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영화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제안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 내가 거부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오랜만의 영화 관람이라며 잔뜩 들떠 당연히 간다는 의사를 보내고 있는데 그걸 또 냉큼 본 수정이가 아까와 같은 큰 목소리로 묻는다.
" 영화? 얘랑 영화 봐? "
수정아, 그 목소리 좀. 다시 내게 집중되는 시선에 눈을 내리깔았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수정이는 나보다도 들뜬 모습이었다. 데이트하는 거냐며 내 팔을 붙잡고 막 흔드는데, 주변에서도 심상치 않은 호응이 들려왔다. 남자가 생긴 거냐며 몇몇은 나를 보채기도 하고, 몇몇은 아마 전정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몇몇은 분명 전정국과 나름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남자 선배들이었다. 나 역시 전정국의 눈치를 보았다. 전정국과 친구 이상의 관계의 단계를 밟은 건 아니었지만 전정국 덕에 매일을 미묘한 기분 속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정국이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은 들뜬 건 사실이었다.
" 오, 뭐야. 곧 사귀겠다? "
수정이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런 사이가 아닌 건 수정이도 뻔히 알면서 괜히 오바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면 수정이 역시 나만큼이나 전정국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전정국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전정국 쪽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금세 마주칠 두 눈이 부끄러웠다.
"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어…… 학교 앞이네~ 내일 만나기로 한 거야? 몇 시야? 6시? 뭐야. 늦게 만나네~ 진짜 데이트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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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야! 여기! "
호석이는 먼저 표를 바꿔 놓은 듯 익숙한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이미 보기로 한 영화는 어제 예매를 해 둔 터라 만나고 난 후로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듯 단번에 로맨틱 코미디를 고른 호석이는 표를 꼭 쥐고는 기대된다는 듯 재잘거리며 나를 팝콘 부스로 끌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팝콘이나 나초를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음료를 마시면 영화 도중에 화장실 갔다오기를 여러 번이라 팝콘 부스는 오랜만이었다. 나에게 캬라멜이 좋냐, 치즈가 좋냐 물으며 지갑을 꺼내는 호석이의 손을 급하게 붙잡았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 내가 낼게. 네가 영화 보여 주잖아. "
" 에이. 내가 돈 내서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이 정도는. 나 돈 많아! "
" 아니야. 진짜 내가 사고 싶어서 그래. "
" 그래, 뭐. 네가 사 주고 싶다는데 감사히 먹어야지. 캬라멜이 좋아 치즈가 좋아? "
치즈가 좋다는 내 말에 자기도 치즈가 좋다며 밝게 웃어보이는 호석이를 보고 한 번 웃고는 콤보 세트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사람이 별로 없었던 탓인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온 팝콘을 호석이에게 넘겨 주고 콜라 두 개에 빨대를 꼽고는 들었다. 호석이는 팝콘 한 알을 집어 먹더니 맛있다며 콜라 두개를 집느라 손이 없는 내 입술 앞에 팝콘을 들이댄다.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는데 호석이가 팔 아프다며 손을 흔드는 바람에 주저하다가 팝콘을 물었다. 정작 호석이는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괜히 내가 민망해져 콜라를 꽉 붙잡았다.
입장 시간까지 약 10분이 남은 듯 했다. 빈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팝콘과 콜라를 내려 놓았다. 남자와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수정이 말대로 이게 진짜 데이트라는 건가, 싶다가도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영화표가 우연히 생겨 어쩌다 보니 과팅에서 사귀게 된 친구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온 듯한 호석이의 들뜬 모습에 그냥 웃어버렸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도 괜히 남자와 영화를 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호석이에게 정말 아무런 사심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혹시나 또 음료 때문에 영화 흐름이 끊길까 걱정해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호석이에게 화장실을 다녀온다 말하고는 폰을 챙겨 화장실을 찾아 걸었다. 영화관 화장실들이 그렇듯 여기도 화장실이 꽁꽁 숨겨져 있었다. 찾기 어렵게. 이러다 입장 시간에 늦는 게 아닐까, 괜히 초조한 마음에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깨끗하게 손을 씻고 나오는데.
" 어? "
" 헐. "
" 미친. "
전정국이다. 그리고.
" 윤기 오빠? "
전정국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이 내 앞에 있었다. 정말 영화를 보러 오기라도 한 건지 전정국은 팝콘을 들고 있고 덩달아 윤기 오빠는 콜라 두 개를 들고 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둘도 난감했던 건지 땀이라도 흘릴 것처럼 내 눈치를 본다. 둘이 이렇게 친한 사이였나, 싶다가도 전정국이 정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살짝 의심도 해 보고, 어쩌다 둘이 같이 있는 건지 곰곰히 생각도 해 보고. 어쩌다 둘이 같이 오게 됐냐고 물으려다가 문득 입장 시간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호석이가 생각이 나 먼저 가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둘을 지나쳤다. 근데 진짜 왜 둘이 같이 있지.
