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특별편 (Feat. 오세훈, Kakao)
"아, 들어와! 문 열렸어!"
현관 문을 열러 나가기도 귀찮아 그냥 소파에 드러누운 채 크게 말했다. 곧이어 김종인이 안으로 발을 들여왔고, 쓰고 있던 스냅백을 벗어 대충 소파 위에 던져둔 녀석이 리모콘을 들어 TV 전원을 껐다. 아아…, 저건 싸우자는 신호인가.
"아, 뭐하냐. TV 왜 끄는데."
"네가 누워서 웃고있는 모습 꼴 보기 싫어서."
"… 이거 아주 미친놈이구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김종인을 뒤로 하곤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사실 녀석을 집으로 부른 이유를 막연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답답해서였다. 솔직히 제 3자인 내가 개입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인 녀석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에 자꾸만 참견을 하고 개입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김종인은 매번 탐탁치 않아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연애코치를 해주겠다 자청을 한 것도 그렇고, 스스로 말을 뱉어낸 이상 어떻게든 둘의 사이를 이어주고 싶었다. 김종인 저것도 겉으론 싫은 척, 아닌 척을 해보이면서도 속으론 기뻐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끝까지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숨길 것이라 생각하던 막연한 내 예상과는 달리 김종인은 날이 갈수록 제법 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가 아닌 나에게만 말이다.
'오늘 아침에 등교하는데 걔가 이어폰 같이 꽂고 가자 했어."
'그래서?'
'싫다 했지.'
'뭐라고? 넌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 차냐?'
'쑥쓰러우니까.'
'병신….'
이렇게 라든가.
'오늘 기침을 좀 자주 하던데, 설마 감기 걸린 거 아닐까.'
'물어보지 그랬냐.'
'물어는 봤지. 감기 아니라던데, 내가 보기엔 진짜 감기 같아.'
'… 그렇게 걱정이 되면 병원을 데리고 가 보던가.'
'어떻게 그래.'
'도대체 넌 무슨 답이 듣고 싶은 건데?'
이렇게… 라든가.
'어제 과외 보충수업 같이 들었는데, 치마 입고 왔더라.'
'아, 그래? 예쁘디?'
'어, 존나.'
'억양이 좀 변태 같았어, 방금.'
이렇게 말이다. 이런식으로 김종인은 알게 모르게 그 아이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나에게 표현을 해주고 있었고, 그 아이와 겪었던 일들 중 가장 사소한 부분을 간략히 보고해주곤 했다. 평소 틱틱대기 그지없고 화도 잘 내는(나한테 특히) 녀석이지만, 제 연애 감정에 대한 이야깃거리들을 꺼내놓을 땐 한없이 순수하고 순진한 고딩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재밌어 자주 놀리곤 하는데, 물론 그럴 때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제일 답답한 건, 좋아하면서 고백을 안 한다는 것이다. 용기가 부족한 건지, 아님 고백을 할 정도로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건지…. 하여튼간에, 어느 면으로 보나 답답한 놈이다.
"너 감기몸살 걸렸던 건 좀 어떠냐."
"거의 다 나았어."
"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거였어."
"뭔 개소리야."
"보건실에서 ○○이가 간호해 줬잖아. 그래서 빨리 나은 거야."
"딱히 간호해준 건 아니야. 그냥 옆에만 있어준 거라고."
"그래. 그래서 빨리 나은 거라고, 병신아."
"……."
"근데, 그때 보건실에서 둘이 뭐했어? 러브러브?"
"하긴 뭘 해."
"보건실에서 단 둘이… 마침 침대도 있고…."
"미친놈아, 야한 상상 좀 그만 해."
"야한 상상이라니? 너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존나 변태네."
"… 개새끼가 진짜."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소파에 털썩 앉아버리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맛에 내가, 어? 널 놀려먹는 거야. 존나 재밌거든.
"근데 왜 불렀냐. 넌 공부도 안 해? 누가 보면 고3이 아니라 중3인 줄 알겠다."
"… 아…, 중3이고 싶다. 아니, 초3…."
"왜 불렀냐니까."
"왜냐니. 진중한 얘기 좀 나눠 보려고 불렀지."
"뭐?"
"내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결과, 넌 너무 답답해."
"뭐가."
"뭐긴 뭐야. 너 고백은 언제 할 건데?"
고백은 언제 할 거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나를 흘끗 보더니 녀석이 한숨을 작게 내쉬며 자세를 편히 고쳐 앉았다. 표정을 보니 아직 고백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왜이리 내가 답답하고 속이 터질 것 같은 거지. 윽…. 으윽….
