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정신이 돌아오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잠시 놀라 보이지 않았던 주위의 시선과 익숙한 웅성 거림에 우산을 건네받았을 뿐 늘상 있던 일이며, 지금쯤이면 '김태형이 또?' 같은 류의 글이 나돌고 있을테지. 꽤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뒤로 살짝 빠져있는 김태형 쪽으로 가까이 붙어 머리 위로 우산을 기울자 웅성임이 조금 더 커진다. 언젠가 저것들이랑 결판 한번 내야지 생각할 때쯤 완전히 우산을 넘겨준 김태형이 별다른 표정 없이 반대편으로 고갤 까딱한다.
"근데 너 우산은? 있어?"
"좀 늦게 나갈 거라 괜찮아."
"그 말은 없다는 소리잖아."
"그때 되면 그칠 수도 있는데 넌 당장에 필요하니까."
"데이트 잘해."
이 말이 독이 될 줄도 모르고.
어쩌다 CC
02. 선
정말 우산만 주려고 나온 모양인지 전해주고 다시 들어가는 뒷모습 잠시 바라본다. 김태형은 항상 이랬다. 힘든 일이나 급한 일이 있을 때 귀신같이 나타나서 해결하기 일등공신. 어쩌면 친구들 말대로 남자친구보다 더 남자친구 같은 남사친. 김태형의 원래 성격이 그러냐, 묻는다면 대답은 잘 모르겠다. 주변에 사람은 넘쳐나는데 보고 있자면 그렇게 친해보이진 않고, 친구라고 먼저 소개하는 법도 없다. 그나마 대학와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소개 받은 건 박지민 뿐이랄까. 겨우 걸음을 돌렸음에도 생각보다 더 거슬리고 신경 쓰인다. 언제 가려고 저러나, 과제를 하나, 그때도 비가 오면 어쩌지, 우산 가지고 내가 와야 되나. 수도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으로 아래까지 내려와 주차돼있는 차에 올라탄다. 곧장 들려오는 목소리에 웃어보이며 인사하곤 빗물 떨어지는 우산 조심히 접어 한쪽에 놓자 어디서 났냐는 질문이 온다.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던 입 다물고 그냥 친구라 칭했다.
"비가 많이 오네. 뭐 먹을까?"
"아무거나 좋은데, 오빠 먹고 싶은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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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대학교 대나무 숲
신입생인데요
혹시 키 크고 코트에 체크목도리 하신 남자분
누군지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완전 제 취향인데...진심 개잘생기셨어요
연예인인 줄 알고 찾아봤는데 그건 아닌거 같고
번호 물어보려고 불렀는데 못 들으셨는지 그냥 들어가심..ㅠㅠ
보고 계시다면 댓글 꼭 부탁드려요
좋아요 4.2천명 댓글 917
박나라 아ㅋㅋㅋㅋㅋ얼굴 안봐도 걔다 @이재은
이병준 난가?
미누 @이병준 난가 ㅇㅈㄹㅋㅋㅋ
혜미연 @배유진 오늘 김태형 걔 코트 입음?
이재은 @박나라 ㅋㅋㅋㅋㅋㅋ여기 댓글 개웃기네 김칫국 오진다
맨날 여기 올라오는 애 누군지 다 알면서 나네 이러고 앉았음ㅋㅋ
박지민
혹시 얘?
주연 @한서연 야 댓글 사진봐ㅋㅋㅋㅋㅋ개귀엽게 찍힘
박지민 @성희연 제가 당사자가 아니라 좀
성희연 @박지민 아..그럼 대숲 한번 보시라고 말씀 부탁드려요ㅠ
박지민 @성희연 근데 얘 요즘 연애 관심 없다던데
다른 분들도 참고 하세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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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어쩌지? 지갑을 두고 왔네."
"그래? 내가 낼게."
미안해 자기야. 한껏 미안한 얼굴로 볼에 입 맞추기에 그냥 웃어넘겼다. 요즘 매번 저가 계산하는 거 같지만 항상 차도 얻어 타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빌지와 카드를 받아 밖으로 나오니 담배 필 동안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고 차에 올라탔다. 쌀쌀해진 날씨에 히터부터 키고 혹시나 물티슈 같은 게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 서랍 열어보는데 무언가 툭 하니 굴러 떨어진다. 의자 아래쪽으로 들어간 물건을 줍기 위해 몸 굽혀 더듬거리곤 곧이어 손에 잡힌 것을 꺼내 보인다. 립스틱? 명백한 여성 립스틱. 새거라고 하기엔 사용한 흔적이 보이고, 한번도 써본 적 없는 브랜드의 립스틱이다.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 갈 때쯤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벨트 채운다. 이제 뭐 할까? 시동 걸며 묻는 말에 피곤하다 대답했다.
말수가 확연히 적어진 게 느껴졌는지 기분 살피는 눈길 애써 무시하며 창밖으로 시선 돌린다. 선물이라 생각하기엔 반 이상 쓴 립스틱이었고,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숨겨 둔 것만은 확실했다. 계속 된 시도 끝에 말 붙이는 걸 포기했는지 차 안으론 조용한 정적만이 돈다. 이게 뭐냐고 따져 묻기엔 자신감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까 하는 불안함과 따져 물을 수 있는 입장이 되나 싶어서. 집 앞으로 차가 멈추자마자 말 없이 내리는 몸에 손목 약하게 그려쥐며 걸음 멈춰 세운다.
"왜 그래 내가 뭐 잘 못했어?"
"피곤해져서 그런다니까 나중에 얘기해."
"이러는데 오빠가 어떻게 가."
