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 조금씩 나아가요!
세훈이는 교실로 가고 난 교무실로 왔어. 집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데 아침에 최선생님이 주셨던 바나나우유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거든? 근데, 없어. 왜 없지??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니 옆자리 선생님이 들어오고 계시더라고.
"신선생님. 혹시 여기 있던 바나나우유 못 보셨어요?"
"아. 그거 유선생님이 드시던데."
유선생님이라면 체육선생님이신가..? 그 선생님은 교무실도 여기 아니면서.. 맨날 오셔서 뭐 뺏어드시고.. 먹으러만 오셔..
냉장고 문을 닫고 자리로 가서 퇴근할 준비를 했어. 신선생님도 퇴근할 준비를 하시면서 묻더라고.
"다리 언제 푼데?"
"어.. 듣기로는 3주였던 것 같아요. 제가 주의만 잘 하면 그 전에도 풀 수 있데요.ㅎㅎ"
"어유, 불편하겠다. 그래도 막내선생은 집 가까워서 다행이야."
"그러게요.ㅎㅎ"
"그리고, 걔네들이.. 도와주잖아?"
"아, 뭐.. 네. 그것도 있죠."
"뭔가, 막내선생이 학교에 오고 큰 사건은 꽤 생기는데 자잘한 사건이 사라진 것 같아.
틈만 나면 사고치던 걔네들이 조용해지고. 요즘엔 수업시간에 잠도 잘 안 자더라고."
오! 드디어 아이들 칭찬이 나왔어!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다행이닿ㅎㅎㅎ
"아, 정말요? 다행이다..ㅎㅎ"
"전에는 잠자면 다행이었어. 지들끼리 싸우고, 소리치고.."
"아, 그 정도 였어요?"
"뭐, 아무튼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좋아졌다는 거지. 긍지를 가지고 힘내보자고."
"네!! 들어가보세요!"
"그래. 막내선생도 조심히 들어가!"
손을 빠르게 흔들고 나가는 선생님을 보다가 나도 마저 준비했어. 오예! 오늘 애들 칭찬듣고 기분 짱 좋다!!
진작에 이렇게 칭찬 들었으면 진짜 좋았을텐뎋ㅎㅎ
신나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교무실 문이 슬쩍 열리고 민석이가 빼꼼 들어왔어.
"무슨 일이야??"
"퇴근하셔야죠."
"아, 기다리고 있던거야??"
"네. 천천히 나오세요."
워메.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네. 빠르게 가방에 챙겨넣고 최대한 빠르게 나왔어.
천천히 온 듯한 연기도 잊지 않았지. 민석이가 그런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말도 없더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려는데 시간차 공격을 때리더라.
"선생님 발소리 커요. 천천히 나오라니까."
"....ㅎ 그랬지..ㅎㅎ"
"하여간 말 드럽게도 안 들어요."
"....아니야. 너가, 기다리니까.."
"말하지 말고 기다릴 걸 그랬나봐요. 가요. 피곤하실텐데."
"내가 뭐가 피곤해?"
"우리 전부 신경써주시려면 피곤하시겠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요, 뭘."
그렇게 말하며 웃는 민석이야.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아이들 웃음이 많아지지 않았어?
학기 초에는 애들이 하도 똥씹은 표정이어서 맨날 반에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했을 정도였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별 일 아닌 걸로도 되게 잘 웃는 것 같아.
물론, 종대나 백현이, 찬열이 같은 경우는 잘 웃긴 했었지.
"혹시, 요즘에 기분 좋은 일 있어? 너네들 사이에?"
"음, 딱히요."
"그..래?"
"왜요? 자주 웃으니까 신기해요?"
"아니, 뭐, 신기한 거 까지는 아니고.. 그냥.. 보기 좋아서.ㅎㅎ"
"선생님 기분 좋게 자주 웃어야 겠네요."
"그, 그렇다고 일부러 웃을 필요는 없어. 그냥, 감정에 솔직하게.."
"알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거예요. 이제 선생님도 우리에 들어온 거니까."
"응?? 우리?"
"네. 선생님과 저희가 아니고. 우리."
