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인턴 1년차 이여주입니다.
"선배, 나 너무 떨려요."
"걱정하지마, 뭐 본과 다시 한다고 생각하면 될꺼야."
"헐, 지옥이잖아요."
"그런거 생각안하고 의대 들어온건 아니잖아. 힘내라, 너도 곧 내 꼬라지 될거다."
오늘은 병원 첫 출근날이다. 지긋지긋한 의대 6년을 졸업하고, 인턴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석진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석진선배 소개를 못했구나. 석진선배는 의대 수석 졸업생으로, 현재 방탄대병원 레지2년차를 달리고있다. 확실히 경험이 많을 것 같아서 뭔가 좀 얻는 게 있을거라 믿고 전화를 걸었더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나는 외과로 신청했다. 내 교수님이 외과전문이기도 했고, 석진선배가 외과를 선택했기도 했고, 뭔가 수술방에 틀어박혀있는 게 멋져보이기도 했다. 너무 잡소리가 많았나? 미안해요들... 너무 긴장되서 그럽니다. 허허..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내 옆에서 뭔가 이상한 퀘퀘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옆을 돌아보자 눈이 엄청 큰 사람이 있었다. 그래, 눈이 큰 것 까진 좋아. 근데... 까치가 10마리가 넘게 살아도 모자랄 만한 그런 머리에, 옷은 무슨 5000원에 샀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후줄근한 후드티에 바지는 축 늘어진 트레이닝복이었다. 아래 위로 훑어보는데 위에서 나를 째려보는 듯한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그 큰 눈으로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고있었다. 이번 정류장은 아미대병원입니다. 딱 타이밍에 맞게 듣기좋은 아가씨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도망치듯이 빨리 버스에서 뛰쳐나왔다.
"후... 무서웠어. 저 사람이 나중에 나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미대병원에 들어갔다. 들어가자 회진을 도는건지 교수님 뒤로 쭈루룩 서신 의사가운을 입은 분들이 내 옆을 휙하고 지나갔다. 나도 이제 저런걸 한단말이지. 심장이 두준두준 설리설리거렸다.
병원은 12층이었고, 외과는 8층에 있었다.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돌리는데 뒤에서 허겁지겁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잠깐만, 같이 들어가요!"
"아...네."
"하, 나 너무 떨린다. 떨리죠?"
"네... 떨리네요."
"자, 이제 들어가요!"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정장을 쫙 빼입은, 첫 날이라고 꽤나 멋을 부린듯해보이는 사람이 나한테 떨리죠? 라고 물어왔다. 얼떨결에 대답을 했고, 내 대답은 들은 채 만 채하고 들어가자며 문고리 위에 올려진 내 손을 겹치곤 문을 열었다. 이 사람 뭐지? 저기요, 저희 왔는데요. 우리과 왔는데도 불구하고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다들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
빨간머리소년이 용기내서 먼저 인사를 했고, 그제서야 화면에서 눈을 떼고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었다.
"어! 왔구나! 반가워."
쓰고 계시던 안경을 벗으시고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반갑다고 말하셨다. 엄청 망개떡처럼 생기셨다. 이어서 눈이 세모인, 엄청 피곤해 보이시는 분이 일어나서 안녕,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화면에 눈을 돌리셨다. 안녕! 엄청 희망희망해보이는 분이 나에게로 와서 어깨를 두들겨주셨다.
"아 근데 전정국 이놈은 왜 안오는거야."
"그러게요, 분명 버스타면 30분이면 다시 올거라 그랬는데."
"전선배 또 버스 잘못 탄 거 아닐까요? 저번에도 잘못타셨던데."
"그럼 전선배 빼고 소개합시다!"
예? 소개요? 나의 물음에 희망희망해보이는 분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우리 3년 동안 같이할거에요. 레지때도 외과 선택하면, 7년이네. 적어도 3년동안 같이 살 사람들인데, 소개도 안할려고? 그 분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그 분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다른 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피곤해 보였던 그 세모 눈 분도 마지못해 일어나셨다.
"자! 이제 소개를 시작해볼까요? 먼저 우리 여자분부터!"
"아, 안녕하세요. 이여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주씨, 저희도 잘 부탁해요! 그다음, 우리 빨강머리."
"안녕하세요!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태형이는 먼저 머리색부터 바꾸고 오세요."
"아, 죄송합니다."
빨강머리는 이름이 김태형이라고 했다. 뭔가 얼굴이랑 이름이랑 잘 어울렸다. 자, 이제 우리 소개를 해야겠네요. 망개떡처럼 생기신 분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나는 박지민. 레지던트 2년차."
우와. 홀린듯이 박수를 쳤다. 그에 지민선배(?)는 쑥스럽다고 그만 치라고 말하셨다.
"어허이, 둘이 분위기 너무 좋은데? 나는 정호석. 레지던트 3년차."
"민윤기.레지4년."
엄청 피곤해보이시고 눈이 세모이신 분은 이름이 민윤기라고 하셨다. 역시 소개는 짧고 간단하게 이름과 년차만 말하셨고, 바로 자기자리로 가셔서 타자를 열심히 치셨다. 꾸리꾸리한 내 표정을 보셨는지 지민선배는 원래 저렇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저 선배 원래 저래. 나도 처음에 적응하느라 어려웠어."
"아..."
"전정국은 언제 온대, 전화해봤어?"
"네, 방금요. 지금 정문이라고 조금만 기달리래요."
지민선배의 말이 끝나자 마자 바로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엄청 뛰어오셨는지 숨을 헐떡이셨다. 아직 안끝났지? 하며 고개를 드시는데, 어. 어디서 많이 봤는 얼굴이다. 그 분도 나를 어디서 봤다고 느끼셨는지 손가락을 나를 향해 가리켰다. 어, 너 그 버스. 헐, 그 사람이 그사람이야?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은 버스에서 봤던 그 냄새나고 꿰줴줴한 사람이 아니었다. 후줄근한 후드티가 아닌 흰색 와이셔츠, 늘어난 트레이닝 복이 아닌 검은 정장 바지. 그리고 눈만 큰게 아니라 엄청 잘생긴 사람이 서있었다. 헐, 그때 그 사람이야?
"늦은 전선배를 대신해서 내가 소개해줄게."
"..."
"이름은 전정국이고, 레지4년차. 외과 레지던트 치프야."
*치프(chief): 각 과 레지던트 4년 차 중 대표.
전정국(31)
외과 레지던츠 4년차 치프.
별명은 전찍진(전정국한테 찍히면 뒤진다.)
이여주(26)
외과 인턴 1년차.
공부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민윤기(32)
외과 레지던트 4년차.
민윤기- 귀찮음=0
어떻게 의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망했다. 어떡하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소재로 돌아와버렸어요... 진짜 이거 완결낼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제본준비도 지금 힘들어죽겠는데 뭐하는 짓인가.
1화는 아마도 제본 끝나고 6월 셋째주에 올릴 예정이에요.
최대한 진짜처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르는거는 오빠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오빠가 의대생 허헣...
외과레지 4년차 전정국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