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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lood 3

 


다정한 부름이 문제였던 건지 마주한 도경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단추가 끝까지 다 채워진 교복 셔츠, 품 안에는 두꺼운 파일을 가득 안고 있다. 말간 얼굴로 나를 빤히 보던 도경수는 한숨을 뱉듯이 입을 연다.

"야."

"경수야,"

"그 얼굴로 내 이름 부르지 마."

"...도경수."

"서유주 네가 양심이 있으면 못 이러지."

도경수는 지겹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삐딱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무심한 눈빛도 잠시 단순히 내 모든 행동을 서유주의 객기로 치부해 버린 건지 곧 도경수는 내게서 등을 보이고 복도를 바삐 걸어간다. 나는 그 등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서유주 아닌데."

"......"

"...나 우주야, 네 친구."

​묵묵히 제 걸음을 옮기던 도경수는 내 첫 마디에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고, 그다음 말에 품에 안고 있던 것들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소리가 요란했다. 일단 떨어진 파일 먼저 주워야겠다 싶어 도경수에게로 다가가서 바닥에 널브러진 파일들을 품에 안는데, 올려다 본 도경수는 아예 파일을 주울 생각이 없는 건지 멍하니 나를 보고만 있다. 눈이 마주쳤다. 도경수는 내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다 말할 테니까, 일단 이거 먼저 줍자."

"서우주라고 했지. 네가."

​"학생 명부면, 교무실에 가져다주면 되는 거야?"

"​...분명히 그랬어. 너."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얼빠진 얼굴로 나를 보던 도경수는 곧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내가 금방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지, 도경수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도경수의 따뜻한 손이 조심스럽게 내 한 쪽 볼에 닿았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유일했다. 내 얼굴을 제 눈에 오롯이 담아내던 도경수는 곧 헛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품에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이번에는 내가 애써 주운 파일을 다 떨어뜨리고 말았다. 상관없었다. 나는 방황하던 두 팔으로 도경수의 등을 꼭 감싸 안았다.

"진짜, 진짜 우주네."

​"......"

"다행이야. 다시 봐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


우주야 내가 얼마나, 너를 얼마나. 나를 안고 낮게 중얼거리던 도경수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데, 복도 코너로 그림자가 진다. 혹시 누가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깜짝 놀라 도경수의 등을 아프지 않게 쳐내니, 도경수가 내게서 떨어졌다. 묘한 얼굴이었다. 나는 끈질기게 닿아오는 도경수의 시선을 피하고, 급히 떨어진 파일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



"...경수야. 일단, 어디 가서 말하자. 누가 보면 정말 큰일나."

"우주야."

"너 빼곤 아무도 몰라. 다 내가 서유주라고 알고 있으니까,"

"하나만 물어볼게."

"...어?"



도대체 뭘 물어보려는 건지 도경수를 보자, 도경수는 예쁘게 웃으며 입을 연다.


"난 너 많이 보고 싶었어. 다시 봐서 너무 좋은데,"

"......"

"너도 그렇지?"


​나는 도경수의 웃음을 어설프게 따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수는 내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제가 하겠다며 내가 들고 있던 파일을 앗아가며 말한다.

"왜 누가 보면 안 된다는 건진 모르겠는데."

"......"

"일단 따라와, 우주야."



[EXO] 나쁜 피 ③ | 인스티즈

 

 

/ Bad Blood




도경수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서유주라는 이름 앞에서 내보였던 차가운 얼굴과, 말들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도경수는 적어도 내 앞에서는 변한 게 없었다. 보고 있노라면 내 기분까지도 좋아지게 만드는 맑은 웃음이며,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말과 행동까지도. 도경수가 내게 안내한 곳은 구 음악실이었다. 저번 방학에 새로 본관과 이어지는 건물을 신축했는데, 음악실이 함께 옮겨가서 구 음악실은 학생회에게 내주는 창고로 전락했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학생회 임원들조차도 구 음악실에는 오지를 않는단다. 버젓하게 창고 딸린 멀끔한 학생회실이 있는데 외진 음악실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다나 뭐라나. 어쩌다 보니, 음악실 키는 도경수에게 오게 되었단다.

