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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고고히 서있는 대저택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는 숲에서 길을 잃은 자가 있고, 둘째로는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온 서주의 하수인들이 있다. 우주가 거의 인생 반 평생을 저택에 갇혀 겪은 바에 따르면, 확률 상으로 이 저택을 찾는 사람은 후자가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숲에서 길을 잃어 저택을 찾은 사람은 현재까지 두 명이 전부였다. 중년의 여자와 한 소년. 우연인지 운명인지 둘은 비슷한 시기에 저택을 찾았다. 여자가 저택을 떠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소년이 저택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 우주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묻는다면, 아마 유년기를 제외하고서는 두 외부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라고 답할 것이 분명했다. 외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고립된 우주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이제는 영영 없을 것이다. 요즘은 숲에서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가까이 있는 동네에는 숲에 귀신이 나온다고 되도 않는 소문까지 난 모양이었다. 들어오려는 자가 없으니 길을 잃을 자도 없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물론 서주의 하수인들이었다. 분명했다. 하수인들이 속닥이는 것을 우주가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 분명 실어증에 걸린 제 자식을 숨기고자 하는 서주의 안주인이 그들을 매수했을 것이다.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그만 가보세요."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우주는 책을 덮고서 하수인에게 명령했다. 방관자들은 꼴도 보기 싫으니 이만 꺼지라는 소리였다. 우주의 말에 하수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정원을 나섰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의 가운데 위치한 하얀 그네에 걸터앉은 우주는 다리를 흔들며 하수인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올 블랙의 수트를 차려 입은 앳된 남자가 나가고, 흰 대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철컥, 걸쇠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우주는 그제야 덮었던 책을 펼쳤다. 책의 이름은 라푼젤이었다. 그림책이었지만 우주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우주는 라푼젤을 동경했다. 기어코 탑에서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으니 동경할 수 밖에 없었다. 우주는 저택을 빠져나가야 했다. 해야할 일이 있었다.

"언니."



 

우주에게는 제 부모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 언니가 있다. 이름은 서유주요, 갇혀 지내는 우주와는 달리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주와 유주가 한 공간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딱 까지였다. 그 이후로는 우주가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숲 속 저택으로 말이다. 열두 살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말을 잃게 되고, 우주는 온갖 누명을 쓰고 저택으로 이송되었다. 감금에는 말도 못하는데 패악까지 부려대는 막내딸을 수치로 여겼던 제 어머니의 공이 가장 컸다.

 


 

"…어떻게 한 번을 찾아오지를 않아." 

 


모든 일의 원흉은 유주였다. 시기에 눈이 먼 제 언니였다. 우주는 하늘에 맹세코 유주의 얼굴을 쥐어뜯은 적도,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린 적도 없었다. 모두 유주의 자작극이었다. 고작 열둘의 어린아이가 어찌 그리 극악할 수가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의 어머니는 유주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제 피붙이를 증오한다. 멍청히 당했던 지난 날의 자신 또한 원망한다. 만약에, 정말 혹시라도 저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주는 제일 먼저 제 언니에게로 가 그녀를 처절히 고립시킬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망가뜨릴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유주를 이 저택 안에 집어 넣을 것이라고, 우주는 매일 굳건히 다짐한다.


실어증은 극복한지 오래였다. 오히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다시 환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 Bad Blood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아침밥을 거르고 정원에 나와 꽃들에게 물을 주었다. 사람의 발 길은 잘 들지 않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울창한 숲 속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은 꽤나 잘 들어 꽃이 말라죽을 일은 없었다. 대충 물은 됐다 싶었기에 우주는 호스를 단단히 잠그고 그네에 앉았다.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할 것이라고는 정말 그것 뿐이었으니까. 이 거지 같은 저택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특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TV는 있었으나, 서울에 있는 통제실에서 저택의 채널을 제어하고 있는 듯했다. 뉴스를 보다가도 조금 자극적인 내용이 나온다 싶으면 화면은 몇 분간 치직거리곤 했다. 저희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우주에게 주입시키는 셈이었다. 우주는 그게 싫어 TV를 켜는 일이 거의 없었다. 꼭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 싫었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래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해야 했다. 적어도 우주의 책에는 찢겨진 페이지는 없었으니까.



