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22 (특별한 오늘)
그날 이후 김종인은 정말 매일이다시피 찾아와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갔다. 언제쯤 갈게- 라며 미리 연락을 해온 뒤 찾아올 때도 있는가 하면, 아무 연락 없이 불쑥 찾아와 괜히 당황하게 만든 때도 적지 않게 있었다. 타이밍도 참 안 맞지-. 그럴 때면 난 꼭 샤워를 하고 있어, 급히 옷을 챙겨입은 뒤 녀석을 맞이해야 했다.
단 둘이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함께 끼니를 챙기고, 간단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특별히 하는 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LTE마냥 빠르게 흘렀다. 언제나 헤어짐이 아쉬운 만큼, 김종인은 간간이 잠도 자고 갔다. 편히 침대에서 자라는 내 말에도 녀석은 굳이 거실에서 자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같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커플 폰을 하자며 무심히 말을 건네오던 김종인은 다짜고짜 내 손을 잡은 채 휴대폰 가게로 향하곤 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걸로 해. 휴대폰까지 내 위주로 해주려 애쓰던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아이폰은 사용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탓에 약간 꺼려지긴 했지만, 예쁜 비주얼에 반해 하는 수 없이 아이폰을 선택해야 했다. 새 휴대폰이 아직 어색해 자꾸만 만지작거리며 낯설어하는 내 모습을 보던 김종인은 연신 웃음을 지어보였다. 휴대폰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모두가 한 마음이듯, 역시 나도 그러했다.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히 두 손으로 휴대폰을 다루었고, 딱딱한 바닥이 아닌 폭신한 침대나 소파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 건지, 김종인은 갑갑하다며 휴대폰 케이스를 끼지 않았다. 휴대폰에 조그마한 흠집이라도 날까 불안해하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종이야, 너 케이스 안 껴? 그러다 또 액정 깨진다니까?'
'갑갑해.'
아무리 잔소리를 해보아도 김종인은 요지부동이었다. 하여간, 고집 하나는 그 누구보다도 센 놈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김종인에겐 차가 한 대 생겼다. 부모님이 제대 기념으로 좋은 차 한 대를 장만해 주셨다며 수줍게 말하던 녀석의 얼굴엔 미소가 한껏 걸려 있었다. 사실 오세훈의 말에 따르면, 바로 얼마 전에 차가 생겼다던 김종인의 말은 작은 거짓말이었다. 녀석에게 차는 꽤나 예전에 생겼다 했다. 그럼 왜 거짓말을 한 거지. 왜 얼마 전에 생겼다 한 거지-. 의아하게 묻는 내게 오세훈은 답답하다는 듯 제법 신경질적인 어투로 답을 해왔다.
'그야, 그땐 초반이라 운전 실력이 젬병이었으니까. 혼자 운전 연습도 좀 해보고 운전대 잡는 게 익숙해지면 그때서야 너 태우고 다니려고 일부러 말을 안 했던 거지. 괜히 쪽팔리니까.'
'뭐가 쪽팔려?'
'아, 여친이 옆에서 떡하니 보고 있는데 운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겠냐고.'
다음 생엔 꼭 남자로 태어나서, 내가 굳이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않아도 네 스스로 모든 걸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길 바라. 남자는 어렵지 않아. 물론 나도 남자지만, 남자가 단순한 동물이라는 건 백 번 인정한다고. 제법 진지한 어투로 말을 건네오던 오세훈은 그 멘트를 끝으로 제주도로 사라져 버렸다. 방학이니만큼 백현오빠, 종대오빠와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말이다. 왜 김종인은 쏘옥 빼놓고 셋이서만 가는 거냐는 내 말에, 녀석은 얄밉게 답을 해왔다.
'지가 안 가겠다잖아요. 굳이 안 가겠다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전혀-.'