역시 음악실은 음악실이었나 보다.​ 안을 둘러보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손길에 답했을 하얀 피아노도 있었고, 구석에는 뽀얀 먼지가 덮인 기타도 세워져 있었다. 커다란 창문으로는 햇빛이 들어왔다. 어색함은 없었다. 우리는 음악실의 삐걱대는 의자에 앉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서유주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급히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동안의 서유주를 비롯해 서유주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모조리 말이다. 도경수는 내 물음에 생글생글 웃으며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답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왜 서유주의 이름으로 갑자기 돌아온 건지. 저도 내게 궁금한 게 셀 수 없이 많을 텐데 도경수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끊임없이 내 얼굴을 눈에 담고, 내 질문에 다정한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열쇠는 네가 가지고 있어.'

'...그래도 돼?'

'대신, 점심시간엔 여기로 오기. 학교에선 모르는 척해달라며. 나 너한테 학교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잖아.'

​'네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데...'

'우주 너 기다리지 말고 들어와 있으라고. 응?'

지난 대화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창문 너머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열쇠를 꼭 쥐었다.


"통화 도청은 물론이고, 문자도 전부 검열될 겁니다."

​"......"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도경수 반은 대체 왜 물으신 겁니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 종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알 수가 없다. 왜 내가 도경수를 만나선 안되는 건지. 비서실장이, 김종인이 나와 도경수의 관계가 어떤지 잘 몰라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도경수에게 뭔가 다른 게 있는 걸까.

"제가 도경수를 만나면 안 되는 이유가 뭔데요?"

"...그야, 유주 아가씨랑 사이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

"그쪽 집안이 사법부를 꽉 쥐고 있어서 틀어지면 서주에서 잃는 게,"

"그런 거 때문이면 다 괜찮아요."

"......"

"경수는 어릴 적 친구였어요. 유일한 친구."

​반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노을이 비쳤다. 김종인은 조심히 입을 연다.


"...그래도, 조심하셔서 나쁠 건 없습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EXO] 나쁜 피 ③ | 인스티즈

 

/ Bad Blood




졸린 눈을 부릅 떴다. 절대 잠들면 안 된다. 도경수와 약속한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 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번 깊게 잠들면 누가 깨우지 않고서야 일어나지를 못 했다. 고개가 제 마음대로 젖혀진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버리고 말 것이다. 분명. 건조한 눈을 꿈뻑이며 손목시계의 초침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엎어져 있던 오세훈이 언제 일어났는지 내 머리를 꾹 누른다.



"좀 가만히 있어."

"...뭐야, 너 안 잤어?"

"옆에서 자꾸 신경 쓰이게 하잖아. 네가."

"......"

"잘 거면 자고, 말 거면 말고."



말을 마친 오세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 오세훈과의 대화에 잠이 확 달아났다. 정말이지 오세훈과 서유주의 관계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제 도경수에게 궁금했던 것들은 싸그리 물어봤지만, 도경수도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오세훈과 서유주가 쇼윈도 커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자 도경수는 오히려 저도 처음 안 사실이라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서유주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는 도경수도 모를 정도였으니 둘은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연인이었던 건가. 모르겠다. 어렵다.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구조식을 그리시며 열변을 토하고 계신다. 알케인, 알켄, 알카인.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남발했다. 내 머릿속에는 서유주만이 둥둥 떠다닌다. 수업이 차라리 더 쉽겠다 싶었다. 모르는 건 찾아보기라도 하지, 서유주는 캐도 캐도 나오지를 않으니.