하수인들이 어항에 갇힌 우주에게 산소를 주입해주러 오는 것은 매주 수요일이다. 그들은 수요일마다 별장을 깔끔히 정돈하고, 생필품들을 비롯해 책도 몇 권씩 두고 간다. 책을 두고 가는 것은 웃전에서 시킨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주를 위한 하수인들의 작은 배려일 것이다. 물고기가 죽어버리지 않게, 어항에 산호초라도 심어주는 셈이겠지. 바람이 나부끼며 우주의 머리칼을 훑고 지나간다. 흘러 내린 머리를 다시 귀 뒤로 넘기는데 철컥, 하고 걸쇠 소리가 났다. 저택의 흰 대문에는 오직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걸쇠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



그래. 토요일이다. 하수인들이 오지 않는 날.


우주는 잔디밭에 책을 내던지고 급히 대문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저택을 들렸던 이방인은 둘이었다. 불행하게도 당시 우주는 너무 어려 그들에게 자신을 저택에서 빼내 달라,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그때는 저택을 나가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우주는 자신이 그저 잠시 요양을 온 거라고 생각했다. 갇힌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으니. 그리고 지금 우주는 저택에 발을 들인 이가 누구던, 달려가 도움을 청할 셈이었다. 제발 나를 여기서 꺼내 달라고. 나를 바깥 세상으로 데려다 준다면 그 소원을 뭐든 들어주겠노라고.



"...아가씨."


하지만 대문까지 단숨에 달려간 우주는 탄식하고 만다. 수요일마다 지겹게 보던 하수인이었다. 우주 만큼이나 급했는지, 하수인의 이마에도 땀이 송글히 맺혀 있었다. 하수인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찾으십니다."



남자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에 우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이제와서 나를 왜? 가두다 못해, 이제는 죽여버릴 셈인가. 우주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하수인은 그런 우주를 한참 바라보더니, 성큼 다가와 우주의 어깨를 감싸 대문 밖으로 안내한다.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곳은 우주에게 허용된 범위가 아니었다. 우주의 앞에는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새카맣게 선팅된 차가 섰다. 하수인은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우주에게 타라는 듯 손짓했다. 우주는 하수인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나를 어쩌려는 거예요?"



우주는 지난 7년, 수요일마다 찾아오던 하수인들의 눈에 섞여 있었던 동정을 보았다. 비록 서주의 개들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신에게 거짓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주는 그렇게 확신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당분간은 본가에서 지내게 되실 것 같습니다."



저택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우주를 감쌌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었던 곳인데, 정작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왜 이렇게 불안할까. 우주는 입술을 꾹 물었다. 제 앞에 선 하수인의 눈빛은 진실해 보였다. 올해 새로 들어온 하수인이었다. 원래 일하던 하수인의 막내 아들이라고 했었나…. 아마 가업을 잇는 모양이었다. 비록 지금이 조선 시대는 아니지만, 가업은 실재했다. 제 앞에 있는 이 남자가 가업의 존재를 보여주는 실제였다. 21세기, 현재에도 이런 은밀한 일들은 계속해서 대물림 되고있다. 제 앞에 있는 남자의 집안또한 서주의 개로서 대대로 봉사심을 불태워 왔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봉사 정신은 엄한 부분에 투철해야 했다. 주인을 대신해 사람을 죽이고, 협박하고, 감금하고. 일반적인 의미의 봉사와는 거리가 아주 먼, 그런 것들.



"저희는 아가씨를 해치지 않습니다. 그런 명령은 받은 적이,"

​"...이름이 뭐예요?"
"김종인입니다."

"그럼 김종인씨는…,"

"......"

"그런 명령을 받으면 날 죽일 거예요?"



우주의 물음에 종인은 답이 없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답은 바뀌지 않을텐데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종인은 누가 뭐래도 어쩔 수 없는 서주의 개였다. 주인이 충견에게 사냥감을 물어 오라 명령을 내리면 이행해야지 뭘 어떡할건데. 우주는 종인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우주를 빤히 보던 종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예."

