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rrow ; 또 다시 방황의 길로 09.
w. 내일이란 미래.
하늘은 유난히 밝았다. 뜨거운 햇살이 길거리를 뜨겁게 달구어 펄펄 끓는 용암 처럼 열이 올랐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었다. 더위로 인해 눈 앞은 티브이의 노이즈처럼
흐릿했고, 희미했다. 양쪽에 자리 잡은 무성한 나무들과 풀들 너머에는 희미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좀비처럼 느릿하게 걷고 있으면 어느새 김태형이 다가와 내게 작은 생수병 하나를 건네었다. 생수통을 멍하니 바라보다 조금은 탄듯한 그의 팔을 따라 올라 죽 훑어 얼굴까지 도착했다.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확인한 찰나, 김태형은 들고 있던 생수통을 내 볼에 갖다 대더니 나를 살짝 밀어내었다. 볼에 느껴지는 이물감은 그렇게 차갑지 않은, 다 식어버린 미지근한 물이었다. 나는 얼른 볼에
대어진 생수통을 잡아들고는 뚜껑을 열었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미적지근한 물이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찾은 듯 허겁지겁 물을
들이킨 나는 타들어가던 목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한 뒤 생수통의 뚜껑을 꽉 닫아 김태형에게 건네었다. 하지만 그 생수통은 김태형의 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누군가가 낚아채가 버렸다. 허멍한듯 입을 헤, 벌린 김태형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반쯤 남은 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는 아저씨가 눈에 보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저씨의 목구멍으로 넘어가 텅 비어버린 생수통은 곧 저 멀리 던져져 길바닥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쓰레기가 되어 뒹굴었다.
" 아, "
" 뭐, 불만 있어? "
" 아뇨, 됐습니다. "
" 새끼. "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저씨를 노려보던 김태형의 손에는 어느새 조금은 차가운 생수병이 들려있었다. 아저씨가 정호석이 매고 있던 배낭을 열고는 생수병 하나를 꺼내어
김태형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김태형은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가버리는 아저씨에게 시선을 떼놓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걸었을까, 우리는 아직까지 숲 사이에 딸랑 하나 놓인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가끔씩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김석진은 항상 저 멀리 뒤떨어져 느릿느릿 우리들을 간신히 따라왔다. 그는 자주 자신의 옆자리를 쳐다보기도 하였고, 마치 누군가와 손을 잡는 듯 손을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다. 아마 아미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그냥 단순한 내 추측일 뿐이다.
얼마 동안 김석진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걷다 보면 우리의 눈 앞에에는 봉고차 한 대가 도로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쪽으로 달려가더니 자신의 혁대에서 권총 하나를 뽑아들고는 차 창문을 통해서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하얗고 얄팍한 손으로 차 문 손잡이를 잡아 살짝
당겼다. 차 문은 다행히 잠겨있지는 않았는지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미닫이 문을 살짝 당겨 열자 드르륵 거리며 쉽게 내부를 보였고, 아저씨는 재빠르게 총구를
차 내부로 들이밀고 그 안으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아마 차 내부를 살피는 것 같았다. 다행이 이상이 없는것인지 아저씨는 밀어넣었던 고개를 내빼고 팔을 들어 공중에
휘저었다. 조금은 떨어진 거리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우리는 재빨리 봉고차 쪽으로 뛰어갔다. 다들 들뜬 마음에 하나둘 차 주변으로 몰렸고, 혹시나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다 같이 찾아보기로 했다. 차 내부에는 사람이 떠난 지 꽤 되어 보였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단 하나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사용했던 흔적은 있었다.
예를 들면 담요 몇 개라든지, 작은 빈 생수통 두 개, 감자칩 한 봉지 등등 말이다. 우리는 결국 이 봉고차에서 하룻밤 자기로 결정했다. 날도 급히 저물어가는데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나오지도 않는 거리를 언제까지 걷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내린 결정이었다. 모두가 주변을 수색할 때, 아저씨는 운적석에 앉더니 그 자리에 꽂혀있는
차 키를 잡고 여러 번 돌렸다. 하지만 시동이 걸릴만하면 꺼지고, 또 꺼져버렸다. 아저씨는 곧 자동차의 계기판을 들여다보더니 핸들을 두 손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기름이 없는 듯하였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머리 뒤통수를 차 좌석 머리받침에 연신 쿵, 쿵 박아대었다.