걱정스러운 얼굴 올려다보며 한마디 하려다 진정 되고서야 차분히 말하는 게 나을 거 같아 당장에 하고 싶은 말 집어 넣으며 립스틱을 손에 쥔다. 괜찮으니까 시간 되면 내일 얘기 하자는 단호한 말에 품 안으로 끌어 당겨 등을 토닥인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오빠 한테 말해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그렇게 믿고 싶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머리 기대어 한참을 그렇게 안겨 있다 먼저 떨어져 웃어 보이며 손 흔들어 도망치듯 집으로 올라와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워 천장 바라본다. 에이, 어머님이나 친누나분 거겠지. 평소와 다름 없이 다정 했던 모습 떠올리며 혼자 그렇게 생각해 낯선 립스틱 꺼내 보던 중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꺼낸다.
아, 맞다.
잠시 고민하다 남자친구에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일 볼 수 있냐는 카톡 하나 보내 놓고 눈 위로 팔 얹어 감는다. 머리가 아프다 김태형도 이것도. 이제까지 남자친구의 기분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한다. 불안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계속 느꼈을 텐데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방치하고 있었던 건 저였다. 철벽 치려면 제대로 해야지. 김태형을 기다리는 내내 곱씹으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들려오는 벨소리에 몸 일으킨다.
-나 다왔어 내려와.
-응, 근데 받을 게 뭔지는 안 알려줘?
-그거? 김치통인데.
-뭐야...완전 별거 아니네.
-뭘 생각했길래.ㅋㅋ 추우니까 겉옷 걸치고 나와.
냉장고에서 거의 다 먹은 김치통 꺼내 남은 건 그릇에 대충 옮겨 놓고 두어번 물로 씻은 뒤 탈탈 털어 옆구리에 낀 채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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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에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나가자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김태형이 보인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 들어 올리는 거에 김치통부터 내밀자 진한 눈썹 한쪽이 위로 올라간다. 차림새를 확인하는 모양인지 얼굴에서부터 옷으로 그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자 곧장 튀어나오는 잔소리는 덤. 금방 들어갈 건데 뭐, 대충 어물쩍 넘기며 우산까지도 건넨다. 고마워 잘 썼어.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 더 했을 김태형이 조용하다. 괜히 어색해져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가져와 몸 돌린다.
"네 것도 샀어?"
"그럼 혼자 마시게."
가까운 놀이터로 걸음 옮겨 그네에 앉은 뒤 봉지 뒤적거려 캔맥주 하나 꺼낸다. 김태형은 그때까지도 별 말 없이 내 옆에 앉았다. 하나 건네고 짠 하자는 의미로 캔 기울어 내밀자 얌전히 맞춰준다. 짠. 차가운 바람에 차가운 맥주 하나. 가볍게 한잔 넘기며 크- 소리 낼 때까지도 이쪽만 보고 있다. 양손에 꼭 쥔 채로 발 동동 굴려 흔들리는 그네 사이로 눈 마주친다. 애인이랑 데이트 한답시고 나간 애가 맥주를 다 찾고, 평소 처럼 쫑알 거리는 말 하나 없고. 눈치 빠른 김태형은 제 표정 읽기 바쁘겠다. 괜히 그게 웃겨 소리 내 웃자 진지한 얼굴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한다. 애도 참 표정에서 다 드러난다니까.
"뭔데 너."
"뭐가?"
"무슨 일 있어?"
글쎄다. 발을 더 크게 굴리자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얼굴에 실실 웃음 나온다.
"야 태형아."
"어, 왜."
"너 나 좋아해?"
그리고 정적. 움직이던 그네 멈춰 세우곤 한 모금 더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다시 묻는다. 나 좋아하냐고. 김태형 표정은 어떨까. 당황했나 아님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는 얼굴인가. 잠시 내리고 있던 고갤 들어 올린다. 김태형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평소 같은 얼굴로 저를 볼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서 이미 답은 나왔기에 남은 술 마저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녀 사이엔 친구란 없다. 둘 중 한 명은 분명히 좋아하고 있는 거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 서로 눈빛만 주고받기 몇 분 째, 결국 피하는 건 제 몫이다. 김태형이야 항상 인기 많고, 저 좋다는 여자 많으니 큰 상관 없겠지 하는 생각. 지금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점점 강해지는 추위에 주머니에 양손 집어넣고 몸 웅크리며 반응을 기다린다. 나는 그때 김태형이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랐을까. 안 좋아한다? 개소리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정답이 뭐야."
"뭐?"
"원하는 대답이 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물은 거 아니야?"
푹 눌러 쓰고 있던 후드 모자를 들어 올린 얼굴이 더 선명하게 들어 찬다. 그때 얼굴은 조금 억울해 보였다.
"진짜 눈치 없다 김여주. 그래, 나 너 좋아해.
근데 뭐, 걔한테서 뺏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좋아한다는데 그것도 안되냐."
이어진 말에 말문이 막힌다. 너 원래 이렇게 뻔뻔했어? 어이없이 나온 말에 어깨 으쓱하며 일어선 김태형이 마시지도 않은 맥주캔을 그네 위에 내려 놓는다. 이제 부터 그래 보려고. 뭐?
"이제부터 뻔뻔하게 해보려고."
"...너, 무슨."
"너무 밀어 내진 말고."
난 정으로 끝낼 생각은 없지만.
잊고 있었다. 뭐 하나 꽂히면 거기에 미친개가 된다는 걸.
어쩌다 CC
2. 넘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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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입니다 여러부우우운 2편이 너무 늦었어요...! 어울리는 노래 찾는게 제일 힘드네요ㅋㅋㅋ (실패함) 다음편은 좀 더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글 적는데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감사해요..♡ 그리고 암호닉 자유롭게 받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