싱글벙글거리던 오세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면 제법 역사적인 날이었다. 김종인의 차를 처음 타보는 날이기도 하며, 김종인의 운전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날이기도 하며, 연인이 된 이래로 처음…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조만간 남자친구와 함께 집에 찾아가겠다며 말을 건네던 내게, 엄마는 꽤나 반갑게 답을 해왔다. 아무래도 첫 남자친구이기도 하고, 집에 남자친구를 데려온 역사가 없으니 엄마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남자친구'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라던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러했다. 맛있는 거 많이 해놓을게. 네 남친은 뭘 좋아한다니? 오히려 나보다 더욱 신이 난 듯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통통 튀었다.
"……."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를 줄은 몰랐는데, 벌써 오늘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막상 당일이 되니 잔잔히 심장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김종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박동은 더욱 빨라지는 것도 같았다. 나보다 더욱 떨리고 긴장이 되는 건 물론 김종인일 텐데 말이지-. 손바닥에 맺히는 땀방울들을 닦아내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 안을 배회하였다. 아마 부모님은 깜짝 놀라시겠지. 남자친구가 김종인이라는 걸 알면-. 내 남자친구가… 부모님끼리도 서로 친분이 있는, 꼬맹이 시절부터 함께 지내오던 김종인이라는 걸 알면-.
이런저런 잡생각을 지우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거울에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입술 색이 약간 연해진 것도 같아, 다시 빨갛게 색을 넣어주었다. 원피스의 치맛자락이 구겨졌는지 여러 번 확인하였다. 그리곤, 침대 위에 놓여있던 작은 클러치백을 집어든 뒤 천천히 방을 나섰다. 특별하고 중요한 날이니만큼 오늘은 하이힐을 신어야지. 뒤꿈치가 좀 까질지 몰라도 일단 예뻐 보이는 게 우선이니까-. 좁은 구멍에 발을 쏘옥 끼워넣곤 현관을 나섰다. 참, 박찬열은 그날 이후로 아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하지만 그도 안심할 수 없는 게, 잊고있으면 꼭 한 번씩 찾아오던 그였기에 항상 조금의 긴장은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전보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이었다. 아직 깔끔하게 끝이 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어딘가 모르게 찝찝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일단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
"……."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눈앞에 보여오는 얼굴에, 박찬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버린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까만 차에 기대선 채 어울리지 않게 애니팡 게임을 하고 있던 김종인의 시선이 내게 꽂혀옴과 동시에, '미션 성공!'이라는 게임 멘트가 들려왔다. 오늘도 시원하게 앞머리를 올렸네. 하얀 와이셔츠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는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 두 번 정도 걷어올린 소매는 또 왜이리 멋있는 거지.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들에 괜히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하고 있던 게임을 종료시킨 뒤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쏘옥 집어넣던 녀석이 내 어깨에 팔을 둘러왔다.
"오늘도 예쁘네."
김종인 전용 인사말과도 같은 말이었다. 녀석은 항상 같은 말로 나와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같았다. 한껏 꾸미고 녀석의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후리한 모습으로 녀석을 맞이할 때에도, 녀석은 항상 같은 말을 건네왔다. 오늘도 예쁘네. 예쁘다, 오늘. 이쯤 되니 김종인의 기준에서 '예쁨'이란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봐야지-. 마음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보이며, 녀석이 열어주는 조수석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다 조심스레 차에 올라탔다. 왠지 느낌이 묘하면서도 새로웠다. 이 차가 김종인의 차라 그런 건가, 아님 단지 내가 남자 차에 처음 타보는 거라 그런 건가…. 기분 좋은 떨림에 자꾸만 마음속이 소란스러웠다. 그저 입을 앙 다문 채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을 때, 녀석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 뭐야…. 완전 멋있다."
"어?"
"멋있어. 운전하는 거야, 운전? 김종인이 운전이라니…. 운전…."
"… 그런 말 하면 긴장돼서 못해."
어색히 웃으며 시동을 걸려던 김종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내게 시선을 옮겨왔고, 갑작스레 마주쳐진 시선에 고개를 갸웃해 보이며 볼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화장품이 덜 발렸나, 하며-.
"안전벨트를 매야지, 이 아가씨야."
