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전정국이 널 봤다고?"
"근데 저희 차도 선팅된거라서 얼굴은 못 봤을거에요. 눈은 우연히 마주친거 같아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일단 내가 다른 차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볼게."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전정국 그 놈은 원래 눈치가 빨라서 밀착 취재가 어려울거라곤 예상했어."
어찌 됐던 간에 들킨건 분명한 잘못이었기 때문에 난 전화기에 대고 계속 죄송하다고 했다. 호석은 그런 나를 위로하면서 바로 다른 차량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조금 전의 상황은 다시 생각해도 식은 땀이 난다.
전정국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키고 떠날 준비를 했다. 부산스럽게 차를 출발시키고 바로 앞에 있는 신호등에 걸린 틈을 타 사이드 미러로 편의점 쪽을 바라봤는데 전정국은 아예 몸을 틀어서까지 취재 차량을 보고 있었다.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번호판을 외우는 것 같았다.
"진짜 무서운 놈이야..."
첫 프로젝트라고 들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들켜서 이 일에서 아웃될 수도 있다. 회사에 들러서 취재용 차량을 반납하고 취재팀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아직까지도 퇴근하지 못한 선배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내 자리로 갔다. 두고 갔던 다른 자료집을 찾고 떠나려는데 선배들의 말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일단 아니라고 했어?"
"아니라고 했지."
"전부터 그런줄은 알았는데. 한 2년 전인가? 스캔들 났을 때 직접 전화 돌렸었잖아."
"그땐 진짜 아니었으니 다행이지."
무슨 얘기 중인가 싶어서 괜히 밍기적거리면서 엿들었다.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고 총책임자한테 주의만 주자. 아직 어리잖아."
"00신문한테도 사람 붙이라고 말해야겠지? 의심을 돌려야 우리가 편하니까."
"그래야지."
어느 소속사에서 전화가 온건가 싶었는데 얘기를 나누던 선배들은 연예부 소속이기도 했지만 뉴스부 소속이기도 해서 정치인들에 관한거겠거니 넘겼다. 나는 지금 내 프로젝트도 바쁜 사람인데 왜 듣고 있는걸까 한심해하며 집으로 발을 굴렸다.
"으아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럴수록 괜히 자신감만 없어진다고 결론을 내리고 자료집을 꺼냈다. 전정국의 이번 달 스케쥴표를 보니 다음 일정은 금요일 즉 모레에 있다.
***
전정국은 <잭과 산나물> 이후에 출연할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영화 제작사 건물 근처에 차를 주차해놓고 전정국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들키지 않으리라,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티나지 않게 미행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나왔다."
건물의 입구에서 매니저와 헤어진 전정국은 본인의 차에 올라타 출발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찍고 시동을 걸었다. 여러 대의 차를 사이에 두고 쫓아가서 그런지 오늘은 바로 목적지로 향하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열 시가 지나고 있었다. 전정국의 차는 시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극장 앞에 멈춰 섰다. 오호, 일부러 사람이 별로 없는 곳까지 온걸 보니 데이트? 오늘은 수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신이 났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짐을 챙겼다.
'꼬르륵-'
사무실에서 바로 나오느라 저녁을 챙겨 먹지 못했다. 카메라를 옷 속에 숨기고 극장에 들어갔더니 전정국은 얼굴을 꽁꽁 싸맨채로 매표소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뒤를 지나가는 척 무슨 영화를 보려 하는지 엿듣고 바로 옆에 있는 미니매점에서 나쵸와 콜라를 샀다.
"이터널 선샤인, 맨 뒤 구석자리로 주세요."
나는 전정국이 매표소에서 멀어진걸 확인하고 급하게 표를 구입했다. 심야 영화치고는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멜로 영화를 택한걸 보니 이건 분명한 데이트다! 특종이야! 어깨춤을 출 뻔한걸 자제하고 입장 시간이 되자마자 영화관에 들어갔다.
'오, 클레멘타인!'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영화라서 전정국에 집중하기 더 쉬웠다. 전정국은 영화가 시작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입장했는데,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혼자 들어왔다. 컵홀더에 들고 온 콜라를 끼워 넣고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감상하는 자세가 한시간째 유지되고 있었다.
[잘하고 있지? -정호석 선배님-]
매너모드로 해놨던 휴대폰이 뿜어낸 불빛에 문자를 확인했다. 잘하고는 있는데 잡히는게 없다고 푸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답장했다.
[네!]
느낌표가 발랄함을 더 했다고 뿌듯해하며 휴대폰을 뒤집어 놨다. 그런데 나는 고개를 들고 눈에 보이는 광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정국이 자신의 자리를 떠나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열 쪽으로.
"오지마, 오지마, 오지마..."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간절히 중얼거렸다. 전정국에게서 눈을 떼고 나는 영화에 집중하는 척 했다.
어느새 내가 앉아 있던 열까지 도달한 전정국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앉은 자리는 가장 안쪽 자리다. 내 옆에 앉을 일은 없을거야. 없을거...
"영화 재밌죠?"