호석이는 마침 팝콘을 안고 콜라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버거워 보이는 모습에 다다다 달려가 콜라를 들려고 하면 괜찮다며 영화표를 건넨다. 아슬아슬 손가락에 걸려 있는 영화표를 들고 불안해 보이는 팝콘과 콜라를 걱정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화를 보여 주는 호석이에게 고맙다며 웃고는 가방에서 미리 챙겨 온 안경을 꺼냈다. 아무래도 눈이 안 좋은 탓에 영화를 볼 때는 안경이 필요했다. 좋은 건 선명하게 봐야지.
곧 화면이 환해지고 광고가 나오고 있는데 안경을 쓴 터라 굳이 선명하게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탓에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걸어 올라오는 전정국과 윤기 오빠를 보았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사이가 그리 좋은 건 아닌지 멀찍히 떨어져 올라온다. 그리고는 나와 호석이 자리를 지나치는데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마침 우리 뒷자리까지 와서 앉는 둘의 모습에 눈이 동그래졌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던 윤기 오빠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고 당황한 표정이 가득이었다.
" 로코 봐요? 둘이? "
내 목소리에 윤기 오빠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전정국이 윤기 오빠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내 옆에 앉아 있던 호석이는 뭐냐는 듯 고개를 뒤로 돌려 둘을 보았다. 아는 사람이냐며 내게 물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기랑 선배라며 간단하게 소개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더는 묻지 않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두었다. 진짜 왜 둘이 왔지.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참 많다던데 내가 지금껏 겪었던 일 중에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굳이 왜 둘이? 로코를?
관객 평이 매우 좋던 영화는 역시나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았다. 호석이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원래도 웃음이 잦은 애였는데 오늘따라 웃음 소리가 더 크다. 크게 웃는 모습이 괜히 귀여워서 힐끗 보다가 팝콘을 집어 먹는 호석이와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냐는 듯한 눈짓에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데 갑자기 호석이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귀에 대고 입을 연다.
" 영화 재미있지. "
" 진짜 재미있다. 고마워. "
" 다음에 또 보러…… 아! "
귀에 대고 속삭이던 호석이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떼었다. 곧 호석이 머리에서 팝콘 여러 개가 떨어졌다. 무슨 상황이지, 놀란 눈으로 호석이를 보고 있으면 호석이의 시선이 잠시 뒤쪽에 닿는다. 덩달아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전정국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 미안요. 손을 헛디뎌서. "
누구보다도 전정국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전정국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노려보듯 호석이를 쳐다보는 모양이 꽤 저돌적이라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과 동기여서일까,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에 호석이 어깨와 머리에 떨어진 팝콘을 털어 주었다. 호석이가 고맙다며 내게 샐쭉 웃어 보였고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화난 것 같지 않은 모습에 성격에 구김살이 없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영화가 끝을 바라봤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뭉쳐 있던 목을 움직였다. 폰으로 슬쩍 본 시간은 벌써 여덟 시가 다 되어갔다. 나는 입에도 대지 않은 덕에 팝콘은 반이나 남았고 콜라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콜라를 한 번 쭉 들이키는데 호석이가 다시금 가까워졌다.
" 저녁은 먹고 들어갈래? "
" 아, 그럴까? "
" 학교 앞에 맛있는 곳 있…… 아! "
아무래도 고의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윤기 오빠가 실수를 가장한 건지 팝콘통을 끌어안고는 미안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옆에 앉은 전정국은 입을 꾹 다물고는 나를 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죄 진 사람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역시나 구김살이 없는 호석이는 미안하다 속삭이는 윤기 오빠에게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누가 봐도 고의임이 분명한데 말이다.
오늘따라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정국과 윤기 오빠가 같이 영화를 보러 오는 것도 이상하고, 뒤에서 실수를 가장해 팝콘을 뿌리는 것도 이상하고, 둘이 호석이에게 앙심이라도 품은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해 호석이에게 사과를 하는데 호석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다시 내 귀에 대고 입을 여는데.
