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Me If You Can
02
w. 슈크림붕어빵
Republic of Korea
SEOUL
NIS
PM 05:00
탕- 탕- NIS 건물, 지하에 있는 사격장의 내부가 총성으로 시끄럽게 울렸다. 사격용 안경과 귀마개를 착용한 준면의 아래로 탄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방아쇠를 당기는 준면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문 채 총의 반동을 견뎌내는 준면의 머릿속엔 아침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준면은 출근을 하자마자 국장의 호출에 국장실로 가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은 말은,
“김팀장, 히치콕 사건에서 손 떼.”
준면의 팀이 근 1년을 바친 히치콕 사건을 그만두라는 국장의 지시였다.
“예?”
준면의 팀에서 올린 보고서를 훑어보던 국장이 보고서가 정리된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히치콕, 손 떼라고.
“국장님! 이제 와서 손 떼라니요! 거의 다 잡아가는데!”
쾅, 책상을 내리친 국장의 눈썹이 한껏 치켜 올라갔다. 지금 몰라서 물어? CIA 협조에 라스베이거스까지 갔으면 확실히 잡아왔어야지!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데이비드가 곧 한국으로 올 껍니다. 그때를 노리면 확실히 잡을 수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야? 출처가 어딘데. 난 그런 소릴 들은 적이 없는데?”
국장의 말에 준면의 입이 꾹 다물렸다. 제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새끼랑 섹스를 했는데, 그놈이 거울에 적어놨어요. 한국에서 보자고.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른 팀에 사건 넘길 거야.”
국장이 준면의 앞으로 파일 하나를 건넸다. 파일을 펼친 준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국장님, 지금 저 보고 이걸 하란 말씀이세요? 국장이 준 사건은 부산의 한 조직에서 밀수한 마약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
“그거나 하면서 머리 좀 식혀. 김팀장 요새 힘이 너무 들어가있어. 이제 김팀장 쪽에서 올리는 히치콕 관련 보고는 받지도 않을 꺼야. 그러니까 아예 관심 딱 끊어.”
“…예.”
“나가봐.”
매우 못마땅한 일이었지만, 준면은 조용히 파일을 챙겨들고 국장실을 나왔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작전실패도 그러했고, 철저한 위계질서의 세계인 국정원에서 더 이상 국장에게 대들어 봤자 제게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사건을 받아들고 국장실을 나온 준면은 그길로 사격연습장으로 직행해 총질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철컥, 방아쇠가 헛돌며 총알이 다 떨어졌음을 알렸다. 빈 총에 다시 총알을 장전한 준면이 팔로 오는 반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오늘 김팀장님 아주 대단하시네….”
“그럴만 하죠, 오늘 아침부터 국장님한테 깨졌다던데. 김팀장님 자존심에 스크래치 장난 아닐껄요.”
“하긴, 요번이 첫 실패지?”
“팀장 승진하시곤 처음이죠.”
“아, 김팀장 나온다.”
벌써 몇 시간째 방아쇠를 당겨대는 준면의 뒤에서 수군거리던 두 사람이 귀마개를 벗는 준면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총기를 반납한 준면이 사라진 뒤, 준면의 쏘았던 표적지롤 본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 어휴. 이게 종이냐, 걸레냐.”
“머리만 아주 깔끔하게 날려놨네. 이러기도 힘들겠다.”
“하여간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야.”
준면의 주위로 어두운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졸지에 가시방석에 앉은 팀원들은 힐끔힐끔 준면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박찬열!”
노트북에 코를 박은채 일하던 찬열이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네 팀장님!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찬열에게 준면은 자신이 받았던 파일을 건넸다.
“우리 팀에 내려온 새 사건이다. 부산에 있는 조직이 밀수한 마약 찾아서 수거하는 일이니까 조사 좀 해와.”
“네”
찬열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본 준면이 사건과 관련된 서류들과 노트북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퇴근합니다. 내일 봅시다.”
