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상 30분은 일찍 나가있어야할 것 같아 짐을 챙겨 일찍 집을 나왔다. 약간 흐릿흐릿한 날씨 사이로 햇빛이 비춰지는게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잠깐 미간을 좁히다 크게 공기를 들이마쉰 후 걷기 시작했다. 학교 건너편에 있는 카페까지 걸리는 시간은 걸어서 한 5분? 어떻게든 가까운 곳으로 구하려 몸부리친 결과 되시겠다. 얼마 안있어 보이는 카페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서려는데, 귓가에 들리는 구급차 소리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학교 정문에 멈춘 구급차는 그 앞에 쓰러져있는 누군가를 옮기고 있었다.
'그럼 나 오늘도 요 앞에서 기다릴테니까 와야해요, 알겠죠?'
"....."
느낌이, 안좋았다.
"여기서 밤 지샌 것 같은데요?"
"요즘 밤 날씨도 쌀쌀한데. 학생, 학생! 일어나봐요, 학생!"
설마, 설마. 갖가지 드는 생각으로 구급차가 있는 정문으로 냅다 달렸다. 그곳에 도착하니,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쓰러져있던 그 사람, 그 학생은 바로. 강서월이였다. 설마 학교 정문에서 나 기다리고 있던거야? 어제 밤부터?
"강서월!! 강서월!"
"... 학생 아는 사람되세요?"
"아, 아 네."
곧이어 서월이가 구급차에 실어졌고, 나도 따라 그 안에 올라탔다. 안그래도 요즘 새벽 날씨는 쌀쌀하던데, 왜 계속 기다려서는. 안나갔던 내가 원망스러워져 머리만 쓸어넘겼다. 그나저나 기다릴텐데, 성이름 . 일단은 연락부터 해야겠거니 하고 전화부터 걸었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이거. 미안하단 말만 계속 하다 끝난 통화가 여간 찝찝한게 아니였다. 방금 나왔다 하지만, 느낌상 카페 안에 있던거 다 알았는데 뭘.
서월이는 응급실로 옮겨졌고, 일단 보호자에게 연락하라는 말에 서월이 부모님께 연락도 취했지만 받질 않았다. 일단은 서월이가 눈 뜰 때까지는 곁에 남아있어야 할 듯 싶었다.
"... 이그 멍청아. 그걸 왜 기다려."
맘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그저 한숨만 내쉬고 말았다. 조금 안정을 취하면 괜찮을거란 간호사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성이름이에게 메일주소를 보내려는데, 움직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깐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날 보며 좋다고 또 피식 웃는 강서월이다. 저걸 진짜.
"괜찮아?"
"... 뭐, 그냥 그렇네요"
"아니 거길 왜 기다...!"
"말했잖아요, 아직 보여줄거 남았다니깐."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서월이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 엄마는, 전화 돼요?"
"..... 아니, 안되시던데."
"그러겠죠, .. 뭐."
저런 반응을 보이는거보니, 평소에도 얘한테 별 관심을 안가지는듯 보였다. 아니 자기 애를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하는거 아닌가. 한 200년 정도 살아가다보면 별의별 꼴 다 본다. 지 새끼 버리는 부모는 물론, 더 가서 지 새끼 가버리게 하는 부모들까지. 한 4품 때였나. 그 때 한번 그런 일 맡았다가 죽어도 다시 그런 일은 안맡겠다고 사황제한테 바락바락 대들기까지 했었더랬지.
"고마워요 사신님."
"야, 밖에서는 안부르겠다며 그렇게."
"뭐 둘 뿐인데요."
"... 정 고마우면, 이제 나 기다리지마. 두번째 때 부터는 나 정말 모른 체 할거야."
알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는 다른 곳만 바라보며 딴청 피우는 모습을 보다, 이제 나도 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끄는 소리에 다시 나를 보던 서월이가 가방을 들어올리려던 내 손목을 잡았다. 왜, 왜 벌써 가냐는 표정으로.
"너 눈 뜬 것도 봤고, 부모님께도 연락 다 해놨으니까 걱정은 말고."
"더 있다가요. 부모님께 다시 연락 올 때까지만요."
"안돼, 가봐야.."
"도와줄게요!"
"뭐?"
뜬금없이 돕겠다며 벌떡 일어나 앉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입을 떼었다.
"돕겠다구요. 악귀 잡는거, 도울게요. 나 아직, 사신님한테 안보여준 것도 많구요."
"도울게요."
그 말에 눈썹이 움찔거렸다. 저번에도 불어 없어지지도 않는 놈을 건드릴 뻔 한 것을, 얘가 도와줬었으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위험한 일이니까. 함부로 하는 일이 아니니까. 잠깐 흔들리다 고개를 저었다. 날 빤히 바라보던 서월이가 안된다는 내 말에 이번엔 빽 소리쳤다.
"저번에도 제가 도왔잖아요!"
목청 더럽게 큰거보니까, 멀쩡한 것 같네.
"그 땐 내가 착각했던거야. 허투른 소리 말고 링거 다 맞을 때까지 누워있어. ... 간다 그럼."
"사신, .. 아니 한빈 오빠!!!"
구준회랑 한참 떠들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뭐, 있었던 일은 대충 얼버무리며 말하긴 했다. 걱정된다는 투로 몇 마디 나누다, 곧바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평소처럼 투닥거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얘기하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그냥 보통 친구들 만나면 하는 얘기들만 해댔던 것 같다. 씻으려고 방을 나가려다, 화장대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에 발길을 멈췄다. 김한빈한테 온 카톡이였다.
"... 뭐야, 달랑 주소 하나?"
