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 D
"...."
"권순영,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기는, 지금 잘 살아있잖아."
4월 1일을 회상하던 그들이, 순영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정신을 차렸다. 맞다, Z는 현재 살아있다. 그것이 왜 우리가 Z를 또라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이유라고도 할수 있겠다. 권순영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의 인물이다. 죽었다 깨어나기를 몇번, 승관을 한달 반 내내 잠못들게 한 순영은 결국 두 달만에 제 병실에서 깨어났다. 물론- 그날의 기억을 다 잃은 채로.
"그럼,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Z?"
"아, 안난다니까! 내가 그 얘기 하지 말라고 했-"
"아, 조용."
다혈질의 Z가 B의 물음에 욱하며 답하자 보스가 Z를 가라앉혔다. 순영은 4월 1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상하게도 순영의 기억은 오로지 그 날, 4월 1일의 기억만 빠져있다. 승관은 아마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충격을 크게 받아 무엇인가 결함이 생긴것일거라고 짐작했다. 다행히 제가 누구인지, 소속은 어디인지를 기억해주는것만으로도 승관은 고마울뿐이었다.
"Z 허리 재활치료는, 계속 진행되고 있는거지?"
"네, 진행중입니다. Z가 내빼지만 않았어도 진작에 끝났죠."
"..."
순영이 아무말도 못하곤 입을 꾹 닫았다. 순영의 허리 재활에 초점이 맞춰지고, 순영이 승철에게 계속 잔소리를 듣던 중 한참을 혼자 생각하던 민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4월 1일, 공습 말입니다."
"응?"
"순전히, 우리 측이 잘해서 이긴것같지는 않습니다만."
"...맞아, 정확하군."
"제가 그 당시에 없었기에 상황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연합군의 힘이 컸던것같은데요. 아닙니까?"
"맞아. 연합군이 들어오지못했다면 아마 이 자리도 없었겠지."
민규의 날카로운 질문에 다른 조직원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연합군이 없었다면 아마 그 날, CA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민규는 그 당시 CA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K는 4월 1일이 지난 며칠 후 코로나 아스트레일스가 현장복구를 진행하던 중 갑작스레 투입된 요원이다. 무작정 찾아와 자신을 받아달라며 매섭게 눈을 반짝였던 민규를 승철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무작정 찾아온 그 패기와 뻔뻔함에 S는 K를 좋게 보았고, 신체능력 테스트 결과 Z의 뒤를 이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다. K는 그렇게 CA에 소속되었다.
S가 연합군의 힘을 어느정도 인정하자, K가 공습을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제 조직원들이 다시한번 그 끔찍한 일을 겪게 놔둘수는 없다.
모두의 시선이 K의 손으로 쏠렸다.
"반대합니다."
코로나 보리얼리스 공습 첫 반대표가 나왔다. 사실상 위험한 도박이라해도 무방했다. 이번에도 연합군이 도와주지않는다면, CA는 지금 적의 전장에 제 목숨을 갖다바치는 일이었다. K의 반대표로 다른 조직원들의 생각또한 흔들렸다. K를 제외하고는 모두 4월 1일 공습에 참전했던 요원들이었다. 그렇기에 섣불리 찬성표를 던질 수 없다.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B가 제가 들고온 서류를 확인하며 입술을 적셨다. 현재 승관이 소속되어 있는 메딕팀은 치료제를 개발중이다. 그 치료제가 개발되려면, 적어도 12월은 되어야한다. 그렇기에 승관 또한 반대표를 던졌다. 벌써 두개의 반대표가 나왔다. 보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명의 손에 의해 공습이 결정된다.
"난, 찬성."
"Z, 아직 허리 다 치료 안됐습니다."
"부서지면 돼."
"Z !"
B가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Z가 B를 바라보자 B가 화난 표정으로 Z를 노려보고있다. 또 기억 잃고 죽기 직전까지 가고 싶은겁니까? B가 끔찍했던 4월 1일을 떠올리며 제가 쥐고있는 새하얀 종이를 구겨놓았다. 남은건 H의 표, H의 선택에 이번 11월의 공습이 달려있다.
"제 생각엔 H, 절대 찬성 안할텐데요."
"..."
"지금 H가 여기 없다는게 감사할뿐입니다. 분명히 이 공습계획을 들었다면-"
"이 테이블 반이 부서졌을걸."
H는 4월 1일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
"H, 손이-"
"닥치고, 치료나 해."
"..."
순영을 병실에 눕혀놓고, 멍한 정신으로 다시 메딕팀으로 돌아오니 피투성이가 된 지훈이 느리게 걸어들어왔다. 승관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인건 투박하게 제 옷감으로 칭칭 감아놓은 지훈의 손. 승관은 또한번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제 예상대로라면, 지훈은 손을 다친게 분명하다.
"어떻게 된겁니까."
"..."
지훈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피로 얼룩진 그 옷감을 조심스레 풀어보니, 손이 엉망이다. 급하게 응급치료를 시작한 승관이 짧게 탄식을 내뱉는다. H, 지금 왜 아무렇지도 않은지 알겠습니다. 상처가 꽤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지훈은 치료 중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손에 총알을 맞은 지훈이 다행히 손가락이 잘리는것은 피해갔지만, 신경부분을 크게 다쳤다. 그렇기에 제 손이 아픈것까지도 느끼지 못하는것이다.