PM 07:30
집으로 돌아온 준면은 곧장 노트북을 켰다. 못마땅해도 일단은 사건을 맡았으니, 완벽하게 끝내고 싶었다. 찬열이 보내온 자료들과 프레젠테이션 파일, 자신이 따로 챙겨온 서류들을 뒤적이던 준면이 퇴근길에 사온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와 햄 따위가 섞인 샌드위치는 나름 먹을만 했다. 샌드위치를 우물대며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준면은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에 현관 옆 인터폰 앞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잠시만요.”
택배가 올 일일 없는데… 엄마가 뭘 보내셨나? 고개를 갸웃대던 준면이 현관문을 열었다. 캡 모자를 눌러쓴 택배원이 화려하게 포장된 커다란 바구니를 건넸다. 요란한 물건에 미간을 찌푸린 준면이 바구니를 받아들고 현관문을 닫으려 하는데, 택배원이 문 틈새로 발을 집어 넣었다.
“무슨…”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경우 인가 싶어 준면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미친… 택배원의 얼굴을 확인한 준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녕, 레이디.”
느믈느믈 웃는 세훈의 얼굴에 치가 떨렸다. 저 불한당 같은 놈 때문에 사건도 빼앗기고 커리어에도 흠집이 생겼다. 게다가 미래의 제 부인을 위해 고이 간직해온 입술에, 그, 수, 순결까지 빼앗겨 버렸다. 안 그래도 거지같은 기분, 더 잡쳐버린 상황에 준면이 문을 닫으려 낑낑댔다.
“꺼져.”
“나 안 잡을 꺼야?”
준면이 틈 사이로 들이밀어진 세훈의 발을 마구 밟아댔다. 안 잡아, 안 잡아, 잡고 싶어도 못 잡으니까 빨리 꺼져! 무지막지 하게 밝혀지는 발에 세훈이 이맛살을 구겼다. 여전히 와일드 하시네요, 레이디. 준면의 얼굴이 종이처럼 구깃구깃 구겨졌다. 레이디, 레이디, 저놈의 레이디! 준면이 제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세훈에게 떠넘겼다.
“이거 들고 빨리 꺼져.”
“내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인데.”
“니 정성 필요 없으니까 좀 꺼지라고 제발!”
바구니를 받아든 채 멀뚱멀뚱 서있던 세훈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사람을 문 앞에서 쫒아내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 여기 사네!
“닥쳐, 닥치라고. 입 좀 닥쳐!”
준면이 세훈의 입을 막았다. 제 입을 막는 준면을 보며 히죽 웃은 세훈이 준면의 손바닥을 햝았다. 손바닥에 닿는 축축한 혀의 느낌에 준면이 기겁하며 손을 제 바지에 문질렀다.
“나 안 들여보내주면 소리 지를꺼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너 국정원 다니는 거 모르지? 그런거 들키면 안 되잖아. 뭐, 싫으면 다시 소리 지르고. 동네사람들! 여기 사는…”
다시한번 세훈의 입을 틀어막은 준면이 울며 겨자먹기로 현관문을 열었다. 준면이 이를 악 문채 말했다. 쁠르 드르와 그스끄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방긋방긋 웃으며 준면의 집에 들어온 세훈이 제가 가져온 바구니를 다시 준면에게 안겼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과일로 몇 개 챙겨왔어.”
“뭔 과일…”
손에 억지로 쥐여진 바구니를 확인한 준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 변태 색마 새끼가…
“마음에 들어? 난 개인적으로 딸기가…”
“다 싫어 다, 싫어!”
준면이 바구니를 세훈에게 내리쳤다. 그 탓에 흔들린 바구니에서 세훈이 준면을 위해 준비한 ‘정성’ 들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들에는 하나같이 커다란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향긋한 사랑을 원하는 당신을 위한 선택, 해피섹스 러브 젤 과일 컬렉션!
결국 세훈이 준비해온 선물(?) 들은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준면의 눈치를 보던 세훈이 슬금슬금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꺼내지 마라.”
