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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 인스티즈 

 

 

 

 

 

 

 

 

 

 

 

어쩌면 나는 조금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위하는 척, 다 참아주는 척. 결국은 내가 좋아 그의 옆에 남아있겠다, 결심을 한 것이면서도 그를 위하는 척 까만 마음에 하얀 포장지를 씌워 감추고 있었다. 결국은 나로 인해 지금까지 상처를 받아왔던 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무슨 선심이라도 쓰는 듯, 내가 다 이해해준다고. 그가 내게 정확히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실컷 착한 척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차라리 물어라도 볼걸.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내가 희생하는 셈 치고 그를 멋대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건네볼걸. 

나는 이기적이었다. 내가 상처 받을까 봐, 내가 아플까 봐. 이기적이게도 그런 사실은 꽁꽁 숨긴 채 그를 위한다는 핑계로 싸매고 있었다. 나와 김태형, 둘을 위해서라는 것도 분명 온전히 그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를 위해서라고, 입으로만 내내. 그를 떠나면 내가 더 아플 것 같아서. 그가 아프면 내가 더 아파서. 결국 나를 위해서였다. 

정작 난 그에게 어떤 확신도 주지 않았으면서 그에겐 어떤 확실한 마음을 바랐다. 나를 좋아한다고 해주길, 마냥 바라고 있었다. 난 그에게 그 어떤 것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 그에게 자격이 없다느니 주제넘는다느니. 그런 말들은 너무도 이기적인 것들이었다. 내가 혼란스러웠던 만큼 김태형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왜 끝까지 알아주지 못 했을까. 내가 힘든 만큼, 오히려 그 몇 곱절을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알아주지 못 했을까. 


쉽게 말하지 못 한 내 감정만큼이나, 쉽게 털어놓지 못 했을 감정이라는 것을. 왜 알아주지 못 했을까.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뭐?" 

 

 


가뜩이나 곧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던 그의 눈동자가 더욱 흔들거리기에 내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는 건데. 내 마음이 더 아프지 않게, 그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게. 더 이상 터지지 말라고 정성 들여 꿰매주고 있는 건데.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김태형의 표정이란 곧 그런 내 손길을 뿌리칠 것만 같아 겁이 났다. 니깟게 뭔데, 라면서. 단지 흔한 동정심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순간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잘못 말한 걸까 싶었지만 내가 뱉은 말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다시 주워 담고 싶진 않았다. 

 

 


"좋아해요." 

"...." 

"내가 김태형씨를 좋아한다고. 김태형씨 때문에 얼마나 속이 타고 아픈지 알아요?" 

"...." 

"김태형씨가 나 안 좋아해도, 난 상관없어요. 내가 꼭 곁에 있어줄게요. 그러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러지 마요." 

 

 

 

이제 그런 마음을 바라지 않으니까, 그런 욕심 따위 버렸으니까. 그가 나로 인해 상처받는 것이 싫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 때문에 아픈 게 싫었다. 그러니까 나 믿고 더 이상 아프지 마요. 지금까지 받아온 상처, 내가 다 덮어줄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덧나지 않게 내가 막아서주겠다고. 그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동요하길 바랐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절대 안 떠날게요. 김태형씨 곁에 꼭 있어 줄 테니까," 

"다시 말해봐." 

"네?" 

"다시 말해줘." 

"...." 

"나 좋아한다고. 맞지? 그렇게 말했지, 방금." 

 

 


내 손에 얌전히 잡혀있는 그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전엔 생각이나 해봤을까. 내가 먼저 어떤 남자의 손을 이리도 오래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온기를 더 담고 싶어 잠깐이라도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너 같은 애가 왜 날 좋아하냐고 질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눈빛을 내게 보내주며 나긋이 말을 이어가는 그가 너무 좋아서. 그 찰나가 너무 좋아서. 내게 몇 번 다시 물어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분명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이고 내게 참도 어려운 말이었지만 한 번 더 말해줄 수 있었다. 아니, 몇 번이고 더 말해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남겨두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꾸 목이 메여서,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참다 보니 목이 막혔다. 

 

 


"아미야." 

"... 네." 

"정말 나 안 떠날 거야? 나 안 버릴 거야?" 

