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17 (너랑 결혼하고 싶다)
그렇게 며칠 동안은 하루종일 눈치만 보며 지냈던 것 같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땐 거북이와 나무늘보 코스프레를 하듯 천천히, 조심스레 걸음을 뗐고, 반대로 집을 들어설 땐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 서둘러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언제 어디선가 갑자기 내 앞에 딱- 하고 모습을 비출지 모르는 박찬열 때문이었다. 이런 내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그를 마주치는 날은 없었다.
특별한 볼 일이 있지 않은 한, 되도록이면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위치한 편의점에 가야 할 일이 생겨도, 꾸욱 참았다.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는 게 많이 답답하긴 했지만, 아무렴 상관 없었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도 말해. 줄 수 있는 한 도움 줄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을 해도 된다며 무미건조하게 말을 해오던 도경수 선배가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도경수 선배의 말대로, 박찬열은 내 SNS를 몰래 엿보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페이스북에 한 마디를 올렸을 땐, 감기약을 종류별로 사와 저번처럼 현관 문의 손잡이에 약봉투를 걸어 놓았고, 단지 덥다는 짧디 짧은 한 마디를 올렸을 땐, 바로 다음 날 아이스크림을 사와 현관 문 앞에 두었다. 특히, 아이스크림은 바로 어제 일이었다. 공강이라 집 밖을 나갈 일은 없었지만, 잠깐 만나 영화라도 보자던 김종인과 소박한 데이트를 한 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문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 봉투를 발견한 것이었다. 어제는 모르는 번호로 문자 메시지까지 왔다. 분명 모르는 번호였지만, 그게 박찬열이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전화번호를 바꾸는 듯했다. 어제 문자를 보내온 번호는 예전 그 번호가 아니었고, 며칠 전 연락을 해오던 그 번호도 아닌 새로운 번호였다. 그러니, 스팸 번호로 등록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한 번쯤은 알아 보고도 싶었다.
"……."
오늘은 토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건선생님의 결혼식 날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해오던 오세훈은 결정장애 탓에 한 시간 째 고민 중이라며 입을 옷 좀 대신 골라 달라 귀찮게 굴곤 했다. 마치 제가 신랑이라도 되는 듯, 제가 결혼식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김종인이 오세훈을 왜이리 하찮고 귀찮게 여기는 것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깨닫게 되었다. 오세훈을 대하는 김종인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흰 와이셔츠 입어. 넌 피부가 하얘서 다 어울릴 거야.'
'인마, 무슨 흰 와이셔츠야.'
'왜…. 그럼 하늘색은 어때?'
'그거 지금 세탁기 속에 있어. 다른 거, 다른 거.'
'음…, 그럼 검정ㅅ…'
'너 지금 되게 성의 없는 거 알아? 상대가 나라서 그런 거야, 뭐야. 김종인이 옷 골라 달라 했으면 이러지 않을 거잖아.'
'아, 행복하게 자고 있는데 새벽부터 깨운 게 누군데…!'
'야, 얼른 얼른. 뭐 입을까?'
'검정색 와이셔츠 입어. 너 저번에 그거 입었을 때 봤는데, 잘 어울리더ㄹ…'
'레알 성의 없음.'
'아, 진짜!'
말을 꺼내는 족족 다 잘라먹으며 투정을 내뱉던 오세훈의 뺀질거림에 너무나도 화가 나 잠이 확 달아나 버리는 것만 같았다. 다 싫다 거절할 거면서 옷을 골라 달라는 말은 왜 꺼낸 건지 의문이었다. 이따 보자는 말을 끝으로 이내 통화를 끊는 녀석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계획대로라면 한 시간 반은 더 자고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누구 때문에 강제로 기상을 하게 돼 정말이지 짜증이 났다. 그래도, 덕분에 준비는 더욱 일찍 마칠 수 있었다. 준비할 게 그다지 많지 않아 일찍 끝난 건진 모르겠지만, 다 끝나고 보니 김종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진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오늘도 무척이나 덥겠지. 창밖의 따가운 햇살을 바라보기만 해도 온몸에 땀이 샘솟는 듯했다.