쳇, 세훈이 혀를 차며 의자에 앉아있는 준면을 어깨를 끌어안았다. 과일 싫어? 그러면 클래식 하게 무향으로… 감았던 눈을 번쩍 뜬 준면이 제 어깨를 끌어안은 세훈의 손을 쳐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대 칠 기세로 다가오는 준면에게 두 손을 들어 항복 사인을 날린 세훈이 준면이 켜둔 노트북을 가리켰다.
“나 안 잡는다더니, 겨우 이런 일 하는 거야?”
분에 찬 준면이 씨근덕대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처넣고 싶은데, 니 사건은 다른 팀으로 넘어갔어. 다른 팀 사건은 안 건드는게 우리 룰이야. 흐응, 어깨를 으쓱 한 세훈이 의자를 끌고 와 준면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청 후진 룰이네. 그러니까 발전이 없지.”
그래, 너는 짖어라. 나는 일 하련다. 준면은 옆에서 재잘대는 세훈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가며 부산 마약밀수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숙지하기 시작했다. 프레젠테이션을 넘기자 조직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뜨기 시작했다.
“못생겼다.”
“으, 물고기 닮았어.”
“멧돼지다 멧돼지.”
넘어가는 사진을 보며 꼭 토를 다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노트북을 닫았다. 이제 일 다 한거야? 그러면 우리 저기 침대에서… 세훈의 말을 무시한 준면이 서류가 든 가방을 들고 벗어둔 쟈켓을 손에 들었다. 세훈이 있는 집에서는 되던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 가는데?”
“출장.”
“나 놔두고?”
“너 피해서 가는 거야.”
구두를 신은 준면이 찬열에게 문자를 날렸다. 오늘 새벽에 부산으로 내려갈 거야. 지금 국정원으로 들어가니까 브리핑 준비해. 전송이 완료된 것을 확인한 준면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 간다.”
“집주인이 이렇게 집 막 비워도 되는 거야? 나 범죄잔데? 니네 집 털어간다?”
“그러던가.”
쾅,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닫혔다. 준면이 사라진 집, 현관 앞에서 멀뚱히 선채 눈을 끔뻑이던 세훈의 입가에 개구진 미소가 걸렸다. 그래 뭐, 출장 후에 봅시다. 쟈켓을 벗은 세훈이 제일먼저 한 일은 준면이 쓰레기통에서 처박아 뒀던 젤을 꺼내는 일이었다. 딸기, 포도, 바나나 등등. 가지각색의 젤을 꺼내 한 줄로 진열해둔 세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거부터 쓰지? 역시 딸기가 나으려나?
꽃받침을 만들어 턱을 괸 채 젤들을 훑는 세훈의 머릿속에서는 준면과 함께 쌓을 만리장성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Republic of Korea
BUSAN
NIS
AM 03:00
“현재 위치는?”
-남동쪽 300m, 붉은색 컨테이너입니다.
“인원은?”
-3명입니다. 총기로 무장하고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오케이.”
준면이 컨테이너 뒤로 몸을 숨겨가며 이동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리에 준면이 손에 쥔 총을 다잡았다.
“변백현.”
-예, 현장 북쪽에서 대기중 입니다.
“송영채.”
-지원팀과 현장 동쪽에서 대기중 입니다.
“좋아, 박찬열이 신호를 보내면 그때 바로 덮친다.”
-네.
-알겠습니다.
준면이 컨테이너에 등을 붙인채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총기를 든 남자들이 가방을 주고 받으며 악수를 했다.
-팀장님!
찬열의 신호에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 하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거래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준면을 선두로 순식간에 포위당한 남자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총 버리고 손 들어.”
“이런 씨발…”
가방을 든 남자들이 서로 등을 맞댄채 눈을 굴려댔다. 준면이 총을 겨눴다.
“총 버리고 손 들어!”
남자 중 한명이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고 크게 울려 퍼지는 총성에 요원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라도 총 버려.”