"어? 아,"
묵묵히 나를 바라보던 김종인이 이내 틱틱대듯 말을 내뱉곤 내 이마에 아프지 않게 딱밤을 주었다. 별로 아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마를 살살 어루만지며 녀석을 흘겨보자, 내게 가까이 다가와 천천히 안전벨트를 매주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나도 모르게 숨을 흡- 하며 참게 되었고, 입술을 꾸욱 깨물게 되었다. 시선 처리는 뭐 어떻게 해야 하지-. 갈피를 잃어 이리저리 방황하기만 하는 눈동자, 애꿎은 커플링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 모든 게 다 어색하기만 했다.
"입술."
말끔히 안전벨트를 매준 뒤 씨익 웃어보이던 김종인이,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엔 녀석의 작은 터치에도 몸을 움찔하게 되었다. 깨물지 마-.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어색히 웃어보이곤 잠시나마 깨물고 있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녀석이 제 입술을 맞춰왔다. 뽀뽀라 하기엔 진하고, 키스라 하기엔 약한, 애매하기 그지 없는 입맞춤이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오는 느낌이 간지러우면서도 야릇해 먼저 입술을 뗀 건 내 쪽이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다 못해 이젠 은근한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장소가 차 안이라 그런 것일진 몰라도-.
"… 화장했는데."
손거울을 들어 살짝 번진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런 날 바라보며 작게 웃어버리던 김종인은 이내 시동을 걸었고, 뒤이어 쑥쓰러움이 밀려오는 건지 두어 번 헛기침을 해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팔뚝엔 얇은 힘줄이 드러나 있었다. 옆모습도 잘생겼다는 건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지만, 오늘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종이야,"
"응."
"너 완전 멋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멋있다니까."
"… 하지 마. 떨려서 운전 못한다니까."
"쳇."
이상하게도, 김종인은 칭찬에 너무나 약했다. 멋있어, 잘생겼어, 귀여워, 라는 말에 녀석은 꽤나 쑥쓰러워했다. 물론 녀석을 향해 건네는 말들이 사실인 것도 맞았지만, 녀석의 귀여운 반응 탓에 일부러 말을 꺼내던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만약 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토라질 게 뻔하기에 꽁꽁 숨겨야 했다.
"종이야,"
"응."
"조수석에 앉은 사람, 내가 처음이야?"
"아니."
"… 그럼?"
"오세훈."
"아…."
다시금 오세훈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운전 실력을 기르기 위해 조수석에 오세훈을 태운 채 몰래 운전 연습을 했을 김종인의 귀여운 모습까지 덩달아-. 그 생각을 하자 살풋 웃음이 터졌다. 그런 날 보며 작게 고개를 갸웃해 보이던 녀석은 다시 운전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운전 실력이 어땠는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녀석의 실력은 제법 매끄러웠다. 이런 모습에 도대체 누가 안 반할까 싶었다. 아마 안 반하는 여자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겠지. 문득 치민 생각에 괜한 우울함이 느껴졌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앞을 뚫어져라 응시한 채 핸들을 움직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종인아,"
"응."
"만약에, 여자 후배나 선배들이 차 좀 태워달라 접근하면 무조건 싫다 해야 해. 알았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짓던 김종인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알았지? 대답이 듣고 싶어 다시금 묻자, 녀석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왜."
"막 술 취한 척… 아니, 진짜로 취하게 마셔놓곤 너한테 데려다달라 수작 부리는 여우 같은 여자들이 꼭 한두 명은 있을 것 같아서…."
"왜 나한테 굳이."
"네가 인기쟁이니까."
"인기쟁이?"
"그래, 바보야."
"어차피 애인 있잖아."
"여우 같은 여자들은 애초에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니까? 난 불안해 죽겠어."
"왜 불안해. 안 그럴 거라는 거 알잖아."
"알지만…. 막 엄청 귀여운 후배나 섹시한 선배가 태워달라 해도 절대! 저얼-대 안 돼! 알았지?"
"어쭈, 당연하지. 걱정 마."
연신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김종인을 흘끗 바라보다 작게 헛기침을 했다. 80퍼센트 안심은 되는데, 그래도 아직 뭔가 부족했다. 물론 안 그러겠다 다짐하지만, 착해 빠진 김종인은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한 송민희를 그냥 두지 못하고 모텔까지 데려다주던 모습만 봐도….