 

 


더 힘차게 고개를 더 끄덕여주었다.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니까. 절대 버리지 않을 거니까. 그의 곁에 꼭 붙어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떠나라고 해도. 꼭 붙어있겠다고. 그는 하-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눈을 몇 번 천천히 깜박였다. 그렇게 조금 오래 숨을 내쉬더니 이내 날 향해 고개를 떨어뜨리며 자신의 눈동자에 꽉 차게 날 담아주었다.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그의 가장 따뜻한 표정을 보여주며 마주 잡은 손을 함께 더욱 쥐었다. 마음이 얼마나 푹- 가라앉던지. 아까만 해도 정말 죽을 것처럼 마음이 아프더니. 오랜만인 것 같은 그의 미소를 보고 나니 나도 후- 숨이 내쉬어졌다. 진작 말해줄걸. 애초에 그의 마음이 아프기 전에, 내 마음이 아프기 전에 말해줄걸. 너무 이기적이었던 내가 이제야 정신을 차려서. 그래서 미안했다. 

 

 


"와, 나 지금 꿈꾸는 것 같아. 너무 좋아서, 니가 너무 좋아서." 

"...." 

 

 


슬쩍 입이 떨어졌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어떤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훅- 무언가 금방 흘러들어왔다. 니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순간 내가 착각을 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는데. 간혹 있는 경우. 친구와 친구 사이의 우정이라든가, 엄마와 딸 사이의 사랑이라든가.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자꾸만 착각을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그의 마음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역시 사람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걸까. 

대체 왜 나 같은 걸 좋아하냐고, 혹시 잘못 말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정말 그렇다고 말해버리면 어떡해. 잘못 말한 거라고 니가 잘못 들은 거라고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하면 어떡해. 그러지 말고, 내가 멋대로 착각을 해버리게 그렇게. 잘못 말했어도 흘러버린 물은 이미 바닥에 다 스며들어 다시 주어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방금 내게 했던 말도 금방 내게 스며들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나 너한테 못된 짓 할 것 같은데." 

"네?" 

"나 지금 너한테 키스할 거야." 

"...." 

"해도 돼?" 

 

 

 

멋대로 착각을 하는 것이라 마음 놓고 그 말에 좋아하지도 못 하는 내게 그는 한 마디 더 크게 얹어왔다. 그래도 나를 위한 답시고 저번처럼 몸이 먼저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게 동의를 구하는 그의 말투가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해도 돼가 아니라 된다고 해줘라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또 고마웠는지. 날 위해준다는 게, 날 좋아한다는 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 거야. 

 

 


"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길게도 입꼬리를 늘리며 내게 입을 맞춰왔다. 마주 잡고 있는 손으로 느껴지던 온기의 10배는 더 따뜻한 것 같은 그의 숨이 내게 흘러들어왔다. 그와 마주 잡은 손이 따끔따끔했다. 긁을 수도 없는 심장이 간질거렸다. 내게 찾아온 딱 두 번째 키스는 먼젓번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달콤하고 짜릿했다. 그는 거칠지도 않았고 급하지도 않았다. 그때와 같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내게 어쩌면 악몽으로 남을뻔한 것이 그로 인해 깨끗하게 깨져 제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은 까칠한 듯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매만지고 있으면 그와 너무도 다른 촉촉한 것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입안 전체를 핥고 있는 그 생소한 느낌에 감고 있는 눈앞엔 펑펑-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불이라도 지른 듯 온몸엔 열기가 올랐고 심장은 터질 듯했다. 절대 다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긍정의 단어가 나간 그 순간에도, 잔뜩 의아해했지만 그 누구도 아닌 그라면, 김태형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남은 한 손으로 어느새 내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그는 더 깊게 제 숨을 내게 밀어 넣었다. 잔뜩 긴장한 몸이 슬슬 반응하기 시작할 쯤, 그는 마지막으로 숨을 한번 불어넣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아쉬운 듯 가볍게 한번 더 입술을 포갰다 떨어뜨린 김태형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더니 코가 맞닿을 거리에 그대로 멈춰 다시 날 제 눈동자에 담았다. 나 역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난 이제 그럴 수 있으니까. 너로 인해 그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랑해."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김태형의 딱 그 한마디가 내 심장에 너무도 크게 부딪혀와서 숨이 잠깐 멈추었다. 분명 내가 똑똑히 들은 거라고. 잘못 들은 게 절대 아니라고. 그는 내게 어떤 거짓도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마주했다. 아직 다 흐르지 못 해 빨갛게 달아오른 볼 그 어느 곳에 민망하게 맺혀있던 눈물이 그의 손가락에 쓸렸다. 따끔따끔, 그의 체온이 닿는 그 모든 곳이 반응했다. 한참을 더 그와 눈을 맞추고 싶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시선이 떨어졌다. 그의 눈빛 하나에도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았으니까. 더 참지 못 하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는 날 보며 다시 쭈욱 입꼬리를 올리다 이내 날 제 품에 가두었다. 글쎄 그러면 온몸이 다 터져버릴 것 같다니까. 갑자기 당겨진 몸에 놀라기는 했지만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괜찮구나 싶었다. 하긴, 방금은 꽤 오래 키스라는 것도 했다. 그리고 난 아직도 살아있다고. 