준면이 남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팀장님, 팀장님! 인이어에서 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준면은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 준면과 남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변에 포진한 요원들도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잡아!”
팽팽한 긴장감을 먼저 찢은 것은 준면 이었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요원들을 보며 남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중 한 남자가 준면을 향해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겨댔다. 제대로 조준이 되지않아 총알은 빗나갔지만, 그중 한발이 준면의 허벅지를 스쳐지나갔다. 억 소리를 내며 다리를 움켜잡는 준면을 본 백현이 준면에게 달려왔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허벅지를 누른 손 위로 끈적한 피가 베어 나왔다. 준면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가서 현장 마무리해. 백현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준면이 주변에 있던 컨테이너에 등을 기대었다. 총알이 스친 허벅지가 불에 댄 듯 뜨거웠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백현을 도와 현장을 마무리하던 영채가 준면을 부축했다. 현장은, 마무리 했어?
“네, 현장 마무리도 했고, 거래하던 마약도 입수했습니다. 저기, 그런데…”
“그런데?”
“한 사람을 놓쳤어요. 그 팀장님한테 총 쏜 사람이요.”
준면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돌아가자.
“흐으…”
“아파요?”
“조금.”
“금방 끝내 드릴께요.”
터진 살갗을 꿰매는 바늘의 느낌에 흠칫흠칫 몸이 떨렸다. 마취를 해도, 아예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민석이 세심한 손길로 손을 놀렸다. 대략 열두바늘 정도를 꿰맨 후 매듭을 지은 민석이 소독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였다. 그 위로 붕대를 감아 테이핑까지 끝낸 민석이 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김팀장님이 다치는 일도 다 생기고. 요즘 힘들어요?”
백현이 가져다준 새 바지를 입은 준면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게, 요즘 일이 잘 안풀리네. 약병들이 가득한 진열대를 돌아다니던 민석이 준면에게 약봉투를 건넸다.
“항생제랑 수면제 약간 섞었어요. 먹고 나면 좀 졸릴수도 있어요. 한동안은 걸을 때도 조심하세요. 뛰는건 더욱 안되고. 괜히 쎈척 한답시고 현장 뛰지 마세요, 상처 덧나면 힘든건 팀장님이니까.”
“그래, 고마워.”
“정말 안돼요.”
“알았어.”
약봉투를 받아챙긴 준면이 의무실을 나섰다.
“김팀장님.”
“어?”
“어깨에 힘 좀 빼고 다니세요. 여유있게.”
“…그래.”
임시로 꾸며진 사무실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찾았어?”
준면의 등장에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준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별거 아니야. 자리에 앉은 준면을 향해 찬열이 쪼르르 달려왔다.
“팀장님, 그 남자에 대한 정보입니다.”
박병철, 36세. 조직 내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그냥 양아치입니다. 화면에 띄워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준면이 픽 웃음을 지었다.
‘으, 물고기 닮았어.’
세훈이 물고기를 닮았다던 남자였다. 지금 보니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때 아닌 준면의 웃음에 당황한 팀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팀장님 화나셨나…? 서로를 쿡쿡 찌르던 팀원들에게서 밀려나온 백현이 쭈뼛쭈뼛 준면에게 다가왔다.
“그, 팀장님. 다리도 다치셨고, 이번 사건은 저희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먼저 서울로 올라가시는게…”
“그래요, 팀장님. 부산이 넓은 곳도 아니고 금방 찾아 낼 꺼에요.”
백현이 물꼬를 틀자 영채를 비롯한 팀원들이 준면을 떠밀기 시작했다. 팀장님, 어서 가서 쉬세요. 그 모습에 한숨을 쉰 준면이 바지 아래, 붕대가 감겨있는 제 다리를 내려다봤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현장을 급습 할 수도, 범인들을 체포 할 수도 없었다.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먼저 올라 가 있을 께. 무슨 일 있으면 콜 하고.”
“넵!”
