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그 이유가 너라면
난 죽어도 좋아
*
정교하게도 칼날을 갈던 날카로운 손 끝이
한 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피를 집어 삼키듯
이 모든 예견된 잔혹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려버린 저주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매번 생각했다.
아마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저주에 걸려버린 거라고...
고통의 신음과 몸을 마비시키는 비명.
영원히 이어질 그 마지막 얼굴들과
애써 살아남으려는 몸부림.
그런 것들에, 그 잔인하고 잔혹한 것들에 매료되어 버리는 칼과 나의 계약.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인간의 이야기.
아니... 그 이름으로 불릴 가치가 있기나 한 걸까?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악마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는 것인가.
그 아이러니한 질문은 언제나 내 머릿속을 유영하기 마련이었고
그날 마추친 네 눈동자는 막연한 질문의 아이러니함보다 더 복잡한 것을 내 몸속에 심어주었다.
아마 너를 죽일 수 없었던 건,
너를 나와 같이 하게끔 만들려 애를 쓰고,
나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바라고 바랐던 건,
결국 너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 뒤늦은 후에야 깨닫게 되는 걸까.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끝을 보고 나서야
말했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후회했다.
내가 억지로 쥐어주었던 그 칼이
사실은 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가 선물한 그 하얀 구두가 점점 붉게 변해가는 것도
솔직히 기쁘지는 않았다고.
바들바들 떨며 처음으로 사람을 찌르던 네가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나를 바라봤을 때
그때 너를 향해 지어줬던 내 웃음은
미친 것 같은 나의 주제넘는 욕심이라는 것을.
수 백 번이고, 수 천 번이고 너에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넌
영원히
깨끗했을텐데.
차라리 그 때가 더 나았을 거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나의 눈을 보고 덜덜 떨고 있던 그 여린 너의 모습이
그러면서도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의연하고 담대하게도 걷어내려던 너의 모습이
그게 더 아름답고 그게 더 예뻤다고.
아니 그게 맞는 거라고 말했어야 했다.
너에게 칼을 쥐게하고
너에게 뱃속을 가르게하고
붉은 피에 흠뻑젖은 그 발바닥을 보는 일보다
남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네 입술에 입을 맞추는 일보다
나를 만나기 전의 네가 더 아름다웠더라고,
지금도 아름다운 넌 그때에는 감히 손 댈 수 없을 정도였다고.
결국 욕심이었다.
꺾으면 나의 꽃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 향기만은 여전히 손에 넣을 수 없었다.
...
너는 너무 깨끗했고
나는 너무 더러웠다.
*
마지막이 온다면
너를 놓아줄게
마지막 틈이 보이면
영원히 너를 놓아줄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던 너를
나는 사랑하니까.
죽어도 좋아
그 이유가 너라면.
부디
자유롭기를.
결국엔 나 때문에 잔혹했고
결국엔 나 때문에 더러워진
너.
그러니까 도망쳐.
결국
나에게서부터
도망치라는 소리였어.
결국
나에게서 부터
아주 멀리
도망치라고
너는
내
말을
아주
잘
들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도망쳐.
이 영원한 절망에서.
이게 나의 유서.
너에게 전하는 마지막 유서.
dd죽어도 좋아
Bonnie & Clyde
Clyde's Bonnie
The Last Testament.
The Last Prayer.
이 죄인을 용서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