고개를 틀어 오세훈을 바라봤다. 나한테 가만히 좀 있으라고 말했던 게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또 곤히 잠들었다. 며칠 동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오세훈에게 학교 수업 시간은 곧 취침 시간이었다. 그래서 공부도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영어 단어 시험을 봤는데 다 아는 건지 쓱쓱 금방 풀고 자더라. 장차 재원을 물려받을 후계자라 그런지, 선생님들은 오세훈이 수업 시간에 자든, 이어폰을 꽂고 게임을 하든 별다른 터치는 하지 않았다. 커다란 창으로 햇볕이 들어왔다. 오세훈은 눈가를 찡그렸다. 눈 아픈가…. 혹시 오세훈이 또 깨기라도 할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내렸다. 됐겠지. 자리에 돌아가 또 조심히 앉는데, 오세훈이 번쩍 눈을 뜬다.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니까."



낮게 잠긴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대며 들려왔다. 나른한 눈빛, 나른한 목소리. 나는 그렇게 멍하니 오세훈과 시선을 맞대고 있었다. 오세훈이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해서.




[EXO] 나쁜 피 ③ | 인스티즈

 

 

/ Bad Blood




수업이 끝나자마자 약속했던 대로 음악실로 향했다. 행여나 도경수가 먼저 와서 기다리는 불상사가 있을까 헐레벌떡 뛰어갔다. 도경수는 언제 올까, 기다리며 피아노 건반도 몇 번 눌러 보고, 도경수의 것으로 보이는 책들도 몇 개 들춰 보다가 낡은 걸상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기척이 느껴져 얕은 잠을 떨치니,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건지 도경수가 내 앞에서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을 보면 점심시간도 꽤나 지난 것 같은데. 환하게 빛이 들어오던 창문은 어느새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도경수가 그런 건가 보다.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게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괜히 도경수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왔으면 깨우지..."



내 말에 도경수는 푸흐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곤히 자길래 깨울 수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도경수는 입가에 미소를 둥 띄운 채로 내게 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초코빵이었다. 도경수 얘 혹시 내가 단 거 좋아하는 것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건가.



"우주야, 밥 안 먹었지."
"어떻게 알았대?"
"급식실에서 너 찾았어. 그런데 오세훈 옆에도 없지, 너희 반 여자애들 옆에도 없지."

"아..."

"밥은 왜 안 먹었어? 배 안 고파?"

"...나 혼자서 밥 잘 못 먹어."

"오세훈이 같이 먹어 주는데?"

"오세훈은 불편해. 같이 있으면 서유주 아닌 거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거든."



도경수가 건넨 빵 봉지를 뜯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 얘기 해줄게, 하고 말이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도경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낸 거야?"

"저택. 숲에 있었어."

"...숲?"

"응. 여기서 되게 멀걸. 차 타고 올 때 시간 되게 많이 걸렸으니까."



7년 내내 거기 갇혀 지냈어. 굶어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수요일마다 서주 사람들이 찾아는 오더라. 아, 저택이 숲 깊숙이 있었거든, 그래서 갇힌지 얼마 안 돼서는 길 잃은 사람도 몇 찾아오고 그랬어. 그런데 하필이면 외부인이 저택에 들어왔다는 걸 하수인들한테 들켜 버린 거지. 그날 이후로 가까운 동네에는 소문이 싹 퍼졌대. 내가 있는 숲이 뭐 귀신 나오는 숲이라던가. 나오는 길에 보니까 폐쇄 표지판도 곳곳이 세워둔 것 같더라. 나는 그렇게 갇혀 지냈어. 아무도 찾지 않아서 말할 수 없이 외로웠고.



"그럼, 어쩌다가 간 거야. 그것도 그렇게 갑자기."

"알잖아. 서유주가 나 괴롭혔던 거. 아마 너 마지막으로 봤던 날이 나랑 서유주 생일 파티였나?"

"......"

"그날 서유주가 밀어서 호수에 빠지고, 실어증이 왔었어."