수고해라, 팀원들의 어깨를 두드린 준면은 제 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Republic of Korea
SEOUL
PM 06:00
부산에서 올라 온후, 잡다한 일들을 마무리 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아직 부산에 남아있는 찬열과 팀원들에게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하고 지시를 내린 후 집으로 향하는 길, 상처 입은 다리가 점점 욱신거려 왔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민석이 챙겨준 약을 먹고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삑 삑 삑 삐빅-
도어락 버튼을 누르자 집 안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돌리는 준면이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에 있을 사람은 뻔했다. 오세훈.
“왔어?”
현관 앞에 서서 저를 반기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헛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네, 삼일만이지 우리? 왜 아직도 꺼지지 않은거냐며 따질 기운도 없었다. 재잘재잘 입을 놀리는 세훈을 밀어낸 준면이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 냉수를 컵에 따른 준면이 민석이 준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왠 약? 어디 아파?”
“몰라도 돼.”
준면이 물 한컵을 더 마신후 자꾸만 주변을 얼쩡거리는 세훈을 지나쳤다. 곧장 침실로 직행한 준면이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자신을 따라들어온 세훈이 침대위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야, 지금 나 유혹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니까 좀 가라. 제발.”
침대로 올라온 세훈이 준면을 끌어안았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민석이 준 약에 수면제 성분이 있다더니, 생각보다 꽤 강력한 것 같았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세훈의 손이 제 몸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침대 밖으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몸이 너무 무거웠다.
“하지마.”
“오늘 왜 이렇게 얌전하실까.”
슬금슬금 올라오는 손을 밀어내도, 금세 손이 다시 올라왔다. 하지 말라니까. 준면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손을 옮기던 세훈이 준면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준면의 몸이 크게 움직였다.
“하으, 흐…!”
꿰맨 상처위로 세훈의 손이 닿자 준면이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숨을 헐떡였다. 준면의 반응에 세훈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뭐야, 다쳤어? 어디, 허벅지? 세훈이 준면의 바지버클을 풀어내렸다.
“아, 하지 말라니까!”
“가만히 있어.”
준면의 손을 저지한 세훈이 바지를 벗겼다. 하얀 다리위에 감겨진 붕대를 본 세훈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뭐야 이거. 어느 놈이 그랬어. 다친건 난데 왜 니가 지랄이세요… 자신을 다치게 한사람을 찾아 죽여 버리겠다며 날뛰는 세훈때문에 머리가 울렸다. 졸음이 몰려왔다. 빨리 눈을 좀 붙이고 싶은데, 눈치라고는 씨알도 없는 세훈은 준면을 짤짤 흔들어댔다. 누구야, 누구냐고!
“물고기가 그랬어, 물고기가.”
“물고기?”
“그래 물고기. 이제 좀 나가라, 나 좀 자게.”
물고기가 어떻게 사람을…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날뛰던 세훈의 입이 다물렸다. 물고기…? 이제야 겨우 조용해진 세훈을 본 준면이 베개에 얼굴을 부비며 돌아누웠다. 나 잘 거야. 불꺼.
“그, 그래….”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세훈이 거실로 나왔다. 집안을 두리번거리던 세훈이 준면이 들고온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 든 노트북을 켠 세훈이 얼마 전 준면이 보던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켰다. 물고기, 물고기… 아, 여기 있다.
“박병철, 부산 냄비파? 으 이름도 존나 구려.”
장난스러운 말과는 반대로, 프레젠테이션을 읽는 세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핸드폰을 꺼낸 세훈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Hello, 부탁이 좀 있는데. 응, 그래. 그래 부탁해. 전화를 끊은 세훈이 노트북에 띄워진 남자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리고 그날 새벽, 물고기 한‘명’이 캄캄한 부산 밤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 연재 원하시는 분이 많아서 칼연재는 아니더라도 한번씩 들고올께요.
내가 또 일을 벌리는 구나… (마른세수)
:) 떡은 다음편에서 칠꺼에요 세훈이가 사온 해피섹스 과일컬렉션 써야지 뭐..
사놓고 안쓰면 벌 받으니까요 (의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