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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막



 뜨거웠던 낮이 지나 쌀쌀한 밤이 찾아 들었다. 민석의 치장에 신경을 잔뜩 쓰던 첸은 이제야 되었다며 살짝 웃어보이곤 자리를 비켜 주었다. 긴 행군을 끝내고 처음 만났던 루한을 두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괜히 긴장이 되는 민석은 장신구를 만지작 거리거나 쿠션을 가져다가 고개 사이에 묻고 꼼지락 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쿠션에 고개를 비비적 거리며 눈을 감아버리기 전에, 루한이 쿡 웃으며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리석에 폭신한 신발이 닿아 오묘한 소리를 내었다.



 "오랜만이야. 민석."
 "...네. 뭐."
 "나 안보고 싶었어?"



 갑자기 민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루한의 행동에 잔뜩 놀라버린 민석은 딸꾹질이 튀어 나와 당황했다. 하하. 귀엽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하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준 술탄은 쿠션 더미에 누워 다 풀지 못한 피로를 풀려 했다.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정자세로 일어난 민석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괜히 얇은 옷이 부끄러워 쿠션을 끌어 안아 다리를 모으는 민석을 관찰하던 루한은 편하게 하라며 싱긋 웃었다.



 "밀린 일을 좀 처리하느라 늦었어."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해 주시는 거에요?"
 "그야 민석은 날 기다렸을 테니까.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줘. 나 운다."



 어버버. 민석은 그야말로 어벙벙 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했다.



 "내가 첫날에 했던 말, 잊지 않았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말이요?"
 "정확하게 기억하네."



 매우 흡족하다는 듯 루한이 크게 웃었다. 쿠션좀 그만 안아. 루한이 푹신한 색색깔의 더미에서 몸을 일으켜 민석을 바라보았다. 뺏어버린다는 루한의 엄포에, 어거지로 쿠션을 원위치로 던져버리는 민석의 모습이 괜스레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루한이 흡족하다는 듯이 웃자, 민석은 의아해 하면서도 불안한 눈치로 주춤거리기만 했다. 몇분을 질질 끌고 나서야 루한과 민석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뚫린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푸른 달빛과 은은한 초의 빛이 어우러져 푸르스름한 배경을 만들어 냈다.



 "누구의 이야기 먼저 시작할까. 어떻게 생각해?"
 "루한 마음대로 해도 상관 없어요."



 술탄이니까. 민석은 뒷말을 꺼내지 않았다. 거리감을 두기 싫어하는 루한의 의중을 알아 챘으리라.



 "그럼 민석 먼저. 먼 곳에서 온 민석의 이야기가 궁금해."



 루한은 카펫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민석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어버버 거리며 당황하던 민석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곰곰히 생각을 하며 가만히 천장을 바라 보았다. 귀엽네. 루한은 여전히 팔불출 처럼 굴었다. 사실, 술탄은 자신이 흥미가 가는 하렘의 이야기라면 모든걸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귀여운 하렘은 눈치가 살짝 없는건지, 눈을 도록도록 굴리는 모양을 보아 시간이 꽤나 걸릴 듯 싶었다. 루한이 손을 들며 민석의 눈동자를 멈추었다.



 "하루에 하나씩만 이야기하자. 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아. 네."
 "그냥, 민석이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를 해."



 괜찮지? 루한이 씩 웃었다. 민석은 그 모습에 약간 설레이는 마음을 발견했을 지도 모르겠다. 한숨을 쉬며 엉킨 머릿속을 정리한 뒤에, 민석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방금 전, 낮에 생각했던 말들을 되새겨 보려 하자 약간의 실수도 잦았지만, 꿋꿋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갔다.



