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21 (내 사람)
"네, 선배. 개강 날 봐요. 방학 잘 보내시구요."
손을 세차게 흔들며 인사를 건네오던 여자 선배에게 덩달아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도대체 방학은 언제 오는 거냐며 평소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곧이어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두 달 남짓하는 여름방학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치러진 기말고사의 평균 난이도는 '중'이었다. 성적이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후회는 조금도 없었다. 딱 공부한 만큼 나오겠지. 점수가 예상보다 낮게 나온다면, 그건 내가 노력을 덜 했다는 거겠지. 결과가 어떻든간에 후회는 없었다. 겸허히 받아 들여야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으니-.
"……."
이내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 버스카드를 찍곤 딱 하나 남아있는 빈 자리로 가 털썩 앉았다. 원체 서서 가는 걸 편하게 여기는 타입인 건지, 내 옆의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남성은 빈 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서있기만 했다. 덕분에 남은 빈 자리는 내가 앉게 됐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별거 아닌 것에도 자꾸만 주변 눈치를 보며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때가 많은 난, 이럴 때 보면 참 소심한 성격인 것도 같았다. 머릿속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하는 생각들을 애써 지워내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역시 휴대폰 화면은 깨끗했다.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둔 사과머리의 김종인 셀카 사진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오늘은 금요일. 연락을 안 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나와 동일하게 김종인 또한 오늘 치러진 시험을 끝으로 내일부터 기나긴 방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한 건 많은데, 막상 물을 방법이 없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우리.
저번 주 금요일,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거라곤 차게 식은 거실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이었다. 지난 밤 거실 소파에 쭈그리고 누운 채 잠이 들어버릴 줄은 몰랐는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 지쳤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소파 위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아무것도 덮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내 몸 위엔 얇은 이불 하나가 덮여 있었다. 공강인 나완 달리 학교에 가야 하는 김종인은 벌써 집에 가버린 건지,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종인은 결국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잠이 들기 전까지도 나와 녀석 사이엔 냉랭한 분위기만이 감돌았고, 서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아 영양가 있는 대화조차 시도되지가 않았다.
'… 종인아, 집에 안 가?'
'응.'
애꿎은 쿠션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묻던 내 목소리와, 딱딱하기 그지 없던 김종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차가운 어투와 목소리였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다시금 눈물이 핑 도는 것도 같았지만, 애써 꾸욱 참으며 속으로 한숨을 짓곤 했다. 그날 밤은 당연하듯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고른 숨을 내뱉던 김종인은 잠이 든 건지 아직인 건지 파악조차 애매했고, 나는 밤새 숨 죽여 또다시 울음을 토해내야만 했다. 미안한 감정이 듦과 동시에 저 깊은 곳에서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치밀기 시작했다. 물론 백 번 내가 잘못한 건데, 한 번만이라도 안아주지…. 날 네 품 안에 딱 한 번만 가두어주지. 머릿속을 지배하던 불안한 생각도, 네 따스한 포옹 하나면 난 금세 잊어버릴 수 있는데. 그냥 따뜻하게 한 번만 안아주지. 나 너무 불안했는데, 나 너무 무서웠는데…, 혼자-. 닿지도 않을 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속으로 녀석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게 되었다.
밤새 눈물을 펑펑 쏟아낸 탓에 결국 눈이 팅팅 부은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언제 써놓고 간 건지, 테이블 위엔 작은 포스트잇 하나가 붙여져 있었다. 어떤 문구가 적여있는 건지 아직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떨림이 느껴졌다. 사실, 포스트잇만 봐도 나도 모르게 치가 떨렸다. 이 모든 건 당연 박찬열 때문이겠지. 과연 언제까지 트라우마로 남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 기간이 결코 짧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붙여져 있던 포스트잇의 문구를 확인하자마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어느새 박찬열의 글씨체가 머리에 익은 건지, 테이블 위 포스트잇의 글씨체는 그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그게 김종인이라는 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귀찮아도 밥을 꼭 챙겨 먹으라는, 매우 간단한 내용의 문장이었다. 원래 아침 밥을 챙겨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마음에 찔려 조금이라도 밥을 떠야 했다. 배터리와 분리가 된 휴대폰은 정말이지 볼품이 없었다. 그나마 여분의 배터리가 하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난….