이따 메일주소 보내주겠다는 말 그대로, 정말 달랑 메일주소 하나만 보냈다. 뭐,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짧게라도 미안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던지, 그러길 원했는데.
"뭔 기대를 한거냐 ..."
누군가에게 기대를 건다는건 분명 어려운 일일텐데, 난 언제나 쉬웠다. 그래서 다들 날 쉽게 보기도 했었고, 쟤라면 언제나 날 믿을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확신까지 얻게 되었다. 김한빈에게도 지금 그러고 있다, 나는. 얼마나 오래봤다고, 얘한테 그렇게 쉬운 기대를 거는건지.
"... 씻기나 하자."
보내겠다는 답톡없이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침대로 던져버리곤 옷가지들을 챙겨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오니 오빠랑 엄마랑 깔깔거리며 TV를 보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한테 좀 묻고 싶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러냐고. 안그래도 그런 비슷한 내용으로 연예인 부부가 나와 토크쇼를 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슬쩍 보고있는데, 거기 나온 아내 말.
'아 그럼 보통 남자와는 다르다는건가요?'
'그럼요, 제 남편은 제가 굳이 말 안해도 다 알던걸요?'
'그냥 제가 바라는 답을 다 알고 있어요, 제 남편은.'
부럽네, 저 여자는. 상대 남자가 무슨 말을 원하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어서. 그러다가도, 옆에서 들리는 엄마 목소리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혀를 끌끌차더니, 스크린으로 아니라는 제스춰를 취했다.
"에이, 저건 뻥이다. 솔직히. 남자들은 말안하면 몰라. 그치 아들. 너도 그러지?"
"아, 뭐. ... 솔직히 말안하면 상대방 속을 모르는건 당연하죠."
그 말에 속으로는 맞는 말이긴 한데, 하면서도 오빠 너도 연애만큼은 완벽하지 않겠거니 싶어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완벽한걸 원하는건가. 아, 또 내 탓인가.
아침부터 자동적으로 감겨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이런다고해서 잠이 안오는건 아니다만. 교문을 통과해 터덜터덜 운동장으로 걸어가는데, 내 앞에 낯설지 않은 뒷모습이 보였다. 저 가방, ... 아, 김한빈이네. 괜히 또 섭섭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쟤 잘못이 아니잖아, 그치? 그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면서. 먼저 인사나 해야겠다, 하고 부르려는데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저번에 복도에서 김한빈과 얘기하던 그, 아.. 신기있다는 여자애가 김한빈 옆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 사이 묘한데. 뭐지.
"글쎄 안된다니까?"
"아 제발요, 네? 도울게요 정말로."
언제 들어도 쟤네 대화는 주체가 뭔지 파악을 못하겠다. 저번엔 기다리겠다고 하질 않나, 이번엔 뭘 도와 돕기는. 그 둘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마침 뒤를 돌아본 김한빈에 그대로 멈춰섰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손을 흔드는데, 김한빈은 그렇다치고 옆에 있는 여자애가 날 위아래로 흘겨본다. 뭐야 기분나쁘게. 곧바로 내 옆으로 온 김한빈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주말 일은 정말 미안. 자료 보내준거 검토하고 정리까지 다 해왔으니까 걱정은 안해도 돼. 너가 이따가 확인만 해줘."
"아, 으응. 급한 일은 잘 처리된거야?"
어느새 김한빈 옆으로 온, (편의상 신기라고 부르겠다.) 신기를 흘깃 보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뭐, 쟤랑 관련된 일인가보다. 막상 또 얼굴보고 얘기하니 그렇게 섭섭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별 일 아니었다고 덧붙인 말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냐며 다행이라는 내 말에 그 옆에 있던 신기가 갑자기 내게 물어왔다.
"근데 언니는 누구에요?"
"... 나, 나?"
"응. 언니요."
그러는 너는 누군데 그러냐.
"나, 김한빈이랑 같은 반 친군데."
"아 그래요? 둘이 친해요?"
"너는 좀,"
김한빈이 말리는 말에 입을 쭉 내빼곤 다시 고개를 뒤로 빼는 신기다. 애들 말이 맞네. 쟤 좀 이상한거 같애. 2학년 복도인 오른쪽으로 신기는 들어갔고, 김한빈과 나 둘은 반대쪽 복도를 걸어갔다. 교실은 맨 끝이라 평소처럼 힘빠진 채로 걷는데, 내 눈 바로 앞에 초코바를 보이는 김한빈이다. 뭐야? 하고 물으니, 뭐긴 뭐냐며 오다 사온거라고 내게 건넸다.
"그리고 그렇게 어깨 쳐진 채로 걷지마. 그거 습관이야."
"뭐 이미 습관됐어."
"초코바 압수."
"아, 알았어. 고칠게."
내가 개도 아니고 말야. 초코바 하나에 흔들리다니. 살짝 자존심 스크래치가 날 뻔 했지만, 곧바로 머리 위로 올라온 김한빈 손에 다시 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그래, 꼭 고쳐."
".... 어, 어."
무심한 듯 교실 앞문으로 들어가버리는 김한빈 뒷모습을 보다, 손에 들려진 초코바만 매만졌다. 참 이상한게, 김한빈이 하라는 말은 왜 지켜야될 것 같은건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초코바를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바라는 대답, 행동은 참 별 것 아닌, 새발의 피 같은 존재인가보다. 만났던 그 짧은 순간들에서, 김한빈은 내가 바라는 것들보다 더한걸 내게 보여주니까.
"........ 이상해, 기분."
오늘도, 말리는 것만 같다. 김한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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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은 진짜 의식의 흐름으로 글쓰고 있네요 왜이러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아악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우리 독자님들은 정말 사랑입니다 ...ㅠㅠ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하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하트)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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