다시 가까워진 그의 체온을 느끼며 귓가엔 돌돌 그의 달콤한 목소리 걸렸다. 사랑해. 그는 몇 번이고 내게 속삭여 주었다. 오직 내게만 들리게.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지금 제정신이 맞는 거겠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김태형이 맞는 거겠지. 

 

그는 어느새 내게 하나의 세상,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 인스티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제 짝을 찾아올 때도, 그건 나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의 결말이 될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해왔다. 전혀 부럽지도 아쉽지도 않다고. 남자를 무서워했다. 곁에만 있어도 질색을 하고 작은 대화마저도 꺼려했다. 항상 외로워하시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도, 차라리 그런 사람과 살바에는 혼자가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신비롭고 놀랍고 아름다운 것임 분명한 '사랑'이란 것은 내게 사치라고. 그런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엄청난 건지. 서로가 좋아할 확률은 생각보다 꽤 적다고,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엔 맞사랑보다 짝사랑이 더 많다나. 나 역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내가 좋다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벌써 몇 번의 연습으로 단련이 돼있다고 해도 여전히 온몸이 경직되어 불편했던 내가 먼저 놓아달라며 그를 밀어냈고 또한 역시나 그는 싫다며 나를 더욱 품으로 당겼다. 그렇게 몇 분을 투닥투닥 입씨름을 해대다 갑자기 떨어지는 그의 뜬금없는 말과 함께 서로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배가 고프다며. 잔뜩 울상을 지어 보이며 배를 문질렀다. 나 때문에 한 끼도 못 먹었다며 투정을 부렸다. 내 방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이왕 들어온 거 맛있는 거 해달라고. 내가 해준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다나. 하지만 난 이미 몸에 기운이 다 빠져버려 뭘 만들 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배가 고프다며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분위기를 떨어뜨린 그때도 내 몸 곳곳이 반응을 하며 내려갈 줄 모르고 여전히 뜨겁게 열을 내고 있었기에. 마치 꿈을 꾸는 듯 정신은 내내 몽롱했고. 그 상태에서는 컵라면에 물을 붓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고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꼭 해주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그런 이유로 댓 발 입이 나와 중얼중얼 거리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텅 비어있던 속을 꽉꽉 채워주었다.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내내도 투덜거리는 통에 다음에 꼭 해준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 같다. 

 

 

그날 밤은 찢어지고 할퀴었던 상처를 꿰매느라 더 이상 박지민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은 했지만 애써 올라오지 않도록 꽉- 누르고 있었다. 그에게 온 답문자도 차마 꺼내볼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이기적인 짓인 것을 알지만 그날 밤만은 마음 놓고 행복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했던 고민, 받아왔던 상처 같은 것들은 멀리 치워버리고 마음껏 행복해하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까, 너무 아팠으니까. 

하지만 다시 아침해를 맞이했고 어젯밤 못 다했던 고민들과 감정들이 배로 다가와 잔뜩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행복한 상상들이 늘어갈수록 박지민을 향한 죄책감과 같은 감정 또한 더욱 늘어갔다. 회사에 도착하면, 사무실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박지민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그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고 싶었다. 숨길 수 있다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다. 이젠 정말 그에게 갈 수 없다는 것을 차마 내 입으로 꺼내기가 너무 미안해서. 그동안 나만 봐주었던 그 오랜 기간을 내 스스로 허무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서. 날 보자마자 어제의 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맞이하는 박지민 덕분에 내 마음은 더욱 무겁게 깔렸다. 