흛... 감동이야.. 나도 너희에 들어가더니ㅠㅠㅠㅠ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운 거 있지ㅠㅠㅠㅠㅠ
그냥, 별 이야기 아닌데.. 막 전학갔을 때 처음 사귄 친구가 우리 00이.라고 말해줬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 기분에서 100만배는 더 좋아.ㅎㅎ 왠지 내 제자들에게 인정받은 거 같거든ㅎㅎㅎㅎㅎ
"우리 좋다!"
"그니까 선생님도 우리한테 비밀 만들지 말아요. 우리도 선생님께 비밀 안 만들게요."
"그래! 좋아. 무르기 없다?"
"약속하실래요?"
"응응!!"
민석이가 내민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어. 그리고 보관까지 마쳤지. 됐어. 이제 나도 비밀 안 만들어야지.
근데, 난 딱히 비밀이랄 것이 없는데. 평범한(물론 돈이 조금 많지..)집안에,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집에.. 설마.. 시험문제같은 거.. 알려 달라 하진 않겠지..?
"선생님. 안 타세요? 맨날 정신 놓고 다니죠?"
"어? 아니야!"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어. 아, 이것도 고쳐야 되는데.. 뭐 생각할 때 멍한 거..
민석이를 힐끔 보니까 경수처럼 창 막고 있더라. 크.. 아이들이 세심하게 잘 챙겨.. 그래서 더 정이가고 그러는 건가..?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어. 내려서 뒤로 돌아 민석이를 향해 말했지.
"조심히 가 민석아! 가면 꼭 문자나 전화하고!"
"네. 비번은 바꾸셨죠?"
"응응! 바꿨어. 안녕!"
"네. 들어가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니까 문이 닫히더라고. 나도 집에 들어왔어.
신발을 벗고 깁스 전용 신발도 벗고 딱 한발자국 앞에 내딛으니까 핸드폰이 울리더라. 뭐지..? 가방에서 꺼내서 보니까 준면이야.
뭐지..?!
"여보세요?"
-쌤 지금 댁이세요?
"어? 어.. 왜??"
-쳐 들어갑니다. 기다리세요. 10분 이내로 도착해요.
???????????
통화는 준면이 말을 마지막으로 끊겼어. 아니..? 준면아...? 다행히도 집안은 깨끗하긴 하다만.. 음.. 뭐지 이 요상한 느낌은..?
내가 아무리 너희에게 '우리'가 되었다고 하여도.. 난 친구를 먹자는 게 아니었는데..? 묘한 기분을 안은 채 맞이할 준비를 했어.
잠시 후 띵동-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누구세요? 라는 말에 준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저요!!"
뭔가, 힘겨운 듯 보이는 목소리에 문을 열어주니까 아니나 다를까 뭔가를 잔뜩 들고 있더라고.
"이, 이게 다 뭐야..?"
"오늘 쌤 저녁 학교에서 안 드셨잖아요."
?????????
자세히 보니까 진짜로 마트 봉지네..? 식탁에 재료를 꺼내 놓는 준면이야. 우선 열려있는 문을 닫고 들어와 그런 준면이를 다시 보았어.
"제가 요리를 잘 못하지만. 아주머니께 배운 요리가 하나 있거든요."
"배웠어?"
"네. 사실, 애들이랑 누나가 좋아하던 음식이긴 해요. 그래서 배웠거든요."
"아, 뭔데??"
"샌드위치요."
그거 알아? 내가 샌드위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있으면 먹고, 없어도 괜찮고.
근데, 괜히 또 그 누나 이야기 나오니까 애들이 샌드위치를 떠올렸을 때 내가 떠오르기를 바랐나봐. 더 오바해서 좋아하는 척 했어. 유치하게도.
"헐?! 내가 그거 진짜 좋아해!!! 어떤 샌드위치인데??"
"계란 으깨고, 햄넣고, 오이넣은 거요."
"와, 완전 내 스타일이다. 파리바게트에 비슷한 거 팔거든. 근데 거기엔 양상추가 들어간단 말이야. 그래서 빼고 먹고 그래."
"아, 그래요? 선택잘했네요."
"응응. 짱 잘했어. 집에서 혼자 만드려면, 손도 많이가고, 그렇다고 많이는 못 먹고 해서 소풍 갈 때나 만들었는데.."
