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몽글몽글
"늦은 전선배를 대신해서 내가 소개해줄게."
"..."
"이름은 전정국이고, 레지4년차. 외과 레지던트 치프야."
헐? 저 버스남이 치프라고? 호석 선배의 소개를 듣고 버스남을 쳐다보자 나를 보고 있었던 건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불태워 죽일 것 같은 버스남의 눈빛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픽- 하고 나를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다시 쳐다보니 호석선배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짜증난다. 왠지 모르겠는데 이유없이 짜증난다. 속으로 짜증나, 짜증나를 계속 외고있는데 버스남이 박수를 짝-하고 친다. 아, 시끄러. 박수는 쓸데없이 왜 치는거야.
"손."
"예?"
"손 달라고."
"싫은데요."
"허, 참. 이런 애 처음보네."
다짜고짜 나한테 와서 손을 달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이상한가? 내가 싫다고 하자 고개를 돌려 헛웃음을 치더니 밑으로 늘어뜨려져있는 내 팔을 자기 손으로 잡아 올려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다. 손바닥이 쫙 펴지자 자기 왼손에 들려있는 종이 쪼가리를 위에 올려두었다. 내 옆에 서있는 김태형한테도 가서 똑같은 종이 쪼가리를 건네주었다.
"일정표야. 대충 이런식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될거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
"아, 참고로 이대로 진행 안될때가 훨씬 더 많다."
"옙."
"니네 자리는 저기고, 다들 중앙테이블로 모인다."
버스남, 아니 정국선배가 나눠준 종이 쪼가리는 바로 일정표였다. 슬쩍 쳐다보니까 삼십분 단위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진짜 빡빡하구나. 다들 중앙테이블로 모이라는 정국선배의 말에 계속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윤기선배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국선배 옆에 앉았다.
"오늘은 교수님회진 좀 늦게돌꺼야. 교수님 회의있으셔서."
"예."
"지민이 담당환자 체크했나? 어때, 심박 정상으로 돌아왔어?"
"어..아니요. 새벽에 체크했을 때는 정상이었는데 아침에 또 이상생겨서..."
"...미치겠네. 내일 메이저 있는데, 그 전까지 정상으로 돌아와야되는데.. 일단 알겠어, 수고했다."
*메이저(major operation): 대수술
우리가 중앙 테이블로 모인 이유는 지민선배와 정국선배가 하는 얘기를 언뜻 들어보니 아침보고? 뭐 학교다닐 때 했던 아침조회랑 비스무리한 것 같았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데 정국선배 옆에 앉은 윤기선배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치는 소리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윤기선배를 쳐다보자 입모양으로 '집중'이라고 하셨다. 그에 고개를 끄덕이고 정국선배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인턴들은 각 과 치프랑 토론이랑 비슷한 걸 매일 해."
"아..네."
"보통 인턴 한명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두명이나 들어와서..."
"..."
"여주? 너는 나랑 하고. 태형이는 윤기형이랑 해라. 윤기형 괜찮죠?"
윤기선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평온한 윤기선배와는 달리 나는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매일 토론을 해야된다. 그니까 적어도 한시간 이상은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를 해야된다는 거잖아. 저거 분명히 일부러 자기랑 하자고 그랬는 걸꺼야. 윤기선배랑 하라고 해도 됬는건데, 굳이. 왜. 왜 대체 나랑 하겠다고 한거냐고! 주먹과 눈에 힘을 주고 정국선배를 잔뜩 째려보고 있는데 왜, 불만있나? 라고 물어보는 정국선배였다. 알면서도 물어보는거야 저건. 분명해.
"아니요. 불만 없습니다."
"다행이네."
"아, 내일 지민이 환자 메이저 있는데, 그때 우리과 다 들어가는 거 알지? 인턴도 들어가."
"예. 알고있습니다."
"그 환자 병명이랑 정보는 좀있다가 알려줄테니까 공부 좀 하고."
인턴도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거는 석진선배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쭈구리 처럼 구석에 쳐박혀서 수술하는 거 구경만 하고 있는다고 했다. 레지부터 수술 시작하기전에 정리하는 걸 할 수 있다고 했다. 정국 선배는 파일을 책상위에 탁탁 쳐서 정리를 하시더니 더 할 거 없지? 라고 물어보셨다. 그때 김태형이,
" 의사식당은 밥 맛있나요?"