 "내가, 아니 제가 살던 곳은, 사람들이 매우 즐겁고 행복해 보이던 곳이였어요. 부와 명예따위 아무것도 상관 없이, 그냥 자신들의 행복만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것 처럼 웃었던 사람들이 모여있었어요. 그곳은 매우 건조하지도, 매우 습하지도 않았어요. 웃음과 물이 흘러 넘치고, 모두가 친 가족처럼 지내던게 제 고향이였죠."
 "그랬구나."
 "...여긴 건조한 바람이 많이 불고, 햇볓이 쨍쨍해서 적응이 되질 않아요. 하지만 고향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어요. 마치 절 보듬어 주듯이 포근한 바람이."



 어슴푸레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술탄의 사막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고, 부쩍 추워진 밤공기만이 촛불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루한은 눈을 세워가며 민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 외에도, 민석의 소소한 이야기나 술탄의 군대가 들어와 고향을 망쳐버린, 술탄의 심기를 거스를 듯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루한은 좋게 웃으며 넘어갔다. 술탄의 태도에 민석은 살짝 당황해 했다.



 "악기를, 하나 킬줄 알았어요. 지금은 손이 무뎌진것 같지만."
 "진짜? 뭔데?"
 "여기선 구하지 못할 거에요. 해금이라고, 저 멀리 동방의 국가에서 취급하는 악기거든요. 소리가 매우 구슬퍼서 마음에 들었었는데. 지금은 키지도 못하죠."



 민석은 자신의 양 손을 들어 루한의 앞에 내밀었다가 아래로 내려 버렸다. 해금이라. 예전에, 민석의 어머니가 자신의 품에 안겨주었던 해금. 어머니가 아버지와 모두들 앞에서 현을 손가락으로 움직이면, 모두들 아름다운 소리라며 하던 행동을 멈추거나 숨을 죽이고 현의 소리를 경청했었다. 유난히 나무들은 초록빛으로 빛나고, 장작불이 붉은색으로 루비와 흡사한 자태를 보이던, 민석이 속한 공동체의 안에서, 어머니의 해금은 단연 최고로 일컬여 졌었다. 아버지는 민석에게 네 어머니의 해금 솜씨도 자신을 반하게 했다며 수염을 쓰다듬으셨었다.



 "...지루하죠?"
 "아니. 흥미로워. 재밌어."


 술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웃음을 얼굴에 씌웠다. 다행이네요. 민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렸다. 이번엔 술탄의 차례에요. 오래 앉아있는게 살짝 힘에 부쳤는지, 민석은 카펫 위에 멋대로 누워버렸다. 좋다. 하얀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패턴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괜찮은 문양이다. 민석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자 루한은 심통이 나버렸다. 어디 술탄의 명도 없이 함부로 누워.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말투로, 루한이 중얼거렸다.


 "피곤한걸요. 모래시계가 벌써 다섯번이나 돌려졌어요."
 "씁. 그래도. 일어나. 내 이야기도 들어야지."


 아아. 민석이 투정을 부리자 루한이 안되겠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민석의 위로 다가갔다. 한참 천장을 구경하고 있던 민석은 갑자기 들이밀어져 온 루한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래야 일어나나. 귀엽다는듯 민석을 바라보는 루한이 픽 웃어버렸다. 민석은 얇은 천을 얼굴에 두르며, 루한의 뜨거운 시선을 피한채 달아오른 자신의 볼을 애써 식혀나갔다.


 "나는, 내가 민석에게 오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께."
 "에, 그건 이야기가 아닌데..."
 "술탄이 말하면 그게 곧 이야기야."


 부정한 곳에 쓰이기만 했던 권력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써 보고 싶었다. 손에 껴 있는 금빛의 반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루한은 그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석은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많이 바빴어. 민석은 내가 다른 하렘들이나 황후를 안으며 보냈을꺼라 예상했겠지?"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이 궁엔 황후가 없어. 물론 하렘도 거의 없어."