박지민은 평소와 같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날 구해주었던 영웅이 실은 박지민이었고 그가 끔찍했던 기억을 안고 있는 중학생 시절의 어느 부분에 스며들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함께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많이 잘못하고 미안한 짓을 저질러버렸으니까. 또 한번 그에게 상처를 주어야 하니까.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다신 없었으면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더욱 미안했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 

 

 


"그 사람이지." 

 

 


언제가 되었든 꼭 해주어야 하는 말이었고, 그럴 거면 일찍 말해주는 편이 더 그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그는 퇴근 후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따라나섰고 굳이 말리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내 행동에도 그는 오늘 무슨 일 있냐, 한번 묻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조금은 말수를 줄이며 나와 발걸음을 맞춰주었다. 내가 만드는 것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어색한 분위기가 깔렸고 어쩌면 차라리 평소처럼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의미 없는 입씨름을 몇 번 해주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후에야 들었다. 어제와 같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에게 티를 낼 필요는 없었는데. 

 

 


"니가 좋아하는 사람." 

 

 


그는 솔직했다. 부끄럼 없이 제 마음을 표현하였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다, 당당하고 멋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굳이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지루하고 쓸데없는 서론 따위 줄줄 늘어놓지 않았다. 

역시 굳이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그는 답안지를 들고 있었다.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날렸고 고개를 든 채 그 바람을 몇 번 맞이하다 아무 말없이 나란히 걷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언제 말하면 좋을까 괜히 말하지 말까 고민을 하며 미루고 있던 나보다 먼저 그는 입을 열아주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말하지 말고 눈치 없는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 

"근데 니가 자꾸 내 눈치를 보니까. 나 그거 싫어. 니가 뭘 잘못했다고 내 눈치를 봐." 

 

 


입술을 꽉 물었다. 하긴 모를 리가 없다고. 그러지 않고 싶었지만 자꾸만 티를 내는 나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나도 그냥 넘어가고 싶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고 싶었다. 평소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너를 대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 

 

 


"어제 니 문자를 받고 한참을 생각했어. 니가 그랬잖아. 미안하다고. 니가 왜 미안해. 그 사람이 내 멱살을 잡은 게 왜 니가 미안할 일인데. 니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지민아," 

"맞아, 실은 부정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 

"근데 오늘은.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잖아. 니가 죽을 상을 하면서까지 내 눈치를 볼 일이, 그런 게. 하나 밖에 없으니까." 

 

 


차라리 속 시원하게 화라도 내지. 나쁜 년이라고.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어떤 마음일지, 얼마나 아플지 잘 알고 있는데도 넘치게 담담한 태도를 보이는 박지민에게 더욱 미안함이 번졌다.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라고 해줄 수가 없으니까. 내가 꺼낼 말은 너를 더 아프게만 할 테니까. 

 

 


"차라리 아무도 좋아하지 말지. 나 안 좋아해도 괜찮으니까. 그냥... 그대로만 있어주지." 

"...." 

"바라는 거, 없다고 했잖아 내가." 

"응" 

"다 괜찮아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아서, 그래서 맨날 웃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말 걸고. 그랬던 거 아니야. 실은 나 항상...."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는 거.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박지민은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제 입술만 꽉 물었다. 저런 표정 처음 보는데. 내내 펴져있던 눈썹 사이가 자꾸만 일렁이고 있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지만 그가 내게 정이 떨어졌거나 날 미워한다고 해도 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나쁜 거니까. 미움 받아도 난 할 말이 없다고. 

 

 


"근데, 난 그래도 니가 좋아." 

"...." 

"니가 날 좋아해 주지 않아도 난 계속 좋아할 거야." 

"지민아," 

"아니. 난 꼭 그럴 거야. 그건 허락해줘. 내 마음만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렇게, 허락해줘." 

 

 


분명 너를 더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너만 더 아플 거라는 것을.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나를 향해 달리는 길을 택하련다, 말했다. 그런 것까지 내가 참견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 말라고 대못을 박을 수는 없는 거니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그는 다시 평소처럼, 그렇게 웃어주었다. 