"그렇게 좋아하세요? 다행이네."
"마치 너가 나를 파악한 느낌이었어. 내가 너네한테 샌드위치 좋아한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선생님 저희 수학여행 갔을 때 샌드위치만 싸오셨잖아요. 애들 다 줄 만큼."
아... 맞다. 그랬었지.. 내가 수학여행 가는 날 괜히 들떠가지고 우리반 애들 하나씩이랑
각반 선생님들꺼랑 같이 가는 주임 선생님, 그리고 내꺼도 막 엄청 많이 만들었었거든..ㅎㅎ 실은 김밥은 좀 오바라서 샌드위치 싼 건데..ㅎ
"일단 이 정도만 사왔는데, 더 넣어야 하는 거 있어요?"
"아니! 원래 야채는 넣는 거 아니야."
"그럼 오이는 왜 넣는데요?"
"...식감..?"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쥬륵. 아니, 솔직히 샌드위치를 씹었는데 아삭이는 느낌이 없으면 이상하지 않겠어..? 완전 이상할 것 같은데..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샌드위치에 대한 신념같은..? 신념은 거창한데.. 무튼 그래.
"소금.. 있어요?"
"응!"
"다행이네요."
"..그.. 그래도 가정집인데.. 있지.."
"그.. 렇겠죠."
반달 모양으로 썰은 오이를 소금물에 담그는 준면이를 보았어. 나름 교복도 걷어붙이고 열심히 더라고.
"쌤 다리 아프신데 서 계시지 말고 앉아 계세요."
"어? 아, 어. 뭐 도와줄까?"
"아니요. 쳐 들어온 건 저니까. 제가 할게요. 앉아서 구경하세요."
"그.. 그래도.."
"어짜피 결혼하면 자주 볼 모습이니까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거죠."
"...뭐?"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가시는 지 모르겠네요."
"그래.. 됐다..."
에휴.. 내가 뭘 바라고 되물었을까.. 하긴, 준면이도 백현이 친구고, 친구는 닮는 거고 그러는 거지..
해탈하고 앉아서 준면이가 하는 걸 보았어. 되게 서툴러 보이는데 되게 잘해. 이게 되게 애매하지..?
굳이 묘사하자면 칼을 쥐는 폼이 정말 서툴다? 곧 다칠 듯이. 근데 썰어진 것을 보면 되게 정갈하고 예뻐. 진짜 애매하게.. 지금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
"그, 준면아."
"네?"
"칼.. 조금 안전하게 잡을 순 없을까?"
"이게 저희 집에서 10년간 일해온 아주머니가 주신 비법이에요."
"그럼, 그 아주머니도 이렇게 썰으셔?"
"아니요."
??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준면이가 이상한 걸까..? 지금 이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잡는 준면이 때문에 놀라서 일어섰어.
"괜찮아? 그러게 안전하게 잡으라니까아.."
"뻥이에요."
정색하고 말한 준면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빵 터지더라고. 아.. 놀래라...
"그러게 내 앞에서 딴 생각하지마요. 질투나니까."
"너 생각 중이었거든."
"그럴 줄 알았으면 방해 안하는 건데. 어디까지 진도 나갔어요?"
"너.. 솔직히 말해.. 준면이 탈을 쓴 찬열이지?"
"어쩜 그렇게 심한 말을 하실 수 있으세요.. 박찬열이라뇨..."
잔뜩 상처입은 눈으로 끓는 물에 달걀 넣더라고.ㅎㅎㅎ
"왜, 그래도 찬열이.. 나름.. 나름, 음.."
"거봐요. 그건 욕이었어요."
"아니, 뭐.. 예절! 예절이 있고.."
"그건 저도 있고."
"음.. 친구를 잘 위해주고.."
"그건 저도 위해주고."
또.. 뭐가 있을까..? 이제 진짜로 없는 거 같은데...??
"네에. 다음엔 힘으로 밀어 붙여야지. 오늘은 쌤 발목 더 다칠까봐 못하겠네요."
음... 이 말을 뭐라고 포장이 가능할까..? 그리고 왜 하필 이런 말이 떠오른 걸까..?