"……."
새로 산 남색 원피스가 영 어색했지만, 나름 마음에 쏘옥 들었다. 거울에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어 보며 반짝이는 귀걸이를 어루만졌다. 결혼식 때 입고 갔음 좋겠다며 블라우스와 스커트, 귀걸이를 사놓고 간 박찬열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가 놓고 간 옷들과 악세서리는 쇼핑백 안에 그대로 넣어둔 뒤 방의 한 구석에 고이 모셔 두었다. 아예 버릴 순 없고, 그렇다 해서 누굴 줄 수도 없고….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의 생각을 하자 다시금 머리가 아파오는 것도 같았다.
*
결혼식은 오후 다섯 시였지만, 되도록이면 일찍 만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여유롭게 출발을 하자던 김종인의 말을 떠올리며 근처에 위치한 카페로 걸음을 뗐다. 얼마 걷지 않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짜증나. 오세훈 왔어, 벌써.]
방금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며 카페의 유리 문을 쭈욱- 밀었다. 텍스트만으로도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김종인의 메시지에 살풋 웃음이 나왔다. 웨딩홀까지 같이 가자는 약속을 이미 예전부터 했던 터라, 오세훈의 등장은 지극히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 뭐냐. 제일 늦어. 바로 코앞이 집이면서 제일 늦게 오는 건 뭐야."
제 쪽으로 걸음을 옮겨오기 시작하는 내게 따가운 시선을 주며 투덜거리던 오세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오세훈을 똑같이 흘겨주곤 천천히 걸음을 떼 김종인의 옆 자리에 살포시 앉았다. 특별한 날이라 그런지, 김종인의 앞머리는 시원히 올려진 채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 다시 시선을 옮겨 오세훈을 응시했다.
"아, 뭐냐. 흰 와이셔츠 안 입겠다더니…. 입고 왔네."
"사실 옷이 별로 없음."
"뭐야. 둘이 연락 주고 받았어?"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김종인이 제법 날카롭게 물어왔다. 그런 녀석을 보며 푸흐- 웃음을 터뜨리던 오세훈은 이내 주문을 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냐니까. 옷차림에 대해서 서로 상의하고 그런 사이야?"
"아니, 오세훈이 아침부터 전화해서 옷 골라 달라 그러길래…."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종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삐진 채 입을 꾸욱 다무는 녀석이 꽤나 귀엽게 느껴져 배싯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주문을 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먼저 주문을 마친 채 여유롭게 다시 이쪽으로 걸음을 옮겨오던 오세훈이 내 머리를 꾸욱 눌러왔고, 그런 녀석을 슬쩍 흘기며 음료를 두 개 주문했다.
"아이스 카페라떼 두 개요."
*
카페 안에서 대충 시간을 보낸 뒤 지하철을 탔다. 버스로 이동해도 될 제법 가까운 거리였지만, 굳이 지하철을 타자며 고집을 부리는 오세훈 탓에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카페 안에서 나누던 대화의 주제는 거의 오세훈의 학교생활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말고사냐. 2학기 교양은 지금 듣고 있는 걸 절대 듣지 않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비가 오른 건 정말 짜증이 난다. 오세훈의 토크쇼 방청객이 된 것도 같았다. 그런 오세훈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는 건 오직 나 뿐이었다. 옆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며 카페라떼를 홀짝이던 김종인은 아예 대답조차 해주질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항상 있는 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오세훈의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고 애잔해, 하는 수 없이 나라도 집중해서 들어줘야 할 듯싶었다.
시간도 시간인지라, 지하철 안은 제법 한산했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지하철 안엔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대학생들, 다리를 꼬고 앉아 DMB로 야구 중계를 보고 계시는 중년의 남성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오세훈은 전자에 속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한 채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녀석은 이내 게임을 실행시키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의 옆 자리에 앉아 내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던 김종인은,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 손을 꼬옥 잡은 채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왔다. 오늘도 예쁘네. 나중에 데이트 할 때도 이렇게 입고 나와. 신발 높은 거 신었는데, 발 안 아프냐. … 덕분에 잔잔한 설렘과 떨림을 느껴야 했다.
