가 앉은 운전석 문을 열어주었다.
“어째 좀 이상하다.”
“뭐가?”
“반만 공주님이 된 기분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가씨가 된 것처럼 네가 문을 열어주는 건 좋은데, 운전은 내가 했잖아. 아가씨 기분도 좀 느끼다가, 기사 기분도 좀 느끼다가. 여튼 좀 그래.”
내 말에 준회가 피실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자 그 곳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휴머노이드일지도 몰랐다. 겉으로 보기엔 휴머노이드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으니까.
준회의 이름이 불리고 치료실 안으로 들어간 준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몇 번 와본 적 없는 센터의 모습을 살피던 나는 치료실 문을 열고 나오는 준회를 발견하곤 작게 웃으며 앉은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응. 다시 멀쩡해졌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나를 향해 손을 보여주던 준회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 건드렸다.
“가자, 주인님.”
“뭐야 방금.”
내 말에도 못 들은 척, 나란히 걷던 준회는 내 어깨에 다시 팔을 자연스레 둘렀다. 말을 안 들어도 너무 안 듣지. 그런 준회의 손길이 신경쓰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좋았다. 알다가도 모를 감정이었다. 제 손을 밀어내지 않는 내가 신기했는지 준회가 웃으며 물었다.
“이젠 내가 이렇게 해도 아무렇지 않나봐.”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걸 뭐라고 그랬었지? 그….”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해 두었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떠오르지 않는 단어에 살짝 인상을 쓰곤 준회를 향해 묻자 준회가 짧게 답했다.
“청개구리?”
“것도 너랑 잘 어울리네.”
“이렇게 잘생긴 청개구리가 어디있어요.”
당연한 듯 한 구준회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던 내 시선이 누군가에게 닿았다. 길고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를 날리며 한 남자와 꼭 붙어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옆에서 검은 머리를 올린 채로 웃으며 걸어가는 남자. 우연히 닿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남자의 시선 또한 내게 닿았다. 찰나의 눈맞춤 이후 그 남자도 흠칫, 그리고 나도 그 남자도 그 자리에 둘 다 멈춰섰다.
“…….”
나와 연애를 할 때 만났던 여자가 저 여자일까. 아니면, 저 여자는 그 때 이후로 또 새로 만난 다른 여자일까. 인정하긴 싫었지만 나보다 이쁜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잠깐 훑어보던 그 남자는 내 옆의 준회를 힐끔 바라보곤 피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제 옆에서 팔장을 끼고 쫑알대는 여자와 다시 아무렇지 않게 가던 걸음을 옮겨 걸어갔다.
갑작스럽게 멈춘 내 걸음에 준회가 날 바라보고 물었다.
“왜 그래?”
“…….”
“주인님?”
준회의 부름에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 것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깨 위로 둘러진 준회의 손을 툭 쳤다. 가자, 하는 말과 함께 먼저 걸음을 떼자 준회가 늦지 않게 제 걸음을 따라 움직여왔다.
그렇게나 많이 좋아했던 남자였고, 그렇게나 나를 많이 울게 만들었던 남자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자 싱숭생숭해지는 느낌에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며 걷던 준회는 별안간 고개를 뒤로 돌려 조금 전 지나간, 점점 작아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꽤나 오랜 시간 그 남자를 지켜보던 준회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고개를 돌렸다.
12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 번 축 처진 기분은 다시 나아지지 않았다. 준회가 차려준 저녁을 먹은 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눕는데, 베개 아래에 파묻혀 있던 휴대폰에서 짧은 알람이 울려왔다. 화면을 확인하자 저장이 되어있진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익숙한 번호로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여전히 예쁘더라. 너는.」
달갑지 않은 문자에 인상을 팍 쓰곤 그대로 휴대폰 화면을 껐다. 그리곤 베개 위로 얼굴을 푹 파묻었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로 문자가 읽어졌고, 잊고 지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목소리가 참 좋았었는데. 여행을 갔던 것도 좋았고, 침대 위에서 둘이 함께 뒹굴었던 것도, 그냥 카페에서 마주보고 앉아 눈을 맞추고 있는 것조차도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애써 머리를 세차게 저어도 자꾸 떠오르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잠에 들기 위해 누운 것이었지만 결국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를 감싸오는 이 외로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누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텅빈 거실에는 혼자 켜진 TV소리만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다시 한 번 밀려들었다. 이 불안은 준회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면 생겨나는 불안인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준회의 방문으로 다가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었다. 준회는 침대에 가만히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준회야.”
내 부름에도 준회는 눈을 뜨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 더 커졌고, 다시 한 번 떨리는 목소리로 “준회야?”하고 부르며 준회를 향해 걸어갔다. 침대 가까이로 다가간 뒤 준회를 향해 손을 뻗어 준회의 볼을 가볍게 쓸었다. 다시 한 번 준회야, 하고 부르자 준회가 감은 눈을 천천히 뜨곤 날 바라보았다.
“아, 주인님.”
“구준회.”
“충전 중이었어,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준회의 말에 그제야 준회의 허리 쪽으로 끼워진 가느다란 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느낌이라고 표현하긴 좀 우습지만 느낌이 이상해. 처음 하는 충전이라 그런가봐.”