그의 물음에 조용하던 윤기선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호석선배는 책상을 심할 정도로 때리면서 숨 넘어가듯이 웃었다. 김태형은 자기가 한 말이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그렇게 궁금하면 좀 있다가 점심 때 먹어보면 되잖아."
"아...그렇네요."
"오늘은 여기서 끝. 어이, 여주? 내 자리로."
여기서 끝이라는 정국선배의 말에 아,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하고 상큼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자기 자리로 오라는 말에 그 상큼하고 발랄했던 기분 다 잡친 것 같았다. 선배의 말에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선배의 자리에 가서 섰다.
"오늘 토론 주제는 간단하게..."
"간단하게...?"
"민간기업에서 저렴한 가격에 개인의 유전자 지도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예? 이게 간단한 거라구요?"
"어. 뭐, 너한테는 어려울 수 있지만 나한테는 간단한거."
"헐..."
"시간은 넉넉히 줄게. 인턴 할 거 진짜 없거든. 음...지금 9시니까 6시에 1층 카페에서."
"넵..."
"열심히 해라."
저색히 미친거아니야? 뭐, 생전 처음 들어보는 토론주제였다. 저런 걸 생각해내는 거 자체가 머리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유전자 지도를 제공해? 뭐래 진짜. 힘을 쭉 뺀채로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건너편에서 모니터를 또 뚫어지게 쳐다보고있던 윤기선배랑 눈이 마주쳤다. 그에 고개를 꾸벅였고, 윤기선배는 고개를 숙여 뭘 끄적이시는 것 같더니 노란색 포스트잇을 내 자리로 넘겨주셨다.
'힘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글씨가 삐뚤빼뚤한테 뭔가 정갈한 거 같고, 뭔가 정성이 가득가득 들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긴건 안 그렇게 생기셨는데 은근 좀 자상?하신 매력이 있으신 것 같았다. 윤기선배한테 받은 포스트잇을 컴퓨터에다가 딱 붙여놓고 컴퓨터 전원을 켰는데 욕이 나왔다. 화면 오른쪽 맨 밑에 메일이 왔다고 알림이 떴는데, 보낸이에 '전정국' 이라고 적혀있었다.
'박지민 담당 김준유 환자 파일.'
겁나 딱딱하네. 딱다구린줄. 미간을 찌푸린 채로 메일을 여는데 내용은 없고 첨부파일 달랑 한개만 들어있었다. 여기서 인성이 보이는거야, 사람 인성이. 어? 윤기선배는 힘내라고 친히 포스트잇에 친필로 적어서 나한테 줬는데. 이사람은 뭐, 지 바쁘다고 첨부파일만 보내고. 그래, 보내준 거 만으로 만족을 해야지. 한글파일을 여니 완전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이걸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공부하면 토론을 하기도 전에 실명될 것 같아서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지민선배. 이거 뽑을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프린터기 자동으로 연결되있을걸? 저기 저 프린터기에서 나올거야."
"아,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누가 준거래? 정리 엄청 못했네."
"아 정국선배요."
귀는 드럽게 밝아가지고 자기 이름이 들린 것 같았는지 다 들린다-하고 목소리를 엄청 깔고 말했다. 들리면 어쩔껀데, 지 뒷담까면 어쩔껀데. 일개 인턴은 조금의 반항도 못하고.
"선배님 잘생기셨다- 그말 하고 있었습니다."
"이여주랑 박지민이랑 놀지마라. 이여주 할 거 많을텐데?"
"할려고 그랬어요."
"..."
"예. 닥치고 하겠습니다. 할게요~."
***
뽑았는데. 폰트도 겁나 작아서 눈에 하나도 안들어왔다. 아무리 형광펜을 쳐도 이게 저거같고, 저게 이거같고. 한 번 훑어본 결과, 김준유 환자의 병명은 AAA 였다. 근데 AAA는 원래 흉부외과에서 하는건데 왜 우리과로 넘어온거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담당인 지민선배한테 물어보았다.
*AAA(abdominal aortic aneurysm): 복부 대동맥류. 복부 내에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 벽이 여러 원인에 의해 약해져서 직경이 정상의 50% 이상 늘어나는 질병.
"선배 AAA 원래 흉부외과 진료 아니에요?"
"아, 그거. 모르겠어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됬다."
"..."
"흉부외과에서 저걸 제대로 수술 할 수 있는 교수가 없어서 우리과로 넘어오게됬어."
"우리과에는 있어요?"
"어, 우리 교수님. 우리 교수님 흉부외과이셨는데 전과하셨거든."
"아..."