"나.. 나름 배려도 해주고.."
"저도 배려 잘 하는데. 그보다 전 박찬열보다 돈도 많고, 예의도 잘 지키고."
"..그, 그렇지.."
"그럼 제가 손해인거 맞죠?"
"...그런가..?"
"내가 앞에 있는데 내 편 안들고 박찬열편 드는 거예요? 그럼 조금 실망인데."
"아니지!!! 그게 아니고.. 너네들은 비밀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 말할거잖아.."
"당연하죠. 자랑거리인데."
"그러니까아.. 함부로 못 말하겠다구.."
준면이는 끓고있는 계란을 바라보다가 큰 볼에 마요네즈를 짜 넣었어. 그러다 급 뒤돌아 나를 보면서 말하더라고.
"차라리 막말을 막 하면 안돼요?"
"응??"
"아니, 우리가 남도 아니고. 이렇게 우리 위하지 말고. 우리가 잘못하면 개 썅욕을 하면서 뭐라 하라구요."
"어떻게 그래.. 나는 선생님이고.. 너네는 학생인데.."
"아, 그래. 그건 오바라고 쳐요. 그럼. 적어도 우리 생각하지 말고 말해줘요.
얼평을 해도 받아드리겠고 성격 싹바가지 없다해도 받아드릴 수 있어요. 그니까 우리 생각 같은 거 하지말고 그냥 다 말해요."
"...이 와중에 미안한데.. 얼평이 뭐니?"
"....얼굴 평가요."
"어머, 그걸 어떻게 해. 그걸 하는 사람이 있어..?"
"네. 있죠. 남자 애들은 자주 할 텐데."
"너네도 남자잖아."
"저희는 워낙 한 사람만 봐와서. 다른 여자 볼 시간이 없었어요."
이것도 그 누나 이야기지? 흠.. 내가 진짜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지금 내 감정 말해줄까?
나 솔직히 그 누나 지금 질투하나봐. 아이들이 나 자체를 좋아해주고, 존경해주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내가 그 누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좋아하고, 존경해주는 느낌이 들거든. 그니까 나는 그 누나의 대타인거지.
물론 아이들 백번 이해해. 어릴 때 그렇게 좋아했던 누나가 한 순간에 사라지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황당하겠어.
정신적 지주나 다름 없는 누나가 사라졌다가 조금 비슷한 선생님이 눈에 띄는데 눈길이 안 갈리가 없잖아.
근데.. 본능적으로 난 선생님이기 전에 여자야. 이것도 선생님 입장 다 버리고 객관적으로 말해볼게.
자존심 상해. 모르겠어. 왜 이딴 감정이 생기는 지는.. 어머, 이딴이란 말 쓰면 안되는데..
"쌤쌤. 쌤??"
"..어? 왜?"
"맨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같이 고민해요. 말해봐요."
"아... 아니야."
"에이. 우리 사이에 비밀 만들지 맙시다. 섭섭하게."
"음... 그럼. 이건 내 친구이야기인데.."
"네에."
"내 친구가 썸타는 남자가 있단말이지. 근데 그 남자가 자꾸 전 여친을 생각하면서 내 친구와 썸을 타나봐."
가만히 들어보던 준면이가 슬쩍 웃어. 그러더니 꺼내서 찬물에 식혀놨던 계란을 까며 말하더라고.
"못됬네요."
"그런거야..?"
"네. 그딴게 어딨어요. 지금 있는 사람에게 올인해야지."
"어.. 그렇게 못됬다고 보기 보다는.. 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쌤 그 남자 좋아해요? 왜 두둔하지?"
.....ㅎ 미안. 또 감정이입했네.. 남 얘기한다면서 왜 또 감정이입 하고 있니..
"아니이..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건 못된 거예요. 우리 봐요. 쌤만 보잖아."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언제 생과 좋다고 했어요? 아니면 쌤 옆자리에 문학이 좋다고 했어요?"
"그건, 아닌데..그리고.. 선생님 붙여야.."
"거봐요,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쌤 앞에서 쌤이 누나 닮아서 좋다고 했나?