그리고 그날은 하루종일 김종인과 연락이 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것처럼, 녀석도 먼저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매일이다시피 하던 연락이 갑작스레 뚝- 끊겨서 그런지, 내심 섭섭함과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하루종일 방 안에 콕 박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시험 공부를 억지로 하고만 있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난 당연하듯 밥도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배는 고픈데 밥은 없고…. 정말이지 짜증이 나면서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가디건 하나를 걸친 채 집을 나서야 했다. 늦은 시간에 홀로 집 밖을 나서기가 조금은 무서웠지만, 애써 괜찮을 거라 합리화를 하며 꾸욱 참고 현관 문을 열었다. 그 때, 바로 앞에 놓여있던 건지, 문에 부딪힌 채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페트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약간의 충격으로 인해 액체의 표면엔 작은 거품이 생겼다. 이건 또 누가…. 순식간에 밀려오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고자 입술을 꾸욱 깨물곤 음료를 집어들었다. 비타민 음료였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더욱 불을 지피기라도 하듯, 음료의 뚜껑엔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박찬열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떨리는 마음으로 문구를 읽어내렸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글씨체에 다시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 공부 열심히 해. 너무 무리하진 말고 가끔 쉬기도 하면서. 당분간 연락 안 될 거야. 휴대폰 망가졌어. 급한 일 있으면 오세훈 통해서 연락해. 곧 보자, 우리. -
공부 열심히 해. 휴대폰이 망가져서 연락이 안 돼. 곧 보자. 직접 얼굴을 보며 전해줬더라면 더 좋았을 걸.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을 고쳤다. 김종인은 지금 내게 무척이나 화가 나있다. 별로 보고 싶지 않겠지. 안 보고 싶겠지. 어쩌면 나만 보고 싶은 것일 수도-.
*
혼자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버스는 어느새 내려야 할 장소에 다다라 있었다.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다 나도 모르게 정거장을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황급히 벨을 눌렀고, 버스에서 내려 딱딱한 땅을 밟았다. 맞다. 방학이지. 이제 남는 게 시간일 텐데, 내일 아침엔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에나 가 볼까. 그 전에, 오늘 저녁은 뭘 먹지. 냉장고 안이 텅텅 비었을 텐데 마트에 가서 장이나 보고 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진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
그렇게 얼마 안 되는 계단을 다 올랐을 때, 반가운 얼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일주일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지, 계단에 털썩 앉아선 무릎을 받침으로 삼아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김종인이 벌떡 일어나 내게 시선을 옮겨왔다. 꽤나 오랜만인 얼굴을 마주하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 언제 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한 채 김종인의 품에 꼬옥 갇혀버렸다. 성큼성큼 다가와 조금의 틈도 없이 제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아오는 녀석의 행동에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갈피를 잃은 채 허공에 놓여만 있던 손으론 녀석의 하얀 티셔츠 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내 뒷통수를 감싼 채 더욱 세게 안아오는 녀석은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뱉었다. 가슴 부근에선 빠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 김종인."
"……."
"… 종인아."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김종인의 등을 몇 번 쓸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아래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황급히 녀석에게서 떨어져야 했다. 이러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분명 흉을 볼 게 뻔했다. 녀석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윗입술을 꾸욱 물곤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띠리릭-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렸고, 녀석의 손을 붙잡은 채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현관 문이 닫힘과 동시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
"……."
그저 입술을 꾸욱 다물곤 침을 꼴깍 삼켰다. 작게 인상을 찡그린 채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김종인은 이내 운동화를 벗은 뒤 안으로 발을 디뎠다. 내 손을 꼬옥 잡은 채 안으로 이끄는 녀석으로 인해 덩달아 신발을 벗어 안으로 발을 들여야 했다. 제법 어두운 거실을 환히 밝히기 위해 손가락을 뻗어 스위치를 눌렀다.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시험 잘 봤어?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 일상적인 말조차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잡고있던 녀석의 손을 어색히 놓곤 먼저 소파에 살포시 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이 덩달아 옆 자리에 털썩 앉더니, 이내 다시금 내 손을 깍지 껴 잡아온다.
"… 나한테 할 말 없어?"
길게 이어지던 침묵을 깨듯, 김종인의 낮은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꼬옥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더이상 아무런 말을 않는 녀석의 표정엔 어떠한 감정이 깃들어있는 건지, 조금도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녀석이 건네온 한 마디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에 알맞은 답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 미안해."
"말고."
"… 잘못했어."
"말고."
"… 보고 싶었어."