"근데 공부 열심히 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지민선배는 손을 들어 내 머리위에 툭 올려놓으시더니 머리를 살살 쓸어주셨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이런 스킨쉽에 나도 모르게 귀 끝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얼굴이 빨게 진 걸 봤는지 지민선배는 입을 가리고 큭큭 대며 웃으셨다. 아, 웃지마요.
"귀엽네."
"예..?"
"귀엽다고."
흐앙. 귀여운건 선배가 더 귀여워요. 그 말을 한게 좀 민망했는지 선배의 귀도 나 못지않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참 김준유 환자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어깨위로 느껴지는 묵직함에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니 정국선배가 무표정으로 날 쳐다보고있었다. 왜요. 밥 안먹나? 지금 점심시간 훨씬 지났는데. 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는 정국선배의 말에 휴대폰 잠금을 키자 보이는 숫자는 3:33. 미치겠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야, 하고 날 부르는 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지금 나 버리고 가는거?"
"예? 선배 드신거 아니에요?"
"꼬르륵. 들리지? 나 밥 안 먹었어."
"그거 입으로 내신거잖아요."
"나 배고프다고."
"뭐 어쩌라구요."
"...같이먹자고."
"아..."
당연히 밥을 드신 줄 알았는데 안 먹었다고 하셔서 어쩔 수없이 지금 나는 정국선배와 나란히 식당으로 가고있는 중이었다. 가는 중에 진짜 한 마디도 왔다갔다 거리지 않았다. 원래 과묵한 사람인가 싶어 옆을 쳐다보자 꽤나 잘생긴 얼굴에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선배와 눈이 마주쳐서 바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옆에서 픽- 하며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려 옆을 째리니 내 볼을 쭉 잡아당기는 선배였다.
"이렇게 보니까 나 좀 잘생겼지?"
"예. 그건 인정합니다. 솔직히 아침에 버스에서 그건 진짜 사람 몰골 아니었어요."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었던것 같다. 니 눈한테 사과할게."
"예, 그 사과 받아드리겠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식당에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말인 즉슨, 이 넓은 식당에서 나랑 정국선배 둘이서 마주보고 밥을 먹어야한다, 그 소리였다. 먹을 만큼 담아서 자리로 왔는데 정국선배는 어디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않았다. 같이먹자고 하더니만. 먼저 먹고있는데 정국선배가 양 손에 컵을 들고 내 자리로 오셨다.
"여기 물."
"아, 감사합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예 알겠습니다."
"선배는 안먹어요? 배고프시다면서요."
"지금은 또 별로 안고프네. 내 배가 원래 좀 이상해."
예, 이상하신거 같아요. 정말. 정국선배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흡입하듯이 먹었다. 정수리로 느껴지는 따가운 눈빛에 살며시 눈을 위로 치켜뜨자 턱을 괴고 내가 먹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국선배가 담겼다.
"저기...선배님...부담스러운데요."
"진짜 복스럽게 먹는다."
"칭찬인가요?"
"그럼, 칭찬이지. 아 맞다. 너 토론준비 다 되가냐?"
"헐. 지민선배 담당 환자 공부한다고 못했어요... 밥 먹고 가서 바로 할게요."
얼른 가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식판을 들고 일어나는데 정국선배가 내 손에 들린 식판을 자기가 들었다. 뭐지?하고 쳐다보는데,
"내가 치울게. 옆에 카페가서 아까 주문해놨던 사람인데요-하고 말하면 뭐 줄거야. 얼른 가봐."
"...예..."
뭐지...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러는거지. 왜 저러는걸까요 여러분들. 흐앙. 당신이 아무리 자상한 척 한다해도 내 마음속에는 윤기선배.
암호닉♥내이삐들♥ |
천하태태평/콧구멍/정국아 어딨니/난나누우/호호케인/라온하제/란덕손/뀩/은갈칰/어화둥둥내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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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랑이/윤기모찌/너랑나/윤기야밥먹자/탱수니/푸들푸들/미스터/삥꾸/너만볼래/팡도르/스무살 |
안녕하세옇ㅎ6월셋째주에 온다고 그랬는데 빨리 오고싶어가지구 왔습니다.
중사때보다 분량이 늘었어요!! 그래서 5p로 올렸습니당
댓글쓰시고 포인트 다시 되받아가시면 되요!!
0화때 생각보다 엄청 많은 관심을 주셔서 둑흔둑흔거렸답니다...
아침에 자고일어났는데 알림이!!워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