아니죠. 다른 애들은 모르겠는데. 저는 그 누나가 존경이었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때의 나는 인성교육 배우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응?"
"저는 어릴 때 부터 아빠 회사 물려받을 거라고 인성교육을 죽어라 배웠거든요. 하루에도 인성, 예절, 예의에 관한 과외를 3, 4개 많으면 5개까지 했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존경이란 감정을 먼저 배웠거든요. 당시의 나는 그 누나를 존경했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시 말하지만 전 쌤을 좋아하는 거지, 그 누나처럼 존경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또 처음 듣네. 애들이 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준면이는 존경만 했구나..
근데.. 조금 부정적이게 듣자면 결국 내가 그 누나의 성격을 닮지도 않았으면 날 좋아하지도 않았겠지?
"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 누나를 보았을 때 닮고 싶다고 생각했지 쌤 처럼 갖고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쌤은 누나랑 달라요. 아주 많이. 자, 드세요."
완성된 샌드위치를 접시위에 올려놓고 주더라고. 음.. 극단적으로 안 말하는게 더 좋지 않았나..ㅎ
그래도.. 뭔가 준면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어. 아무렴 어때. 나름, 뭐.. 여자로서 매력이 있는 거겠지.. 아마..?
갑자기 감정을 인정하니까 나 되게 여자가 되는 것 같아. 질투도 막 하고.. 하긴, 난 선생님만 입력 된 로봇이 아니니까.
"근데요.. 쌤 거짓말 되게 못하시죠?"
"응? 왜?"
"방금 그거 쌤 얘기인 거 엄청 티났는데."
....숨고싶다.. 쥐구멍없니..? 고개를 숙이고 샌드위치나 먹었어. 한입 베어무는데.. 와.. 이거 전에 엄마가 해주던 맛이야.
진짜 똑같아. 완전 신기하다..
"이거, 이거 완전 우리 엄마가 해주시는 맛이야."
"진짜요? 저 좀 으쓱 해도 되죠?"
"당연하지! 진짜 맛있다.. 신기해.. 뭐가 다른 거지?"
"...내가 먹을 게 아니라 내가 아끼는 사람이 먹을 거니까. 그게 다른 거 아닐까요?"
"응??"
"수학여행 때는 학기 초반이라서 아직 아낀다는 마음도 없었을거고. 그때엔 우리가.. 좀 막나갔었으니까 오히려 피곤하셨겠죠.
그런데 쌤의 어머니께서는 쌤을 아끼시니까 이런 맛이 나오는 거 아닐까요?"
"아..."
뭔가, 이해가 가고 있어. 요리는 정성이라잖아? 분명 신빙성이 없는 말인데도.. 무한 신뢰가 간다..
계속 해서 하나 더 만드는 준면이가 조용하게 웃으며 말해줬어.
"제가 존.경. 하던 누나도 우리 주려고 자주 만들어줬거든요. 이걸 쌍둥이들이 좋아해서."
굳이.. 굳이 존경에 강조 안 해도 되는데.. 흐엉... 너무해...
"...누나도 좋아하셨다며.."
"...네. 그랬죠. 근데,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누나는 그렇게 안 좋아했던 거 같아요.
누나는 무조건 우리한테 맞춰줬으니까. 썅종들.. 아니, 쌍둥이들이 좋아하니까 자주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좋아하는 척 하면서.
맨날 '나 먹으려고 만들다가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남았어요. 니들 먹어요.'라면서 줬거든요. 그러면서 누나는 한 조각 밖에 안 먹었어요. 충분히 많은데도."
"아.. 근데, 되게.. 그.."
"네?"
"생각보다 말투가.. 뭐라해야 되지.. 그.."
"쌀쌀 맞죠? 맞아요. 누나 말투가 다정한 편은 아니었어요. 맨날 툭툭 내뱉고 그랬는데, 그 말들이 다 다정한 말들이었어요."
"아.. 나는 되게.. 다정할거라 생각했어. 완전 다정한 반말 쓰고.."
"전혀요. 제 기억상의 누나는 털털했어요. 진짜 딱 사춘기 온 고등학생 모습처럼."