"우리 연습하자."
"연습?"
"응. 상황극을 해보는 거야."
"뭐 어떻게."
"내가 귀여운 후배 역할을 할 테니까, 네가 잘 대처를 해 봐. 알았지? 딱 그 상황이라 생각해야 해."
"뭐야, 그게."
웃음기가 섞인 김종인의 목소리에,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해사하게 웃어보이며 녀석의 옷 끝을 잡아당겼다. 마침 신호등은 빨간 불. 묵묵히 신호를 기다리던 녀석이 슬쩍 고개를 돌려 내게 시선을 옮겨왔다. 그런 녀석을 빤히 바라보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종인 선배님! 저 집까지 가려면 꽤 걸리는데, 오늘만 태워다 주시면 안 돼요?"
"… 그래."
"… 뭐야! 그래라니!"
"너라서 그래. 집중이 하나도 안 되잖아. 귀여운 후배는 커녕, 그냥 너 같아. 태워다 줄게, 여친."
"… 아니, 그게 아니라…. 다시 다시! 나라고 생각하면 안 돼. 진짜 그 상황에 닥쳤다 생각하고, 진지하게-."
"알았어."
귀찮을 법도 한 내 요구에 고분고분 응해주며 자꾸만 웃음을 지어보이던 김종인이 운전대에 팔을 기댄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다시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종인 선배, 저 취했는데… 집 앞까지 좀 태워다 주시면 안 될까요?"
"아까랑 대사가 달라."
"……."
"……."
"선배~ 오늘 하루만 태워다 주세요! 네?"
"버스 타고 가."
"버스 오려면 멀었어요…. 제발요…. 저 많이 취했는데…."
"……."
"태워다 주시면 안 돼요? 정말?"
"… 못하겠어."
묵묵히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작게 읊조리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푸스스 웃으며 내 손을 깍지 껴 잡아온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웃음을 터뜨려 보이자, 내 손등에 짧게 입을 맞췄다 뗀다.
"귀엽잖아, 너무."
"후배긴 후밴데, 귀여운 게 컨셉이야."
"집중이 하나도 안 돼."
"……."
"넌 무슨, 연기자야? 이런 연기를 왜이리 잘해? 나 몰래 남자 선배들한테 막… 그러진 않겠지."
"… 전혀."
"또 해야지."
"뭘?"
"귀여운 후배는 했으니까, 다음은 뭐더라-. 섹시한 선배였나."
"… 아…."
"섹시한 선배 해줘."
"… 아니야…. 못해…."
장난스레 말을 건네오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어색히 고개를 저었고, 그런 내게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녀석은 다시금 운전대를 잡으며 지그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
벌써 도착한 집 앞. 제법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집을 올려다보며 말간 미소를 지어보였다. 항상 아침마다 집 앞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며 나를 기다리던 교복 입은 김종인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고, 1분이라도 늦을 시엔 짜증 아닌 짜증을 내보이던 김종인의 찡그린 표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매번 틱틱거리며 장난만 쳐오던 남사친 김종인은 어디 가고 다정하기만 한 남친 김종인이 나타난 건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틱틱거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큰 다정함에 가려진 탓일까, 예전 그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풋풋하기만 하던 내 모습과 김종인의 모습을 찬찬히 떠올리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은 물론 더 행복하지만, 그때도 지금 못지 않게 행복했는데…. 물론, 입시다 뭐다 여러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
"……."
빈 손으로 갈 순 없다며 근처 마트와 꽃집에 들러 과일 바구니와 작은 꽃 바구니를 구입한 김종인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묵직한 과일 바구니의 손잡이를 꽈악 쥔 손이 작게 떨리는 것도 같다면 내 착각일까-.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하는지, 녀석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떨려."