 

 


"그 사람이 너 아프게 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줄게!" 

"응." 

"그러다가 그 나쁜 놈이 너 울리면 내가 확 뺏어버릴 거라고." 

"...." 

"꼭 그렇게 전해. 알겠지?" 

 

 


다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어떤 말을 해주는 것조차 그에게 미안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말로도 그를 위로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게 그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안해하지 않길 바라고 있을 거라고. 그는 너무도 착했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방금도 내가 미안해하지 않게, 분위기가 더 떨어지지 않게 작은 농담을 던지는 박지민이었으니까. 

 

 


"나 이제, 이런 것도 안 되는 거겠지? 여기 오는 것도, 너 걱정돼서 데려다주는 것도 안 되는 거겠지?" 

 

 


그것 또한 아니라고,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 없었다. 끝까지 내 걱정을 해주는 박지민 앞에서도 난 여전히 김태형을 생각했다. 혹시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길까 봐. 난 분명 김태형을 좋아하고 있고 그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어제와 같은 일을 또 벌이진 않을까, 그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너였고, 욕을 해도 모자란 내게 여전히 좋아한다 말해주는 니 앞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생각인데도. 그럴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 아니라고 말 못 해줘서 미안해. 

 

 


"그럼 이게 마지막이겠다. 흠,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좋은 이야기만 하다 갈걸. 조금 아쉽네." 

"...." 

"앞으로 나 없으면 무서워서 이 길 어떻게 걸으려나-." 

"...." 

"그래도 지민콜이 항상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 알겠지? 바로 달려간다!" 

"고마워." 

 

 


너는 끝까지 착했다. 그래서 더 미안해.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김태형은 점심시간만 되면 전화를 걸어왔고 퇴근을 한 후 집에 돌아가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그런 것 역시, 그전에도 해왔던 것이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밥을 먹는 중에도 역시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똑같은 레파토리였다. 요 며칠 각자의 사연으로 앓고 앓느라 못 보았다고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김태형 앞에, 짧게 대답만 하는 나. 그런 우리 둘 사이에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평생 내게선 전혀 풍기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발그레한 빛을 내뿜고 있다는 것. 우리 주위에 안 보이는 분홍색 테두리가 감싸고 있다는 것. 그것이 낯설었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고 행복했다. 분명 달라진 것은 없는데, 평소와 같은데. 내내 입꼬리는 올라가 내려올 줄 몰랐고 뭐라도 씐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기분이 붕붕 떴다. 

 


주말이 찾아오자 역시 아침을 먹지 않는 우리였고 점심시간이 됨과 동시에 부르지 않아도 쪼르르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김태형이었다. 밥 먹자.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저 식사에서만 그쳤던 우리 일정엔 데이트라 칭할 수도 있는 코스가 하나 늘었다는 것. 카페였다. 사람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혜주나 다른 친구들과는 수다를 떨기 위해 별수 없이 자주 들렸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닌 '남자'와 같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있는 그림이라니. 생소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역시 싫지 않다는 것.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좋았다. 

김태형은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밝아진 내 얼굴을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제는 꽤나 오랫동안 맞춰주는 내 시선이 좋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조금 반대일지는 모르겠지만 식사를 할 때는 그렇게 나풀거리더니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있을 때는 가만히 내 얼굴만 뚫어보았다. 

 

 


"저, 김태형씨." 

"응?" 

"다른 곳 좀 봐주면 안 돼요?" 

"왜?" 

 

 


처음 몇 분은 버틸만했지만 그 시선도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을 때면 자꾸만 그에게 좋아한다고 덜컥 말했던 때가 생각났고. 실은 아직도 신기했다. 대체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갔는지. 게다가 그 후 있었던 일은. 가장 좋았기도 했지만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만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눈을 가려보아도 그는 요지부동이었고 금방은 오히려 그런 나를 괴롭힌다며 기겁을 하는 날 무시하고 옆자리까지 꿰찼다. 방글방글 웃으며 더욱 가까워진 시선을 내게 쏘아댔다. 

 

 


"너는," 

"...." 

"예뻐." 