오, 새롭네. 이 점은 다른 것 같아! 난, 쌀쌀 맞거나 털털한 편은 아니잖아? 그치?? 그래도 다른 점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 뭔데 그 누나랑 나랑 다른 점을 찾고 있니? 하참, 자존심 상해서 진짜. 난 나야! 긍지를 가져!! 내가 더 나을 수도 있어!! 아마도..
"선생님은 어릴 때 어떠셨어요? 그 인기 많던 고등학생 시절에?"
어째 어색하게 웃는 준면이야. 입만 웃고 있어..ㅎㅎ 그, 인기많았다는 말은 괜히 한 것 같지..?ㅎㅎ
"아, 준면이한테 쌤 비밀 말해줄게. 지금 떠올랐어."
"오, 뭔데요?"
"사실, 쌤은 음..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고3 때 교통 사고가 났었거든. 지금도 여기 엑스레이 찍어보면 고정 수술한 거 보여."
"아.. 진짜요..?"
"응응. 그때 머리도 다쳐서 기억이 별로 없는데 고등학생 때 인기가 많긴 했어. 근데 사고 나고, 처음 들었던 말이 한쪽 다리를 못 쓸 것 같다는 말이었거든?
그때, 아마 사귀던 남자애가 헤어지자고 했나봐."
"뭐 그런 개썅 바다쓰레기같은 새끼가 다 있어요??"
"그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 남자애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재활치료 진짜 열심히 했거든. 쌤 다리 막 못 쓸 만큼 안 다쳤던 사람 같지?"
"네. 진짜요. 저는, 사고 났었는지도 몰랐네요."
"맞아. 그만큼 열심히 했어. 그때 생각했지. 이 정도 의지면 뭐든 되겠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공무원 되기로 한 거고.
그 마저도 임용고시에 엄청 떨어져서 우울증도 오고, 불면증도 오고.."
"와, 드라마같네요. 쌤의 인생은 그랬구나.."
"응. 내 인생은 이랬지. 그래서 지금 여기서 우리 준면이가 만들어 주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던거지."
내 접시에 하나 더 올려주는 준면이야. 뭔가, 시원하다.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는데.
내 친구들도 이렇게까지 자세한 것은 모르거든. 사실 걔들은 사고 후에 만났던 애들이라서..
사고 전에 만났던 애들은 다 좀 있는 집 애들이었거든. 나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다들 아는 척도 안했지.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이 비밀, 누구누구 알아요?"
"지금은 너랑 나? 애들한테 말해도 상관은 없어. 너희들이라면 뭐."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네요. 앞으로도 힘든 일 있으면 털어놔요. 언제든지 열려있으니까."
"그랭! 너도 좀 먹어."
"네. 근데 전 쌤 드시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요."
"...헛소리 하지 말까?"
"네. 먹겠습니다."
샌드위치를 들고 먹는 준면이를 보며 웃었어. 준면이도 마주보며 웃어주더라고.
오늘 준면이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여러모로 알게되고, 알려주고.ㅎㅎ
뀨? |
일찍 온다면서 왜 지금 왔느냐 물으신다면 종강기념으로 술을 좀.. 마시러 다녔다고 당당히 말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ㅏ핳ㅎ
느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제가 바뀌었죠? 첫번째 주제는 현식이와 병준이로 인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돈독함이라면 지금 두번째 주제는 누나로 인한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 정도일까요..ㅎ 역시 과거는 재밌어욯ㅎㅎ
더 Love...♥(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제로콜라]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똥잠/콜덕/쌍수/매매/라임/체리/게이쳐/모카/빵/바람둥이/죽지마 코끼리/구금/메리미/세젤빛/나호/스젤졸/안녕/양양/체블/Luci 꽯뚧쐛뢟/찌즈/우리니니/뭉이/도비/곰탱이/하트./삼디다스/바닐라라떼 허니/타오네엄마/똥강아지/오호랏/우유퐁당/민석아찬열해/우유/워더 청포도/뀰/카프/세젤예/밍/홍합탕/까만원두/롤롤/해가빨리가장뜨는 시동/매쑝/설림/무민이/퐁퐁클린/4am/우럭우럭/네티첸/열페럿/이엘/여누 입꼬리/159/아말카/카망이/이런사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