작게 내뱉어진 말에 배싯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종인이 떨려하는 만큼, 나도 그러했다. 태어나 처음 사귄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는 것이라 그런지, 자꾸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벽에 기대선 채 손을 가슴께에 얹곤 크게 심호흡을 하던 녀석이 내게 시선을 옮겨왔다. 김종인이 이렇게 긴장을 할 때도 있다니. 김종인이 이렇게 안절부절 못할 때도 있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다. 자주 본 적 없던 녀석의 새로운 모습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의미 모를 희열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 어디 이상한 데 없지. 머리는 어때. 괜찮아? 안 헝클어졌어?"
뭐가 그리 걱정인 건지, 김종인은 내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 질문들을 늘어놓기 바빴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말을 건넨 뒤 어깨를 토닥여주자, 그래도 아직 불안한 건지 제 휴대폰을 꺼내선 까만 화면에 제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어 보기 시작한다. 멋있다니까 그러네-. 웃음 섞인 어조로 말을 건네자, 이내 한숨을 포옥 내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이제 초인종을…."
"… 너희 부모님이 엄청 놀라시겠지. 남자친구가 나인 걸 아시면-."
"좋아하실 거야."
배싯 웃으며 답을 하곤 조그만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튼을 눌렀다. 띵동-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심장에 불이라도 떨어진 양 괜히 마음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네네, 나가요-. 안에선 신이 난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시각은 정확히 저녁 6시 57분. 잔잔한 떨림 탓에 지금 이 순간 또한 배고픔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두근두근,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왔어?"
서서히 문이 열렸고, 틈 사이로 엄마의 환한 얼굴이 보였다. 안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나를 꼬옥 안아오며 등을 토닥여주던 엄마의 시선이 이내 뒤 쪽으로 옮겨졌다. 묵묵히 힐을 벗으며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얼마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일까, 얼마나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일까, 싶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내 뒤에 서있던 김종인이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종인이?"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건지, 엄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이내 과일 바구니와 꽃 바구니를 건네오는 김종인의 행동에, 그녀는 머쓱히 그것들을 건네 받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남자친구입니다."
김종인의 한 마디에 그저 멍하니 서 놀란 표정만을 내비치고 있던 엄마가 박수를 두어 번 쳤다.
"어머, 웬 일이야…."
"……."
"세상에…. 둘이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어머, 세상에. 종인아! 내가 알던 종인이 맞아? 얼마 전에도 너희 엄마 만났어. 같이 장도 봤는데~"
김종인의 팔을 툭툭 치며 연신 웃음을 지어보이던 엄마가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해보였다. 역시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아마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하긴, 어떻게 예상을 하겠어.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아버님, 안녕하세요."
거실 소파에 앉아 구겨진 신문을 두어 장 넘겨가며 정독을 하고 있던 아빠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는 김종인을 따라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원래 신문 같은 걸 별로 읽지 않는 아빠라는 걸 알기에, 지금의 모습은 특별한 오늘을 위해 사알짝 꾸며낸 모습인 게 분명했다. 특히, 그는 새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브랜드의 피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하면서 속으론 은근 신경을 쓰고 있었던 듯했다. 집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꾸민 상태로 우릴 기다리고 계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배고프지? 벌써 밥 다- 차려놨어. 식기 전에 얼른 밥부터 먹자."
김종인의 팔을 이끌며 발랄한 어투로 걸음을 옮기던 엄마가 이내 내게도 손짓을 해보였다. 어째 딸인 나보다 남자친구인 녀석을 더 챙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애매모호한 감정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녀가 나만큼 김종인을 잘 챙겨주고 위해주는 모습이 정말이지 보기 좋았다. 앉아, 앉아-. 녀석의 의자를 빼주며 얼른 앉으라 말하는 그녀의 살가운 모습에 살풋 웃음이 터졌다. 이건 과장이지만, 넓은 식탁 위를 가득 채운 많은 음식들 탓에 식탁 다리가 부러질 것도 같았다.
"참… 볼수록 신기하다. 맨날 투닥거리고 잘만 싸우더니, 둘이 연애를 해?"
"… 아, 엄마는 무슨…. 맨날 싸우진 않았는데…."
"가시나야, 너 종인이 어떻게 꼬셨어?"
"꼬시다니…."
"꼬신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퐁당 빠진 거죠."
"어머, 얘네 좀 봐…."