" 뒤에 두 사람 너 좋아하지. "
" 어? "
"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니야? "
" 그런 거 아니야……. "
영화의 끝자락인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련 같지 않은 시련이 끝나고 이제서야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키스신인데, 평소였다면 두 손을 꼭 붙잡고 나도 저런 연애를 하고 마리라는 다짐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겠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온통 전정국과 윤기 오빠로 뒤덮혔다. 호석이의 말이 한 몫 한 것 같았다. 아니, 한 몫 정도가 아니지. 그냥 호석이 말이 신경 쓰였다. 두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윤기 오빠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이었고 전정국은.
전정국은 잘 모르겠다.
" 넌 어느 쪽이 좋은데? "
" 그런 거 아니라니까…… "
" 둘 중에 끌리는 사람 없어? "
그게.
신경이 뒤로 쏠렸다. 둘 중에서도 물론 전정국에게 말이다. 화장실 앞에서 마주쳐서 당황하는 눈빛 하며, 팝콘을 쏟고는 어색하게 짓던 웃음 하며, 방금 마주쳤던 딱딱한 얼굴 하며, 어쩌면 지금도 나를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선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호석이는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영화관이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호석이는 남은 팝콘을 먹으며 얌전히 앉아 있었고 아마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으니 뒤에 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다 나갔는데 딱 우리 넷만 남아 있었다. 이쯤 되면 눈치가 없는 나도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아, 이 두 명이 영화를 보러 온 건 순전히 우리 둘 때문이었구나. 그러니까 윤기 오빠와 전정국이 왜?
호석이와 내가 영화관을 나서고 나서야 윤기 오빠와 전정국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작정하고 따라오기로 한 건지 뒤를 졸졸 쫓아오는 모습에 호석이는 아무 말 없이 웃고 말았다. 한숨을 쉬고는 뒤를 돌아보는데 아주 대놓고 따라왔으면서도 내가 뒤를 돌자 윤기 오빠와 전정국이 흠칫 놀란다. 둘을 번갈아 보았다. 내 시선을 그대로 받은 윤기 오빠가 입을 열었다.
" 아깐 미안했어요. 괜찮아요? "
호석이를 향한 말에 호석이는 역시나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꽤 그럴듯한 사과에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윤기 오빠의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정국은 신경이 쓰였지만 말이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팝콘통을 버리지도 않고 끌어안고 입술이 비죽거리는데 분명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앞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저러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그걸 모른 척 하고 다른 남자를 옆에 두고 걸어갈까. 한숨을 쉬는데 마침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뚱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영화가 재미 없었던 걸까. 그렇게 사소한 문제가 아닌 걸까. 아님 정말 내 뻔뻔한 상상대로.
내가 호석이와 영화를 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마지막이라면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괜한 상상에 웃음을 참으려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윤기 오빠와 간단한 인사를 끝낸 호석이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쩐지 전정국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
" 밥 먹으러 갈 거지? "
" 응, 먹으러 갈… "
" 안 돼! "
" 안 돼! "
말을 자른 건 윤기 오빠와 전정국이었다. 둘이 짠 것처럼 동시에 말을 뱉는데 그 상황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둘이 친했다고, 오늘따라 죽이 척척 잘 맞는다. 윤기 오빠의 차분한 눈빛과는 다르게 전정국은 쌍심지를 켜고 호석이와 나를 번갈아 본다.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 죽기살기로 달려들 것처럼 보는지 괜히 민망해진 기분에 애꿎은 머리만 만져댔다.
자기들이 외쳐놓고도 달리 수습할 말이 없었는지 둘의 말이 끝나고 나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나처럼 당황할 거라 생각했던 호석이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당황하지 않은 건지,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하는 건지 여전히 구김살 없이 웃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아는 사이라도 이렇게 당황스러운데. 이쯤 되면 호석이가 존경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 아미 저랑 밥 먹기로 했는데. 안 되는 이유라도? "
호석이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다. 우리 넷 사이의 정적을 깨고 등장한 목소리에 전정국은 입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아 보였는데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윤기 오빠는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 오늘 저녁이 삼겹살이거든요. "
" 네? "
" 오늘 저희 집 저녁이 삼겹살이에요. "
" 아, 맞아! 형네 오늘 저녁 삼겹살이랬잖아요. 안 되겠네. 삼겹살은 먹으러 가야죠. "
오늘 우리 집 저녁이 삼겹살이었던가. 금시초문이었다. 아줌마는 저녁을 미리 말씀해 주시지도 않는 성격인데. 삼겹살이 저녁상에 한두 번 오른 것도 아니고. 정말 되도 않는 윤기 오빠의 말에 반박을 하려 입을 열려고 하면 내 눈치를 보던 전정국이 급하게 입을 연다. 얘는 또 왜 이래. 윤기 오빠랑 친한 것도 아니고. 언제부터 우리 집 저녁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정국이 삼겹살을 좋아하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난감한 표정으로 호석이를 보는데 호석이가 곰곰히 들어보더니 소리내어 웃어버린다. 아니, 여기 정말 이상하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셋 사이에 나만 모르는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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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저녁 삼겹살이에요? "
" 나도 모르지. "
" 뭐야. 삼겹살 아니에요? "
" 나도 모른다니까. "
결국 호석이와는 영화관에서 헤어졌다. 아쉽다며 연락을 하겠다는 말에 전정국이 또 아까와 똑같은 눈으로 호석이를 노려보았던 것만 빼면 꽤 좋은 마무리였던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윤기 오빠에게 물었다. 나만 모르는 아줌마와 윤기 오빠만의 식사 톡방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가서 물어본 거였는데 모른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상하다. 전정국도 이상하고 다 이상하지만 윤기 오빠도 이상하다. 괜히 영화관에서의 호석이 말이 신경 쓰였다.
