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돌아서는 너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허공에 있던 손을 내렸어. 5년의 시간이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는 게 허탈하더라. 너도 많이 지쳤겠지, 아팠겠지. 어쩌면 나보다도 더 많이 힘들었겠지. 복잡함이 머리를 감싸와서 눈을 감았어. 어두운 시야 사이로 보이는 너의 표정이, 웃는 너의 모습과 겹치는 우는 너의 모습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어. 다시 너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올까, 내가 다시 너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올까. 승관아, 그럴 수 있을까 우리.
권태기의 끝
승관과 한솔은 암묵적인 이별 상태였다.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더 깊어진 감정의 골은 둘을 더욱 갈라지게 만들었다. 승철이 노력을 해보려 해도 더이상 승관은 한솔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항상 지정석이였던 한솔의 옆자리를, 방송에서마저 승관은 앉으려 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웃던 승관은 무대를 내려오면 보이지 않았고 카메라가 켜져있을때, 꺼져있을때 행동은 소소하게 아니 어쩌면 큰 변화를 일으켰다. 연습실에 박혀 목이 쉴정도로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에게 혼이 나도 승관은 다시 전처럼 밝게 웃지 않았다. 한솔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오는 가사는 모두 이별가사뿐이였다. 둘의 사이는 그렇게 단절되었다.
승관은 그럴수록 태형에게 의지했다. 멤버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들을 태형에게 털어놓았고 울었고 또 웃었다. 태형은 그런 승관에게 나무같은 존재였다. 말없이 승관을 안아주고 감싸주는 그러한 존재. 한솔은 그 사이에 혼자 스케줄이 잡혔다. 여자패널과 같이 하는 그런.
"가자 한솔아"
"아, 네"
한솔이 나감을 멍하니 보던 승관이 시선을 돌렸다. 신경쓰지 말자며 고개를 젓고 티비를 켠 승관이 곧 나오는 한솔의 방송에 말없이 행동을 멈췄다. 여자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한솔의 모습이, 전처럼 밝게 웃는 한솔의 모습이 방송에서 보여졌다. 알수없는 허탈감이 퍼졌다.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를, 저렇게 여자와 잘 어울리는 아이를 자신이, 자신의 욕심때문에 잡고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허탈했다. 승관이 티비를 끄고 무릎을 끌어 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관계를 이어가는건 무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이상 저는 한솔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서, 또, 아파서. 한솔은 밤늦게 돌아왔다.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승관이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저 입술만 깨물다 돌아섰다. 조금만, 하루만이라도 더 이 관계라도 유지하고 싶었다. 언젠가 제가 먼저 사과하고 돌아가면 한솔이 말없이 안아주길 바라면서. 그게 되지 않더라도 그러길 바라면서.
"승관아, 너 또 목소리"
"하하, 죄송해요"
승관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몸이 으슬으슬 아픈게 기분이 좋지않았다. 느낌도, 물론 좋지않았고. 화장실 다녀올게요. 승관이 말하고 대기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가볍게 제 얼굴을 탁탁치고 정신차리자 하고 중얼거린 승관이 화장실에서 나왔을때 통로쪽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곳에서 들려오는 한솔의 목소리에 승관이 고갤 갸웃하고 걸음을 옮겼다. 최한솔..? 혼자 웅얼거리며 살짝 보여진 시야사이로 한솔과 한 여자가 마주서있었고 웃으며 말을 하는 한솔의 모습과 예쁜 그 여자의 모습을 보던 승관이 입을 다물었다. 방송 잘봤어요, 여전히 예쁘시던데. 에이, 내가 뭘 너는 더 잘생겨졌다. 과찬이세요. 호감이라는 표현을 계속 드러내는 여자를 보던 승관이 뒤로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웃고있는 한솔의 모습도 금방이라도 좋아한다 고백할거같은 그 여자의 모습도 너무나 승관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솔의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기실로 돌아와 멍하니 있던 승관을 보던 승철이 고갤 갸웃했다. 왜저래 또. 그리고 곧 한솔이 돌아왔고 무대에 올랐다. 익숙하게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이제 막방이었으니까 다음주부터는 쉬라는 말을 남긴 실장이 사라지고 차에 올라탔을때 승관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오늘 확실하게 끝을 내야겠다고.
한솔아, 얘기 하자 우리. 바쁘게 가사를 써 내려가던 한솔의 손이 멈췄다. 먼저 걸음을 옮기는 승관을 따라 나선 한솔이 곧 마주하고 앉았다. 정적이 흘렀다. 한참 말없이 서로를 보지 않고 있던 둘 앞에 음료가 놓이고 곧 시선을 먼저 올린 승관이 말했다. 가사는 잘써져? 승관의 질문에 그냥 나름 이라 대답한 한솔이 타는 목에 잔을 들고 가만히 그런 한솔을 보던 승관이 다시 고개를 숙여 제 손을 내려다봤다. 이미 뺀지 오래된 반지가 있던 자리를 만지던 승관이 작게 숨을 쉬다 말을 이었다.
"우리, 이제 정리하자"
"...."
"그만하자 우리"
"승관아"
"더이상은 아닌거 같아 너랑 나"
"...."