꺼낼까 말까 한참이나 고민하고 고민하던 한 마디를 결국 입밖으로 내보냈다. 전하고 싶은 말은 당연하듯 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었다. 보고 싶었어. 겨우 일주일 보지 못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연인들이라면 분명 어이없다 여기겠지만, 내게 김종인이 없는 일주일이란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전한 진심을 녀석이 들었을까. 묵묵히 내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는 녀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많은 생각으로 뒤덮인 머릿속이 복잡해,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녀석의 손에 꼬옥 붙잡힌 손엔 슬슬 땀이 찼다.
"……."
"……."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다시금 김종인이 나를 꼬옥 안아왔다. 뒷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던 녀석의 큼지막한 손이 이내 살포시 등에 놓였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작게 등을 토닥여주던 녀석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샴푸 향에 정신이 혼미해져 올 때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
"그 때 화내서 미안해."
"……."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사과하는 것도 미안하고,"
"……."
"그동안 얼굴 한 번 안 비췄던 것도 미안해."
"……."
"핑계 같겠지만, 일부러 너 방해 안 되게 하려고 보고 싶던 것도 다 참고… 그랬던 건데."
"……."
"그냥, 내가 다 미안해."
"……."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
"내가 왜 그랬지, 왜 화를 냈지, 왜 안아주지 않았지."
"……."
"미안해. 진짜 미안해."
"……."
"이제 괜찮아. 나 있잖아."
잔잔한 토닥임이 멈추었다. 한동안 내 등에만 머물러있던 김종인의 손이 다시금 내 뒷통수를 쓸었다. 부드럽게 들려오는 말 몇 마디들을 속으로 되새기며 손을 들어 눈물을 대충 닦아냈다. 미안한 건 오히려 난데 왜 네가 사과를 하는 거지. 넌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그동안 그런 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꾸욱 다문 채 겉으론 조금도 티를 내지 않은 내가 잘못인데. 내게 모든 잘못이 있는 건데. 왜 네가 미안하다 하지. 정작 잘못한 건 난데….
"미안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어."
"……."
"혼자 마음 고생 많았지, 그동안."
"……."
"몰라줘서 미안해."
"……."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불안해 하지 마. 귓가에 쏘옥 박히듯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 짧게, 혹은 길게나마 있었던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내 SNS를 몰래 엿보며 알아낸 정보들로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안겨주던 박찬열, 여러 포스트잇들, 여러 번호로 주기적으로 오던 수많은 연락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던 내 모습, 그런 내 모습에 화를 내던 김종인의 모습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기억들에 다시금 감정이 북받쳤다. 몰라줘서 미안하다는 말이 왜이리 슬프게 들려오는 건지 모르겠다. 말을 안 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지. 겉으로 조금도 티를 낸 적이 없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뭐가 그리도 미안해…. 다짜고짜 화를 내던 네게 약간의 서운감이 느껴졌던 건 사실이지만, 이건 애초에 내 잘못인 걸-.
"… 종인… 종인아…,"
"응."
"…미안해, 말 안 해서. 혼자 꽁꽁 숨기고 있던 거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계속해서 괜찮다며 나를 달래오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욱 조곤조곤, 부드럽게 들려왔다. 내 눈물로 흠뻑 젖은 김종인의 티셔츠가 꽤나 축축했다. 괜찮다는 말 한 마디가 내겐 크나큰 위로로 다가왔다. 거짓말처럼, 그 한 마디에 불안하던 마음이 한결 진정이 되었다. 어쩌면 난 다른 말 필요없이 그 한 마디만을 바라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다 괜찮다는 짧은 문장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녀석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실컷 울음을 쏟아낸 탓에 코가 살짝 시큰했다.
"누구 여잔지 우는 얼굴도 예쁘네."
능글맞게 해오는 말이 꽤나 쑥쓰러워 애써 못 들은 척을 해보였다.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지만,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의도로 건넨 짓궂은 멘트인 듯했다. 김종인의 엄지손가락이 내 눈가를 훑고 지나갔다. 그만 울어-. 제 손가락에 묻은 눈물을 대충 제 옷에 닦아내던 녀석이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 있는데 왜 자꾸 울어. 속상하게-."
"……."
"뽀뽀할 거야, 계속 울면."
"……."
"어쭈, 하고 싶구나."
장난스레 말을 내뱉곤 씨익 웃으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김종인을 슬쩍 밀어내곤 다시금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그런 내 행동에 의미 모를 충격을 받은 건지, 허공을 바라보며 묵묵히 눈을 꿈뻑이고만 있던 녀석이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하기 싫구나.
"……."
"……."