“…….”
“거의 방전 직전이었다고 했어. 서비스 센터에 다녀오길 잘한 거 같아.”
말하던 걸 잠깐 멈춘 준회는 나를 보고 살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나는 왜 불렀어, 내 주인님?”
준회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곤 저를 바라만 보고 있자 준회가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아니야. 대답 대신 고개를 젓는 내 행동에 앉은 몸을 일으킨 준회가 잠깐 날 바라보다 나를 제 품에 안아주었다. 평소처럼 밀어내지 않고 고개를 품에 푹 파묻는 내 행동에 준회가 작게 웃는 소리가 울려왔다.
“…더 해줘.”
“어?”
“더 세게 안아줘.”
“더 세게?”
“응.”
내 말에 준회가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으며 날 꽉 안아왔다. 갑갑하지 않고 포근한 느낌에 고개를 파묻곤 그 품에 얼굴을 부비자 준회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오늘 같이 자자, 주인님.”
“…응.”
“나 충전해야 하는데. 여기서 같이 자면 안 돼, 주인님?”
“그래.”
그러자. 내 말에 준회가 나를 품에 안고 있는 채로 침대에 몸을 던져 쓰러지듯 누웠다. 안고 있던 팔을 풀어 흘러내린 이불을 내 위로 덮어준 준회는 내게 가까이 붙은 채로 내 등을 다독였다.
“일찍 잘 거라더니 결국 일찍 못 잤나봐, 주인님.”
“잠이 안 왔어.”
“왜?”
“생각이 많아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이런 저런 생각.”
내 말에 준회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은 생각이 너무 많아. 그 말에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 자신을 알 수가 없었다. 미치게 외로웠고, 그래서 준회를 찾았고, 준회를 보지 못 했을 때의 그 불안함은 무엇이었으며,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그 나쁜 자식의 문자, 그리고 준회의 품에 안겨있는 지금의 내 기분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고 있는 내 심장 박동은 불안함, 그리움, 외로움, 그런 감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게 아니면, 혹시나 지금 내가 준회의 품에 있는 것 때문일까.
문득 드는 궁금함에 정적을 깨곤 작은 목소리로 준회를 불렀다.
“준회야.”
내 부름에 준회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응, 하고 짧게 대답을 해왔다.
“너도 사랑을 할 수 있어?”
내 물음에 준회는 잠깐을 고민하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얼거리듯 답했다.
“글쎄.”
“…….”
“입력이 되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사랑도 결국 배워야 하는 거야, 내겐.”
준회의 말에 그래, 그렇지…. 하고 웅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회는 로봇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준회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자 준회가 내 등을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다독였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하잖아.”
내 말에 준회가 피실 웃었다.
“싱겁긴.”
안녕! uriel 입니다!
참 오랜만이에요, 거의 한 달 만인가? 바쁜 일이 많아서 들어올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가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댓글이 참 많이 쌓였네요 구독료 알림 글도 많고 예전 글을 읽고 달아주시는 댓글들도 참 많고! 틈을 낸다고 해도 잠깐 쪽지를 확인할 정도 밖에 안 되서 ㅠ_ㅠ 두번째 글에는 답글 꼭 달 거라고 해놓곤 또 못 달았어.. 저 이러다 양치기 소녀 되겠어요 음?
하여튼! 오늘 글도 휴머노이드! 이 휴머노이드는, 어, 6월이 되기 전에 끝나겠죠! 준회 이야기 중 첫 완결이 될 거라는 약속은 꼭 지킬 거에요..♡ 정말이야!
오늘 글도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휴머노이드의 분위기 자체에 대해서 한 마디로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가장 처음에 첨부하는 사진에 적힌 극작가의 말과 같아요, 희망이 적을 수록 나의 사랑은 더 뜨거워지도다
학교 다니느라 바쁜 이쁜이들도 많고, 새학기 적응하기 어려운 이쁜이들도 많은 거 같더라구요 ㅠ_ㅠ 게다가 우리 애들이 데뷔를 안 해.. 이런.. 와이지 같으니라고.. 하지만 제가 제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고 기다린다면 우리 애들도 좋은 춤 좋은 노래 들고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_♡ 제 이쁜이들도 저와 함께 손 꼭 잡고 기다리기..☆ 음? ㅋㅋㅋㅋ
아 요즘 날씨가 참 오락가락 하죠 ㅠ_ㅠ 저는 목감기에 걸려서 목이 영.. 자고 일어났는데 이젠 아예 목소리까지 안 나오네요 x_x 목이 쉬어서 좀 섹시해진 것 같기도 한데 이건 저의 착각이겠죠? 저란 여자 섹시함은 1도 없는 여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무튼 제 이쁜이들도 감기 걸리지 마시라구요 ㅠ_ㅠ 이 날씨에 감기 걸리면 안 돼! 알았죠! 아직은 추우니까 옷 잘 챙겨 입고!
오늘도 잔소리야 잔소리 잔소리
그래도 결론은 사랑한단 거에요 사랑해요 제 이쁜이들! ♡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