웨딩홀이라는 게 뭐 거기서 거기겠거늘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채 향했던 것과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장소는 제법 크고 분위기 또한 좋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식을 올리다니…. 내가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그저 하객인 나도 이 정도인데, 정작 주인공인 보건쌤은 얼마나 떨릴까 싶었다. 결혼식이 치러질 웨딩홀은 전체적으로 고급지고 고상한 분위기였다.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예쁜 꽃들로 장식이 된 포토존을 구경하기도 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된 주변을 훑어 보기도 했다.
"어? 이게 누구야."
김종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어색한 주변을 훑어 보고만 있을 무렵, 앞 쪽에서 낯선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포토존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오세훈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옮겨졌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을 보는 것도 같았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형. 서로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이는 모습을 보며 김종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결혼식 진짜 오랜만에 와 봐. 너는?"
"나도.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
조곤조곤 말을 하며 흐트러진 내 앞머리를 정돈해주던 김종인이 이내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뭐야~ 종인이 아니야? 옆엔 여자친구? 대박이다. 실물은 처음인가? 처음이네~"
환한 웃음을 지은 채 이쪽으로 걸음을 옮겨오던 낯선 남자가 김종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SNS에선가 사진으로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순 없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인 그는 위로 당겨진 입꼬리와 긴 속눈썹이 인상적이었다.
"아, 인사부터 해야지. 안녕하세요~ 종인이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예요. 이름은 김종대-."
웃는 얼굴이 꽤나 매력적인 남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김종대,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그런 그에게 덩달아 꾸벅 인사를 하곤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손을 잡으며 나 대신 악수를 하던 김종인이 다른 쪽 손으로 내 손에 꼬옥 깍지를 껴왔다. 그런 녀석의 행동을 보며 크게 웃음을 짓던 그가 이내 다시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꽤나 하이톤이었다.
"아, 뭐야-. 악수도 못해? 손을 만지겠다는 게 아니잖아-."
"악수가 손을 만지는 거죠. 얘 손은 저만 만질 수 있어요."
제법 정색을 해보이며 귀여운 고집을 부리는 김종인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곧이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쪽으로 걸음을 옮겨오기 시작하는 다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방금 전, 오세훈과 진한 포옹을 나누던 그 남자였다.
"어? 유후유후-, 종인이 여친~"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감탄사를 흥얼거리던 남자가 이내 꾸벅 인사를 건네왔다.
"변백현이에요. 종인이 동아리 선배-."
이 분이 말로만 듣던 그 분이구나.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치민 생각이었다. 그의 얘기는 김종인에게나, 오세훈에게나 들은 적이 많아서 그런지, 이름이 꽤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 드립의 스승님이셔. 나보다 외모는 살짝 떨어지지만, 드립력 만큼은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넌 정말…, 24시간도 아까운 애야."
"세훈아, 넌 내일이 없어?"
건네오는 인사말부터 심상치 않던 그들은 꽤나 쾌활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김종인은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야, 근데 난 청첩장 받자마자 이게 뭐지… 싶었어. 솔직히 쌤한테 애인 있는 줄도 몰랐잖아. 안 그러냐, 김종대?"
"난 아닌데? 페이스북 몇 분만 관음에도 다 알 수 있어."
"알고보니 관음쟁이? 종인아, 조심해라. 얘가 네 페북이랑 네 여친 페북까지 다 엿보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이-! 그건 아니라고!"
"얘니이~ 그건 얘니라고~"
오세훈을 능가하는 깐족거림과 뺀질거림에, 마음속으로 감탄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다, 맞잡고 있던 김종인의 손을 더욱 꼬옥 잡았다.