 표면상 다른쪽에 들여놓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어. 루한의 덤덤한 말에 민석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다. 당연히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황후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석은 술탄의 도시에 살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자주 유목 생활을 하며 지냈던 곳에 비하면, 이곳은 소문들로 무성한 정착 도시였다. 나중에 첸에게 황후의 부재에 대해서 물어봐야 겠다 생각해둔 민석이였다. 모래가 거의 아래쪽으로 쏟아진 모래시계를 위로 돌린 루한의 눈엔 알 수 없는 독백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가뭄이 들었나. 원래 사막엔 비가 내리지 않지만."
 "......"
 "원성이 자자했어. 제발 가뭄에 든 백성들을 살려달라는 청이 빗발쳤지. 골머리를 썩히느라 민석에게 오지 못한거야."



 술탄이 웃어보이자 하렘은 어쩔 수 없는 눈치로 애써 웃어보였다. 루한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야기를 통해 민석에게 한발자국 다가갈 수 있는 위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밖으론 차갑게 식은 사막의 위로 붉은 해가 세상을 뜨겁게 달굴 준비를 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모래시계가 두어번 더 돌아가고 나서야 루한은 민석을 옆에 끼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잠든 민석의 손에, 자신의 반지를 뺀 루한은 얇은 손에 그것을 끼워 주었다.  문득 루한은 시원한 바람이 궁금했다. 항상 맞는 건조한 바람 보다는, 민석이 말해준 시원한 바람이.



 플래너에 푸른사막을 적어놓기만 하고 쓰지 않던 제가 돌아왔습니다

 다음편도 있습니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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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선댓 선신알신! 독방징이야 전편부터 보구올께~♥
10년 전
메카
감쟈♥
10년 전
독자2
아ㅠㅠ분위기 늠 됴타.. 배경도 그렇고 루민이들이 서로 얘기하는 게 동화 속 이야기 듣는 것 가타혀 막 나니아 연대기 보는 것 같기도 하구..? ㅋㅋㅋ다음편 기대!!!!!
10년 전
메카
고마워!! 다음편 즐겨주구 얼른 다다음편도 써올께
10년 전
독자3
엑독징이랑께! 술탄하렘찾아보고댕겼다!분위기 진짜죠타ㅠㅜ어서다음이야기를 !!!! 뱉어야대 흫
10년 전
메카
뱉었어용! 히히 다음다다음편도 빨리 올릴께용
10년 전
독자4
아ㅠㅠㅠㅠ신비한 동화를 읽는 기분ㅠㅠㅠ됴타ㅠㅠㅠ
10년 전
메카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즐겨주세요!
10년 전
독자5
오옹 읽는내내 분위기에 취하듯이 읽은거같아요ㅜㅜ늠조아여 담편도 언능올라왓음조켓어여
10년 전
메카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올라왔으니 즐겨주세용 다다음편도 얼른 써올께용
10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0년 전
메카
감사합니다 워아이니♥
10년 전
독자10
저도 워아이니♥
10년 전
독자7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는 루민이들의 분위기가 너무좋네요ㅠㅠ! 브금마저 이 글과 잘 어울려서 그런지 집중하면서 읽을수 있었던거 같아요!
이번편은 민석이의 이야기가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네요.. 고향과 가족을 잃게된 그 슬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해금도 다룰줄 알았던 민석이가
이젠 손도 무뎌지고..다시 해금을 연주할 수 있는날이오겠죠? 이번편도 잘보고갑니다 다음편 얼른 보러가야겠어요ㅠㅠㅠㅠㅠ

10년 전
메카
감사합니다 즐겁게 봐주세요♥♥
10년 전
독자8
아라비안나이트 같애요ㅋㅋ~ 밤마다 이야기를 들ㄹㅕ주는 밍소쿠.. 루하니는 능력쩌시는 술탄이니까 어디서 해금 하나 못 구할려나요?ㅎㅎ
10년 전
메카
루한은 술탄이니까 얼른 구해주겠죠!! 능력자니까용 다음편도 얼른 즐겨쥬새용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9
아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다음편 빨리 보고 올께요ㅠㅜㅜ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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