나는 나 나름대로 충격이었거든. 혹시 기억날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 그래도 그땐 서유주가 꼴에 언니라고 잘 따랐었잖아. 못되게 굴어도 언니니까 그냥 넘어갔었었구. 늘 마음 한 켠엔 서유주가 잠깐 이러다 말겠지 싶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깨어나서 말을 못했어. 엄마 아빠는 밖에 못 나가게 했고. 왜 그랬던 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어. 말 못하는 게 수치였나? 집에 있으면서도 서유주는 나를 가만히 놔두지를 않더라. 하루는 병원 갔다가 잠깐 누워 있었는데, 웬일로 서유주가 말을 거는 거야. 나더러 잠깐 나와 보래. 무슨 일인지 일단 모르잖아. 다급하게 부르길래 나가는 봤는데…,



"...우주야."

"......"

"괜찮으니까, 그만. 그만해도 돼."



무얼 그리 생각하는지 눈을 감은 채로 말이 없던 도경수는 얼마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일 없게 할게. 이제."

"......"

"...이제 정말, 나는 확실하니까."



잠긴 목소리로 말한 도경수는 이내 내 손을 꽉 잡아 왔다.




[EXO] 나쁜 피 ③ | 인스티즈

 


/ Bad Blood




예비종이 울리고 나서야 우리는 음악실을 나섰다. 도경수와는 음악실 밖에서는 남이 된다. 꼭 도경수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비서실장의 충고 때문만은 아니다. 다만, 다른 아이들한테 같이 있는 것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뒷이야기가 나올 것이 분명해서였다. 쓸데없는 고민거리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넘치고 넘친다.



열쇠는 여전히 내 손에 있다. 도경수의 따뜻한 온기와 함께. 쥐고 있던 열쇠를 마이 안쪽 주머니에 넣고 교실 문을 열었다. 반은 시끄러웠다. 수업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아 조용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무슨 일인지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내 등장에 아이들의 시선은 내게로 쏠렸다. 아마, 그 이유는 내 등장과 동시에 이화인의 울음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리라. 이화인은 제 자리 옆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정적을 가르고 쏟아지는 그 울음소리에, 나는 이화인에게로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점심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화인의 자리 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물론 자리의 주인인 이화인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교복이 잔뜩 젖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이고 있는데, 그 옆에는 역시나 변백현이 자리하고 있다. 이화인을 좋아하는 건가, 그래서 위로라도 해주는 건가.



그만 시선을 떼려는 순간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변백현은 나를 팽팽히 노려봤다. 분명히 나를. 나를... 대체 왜? 멍하니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데, 변백현이 몸을 일으켜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아이들의 쑥덕임은 더욱 커져만 갔다. 변백현은 내 앞으로 걸어와 끝내 입을 열고 만다.



"그 거지 같은 왕따 놀이 도대체 언제까지 할래."

"...뭐?"

"애새끼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야, 난 지금 네가 무슨 말하는 건지 아예 모르겠는데,"



변백현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사과해."
"뭘?"

"뭐겠어. 사과하라고, 이화인한테."

"싫어. 내가 왜 그래야 돼? 내가 뭘 어쨌는데?"



그 말에 나는 변백현을 가만히 올려 보며 그리 답했다. 내 답에 변백현은 어이가 없는지 픽 웃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아마 변백현은 내 말을 거짓말 정도로 받아들인 듯 싶었다. 변백현은 이미 내가 점심시간 동안 이화인을 저 꼴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정작 어이가 없는 건 내 쪽이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내게는 도경수라는 분명한 알리바이도 있었다. 이화인에게 불순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서유주의 장난감으로서 학교생활을 이어온 이화인을 불쌍하다고 여겼으면 여겼지. 입을 꾹 다물고 변백현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변백현은 딱딱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본다.



"똑같이 당해봐야 너도 그 기분을 알까."