잔뜩 빨개진 볼을 어루만지다, 옆에 놓인 쿠션을 집어들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도 같았다. 그런 내 옆에 앉아 일정한 간격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던 김종인이 다시금 손을 깍지 껴 잡아왔다. 내 손등을 위로 향하게 한 채 다른 쪽 손으로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던 녀석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누가 봐도 조심스러워하는 듯 보이는, 꽤나 진중한 목소리였다.
"내가 그때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지."
"… 그때? 아…,"
"오세훈한테 문자 보냈었다며."
"… 응. 너무 급해서…."
"오세훈이 알려줘서 온 거야. 집에 가봤는데 아무도 없더래."
"……."
"그 소릴 듣자마자 막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거야. 안 좋은 쪽으로-."
"……."
"박찬열…, 언제부터 찾아왔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어오는 김종인을 흘끗 보았다. 언제부터였지. 언제부터였더라-. 찬찬히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정확히 언제라고 떠오르는 날은 없었다. 그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녀석을 바라보자, 푸스스 웃으며 내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어온다. 잘 모르겠어? 부드럽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젓곤 입술을 뗐다. 그냥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말해줘야지. 더이상 숨길 이유도, 감출 필요도 없으니 다 말을 해줘야지. 더이상 혼자 감춰두지 말아야지.
"어…,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계속 찾아왔어. 집 앞에…."
"뭐?"
"그러다 말 줄 알고 그냥 무시했는데…, 점점 심해지더라고."
"……."
"근데 그러다 잠잠해지긴 했어. 그래서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부터 또다시…."
"……."
"박찬열이 내 SNS를 몰래 엿보고 있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아. 어떤 게시물을 좋아했는지,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다 알고 있었어."
"……."
"우산도 사다줬고, 감기약이랑 아이스크림도 사다줬어. 포스트잇에 간단한 문구까지 적어서."
"……."
"그게 너무 소름이 끼치는 거야. 너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혹시 박찬열이 아무 잘못 없는 너한테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
"그냥 네가 나 때문에 걱정을 하는 게 싫었어. 마음 고생을 해도 나만 하면 되지, 너까지 힘들게 만들긴 싫어서…."
슬쩍 김종인의 눈치를 보며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았다.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묵묵히 내 말을 듣고만 있던 녀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덩달아 한숨을 내쉬곤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오른쪽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떨어졌다.
"그래도 그렇지. 혼자 끙끙 앓고 있는다 해서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잖아."
"……."
"속상해. 마음 찢어질 것 같아."
"……."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슬프다, 나는."
"……."
"앞으론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 알았지."
"… 응."
"걱정 안 해도 돼. 나 있잖아. 항상 옆에 있을게."
"… 알았어."
"뽀뽀."
연신 내 손을 만지작거리던 김종인이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이럴 때 보면 참 뽀뽀 귀신 같았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 슬쩍 다가가 황급히 입을 맞추곤 떨어졌다. 빛보다도 빠른 짧은 입맞춤에 작게 웃음을 짓던 녀석이, 이내 내 무릎을 베개 삼아 머리를 기대왔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건네오기 시작한다.
"나 오늘 자고 갈게."
"… 응? 아, 그래."
"○○아,"
"응?"
"방학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나 여기서 살까."
"……."
"아님, 내 자취방에서 같이 지내든지."
"……."
"아직까진 내가 불안해서 그래. 박찬열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잖아."
"……."
"당분간 같이 살까, 나랑."
제법 진지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입을 앙 다물고만 있을 때, 김종인의 시선이 내게 꽂혀왔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애써 고개를 젓곤 작게 답했다. … 괜찮은데, 난. 두 달 남짓하는 기나긴 방학 동안 단 둘이 낮과 밤을 함께 보낸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녀석을 힘들고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탓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날 묵묵히 바라보던 녀석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좀 그런가."
"……."
"그럼 자주 찾아올게. 매일 출석 도장을 찍을까."
피식 웃음을 짓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배싯 웃어보였다. 이렇게나 날 생각해주고 있다는 게 내심 감동이었다. 말론 쉬이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고마움에, 그저 입술을 달싹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왜이리 울음이 헤픈지 모르겠다. 녀석이 건네오는 모든 말들은 자꾸만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내가 이리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의 내 모습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더듬거리듯 녀석의 뺨을 어루만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손을 부드럽게 맞잡은 녀석이, 이내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춰왔다.
"… 휴대폰은 어쩌다 망가진 거야? 그때 떨어뜨려서?"
"버스에서 또 떨어뜨렸어."
"… 바보."
"바보라니."
"바보지, 그럼."
"같이 휴대폰이나 바꾸러 갈까. 커플 폰 하자."
"커플 폰?"