"보스는."
"방금, 연합군과 얘기하러 나갔습니다."
"..살아있는거면 됐어."
"...왜, 나갔습니까."
"내가 안나갔으면, 보스 죽었어."
"..."
덤덤하게 손에 치료를 받곤 피곤한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온몸이 피로 얼룩진 모든 CA의 대원들, 처참하게 부서진 제 환경을 보며 승관 또한 눈을 감았다.
"아마 H는 반대표 날릴것같은데요."
"무슨 반대표?"
B가 말함과 동시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승리했다는 표정을 지은 H가 회의실로 돌아왔다. Z가 놀라며 H에게 물었다.
"어, 설마!"
"흐,흐하."
"알아냈습니까?"
좀처럼 웃지 않는 지훈이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지훈의 손에 들려있는 서류뭉치, 그리고 그것의 제목-
[ CB 개새끼 해킹 파일 ]
- 코로나 보리얼리스 본부
"W- 그렇게 걷다가 또 넘어집니다."
여주가 얼빠진 표정으로 복도를 걷고있는 원우의 뒤를 체념한듯 따라가며 말했다. 원우는 아직 정신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물론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으나, 가만히 놔둔다면-
쿵.
"쯧."
넘어지거나, 벽에 머리를 박거나, 쓰러지거나 셋 중 하나다.
"W, 또 쓰러졌니?"
"아, 보스."
낑낑거리며 축 늘어진 원우를 침대로 데려가던 N이 J와 마주쳤다. 웃으며 둘을 반기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진 N은 당황하며 W를 고쳐 안는다. 그 모습을 본 J가 옆에 서서 함께 W를 부축한다. N은 불편한 상황에 금방이라도 토할것같으나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J에게 말을 건다.
"보스, 일은 잘 진행되고 있으십니까?"
"아, 응. 그럼. '그' 덕분에 방금 또 정보가 들어왔어."
"네? 무슨 정보-"
"좀 이따, 회의실에서 얘기할게. 여기지? 원우 방."
"아, 네. 알겠습니다, 보스."
특유의 미소로 N에게 답한 후 다시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J를 보며 N은 항상 이질감을 느낀다. 왜일까? 그가 다른 조직들의 보스들과는 달리 너무 친절해서?
아니면, 무언갈 숨기고 있다는 직감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와서?
"으-"
여주가 원우의 침대 옆에 앉아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때 즈음, 원우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조용히 일어나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제 옆에 앉아 가만히 멍 때리고 있는 여주의 묶은 머리를 뒤로 확 잡아당겨 제 위에 눕혀버린다.
"으악!"
"아, 놀랬잖아요!"
"뭐하나 싶어서."
세상에서 제일 놀란듯한 표정을 하고 원우를 쳐다보자 혼자 큭큭거리며 웃고있는 W, 누운 상태로 W의 몸을 꾹 누르니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낑낑거린다. 괘씸한 마음에 한참을 꾹 누르다 일어나자 또 큭큭거리며 W가 같이 일어난다. 어지러우면 말을 했어야죠, 약을 달라고. 여주가 원우에게 핀잔을 주니 입을 삐죽거리며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찾아갔는데 네가 없었는걸.
"..."
"약 안 먹으면, 죽는다며."
"..."
"그래서 갔는데 네가 없었어."
"..미안."
N이 말하고 입을 꾹 닫으니 침대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곤 웃는다. 하얀 가운 주머니에서 작게 '전원우' 라고 쓰여진 약 봉투 하나를 건네주자 말없이 받아들곤 테이블 위에 물 잔을 따르는 W. 그마저도 서툴러 결국 물잔을 놓친다.
"...더 심해진겁니까, 아니면 약을 안 먹어서-"
"나 괜찮아."
"..."
"괜찮으니까,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보지마. N."
"...가볼게요."
물잔을 엎고, 물까지 다 흘려놓고선 끝까지 자신은 괜찮다며 말하는 전원우의 모습에 결국 N은 방을 나와버렸다. 메딕팀 수장이자 제 주치의이기도 한 사람 앞에서, 저렇게 괜찮은 척하는 W는 바보가 아닐 수 없다. 갑갑한 마음에 방문을 닫고 문에 기대 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으니, 저 멀리서 하이톤의 목소리로 누군가 쿵쾅거리며 달려온다.
"N, 무슨 일이야!"
도겸의 외침과 동시에 N이 고개를 들고, 그 소리가 원우의 방까지 들렸는지 다급하게 원우가 방문을 열었다. 방문이 급하게 열리며 뒤로 넘어진 김여주는 덤.
"..."
"헉."
쿵쿵 달려오던 D가 놀란 표정으로 멈춰서고, 짜증을 한가득 담은 표정으로 N이 위를 올려다보니 힘겹게 웃음을 참고 있는 W가 보인다.
"..."
"N, 괜찮-"
"아! 진짜!"
N이 벌떡 일어서 원우 바로 옆 방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둘만 남겨진 복도에서 조용히 눈치만 보던 D와 W. 결국 W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 방으로 다시 들어가버리고, D는 조심조심 눈치를 보면서 N의 방 앞을 지나갔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