"......"

"…하지만 그런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한,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



역시 우주의 예상대로 답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한, 우주를 돕겠다는 그 말이었다. 우주는 고개를 들어 종인을 바라봤다. 시선이 팽팽히 맞물렸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우주는 기어코 그 얼굴을 눈에 가득 담아 내고서야 차에 올랐다. 종인이 뒷좌석에 따라 탔고, 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우주는 눈을 감으며 종인에게 통보한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난 그쪽을 저주할 거예요."
"그럼요 아가씨."



하수인들은 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우주를 동정했다. 그리고, 우주는 몰랐겠지만 종인은 제 또래의 우주를 더욱 안타까워했다.




[EXO] 나쁜 피 ① | 인스티즈


/ Bad Blood 




저택에는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주는 그래서 저를 격리시킨 제 부모의 얼굴을 날마다 새길 수 있었다. 유주의 얼굴을 새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울을 보며, 지독히도 계속해서 아로새겼으니. 우주는 방금 전 만나고 온 제 모친의 얼굴을, 그녀가 했던 말들을 돌이켜 본다. 제 엄마는 7년 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냥 저택의 가족 사진과 똑같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그 절반이 넘는 7년이라는 시간은 그녀의 어떤 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고고한 자태는 거짓말처럼 그대로였다. 그녀는 우주를 불러 유주의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로써는 서주의 외동딸이자, 유일한 후계자인 서유주가 일탈을 일삼는다고 말이다. 열아홉에 남자를 끼고 논다. 천박하게 돌아다닌다. 제 부모를 욕보이고 다닌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다닌다. 그녀는 딸인 유주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으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한참 동안 유주의 행동거지를 나무라던 그녀는 우주를 훑어 내리며 말했다.



'네가 잠깐 유주 역할을 해줘야 겠어.'

'......'

'짐싸서 해외로 나가버렸어. 정말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아니? 자식 잘못둔 죄로 네 아빠나 나 괜히 뒤에서 씹히기 싫다 이거야.'

'......'

'얌전히 유주 역할만 해줘. 그러면 네 아빠 자리 너한테 넘어갈지 누가 알아?'



말하는 내내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곤,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서유주와 나는 단지 제 입지를 굳건히 다질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말썽만 안피워주면, 얌전하게만 있으면 장땡인 그저 그런 도구. 애초에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 부모의 사이엔 사랑이 없었을 테니까. 서로의 집안의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성사된 정략 결혼이었을테니까. 어렸을 때도 늘 그랬었다. 제 엄마는 저희들을 안아 어르는 것 보다 샵에 다니는 걸 즐겼던 사람이다. 그녀가 저를 안아줬던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어찌 보면 우주와 유주는 보모의 품에서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주 슬프지만 말이다.



그녀는 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제가 잘만 해낸다면 저를 서유주의 자리에 앉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유주를 저택에 감금시켜 버리겠지. 유주가 없는 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갈 것이다. 저가 없었던 세계도 이토록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우주는 침대에 쓰러져 솜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서유주, 너는 이렇게 지내왔구나. 피곤이 온 몸을 감쌌다. 시체처럼 이불에 안겨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우주는 그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이 집 안에 있는 동안은 흠 잡힐 일은 만들어선 안됐다. 다시는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김종인입니다."

"네. 들어와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곧 문이 열리고, 종인이 성큼 들어왔다.



"근데, 그쪽이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사모님 명령으로 아가씨 경호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명령으로?"

"예. 일단 오늘은 비서실장님께서 이것 좀 전하라고 하셔서…."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던 종인은 내게 뒤에 감추고 있던 쇼핑백을 건넸다. 교복 브랜드의 쇼핑백이었다. TV 광고에서 몇 번 봤던 것도 같다.



"유주 아가씨 이름으로 학교, 다니셔야 합니다."

"서유주 이름으로? 내가요?"

"...안에 교복이랑 서류 들어있습니다. 실장님이 필요한 정보니 꼭 읽어보라고 전해달라셨습니다."