전정국은 묵묵히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팝콘통은 여전히 들고 있었다. 버리는 게 어떻냐는 내 질문에도 답은 여전히 하지 않았다. 영화관을 나온 지 벌써 10분이 지났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어쩐지 주인에게 삐친 강아지 같았다. 없는 꼬리와 귀가 축 쳐진 것 같아 귀여웠다. 윤기 오빠와의 대화를 끝내고 나서는 전정국에게 시선을 고정하는데 느껴진 건지 내쪽을 힐끔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 아까 무슨 얘기 했어. "
" 무슨 얘기? "
" 그 아까 그 남자애랑 영화관에서 속닥거렸잖아. "
얼굴이 화끈거렸다. 별 시덥잖은 얘기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말, 정말 그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닌데. 전정국이 묻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전정국이 알고 묻는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이런 뻔뻔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샘솟아서 중간에서 걷고 있는 내가 죄스러웠다.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두 사람에게 많이 미안했다. 내 생각을 알게 되면 두 사람이 얼마나 불쾌할까.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 별 얘기 안 했어. "
애써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윤기 오빠와 전정국은 머리를 두드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영화관에서 이상한 소리 들었어요, 하는 표정을 지은 건 아닐까 걱정이 돼, 고개를 푹 숙였다. 전정국은 몰라도 윤기 오빠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이미 화끈해질대로 화끈해진 얼굴을 보면 적어도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었구나, 멋대로 예상할 게 뻔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착각같은 건 정말 하기 싫은데.
윤기 오빠가 먼저 들어가고 전정국은 여전히 맞은편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할 말이 있다는 전정국의 말에 대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정국의 등을 보는 건 지긋지긋해서 내가 먼저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차마 무슨 할 말이냐 재촉하지는 못하고 대문 옆에 등을 기대고 손을 꼼지락대고 있는데 팝콘통을 들고 신발코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전정국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눈을 오랫동안 맞췄다.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였다. 가로등이 아주 로맨틱했고 지금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했다. 전정국과 겨우 눈만 맞췄을 뿐인데 입을 맞춘 듯 얼굴이 뜨거웠다. 온몸이 타버릴 듯 뜨거워질 것 같았는데도 이상하게도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한참을 마주 보고 있는데 뜻밖의 동네 개 소리가 우리를 방해했다. 마치 골목길에서 몰래 애정행각을 하다 들킨 커플처럼 당황했다. 그러니까 커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절대 전정국과 내가 뭐 어떻게 하고 싶다거나, 골목길에서 진짜 애정행각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나처럼 당황한 표정을 짓던 전정국은 자기보다도 내가 더 당황해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걸 발견한 듯 살짝 웃더니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 오늘 예쁘다. "
" ……. "
" 그냥 그렇다고. "
" ……. "
" 들어간다. "
전정국은 남자를 좋아한다
w. 정국학개론
정국이 번외 끝내고 다시 돌아온 현재에서는 비교적 내용을 생각해서 적는 편인데 어쩐지 머릿속에서 바로 생각해서 쓰는 게 더 잘 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8ㅅ8
정국이 번외를 끝내고 나니 더 어렵고 글이 똥망으로 가는 건 제 기분 탓인가요 8ㅅ8 늘 부족한 작품 읽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려요
아 맞당 저 초록글 1페이지 갔더라구요 진짜 댓글도 막 이백 개 넘고 진짜 감동이에요 독자님들... 독자님들이 덕분에 제가 항상 힘 내고 글 쓰는 것 같아요 감사드려요
사랑해요!
Aㅏ thㅏ랑하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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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목단가온계피
윤아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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