그리고 그 다음은 모두 순식간이었다. 변백현이 옆 책상에 놓여있던 우유를 내 머리에 부어 버린 건.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우유가 긴 머리를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발 끝으로 하얀 웅덩이가 졌다. 가만히 밑을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서유주가 나를 호수에 빠뜨렸던 기억이 오버랩되어 나를 감쌌다. 온몸이 차가웠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은 등골이 오싹할 만큼 섬뜩했다.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 후로 일종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나는 서유주가 두려웠고, 그때의 잔상으로 내게 강한 적의를 표현하는 대상이 두렵다. 그래서 그런 걸까. 지금은 화라는 감정 보다도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감정이 앞섰다. 심리 상태가 불안정해지니 몸도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누가 이 답답한 상황에서 제발 나 좀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원했다. 그 순간 교실문이 열렸다.



"뭐 하냐 지금."

"넌 내가 뭐 하는 거 같은데."



내 기도에 응한 이는 오세훈이었다. 변백현은 이화인을 데리고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 오늘로서 두 번째였다. 변백현이 내게 이리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성큼 내게 다가온 오세훈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조심히 감싸고는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우유를 제 가디건 소매로 쓱쓱 닦기 시작한다.



"...너, 교복."

"괜찮아."

"......"

"머리는 어떡하지? 다 젖었네."



분명 찝찝할 텐데…, 오세훈은 제 가디건이 젖는 건 개의치 않는지 내 젖은 머리를 조심히 정리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도 말이다. 저를 빤히 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오세훈은 시선은 내 머리에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 순간에도 녀석의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세훈이 나를 바라보는 동시에 불안은 조금씩 멎어갔다.


"여기 가만히 있어. 교무실 가서 너 조퇴한다고 말씀드리고 올 테니까, 기사 부르고."



그 말에 난 멍청하게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오세훈은 그런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더니 금방 오겠다며 곧 잰 걸음으로 반을 나섰다. 남은 건 반 쏟아지는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다, 첫 날 나를 껴안았던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애는 내 시선에 쭈뼛거리며 손사래를 친다.



"유주야 진짜 아니야! 우리가 그런거 아니야!"

"......"

"진짜야. 네가 이화인 괴롭히는 거 이제 싫다는데, 우리가 왜 그러겠어!"



표정이고, 행동이고 어느 하나 ​거짓을 말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서유주는 저들의 우두머리와도 같았다.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저 무리가 서유주의 뜻을 거스르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소리다. 그럼 도대체 이화인은 누가 그렇게 만든 거지. 아무래도 이상했다. 나는 고개를 쳐박고 한숨을 쉬었다. 시야엔 다시 사건의 잔해가 들어온다. 흰 우유 웅덩이,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내 몸에서는 우유 비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번호부에 딱 하나 저장된 번호를 꾹 눌렀다. 김종인. 연결 신호가 두 세번 울렸을까, 김종인의 음성이 휴대폰을 타고 들린다.



"지금 빨리 학교로 와주세요."

/ 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빨리요."

/ 예. 10분 내로 정문에 차 대기 시키겠습니다. 


통화가 끊어지고, 오세훈이 다시 등장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 교시는 독서라는 명목 아래 자율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감독 선생님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오세훈은 내 손에 조퇴증을 쥐어 주고, 내 가방을 제가 멘다. 같이 가자는 건지, 오세훈은 빨리 가자며 손까지 내민다. 이제 좀 알것 같다. 왜 오세훈과 서유주가 지독히도 계산적인 서로의 관계를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지.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오세훈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나를 교실 밖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로 말없이 걸었다. 그렇게 계단 가에 도착했다. 이쯤 했으면 됐다 싶어, 나는 오세훈의 손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됐어. 여기부턴 나 혼자 갈게."

"......"

"도와줘서 고마워. 가디건은 어떡하지. 세탁해서 줄까, 아님..."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오세훈은 삐딱하게 서서는 야, 유주야. 하며 나를 불러온다.



​"너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

​"이 상황에서 난 너 걱정하는게 맞아."

"......"

"우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관계라고."

​오세훈은 말을 마치고 덤덤히 내 손을 잡아왔다. 그건 기어코 내가 차에 들어가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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