"근데 준면쌤…,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연세? 나이가 아니라 연세라 칭할 만큼… 많이 드셨나?"
"연애하신 지 얼마 된 것 같진 않더라고, 내가 보기엔. 근데 벌써 결혼을…. 역시 능력자야."
"혹시 모르지. 속도위반일지도."
"야, 무슨 속도위반이야! 그건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듯 작은 말다툼을 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날 보며 덩달아 피식 웃어버리던 김종인이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낯선 공간을 이리저리 살피는 듯싶더니 사람들이 제법 어지럽게 모여있는 쪽으로 향하는 녀석을 따라 걸음을 뗐고, 어렵지 않게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둘 모여드는 하객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새신랑의 모습이었다. 까만 정장이 그의 하얀 피부를 부각시켜 주는 것도 같았고, 깔끔하게 올려진 헤어 스타일이 그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도 같았다.
"… 진짜 멋있다."
나도 모르게 내뱉어진 진심에 작게 놀라며 어색히 웃어보이자, 김종인이 내게 시선을 옮겨왔다. 살짝 굳혀진 표정에 입을 꾸욱 다물곤 잡고있던 손을 풀어 녀석의 팔에 팔짱을 꼈다. 우릴 발견한 건지, 곧이어 그의 시선이 나와 김종인에게로 꽂혀왔다.
"이야, 이놈들- 역시 같이 왔구나. 오세훈 그놈은 어째 얼굴을 한 번 안 비추냐. 같이 안 왔어?"
"같이 왔는데, 지금 형들이랑 놀고 있어요."
"놀고 있다고? 어디서?"
"저-기 로비에서요."
"웃긴 놈이네, 그거."
말투는 틱틱대면서도, 그의 얼굴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의 환한 표정에 덩달아 나까지 웃음이 지어졌다.
"아, 참. 부케는 네가 받아. 부케 받고 6개월 안에 결혼을 못하면 6년 동안 못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 헐, 그럼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인마. 6개월 안에 하면 되지. 군필자 남친도 옆에 떡하니 있는데, 뭐가 문제야?"
제법 진지하게 말을 늘어놓던 그가 김종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괜히 얼굴을 붉히던 김종인이 이내 헛기침을 두어 번 해보였다.
"혹시 몰라. 이미 종인이 머릿속엔 결혼식 준비과정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을지도."
"……."
"머릿속으로는 이미 열두 번도 넘게 식을 올렸을 거야."
"아, 그만 해요."
"하하, 요놈-. 쑥쓰럽구나?"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종인이 그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괜히 나까지 쑥쓰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랫입술을 꾸욱 물곤 애꿎은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로비에서 저들끼리 만담을 펼치며 놀고 있던 삼인방이 이쪽으로 모습을 비춰왔다. 우와, 대박. 내가 알던 보건쌤 맞아요? 대박이다, 대박이야. 아닌 것 같아.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던 오세훈은 다짜고짜 제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그들의 만담은 또다시 시작이 되었다.
*
결혼식은 매끄럽게 진행이 되었다. 꽤나 재치있는 사회자 아저씨의 멘트에 웃음을 빵빵 터뜨렸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얄궂은 그의 멘트 하나하나에 진땀을 흘리며 멋쩍게 웃어보이던 선생님의 모습마저 하객들에게 잔잔한 재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축가는 백현오빠-오빠라는 말이 어색하긴 했지만, 그게 아니면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 어쩔 수 없이-가 불렀다. 축가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장난 칠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 김종인, 오세훈과 같은 댄스 동아리였다던 그는 노래도 꽤나 잘 불렀다.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갖고 있다며 감탄을 내뱉던 내게 오세훈은, 네 옆옆 자리에 앉아있는 종대형도 엄청난 노래 실력을 갖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어째 김종인 주변엔 만능 엔터테이너들만 모여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까만 턱시도를 입은 신랑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신랑의 옆에 예쁜 부케를 들고 서있는 신부는 꽤나 단아하고 수수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둘의 뒷모습을 보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턱시도를 입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난, 턱시도를 입은 김종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김종인도 멋있겠지. 지금의 멋있음과는 차원이 다른 멋있음일까-. 정말이지 궁금했다.