못 말린다며 하하호호- 웃음을 지어보이던 엄마가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발라 김종인의 밥그릇 위에 살포시 올려주었다. 여보, 나도-.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던 아빠가 엄마를 향해 밥그릇을 내밀어 보였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직 김종인만을 향해 있을 뿐이었다.
"둘이 언제부터 사겼어? 오래 됐나? 참, 어떻게 다시 만났어? 만날 기회가 있었어? 학교도 다르고, 이젠 둘 다 자취도 하는데…."
"… 엄마, 그러다 김종인 체해."
"꽤 됐어요, 사귄 지는. 다시 만난 건 제가 군대 갔다 와서요. 보고 싶어서 먼저 연락을 했죠, 좀 만나자고-."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늘어놓는 그녀의 모습에도 당황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던 녀석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조곤조곤 대답을 꺼냈다. 이건 마치 톱스타 김종인의 인터뷰 현장과도 같았다. 하얀 쌀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 입에 넣곤 오물거리며 김종인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은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어보인다.
"참, 우리 딸한테 엄청난 꿈이 하나 있는데…."
묵묵히 국을 떠먹던 아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무슨 의미를 담고있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입 안에 한가득 든 밥을 오물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뭔데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혀로 제 입술을 훑던 김종인이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다시금 그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결혼하면 자기 자식들로 축구팀을 만들고 싶다 했거든.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게 걱정이 됐었나, 결혼하면 꼭 아이를 많이 낳아 낮은 출산율에 이바지를 하겠다고 했는데…."
"……."
"자네, 자신 있나?"
"… 네? 아,"
아무렇지 않게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는 그를 바라보며, 제대로 씹지도 않은 음식물을 꿀꺽 삼켜버렸다. 아주 철이 없던 중학생 시절, 뭣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꺼내놓았던 말을 아빠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 말을 김종인에게 그대로 전해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자신 있냐는 그의 물음과 함께 생겨나는 창피람이란 창피함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김종인 또한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긴 충분했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모습을 내비치는 듯싶던 녀석은 애꿎은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쭈뼛거리듯 작게 대답을 읊조렸다.
"어머니가 보약 같은 거 자주 챙겨주셔요."
김종인의 제법 진지한 멘트에, 집 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나만 지금 이 상황이 민망하고 쑥쓰러운 건가 싶었다. 다들 웃는데, 나만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밥을 떠먹고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민망함이 밀려오는 건지, 녀석 또한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뜨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짓궂은 농담은 끊일 줄을 몰랐다. 밥을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조차 모르겠을 만큼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하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와, 과일 싱싱한 거 봐. 우리 딸 남자친구가 사온 거라 그런가? 과일들이 되게 맛있어 보이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목소리는 한없이 밝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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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뎨둉해요.. 여러분.. 저 다음 주 개강입니다.. 이젠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그래도 최대한 자주 오도록 노력은 해볼게요.. 또륵.. 아, 너무 우울해요..
개강 꺼우져..☆
아 근데 우리 언제 20화 넘었대요? (감격) 이대로 쭉쭉 나가 봅시다..
완결이 어디일진 아직 저도 모르겠.. 적어도 30화는 아닐 듯하네요..ㅎㅎㅎ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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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 퓨어 /핑구
[ㅎ] 핫초코 / 해피 / 햄버거 / 행쇼 / 허니잼 / 형광등 / 호이호잇 / 훈훈 / 희망 / 히밤
[영어] DB /dprth8391 / HaMo / YUNE
[숫자] 0408 / 0616 / 0618 / 0622 / 1226 / 3관왕센 / 500원 / 84니니
[특수문자] #두근
분명 암호닉을 신청한 것 같은데 목록에 내가 없다, 하시는 분들 몇몇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아마 암호닉 정리할 때 자기 암호닉 언급을 안 해주신 분들이거나, 제 실수로 누락되신 분들입니다.
난 분명 15화에 암호닉생존신고or신청을 했는데 누락됐다, 하시는 분들 계시다면 꼭 말해주세요 :)
당분간 암호닉 신청은 받지 않을 생각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