"5년이면, 나때문에 5년이란 시간을 보냈으면 충분히 잘해준거야 너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5년동안 너무 고마웠고 또 고마웠고 나는. 승관의 말이 멈췄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카페의 음악소리가 정적을 깨고 흘렀다. 승관이 고개를 들어 한솔과 시선을 마주했다. 옅은 웃음이 퍼졌다. 여전히 너는 아무런 감정이 없구나.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한솔의 얼굴을 보던 승관이 다시 천천히 말했다.
"사랑, 했어"
"...."
"너를 많이, 많이 사랑했어"
쿵 마음으로 뭔가가 떨어지듯 요동쳤다. 먼저 일어날게. 승관이 도망치듯 나가고 그런 승관을 잡으려 뻗어진 한솔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어라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너를 잡았어야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순간 마저도 자신은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책임이라는 무게를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냥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싶었으니까. 한솔이 두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어두운 시야 사이로 웃는 승관의 모습과 울고있는 승관의 모습이 겹쳤다. 미간을 찌푸린 한솔이 눈을 감았다. 승관이 제게 처음했던 고백, 첫데이트.. 모든것이 제가 처음인 아이에게 자신은 이별마저도 잔인하게 제 입으로 말하게 만들었다. 눈가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결국은 닳고 닳아버린 신발끈처럼 자신들의 마음도 닳아 끝을 맺었다. 너무도 허탈하게.
승관의 몸이 더욱 심하게 나빠졌다. 열이 오르고 목소리가 잠겼다. 공백기라고 해도 앨범 작업을 이어가고 라디오에 간간히 얼굴을 비추고 행사를 다녀야했는데 승관의 몸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숨기고 또 숨겼다. 붉어진 얼굴은 연습으로 숨기고 잠긴 목은 노래를 불러서 억지로 끌어 올렸다. 행사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억지로 버티던 승관의 몸은 무대와 동시에 마찰을 일으켰다. 억지로 정신을 잡으며 하던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던 승관은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마이크가 떨어져 소음을 만들고 승관은 힘없이 고꾸라져 땅으로 쓰러졌다. 승관아!!! 하고 소리치는 승철의 모습에 먼저 앞서 걷던 한솔이 고개를 돌렸다. 부,승관? 슬로우 비디오가 틀어진듯이 주변이 모두 느릿하게 지나갔다. 웅웅거리며 울리는 소리 사이로 쓰러진 승관의 모습만이 보였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스태프들 급하게 승관을 들어 옮기는 매니저.
"최한솔, 정신차리고 빨리 타"
승철이 한솔의 어깨를 치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솔이 차에 올라탔다. 앞서 가는 승관을 따라 병원으로 온 한솔이 상태를 보고 링거를 맞는 승관의 옆에 앉았다. 감기 몸살과 겹친 과로 때문에 온 쇼크 라는 말과 링거를 맞고 처방받아 돌아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의사가 사라졌다. 승관을 멍하니 보던 한솔이 고개를 숙였다. 전부 제 탓인것만 같았다. 승철이 그런 한솔에게 다가와 등을 토닥였다. 고개는 왜 숙이고 있어 임마, 부승관 죽었냐. ...형. 왜. 제 탓인가봐요. .... 저때문에 승관이가. 한솔의 말에 승철이 한숨을 쉬며 한솔의 어깨를 잡았다. 감기몸살이라니까 또 무슨 소리야 이건. ....제가 헤어지자는 말 하게 해서 그러니까, 제가. 최한솔. .... 왜이렇게 약해졌어. 승철의 말에 한솔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솔의 얼굴을 보던 승철이 옅게 웃어보였다. 니 마음 이제 알았어? .... 확실하게 무슨 마음인지 알았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망치고 보지 않으려 했던 제 마음은, 진실된 제마음은 결국 한가지였다. 승관을 사랑한다는거.
"그러면, 잡아줘"
"...."
"니가 승관이 먼저 잡아줘"
"형 제가 무슨 염치로"
"너니까"
"...."
"너니까 잡을 수 있는거야"
승철의 말에 한솔이 시선을 돌려 승관을 바라봤다. 승관이 일어나면 꼭 말해주고 둘이 같이 웃으면서 와라. 승철이 말을 남기고 먼저 병원을 나섰다. 떨어지는 약들을 보던 한솔이 승관의 손을 잡고 엎드렸다. 이제 확실해진 제 마음과 이제 피어오른 용기로 말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더이상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한솔이 눈을 감았다. 어느새 잔잔해진 파도와 잠잠해진 바다가 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꼭, 말해줄게 너 일어나면, 잘못했다고 다시 돌아와달라고 이제 내가 너 먼저 잡을게, 니가 항상 내게 해준것처럼. 창밖으론 붉은 노을이 예쁘게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으앙아아아ㅠㅠㅠ 이거 쓰고 수정하다가 날아가서 하 제가 진짜 울컥.. 처음 계획한 내용으로 가지 못햇지만, 뒷이야기는 내님들의 생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ㅎㅎㅎㅎㅎ 사랑해요 내님들 감사합니다. 하리보님 승관아님 사랑해요 아껴요 모든 내님들 다 아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