'종이야, 저 드레스 어때? 완전 예쁘지.'
'응, 예쁘네.'
'나도 저런 드레스 입어보고 싶다-.'
'난 그게 좋아. 오프… 숄던가-.'
인상을 찡그린 채 솔직하게 말을 내뱉던 김종인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단어는 어디서 알아온 건지, 녀석의 입에서 '오프숄더'라는 전문용어가 나왔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한편으론, 녀석이 그런 취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조금은 쑥쓰러우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부케는 뜬금 없는 오세훈이 받게 되었다. 내 쪽으로 던지라며 은근슬쩍 귀띔을 해주던 선생님은 내게도 눈치를 주었고, 하는 수 없이 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높이 던져진 부케에, 내 바로 뒤에 서있던 오세훈이 그걸 받아내고야 말았다. 받자마자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여배우라도 된 양 환히 웃어보이던 녀석은 와아아-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찡그려 보이던 선생님은, 이내 못 말리겠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예정된 시간에 식이 끝나고, 맛있는 피로연 음식도 먹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마음껏 먹어야 한다며 허겁지겁 이것저것을 집어 먹던 오세훈은 배를 가득 채운 뒤에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쌤, 행복하게 잘 사세요. 미래에 생길 아이 이름은 세훈이로 하는 거 어때요?'
'정중히 사양할게.'
정말로 정중히 사양을 하던 선생님께선 오세훈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셨다. 신혼여행은 태국으로 정했다는 그의 말에, 오세훈 무리는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라며 제법 짓궂은 멘트를 날렸다. 덕분에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오로지 나와 김종인의 몫이었고,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나, 쉽게 집으로 향할 순 없었다. 이렇게 모두 함께 만난 것도 오랜만이니,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반강제로 이끌고 가는 삼인방 탓이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 됐잖아~'
'세훈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병신샷! 병신샷! 김종대 병신! 샷!'
'아, 은근슬쩍 김종대 병신 붙여서 말하지 말라고오!'
흡사 대학교 MT 때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았다. 오랜만에 갖는 술자리에서, 난 데자뷰를 경험하였다. 가장 적극적으로 향할 땐 언제고,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며 조용히 안주만 집어먹던 변백현오빠는, 술게임을 할 땐 정말이지 목소리가 커졌다.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무언가 계략을 꾸미는 듯하던 삼인방은, 대놓고 김종인을 공격했다. 무조건 김종인이 게임에서 지게 만들어 술을 마시게 했다. 술을 싫어할 뿐더러 잘 마시지도 않는 김종인에겐 정말이지 괴로운 벌이었다. 그러나, 김종인이 걸리지 않을 땐 거짓말처럼 내가 걸렸다. 그럴 때마다 김종인은 마시지 말라며 제가 대신 잔을 가져가 마셔주었고, 쓰디쓴 술을 넘긴 뒤엔 인상을 잔뜩 찡그려 보였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잔이 늘어갈수록 김종인의 발음 또한 어눌해지며 뭉개지기 시작했고, 제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든 듯 자꾸만 비틀거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 손을 꼬옥 잡고만 있던 녀석의 손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한 건지, 오세훈을 비롯한 나머지 두 명은 입을 꾸욱 다문 채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취한 사람은 김종인 뿐이었다. 아예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꼬옥 감고 있는 녀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내 행동에 덩달아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내 손목을 잡아오던 녀석이 나른하게 풀린 눈을 두어 번 꿈뻑이더니,
"어디 가는 거야? 우리 같이 가는 거…. 어? 뭐지? 뭐야아-?"
횡설수설 귀엽게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그런 김종인의 모습에, 삼인방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호호- 신나게 웃음을 짓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종인이 다시금 내게 시선을 옮겨왔다.
"… 형들 왜 웃는 거야. 왜 웃어여! 네?!"