"언젠간 하겠지."
"언젠간? 언젠간이라고 했어, 방금?"
"왜."
"너 그러다 놓쳐, 인마. 얼른 잡아둬야지. 걔랑 평생 친구로만 남고 싶어? 연애는 안 해?"
"아, 언젠간 할 거라니까."
"그 언젠간이 정확히 언젠데? 계속 그렇게 뜸만 들이다 다른 남자한테 뺏긴다고."
"내가 뺏길 것 같아?"
"네 과외선생이 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무슨… 나보다 천하태평해."
"안 뺏겨, 절대."
"그 과외선생 사진 없냐? 얼굴 좀 보여줘."
"인정하기 싫은데, 잘생기긴 존나 잘생겼어."
"진짜? 봐봐."
"카톡 프사."
틱틱대듯 말을 하곤 휴대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녀석이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 아."
"왜."
"너 백퍼 뺏기게 생겼다."
"……."
"존나 잘생겼네."
"… 말 했잖아. 잘생기긴 존나 잘생겼다고."
"분발해야겠어. 솔직히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좋아한다고 접근하면 여자들 다 넘어가지."
"야, 요즘 누가 얼굴만 보고 사람을 사겨."
"안 그런 여자들도 있겠지만, 그런 여자들도 많아."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녀석의 표정을 확인했다.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애꿎은 쿠션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몹시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무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게 보이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건들면 얻어 맞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입을 꾸욱 다물곤 무료하게 누워 녀석의 휴대폰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야, 좋아하는 여자애 이름을 그냥 ○○○으로 저장해놓으면 어떡해. 하다 못해 성이라도 빼고…"
"들키면 안 되니까."
"카톡 보내 봐도 돼?"
"뭐라고."
"사랑한다고."
"미친."
순간 녀석이 거칠게 휴대폰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스치고 말았다. 화면에 손가락이 살짝만 닿아도 터치가 먹히다니. 우린 아주 좋은 세상 속에서, 아주 좋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나 봐요, 어머니.
또다시 녀석의 휴대폰을 빼앗으려다 그냥 관두곤, 옆에 놓여있던 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김종인과 김종인의 그녀를 초대해 단톡방을 만들었다. 과연 잘한 짓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욕만 안 먹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인, 충격 받았냐."
"… 아."
"그게 너일 수도 있는 거야, 인마."
"씨발, 나일 리가 없잖아."
"왜 없어. 기다려 봐."
지금 가장 애잔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아, 관둘래."
"뭘 관둬. 애잔한 짝사랑을?"
"아니, 카톡을 관둔다고."
"… 치킨 사줄까?"
"뭔 치킨이야, 갑자기. 필요없어. 입맛 떨어졌다."
아예 휴대폰을 제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버린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쓰고왔던 스냅백을 집어들었다. 괜히 그런 짓을 했나, 싶은 마음에 순간 너무나도 미안해져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지금 녀석에겐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듯했다.
"가려고?"
"어."
"설마 마포대교 가는 건 아니지?"
"씨발, 뭐래."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녀석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곤 들고있던 스냅백을 푸욱 눌러쓰더니 추욱 늘어지듯 소파에 기대앉아 짧은 한숨을 연신 푹푹 내쉬기 시작한다.
"… 우냐?"
"말 좀 걸지 마."
"야,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한 건… 장난으로 그냥 한 말일 수ㄷ…"
"닥치라고."
"네."
괜히 얻어 맞기라도 할까 두려워 입에 지퍼를 채웠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주고자 단톡방을 만들었고, 어떻게든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어떤 남성상을 좋아하냐 물었고… 뜻밖의 대답을 얻게 되었다. …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어머니, 아버지… 전 정말 하루살이인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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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특별하게 와봤어요 :) 잠시 쉬어도 갈 겸? 일요일이 끝나갈 무렵에 올리는 글이네요. 곧있음 월요일.. 윽....... 독자분들도 일요일 마무리 잘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읍시다...! ㅎㅎ;
스폰지밥/러블리/두부/종이니/기화/핫초코/공삼이육/네네스노윙/지블리/로운/똥잠/알콩/아가야/Paper/세젤빛/꽯뚧쐛뢟/얍얍/늘봄/종이페이퍼/고구마/도비/똥강아지/두둠칫/복숭아/윤아얌/불가/제인/스누피/나니꺼/엑소더스/가그린/남사친/다예/가락/너눈/XoXo/봉봉/댜니 님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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