망했다. 로봇처럼 뻣뻣해진 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쳐다봤다. 전정국은 내가 산 나쵸를 아무렇지 않게 집어 먹으면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는 내게 물어왔다.
"어디에서 왔어요?"
"네?"
"00신문? @@데일리? 아니면, 디스패치?"
마치 오늘 아침 뭐 먹었냐는 듯이 묻는 그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미행한걸.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시나리오에 나는 내 품 속에 있는 카메라를 더 세게 안을 뿐이다.
"저번에도 너였지?"
잠시만, 얘 지금 초면에 말 놓은거야? 갑작스러운 반말에 고개를 홱 돌려 전정국을 바라봤다. 나쵸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고 있던 전정국도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킨거, 더 빼 봤자 뭐해. 내가 디스패치 기자인 것만 들키지 않으면 되잖아?
"저번에 뭐?"
최대한 싸가지 없는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전정국은 내 당돌한 태도에 기가 찼는지 먹고 있던 나쵸를 놓고 실소를 터트렸다. 화면을 보니 영화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아서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래봤자, 휴대폰과 먹다 남은 콜라 밖에 없지만.
뒤에서 전정국이 따라 나오는게 느껴져서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묘하게 전세 역전 당한 느낌이 들어서 애꿎은 콜라통을 꽉 쥐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영화관의 출구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콜라통을 거칠게 버리자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 아 맞다, 나 지금 주차장에 가고 있지.
차라리 화를 내거나 회사를 캐 내려하면 이해가 되는데 저런 비정상적인 태도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눈 앞에 취재용 차량이 보이자 나는 더 급하게 걸었다. 한 시라도 빨리 극장을 떠나고 싶었다.
"아오, 진짜!"
차문이 닫힌걸 확인하고 나는 입 안에 맺혀있던 짜증을 뱉어냈다. 차라리 사무실에 있겠다고 할 걸. 입사 한 달 차가 무슨 특종을 잡겠다고. 후회에서부터 자기 비하까지 이어지는 생각에 나는 머리를 거세게 저으면서 시동을 켰다. 일단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하자.
'똑똑-'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은 예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 좀 열어보세요."
아까는 말을 까더니 이제와서 또 존댓말을 쓰는 전정국을 어이 없게 쳐다봤다. 물론 내가 타고 있던 차는 선팅 되 있어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겠지만.
"왜요?"
하마터면 시비 걸지 말라는 표정으로 뭐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차분하고 교양 있는 여성의 목소리를 구사하며 물었다.
"이거 놓고 갔던데."
전정국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수첩을 내게 건냈다. 그 수첩은 자료집에서 중요한 점만 옮겨 적은 취재 수첩이었다. 기자에게는 밥줄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냉큼 낚아챘다. 혹시 오는 길에 읽었으면 어쩌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다.
"뭔지 안봤으니까 걱정 안해도 되요. 다음부터는 잘 챙기고 다니시고. 그럼."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말한다. 인사는 생략하겠다는 듯이 전정국은 내게 두어번 손을 흔들어줬다. 나는 열린 차문을 통해 멍하니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전정국을 바라봤다.
"뭐야..."
차 안으로 들어오는 냉기에 몸을 부르르 떨고 차문을 닫았다. 나는 찝찝해진 기분에 괜히 액셀을 더 세게 밟아 요란한 타이어 소리를 내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대충 풀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었지만 엄청났던 감정 소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렇게 티 나게 쫓아 갔나? 내가 운전을 특이하게 하는 편인가?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김기자, 내일 나 대신 H&N 행사에 좀 가줄 수 있어? 포토월만 찍고 연예인들이랑 간단한 인터뷰만 하면 돼. -김진영 선배님]
이건 또 뭐냐고 투덜거렸지만 선배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네. 위치랑 시간 알려주세요.]
[고마워~ 다음에 꼭 보답할게. -김진영 선배님]
문자 기록을 위로 쭉 올려보니 선배님이 나에게 사야 할 밥은 최소 다섯 끼다. 어휴. 막내라고 막 부려먹네. 눈이 급격하게 침침해지는걸 느낀 나는 일회용 렌즈를 빼고 대충 씻고 잠들었다. 다음 날 누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채 말이다.
사담 안녕하세요 옴뫄야에요ㅎㅎㅎㅎ 너무 금방 온건가요.. 다음 화가 궁금하다는 댓글을 보니 글을 더 빨리 쓰게 되더군요ㅋㅋ 제가 댓글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하긴 했지만ㅠㅠㅜㅜ 첫 화치고 많은 관심을 받아서 징짜.. 감동 먹었어요ㅠㅠ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말이죠ㅠㅠ 제가 또 독방죽순이라 제 글 추천 되는거 몇 번 봤어요 그때마다 알지 못할 벅차오름잌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오바떨죠?ㅋㅋ 줄일게요! 독자님들의 사랑 더 재밌는 글로 보답하는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쩌렁쩌렁) 저는 글을 더 열심히 쓸게요ㅎㅎㅎ! 그럼 다음화에서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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