"와, 이건 동영상 찍어야 돼. 얼른 찍어 봐요, 누가 좀. 김종인 이런 모습 처음이야…. 이건 'TV 특종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를 해도 될 것 같아요."
오세훈의 말에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들던 백현오빠의 행동을 제지하며 오세훈의 팔을 툭툭 쳤다. 나랑 김종인 좀 부축하자.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오세훈의 입가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먼저 갈게요, 형들. 나중에 또 봅시다. 쿨하게 인사를 건네는 오세훈을 따라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해보였다. 그리곤, 답답하기만 하던 술자리를 빠져나와 시원한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
다행히 버스는 금방 도착을 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김종인의 볼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잠을 깨우자, 녀석은 배시시 웃으며 내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춰왔다. 의도치 않게 이 모습을 봐버린 오세훈은 적나라한 음향 효과를 내며 토하는 시늉을 해보였고, 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김종인의 취한 모습이 궁금하긴 했지만, 이렇게 귀여울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잔뜩 꼬인 발음으로 횡설수설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인 술버릇 오늘 처음 보는데, 레알 이상함."
"… 그래도 너보단 낫지. 넌 진짜 이상하잖아. 막 물건 이것저것 하나씩 다 소개해주고-."
"그건 귀여운 거지."
"전혀…."
"전혀~"
빈 자리에 나와 김종인을 앉힌 뒤 틱틱거리듯 말을 내뱉는 오세훈에게 조곤조곤 따지며 대답을 했다. 그런 내게 얄미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더욱 얄미운 말투로 내 말을 따라하는 녀석의 모습에서, 변백현오빠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역시 스승은 스승이구나, 싶었다. 그리곤 골똘히 생각을 하는 듯싶던 녀석이,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든 김종인을 바라보다 다시금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김종인은 집에 어떻게 가지?"
"응? 네가 데려다 주는 거 아니었어?"
"난 바로 내 집 가려 했는데."
"… 야, 이러기야?"
"뭐, 왜. 어떻게 해야 현명하지? 얘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너도 집까지 데려다 주고?"
사실 혼자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다시금 박찬열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해 괜히 겁이 났다. 나를 바라보며 묻는 오세훈에게, 하는 수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심심한 사과의 멘트를 건넸다. 미안-.
"아니 뭐, 미안할 것 까지야…. 근데 어차피 이 버스 너희 집 앞에서 내리잖아. 넌 그냥 바로 내리면 되겠네. 내가 김종인 데리고 갈게."
"우리 함께 가기로 했어. 우리 같이 자."
자는 줄로만 알았던 김종인이 웅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잠결에 저도 모르게 한 말인지, 오세훈과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다 알맞은 타이밍에 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인지 제대로 파악은 할 수 없었지만, 제법 당황스러운 말이라는 건 확실했다.
"뭐야? 얘 자는 거 아니었어?"
"… 또 자는데…."
"야, 김종인."
"아, 자잖아…. 하지 마."
"김종인…! 야…! 병신…!"
"하지 말라니까!"
"알았어."
실실 웃으며 알았다 답하는 오세훈을 슬쩍 흘기곤, 다시 잠이 든 김종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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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늦은 저녁 시간에 왔습니다.. 다들 저녁 식사는 하셨겠죠? 전 탕수육을 먹었어요.. :) 맛있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참, 저 오늘 카몽을 다녀왔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오늘 날씨가 정말 푹푹 찌더라구요. 이런 날씨엔 나가지 않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다들 더위 조심하세요. 냉방병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름 감기는 정말 지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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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 퓨어 / 핑구
[ㅎ] 핫초코 / 해피 / 햄버거 / 행쇼 / 허니잼 / 형광등 / 호이호잇 / 훈훈 / 희망 / 히밤
[영어] DB / dprth8391 / HaMo / YUNE
[숫자] 0408 / 0616 / 0618 / 0622 / 1226 / 3관왕센 / 500원 / 84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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