"......"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종인이 방에서 나가고, 쇼핑백을 뒤집어 내용물을 침대에 쏟았다. 교복, 그리고 서류가 흰 이불에 떨어졌다. 종인의 말대로였다. 서류를 먼저 잡았다. 첫 장에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냉랭한 분위기의 사진에 아래 쓰여진 글을 빠르게 훑었다. 사진의 주인공의 이름은 오세훈이었다. 재원 家의 후계자요, 서유주와 약혼할 사이란다. 거기다 같은 학교, 같은 반. 뒷 장으로는 주요 기업 인사들의 자녀들의 사진이 이어졌다. 별 흥미는 없었다. 서유주와 관계 있는 자들만이 내 관심사였으니까. 흥미 없는 내용들이 이어졌다. 어느 기업 아들, 어느 대학 총장 딸.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서유주에 대한 내 말을 다 믿어줬던, 유독 친하게 지냈던, 도경수. 어렸을 때랑 진짜 똑같네. 동그란 눈에, 유독 반듯하게 생긴 얼굴은 정말 그대로였다. 잊고 지냈던 시절이 무색하게 반가워져 사진을 요리조리 뜯어 보는데, 도경수의 사진 아래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짤막한 문장 하나만이 쓰여 있었다.



마주치지 말고, 눈에 띄지 말것.




[EXO] 나쁜 피 ① | 인스티즈

 


/ Bad Blood 




저택에 있었던 주말동안 아빠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엄마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본가에 남겨져 있는 건 나와 김종인, 가정부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가 있어서 본가로 오지 않는 건가. 사실 조금 기대했었다. 명색이 가족이니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다. 밥이라도 같이 먹을 줄 알았다. 아침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기대했었다. 그 기대가 무색하게도 외롭다는 건 저택 생활과 똑같다. 저택에서나, 여기서나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건 변치 않는다. 그리고 혼자 먹는 밥은 퍽퍽하기 그지 없다. 식탁에는 진수성찬이 올라왔지만, 퍽퍽함이 싫어 가정부 아주머니의 부름을 뒤로하고 쫓기듯이 집을 빠져 나왔다.



오늘부터 학교에 가는 날이다. 교복이 어색했다. 자동차 뒷 좌석에 올라타서는 괜히 애꿎은 교복 치마만 무릎께로 끌어 내렸다. 짧아도 너무 짧다. 학교를 어떻게 다녔길래 이 길이가 '서유주스러운 길이'가 된 건지. 처음 본가에 들어온 날 김종인에게 전해 받았던 교복은 입어보지도 않고 쇼핑백에 고이 모셔 두었는데, 보고를 받은 건지 비서실장이라는 여자가 주말 오후에 갑자기 찾아왔다. 덕분에 그날 교복을 처음 입어봤다. 치마가 너무 짧아서 조금 늘려올 순 없겠냐고 묻자 비서 실장은 서유주가 입던 길이에 맞춰 온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안된다는 소리였다. 서유주가 염색을 했었는지 염색까지 시키려고 하는 것을 겨우 거절해 머리는 겨우 지켜냈다. 여자는 내게 몇 가지 충고를 하곤 잘 부탁한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 충고라고 할 것 같으면, 대충 내가 서유주로 살면서 지켜야 할 수칙 같은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지 말고, 어떤 기업 자제와는 어울리지 말고. 뭐 그런 것들.



"아침은 드셨습니까?"



앞으로 학교까지는 김종인이 태워다 준다고 했다. 물음에 고개를 저으니 룸 미러로 나를 보던 종인은 차를 출발시키는 커녕, 안전벨트를 푼다.



"출발 안해요?"

"빵이라도 사올까해서..."

"괜찮아요. 원래 아침 안먹어요."



그제서야 종인은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차가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갔어요?"

"…어떤 사람들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요일마다 오던 사람들이요."

"유주 아가씨 전담으로 간 것 같습니다. 사모님께서 명령하셔서."

"서유주가 돌아오겠다고 하면 난 다시 저택으로 가는 거예요?"

"......"

"대답 못하는 거 보니까 맞나보네."



말이 없는 종인에 나는 고개를 틀어 창 밖을 보았다.