" 다들 피곤할 텐데 한숨 주무세요. 내일 열심히 걸으려면 체력 보충 좀 해놓아야 할 거예요. "
" 그럼 돌아가면서 보초 서면 되겠다. "
" 근데… 누가 먼저 설 거예요? "
" 내가, "
" 아니, 내가 설 테니 넌 좀 자. "
정호석과 김태형이 감자칩을 와드득 씹으며 말하자, 먼저 보초를 서겠다고 한 인물은 바로 김석진이었다. 모두가 그를 놀랜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아저씨가 그의 말을 잘라먹고 자신이 서겠다며, 모두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차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석진은 창문 너머로 뒤통수를 보이며 서있는 아저씨를
한참 동안이나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별 하나 없는 검은 밤 하늘에 밝게 떠 있는 달만이 내 마음에 안정을 찾아주었다.
캄캄한 차 내부를 둘러보면, 의자 등받이를 뒤를 한껏 젖혀놓고 곯아떨어진 김태형과 정호섣이 보였다.
김석진도 의자 등받이에 의지하며 자는 듯했고, 지금 깨어있는 사람은 나 한 명 뿐인 것 같았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자 해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바깥에 서 있었던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여나 그들이 잠에서 깰까 문을 살짝 열고 작은 틈으로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바람이 몸을 으슬으슬 떨게 만들었다.
나는 담요를 어깨에 두른 채 차 문을 조심히 닫고 아저씨를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 여기야. "
누군가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혹시나 하며 뒤를 돌아보자, 차 위에서 깍지 낀 두 손을 머리에 받친 채 누워있는 그가 보였다. 나는 잠시 놀랐다가도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는 금방 마음이 놓였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나는 어깨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풀어 차 위에 있는 아저씨에게 손을 뻗어 건넸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내 손에 들린 담요를 바라보다가 ' 필요없어. ' 라는 말만 내뱉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뻗은 손을 내려놓지 않자 아저씨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앉더니 담요를 받아들었다.
" 근데 왜 거기 있어요? "
" 보초. "
" 아… "
" 왜, 너도 올라오고 싶어? "
" ……. "
" 올라와. "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아까 그가 내 손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 것처럼, 나 또한 아저씨의 손을 계속 바라보았다. ' 내 손잡고, 차 손잡이 쪽 밟고 올라와. '
아저씨는 달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하였다. 나는 한참이나 망설이다 결국 아저씨의 손을 잡고
차의 문 손잡이를 발판 삼아 밟아 차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저 달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는 내가 건네주었던 담요를 다시 내게 내밀었다.
내가 의문의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 추워, 덮어. "
" 괜찮은데. "
" 내가 안 괜찮아. 덮어."
결국 억지로 내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 나는 꽤나 큰 담요를 펼쳐 무릎에 덮은 다음, 한참이나 남은 부분을 끌어 아저씨 무릎에 덮어주었다.
나의 행동에 투덜거릴 것만 같던 아저씨는, 예상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어 보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다.
Tomorrow ; 또 다시 방황의 길로 09.
w. 내일이란 미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두 눈을 비집고 가득 들어차는 강한 빛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직 다 뜨지 못한 눈으로 비몽사몽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침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키니 내가 있는 곳은 어제 아저씨와 같이 있었던 차 위였고, 내 몸에 칭칭 감겨있다시피 덮여있는 것은 내가 아저씨에게
건네주었었던 커다란 담요였다. 나는 내 몸에 덮여있던 담요를 걷어 한 손 에 쥐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수석 쪽 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이저씨는 회색빛 연기를 폴폴 내뿜더니 곧 담뱃대를 아스팔트 바닥에 버리고는 신발로 지져 꺼버렸다.
" 다 일어났어, 빨리 내려와. "
" 진짜요? "
" 어."