"응. 같은 휴대폰."
'휴대폰'이라는 단어에 문득 잊고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터리 하나를 가져가버린 박찬열 탓에, 어쩔 수 없이 여분용 배터리에만 의지한 채 힘겹게 휴대폰을 사용해야 했다. 그게 너무도 불편하게 느껴져 시험이 끝난다면 꼭 새 것으로 바꾸러 가겠노라, 여기곤 했는데 마침 이렇게 말을 꺼내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커플 폰이라니. 내가 너랑 커플 폰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 좋아, 커플 폰."
수줍게 답을 하자 피식 웃으며 다시금 내 손바닥에 쪽- 하며 입술을 맞췄다 뗀다.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간 입꼬리가 한없이 예뻤다. 감았다 떴다 할 때마다 선명해지고 옅어지는 쌍꺼풀 라인 또한 예뻤다. 내 손을 꼬옥 잡고있는 큼지막한 손은 제법 남자다웠다. 나중에 핸드크림 하나 사줘야겠네. 손이 많이 거친 것 같아-.
"아, 맞다."
"응?"
"도경수 만났어, 얼마 전에."
"… 도경수?"
내 물음에 김종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수를 만났다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녀석이 그의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 또한 놀랍게 느껴졌다. 원체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터라 박찬열이 박열찬인지, 송민희가 송희민인지도 꽤나 헷갈려하던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수라는 이름은 똑똑히 기억을 하고 있었다. 흔한 성씨가 아니라 그런 건가. 아님, 그냥 단순히 이제 이름을 잘 외우게 된 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생각들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던 찰나, 다시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사람 같아. 무뚝뚝하긴 해도."
"……."
"학교에선 그 선배가 챙겨줄 거야. 본인이 직접 그랬어. 나 없을 땐 자기가 알아서 잘 챙겨주겠다고."
"……."
"아직, 불안해?"
부드럽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저었다. 불안감이 아예 사라졌다곤 물론 할 수 없지만, 마음이 한결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내 주변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하지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있는 도경수 선배, 이젠 비밀도 공유할 수 있을 듯한 오세훈, 그리고…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 자체로도 내게 힘이 되는 가장 소중한 김종인까지-. 전부 내 사람들이었다. 이젠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이었음 좋겠다. 좋은 일들만 펼쳐졌음 좋겠어. 나에게도, 너에게도-.
"종이야."
"응."
"나 막 귀찮게 굴 수도 있어."
"귀찮게?"
"응. 그래도 짜증내면 안 돼. 알았지?"
"내가 짜증을 왜 내."
"안 낼 거야?"
"귀찮게 굴어, 계속. 다 받아줄게."
"진짜? 막 찡찡거리고 투정 부려도?"
"귀엽겠네."
"……."
"하나도 안 귀찮아.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
김종인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여튼, 은근 감동을 선물해주는 녀석이다. 살짝 헝클어진 녀석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정돈해 주었다.
"잘생겼다."
"……."
"완전 잘생겼어. 이렇게 눈 감고있는 모습도-."
"… 뭔, 갑자기 그런 말을."
갑작스러운 칭찬의 멘트가 여간 쑥쓰럽게 느껴지는 게 아닌지, 김종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내심 기분은 좋은 건지, 입꼬리가 살짝씩 삐죽거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저녁 시간. 그러나, 항상 이 시간이면 찾아오던 배고픔이 지금은 조금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모를 포만감이 느껴졌다.
"배 안 고프냐. 저녁 먹어야지."
"응, 조금만 이따가."
내 대답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던 김종인이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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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일주일 만인가요..? 6일 만인가.. 거의 일주일 만이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살짝 바빴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얼마 뒤면 개강이기도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던 게 다인데, 왜이리 시간은 빨리 가는 거죠? .. 하.. 이미 개학하신 분들 계시죠? 다들 힘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큽... 개강 꺼우져..☆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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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DB /dprth8391 / HaMo / YUNE
[숫자] 0408 / 0616 / 0618 / 0622 / 1226 / 3관왕센 / 500원 / 84니니
[특수문자] #두근
분명 암호닉을 신청한 것 같은데 목록에 내가 없다, 하시는 분들 몇몇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아마 암호닉 정리할 때 자기 암호닉 언급을 안 해주신 분들이거나, 제 실수로 누락되신 분들입니다.
난 분명 15화에 암호닉생존신고or신청을 했는데 누락됐다, 하시는 분들 계시다면 꼭 말해주세요 :)
당분간 암호닉 신청은 받지 않을 생각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