"혹시 정말 그렇게 되면, 그쪽이 나 좀 빼내줘요."

"......"

"벌써 명령 내려온 건 아닐테니까, 내가 먼저 부탁한 거 맞죠?"



종인은 그저 대답 없이 창문을 내려주었다. 마치 저도 답답한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밉진 않았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보다는 김종인이 백배 천배는 나았으니까. 내 사람으로 만드는 건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았다. 내가 서두르면 달아날 뿐이다.




[EXO] 나쁜 피 ① | 인스티즈

 

 

 

/ Bad Blood 

 

 


차에서 내려 학교 건물로 들어왔다. 학교는 서유주로서는 수백번도 넘게 들락거렸을 공간이지만, 서우주에게는 낯설고 머리 아픈 공간에 불과했다. 바깥에 나오는 건 오랜만이라 어지럽기만 했다. 지금 내 앞에는 저택에 살면서 보던 일상적인 풍경이 아닌, 180도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으니까. 구조는 또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면 학교 구조도가 있을 거라는 김종인의 말에 일단 중앙 현관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김종인의 말대로 큼직한 구조도가 벽에 붙어있다. 나는 구조도 앞에 서서 비서실장이 주말에 알려줬던 교실을 손으로 짚어가며 찾았다. 그러니까 서유주가 아마, 3학년…. 방금 전 까지도 김종인이 귀에 닳도록 말했건만, 또 깜빡했다. 3학년 몇 반이었더라.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곧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3학년 8반. 8반이었지 그래. 3학년 교실은 4층에 있었다. 나는 손으로 짚어가며 3학년 8반의 위치를 머릿속에 입력했다. 아, 이제 좀 알겠다. 됐다 싶어 이제 올라가려는데 뒤에서 팔이 튀어나와 나를 꽉 끌어 안는다.



"며칠 결석하더니 이젠 반 위치도 모른다?"

"…저기 미안한데, 우리 팔 좀 풀고 말할까?"

"왜이럴까 오늘."



웃음기 어린 말투로 말하던 누군가는,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온다.



"네가 이렇게 해달라며. 정략 결혼이라는 말 나오는거 싫다면서."

"...오세훈?"

"어, 네가 환장하는 그 세훈이야."



서유주의 정략 결혼 상대라면 오세훈이 아니던가? 혹시나 해서 던져본 이름인데 역시나 맞아 떨어졌다. 오세훈은 나를 꽉 안고 있던 팔을 풀고는 내 어깨를 감싸 이끈다.



"염색 풀었네."

"아, 응. 괜찮아?"

"훨씬 예쁘다."



나를 보는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예쁘다는 오세훈의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감이 안왔다. 하하, 억지 웃음만 짓자 오세훈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너 오늘 이상하다, 하고 말이다. 오세훈이야 지극히도 일상적인 어조로 물었지만, 듣는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서유주가 오세훈을 어떻게 대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 지금으로썬 말도, 행동도 어느 하나 섣불리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둘이 좋아하는 사이야? 그냥 정략 결혼 상대 아니였어? 서유주가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고? 정략 결혼이라는 말 나오는게 싫어? 왜? 서유주가 오세훈을 좋아하나? 그럼 오세훈은 서유주를 싫어하는 거야, 좋아하는 거야? 말하는 거 보면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



"좀 떨어지지?"



또 다른 음성이 들린다. 그 목소리에 나를 빤히 보던 오세훈은 인상을 찌푸린다. 음성의 근원은 계단 위였다.



"도경수, 넌 좀 작작하지?"

"작작은 씨발. 2학년 8반 오세훈 서유주, 풍기문란 벌점 6점."



오세훈이 도경수라고 했다. 도경수, 내가 들은게 맞다면 지금 이 목소리는…, 정말 도경수겠지. 도경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주한 도경수는 비서실장이 보냈던 사진 속에서 봤던 것 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랑 정말 똑같다. 하나도,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경수야. 저택에 갇히게 되면서 내 인간관계는 거의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랬기 때문에 혈연을 제외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은 도경수가 전부였다. 경수랑 나는 그 정도로 친했다. 어릴 때 생각에 잠시 추억에 젖어 있었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도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이 나를 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경수야. 홀린듯이 그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도경수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넌 또 아침부터 뭘 꼴아. 기분 더럽게."