" 성이름, 빨리 내려와! "
그는 저 멀리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는 김태형을 쳐다보곤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손을 뻗어 보였다. 잡고 내려오라는 아저씨의 배려였다. 나는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아저씨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손에 땀이 배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차가운 밤공기로 인해 얼음장같았던 그의 손과 달리,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온기가 내 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아저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차 위에서 내려와 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번 꾸벅인 후 나를 기다리는
김태형에게로 달려갔다. 피로했던 몸을 다시 재충전하고 걷는 발걸음은 어제와 달리 가뿐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밤새 좀비의 습격이 없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었다.
갈증을 넘어서 목이 타는듯한 느낌이 들 즈음, 드디어 우리 눈앞에 주유소 하나가 나타났다. 주유소 옆에는 자그마한 편의점 하나가 딸려있었고, 그 주변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난장판이었다. 쓰레기며, 유리 조각이며 말 그대로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편의점의 유리들은 온데 깨져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심지어 몇몇 유리조각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새빨간 피가 고여있기도 했다. 우리는 팀을 나누어 주유소 안과 편의점, 그리고 그 주변에서 쓸만한 물건들이 있나 찾아보기로 하고, 주유소와 편의점의 딱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저씨는 혹시 모르니 가져가라며 총 하나를 김태형에게 건네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 총을 망설임 없이
김태형에게 준 이유는 아마 나나 정호석이나 둘 다 믿을 수 없었기에 쥐여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김태형은 마트에서 총을 한번 다뤄봤기에.
김석진과 아저씨는 주유소로, 나와 김태형 그리고 정호석은 편의점으로 흩어졌다. 진작 주유소 안으로 사라진 그들을 뒤로하고 편의점 앞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온통 금이 간 유리 너머로 편의점의 안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전기가 나갔는지 어두컴컴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것으로는 그 안 역시 바깥과 다름없이
난장판이었다. 혹시라도 이 안에서 좀비가 튀어나온다면 총을 소지한 김태형부터 내세울 계획을 갖고 편의점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위쪽 끄트머리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경쾌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내부를 울리자 잠깐 멈칫했지만, 이 경쾌한 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이곳에는 사람도, 좀비도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좀비가 있었다면 흉측한 몰골로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튀어나와 진작 우리들을 공격했으리라.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편의점에는 별 볼 일이 없었다.
이미 누가 싹 쓸어간 듯 텅텅 비어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통조림 한두 개 빼고는 페트병에 든 음료수나 삼각김밥, 빵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전부 유통기한이 지나있거나
곰팡이가 피어 좋지 않은 냄새를 풍겨대었다. 결국 통조림을 제외한 남아있는 음식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각종 약품들을 챙겼고,
정호석은 칫솔이나 치약, 휴대용 티슈, 수건, 속옷, 같은 유용한 물건들을 챙겼다. 나와 정호석이 분주하게 움직일 동안 한 곳에만 조용히 머물러 있던 김태형은 오롯이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 오빠, 다 챙겼어요? "
" 응. 이름이 너는? "
" 몇 개 안되지만 구급약품은 간신히 간졌어요. "
" 잘했어. 여기 가방 안에 넣어줄래? "
" 네. "
" 다 챙겼어? "
" 응. "
" 얘들아, 이제 슬슬 가보자. 밖에서 기다린다. "
정호석은 유리창 너머에, 우리가 약속한 장소에 서있는 아저씨와 김석진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낭을 고쳐 맨 정호석이 먼저 편의점을 나서고, 나와 김태형 역시 뒤따라 나갔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챙겨온 우리에 비해 아저씨와 김석진은 건진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모두가 약속한 장소에 모였으니 우리는 곧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주유소와 편의점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얻기에 적합한 곳이었지만, 안전한 안식처까지 되어주지는 못 했다.
사방이 개방되어 있어 언제 어디서 좀비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에게 내쫓기듯 아스팔트 도로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주유소를 벗어나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모를 길을 따라 걸었다. 그것이 우리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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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일이란 미래 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저는 열심히 글 쓰고 있답니다!
다음 편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