"...아."

"내가 늘 말하잖아. 그 얼굴로 그러고 살지 마. 좆같으니까."



독설에 넉다운 된 기분이었다. 분명 도경수는 서유주에게 말하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듣는 건 나였다. 괜히 기분이 묘했다. 조금 섭섭하기도 한 것 같다. 착하고 순했던 어린 도경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내 앞에는 가시를 삐죽 세우고 나를 찌르려 드는 도경수만이 존재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이 변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데 왜 이렇게 섭섭한 건지. 무심한 얼굴로 오세훈과 나를 내려다 보던 도경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나를 스쳐 지나간다. 정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서유주와 도경수 사이가 이 정도로 안좋았던가? 어렸을 때의 도경수는 서유주에게 이 정도로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둘은 언제 이렇게 틀어져 버린 걸까?



"뭐해. 안 올라가?"

"…응. 올라 가야지."

"무시해 그냥. 도경수 변백현 하루 이틀 저러는 것도 아니고."

"......"

"너 오늘 많이 이상하다?"



말을 마친 오세훈은 웃으며 주위를 휘 둘러본다. 때문에 나도 덩달아 오세훈의 시선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다 올라가버린 건지, 어느새 휑해진 복도에는 오세훈과 내가 전부였다. 오세훈은 내 어깨를 감쌌던 손을 뗀 후, 내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친다. 그리고, 내게 눈을 접어 웃으며 말한다.



"유주야. 나이가 몇인데 계단은 혼자 올라갈 수 있지?"



그렇게 말한 오세훈은 내 어깨를 두드렸던 손을 툭툭 턴다. 뭐 더러운 거라도 묻었다는 듯한 제스쳐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애정이 담겨있던 눈은 어느새 죽어있었다. 녀석은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실에서 봐."



오세훈은 나를 두고 휘적휘적 계단을 올라간다.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오세훈은 서유주를 사랑하지 않는다. 둘의 사이는 쇼윈도 커플에 불과했다. 서유주에게 있어 내가 끊어낼 인간관계는 애초에 없었던 듯 싶었다. 서유주는 이미 충분한 고립 상태였다. 문득 토기가 치밀었다. 저택을 탈출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증오해 마지않는 서유주의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역겨웠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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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5.164
워...기대기대...불맠없겠죠 그런 저는 못봐여ㅜㅠㅠㅓㅇㅇ엉엉
8년 전
가벼움
불마크는 예정 없어요! 댓글 넘넘 감사합니당.....T-T~~~♡
8년 전
독자1
하 진짜 꿀잼ㅠㅠㅠㅠ.
8년 전
가벼움
댓글 감사합니다 T-T 좋은 하루 되세요~~~♡
8년 전
독자2
와 진짜 내용 대박이에요 진짜 재밌을꺼같아요 완전 취향저격...와 대박...우주가 잘됐으며뉴ㅠㅠㅠ
8년 전
가벼움
세상에 취저라니... 예쁜 댓글 감사합니다...8ㅅ8 다음편 열심히 써올게요~♡
8년 전
비회원84.101
헐 기다릴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가벼움
비회원 댓글 언제 공개되나 기다렸어요!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ㅠㅠ~♡
8년 전
비회원182.15
99ㅜㄹ잼이네요..ㅎㅎ 계속 연재 해주실거죠 꾸준히 읽으러올게요!
8년 전
가벼움
큰 문제 없는 이상 계속 연재할 거예요! 예쁜 댓글 정말 감사해요~~~♡_♡
8년 전
비회원150.136
와 대박..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이런글을 보게되다니ㅠㅠ 완전 집중해서 봤어요 다음편 기다릴게요..♡진짜 재미따..
8년 전
가벼움
이번주 내내 어딜 다녀와서 이제 2편 쓰기 시작했네요... 좀 늦어질 것 같아 넘넘 죄송해요TㅅT...! 댓글 감사합니다~~♡ 금방 써올테니 곧 봬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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