 

 


또. 빈말인지 진심인지. 벌써 저 말만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저렇게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다가도. 툭툭- 잘도 던져댔다. 처음 저 말을 해주었을 때는 정말 어쩔 줄 몰라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대로 나갈 것도 아니고 쭈볏쭈볏 다시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그런 나를 보며 귀엽다는 말을 덧붙이는 김태형 때문에 또 일어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지. 물론 싫지 않은 기분에 굳이 하지 말라고는 않았지만 자꾸만 늘어가는 횟수에 점점 당황을 하고 있는 때였다. 난 예쁘지도 않고 저런 말을 해줄 때면 어떤 반응을 해줘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 하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어떤 반응을 하는지도 전혀 몰랐고 처음으로 듣는 그 말에 적당한 반응을 스스로 찾기도 너무 힘이 들었다. 고맙다고 하기도 그렇고, 김태형씨도요 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럴 때면 화르르 열이 오르는 볼을 식히기 위해 앞에 놓인 시원한 음료들을 마시며 애써 시선을 치울 뿐이었다. 그런 싱거운 내 행동에 김태형이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한눈을 팔지도 않고 꾸준히 날 보았다.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 내 남자친구 온다고 했어. 야, 그런 거...," 

 

 


잔잔하고 차분한 음악이 낮게 깔리고 있는 카페 안은 조용했다. 가끔씩 돌아가는 커피 머신의 소리 빼고는 자잘한 이야기 소리까지 건너건너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만 해달라 해도 고집을 피우며 계속해서 날 쳐다보는 것에 시간만 버리고 있을게 뻔했고 쪽쪽-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시원한 아이스티를 들이키며 애써 눈을 치워 다른 테이블을 염탐하고 있었다. 혹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남자친구. 그러다 시선이, 아니 귀가 꽂힌 곳은 통화를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한 여자였다. 들리는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귀에 한번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꽂힌 뒤로는 그 여자에게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니 멍을 때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왜? 어디 봐?" 

 

 


한참 동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내가 궁금했는지 김태형이 나를 불렀고 그의 음성에 고개를 돌려 몇 분 만에 다시 눈을 마주했다. 

 

 


"저, 김태형씨." 

"응?" 

"좀 애매해서 물어보는 건데," 

"응." 

"김태형씨랑 나랑, 그러니까... 이제...." 

"응?" 

"남들이 김태형씨 보고 누구냐고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해요?" 

 

 


나는 나름 이것도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함께 밥을 먹은 것도 전과 달리 데이트라 칭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그건 연인들 사이에 하는 것인데. 우린, 우리 사이는 지금 뭘까. 분명 나는 김태형을 좋아하고 그 역시 나를 좋아한다고 해주었다. 서로 마음이 같다는 것을 확인 했음에도 우리 사이를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었다. 확실한 관계. 우린 아직 그걸 정해놓지 않았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여자들은 확실한 관계를 좋아한다고. 나는 너를 좋아해. 너도 나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뭐. 그런 것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같다고 우리가 연인 사이냐, 그건 아직 아니었다. 

 

 

 
"뭐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남자... 친구요." 

 

 


또한 내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살았지. 사람 욕심이란 건 정말 끝이 없었다. 그의 확실한 마음만 받아내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가 불안하지 않게. 날 떠나지 않겠다고만 해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가 내 옆에 나란히 서주길 바라고 있었다. 전에 한번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지. 김태형이 내 남자친구라면.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뛰어대고 따끔거렸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형이 내 남자친구라니.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곧 숨이 막힐 듯이 좋았지만 딱 떨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숨이 막힐 듯 행복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금 이대로도 좋았지만 한번 생각을 해본 후로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우리 관계가 정확하게 정의 내려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사귀는 거냐고 물어보는 거야?" 

"... 네. 나도 김태형씨 좋아한다고... 말했고, 김태형씨 마음도 알겠는데, 아직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도 안 했고, 또," 

 

 


괜히 김태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얼음이 꽉꽉 차있어 표면에 또르르 물방울이 흐르고 있는 아이스티는 테이블로 옮겨놓은지 오래였고 비어버린 손은 조금씩 땀이 나는 듯 축축했다. 차라리 저거라도 잡고 있을 걸 그랬나. 여전히 긴장이 되었다. 김태형이 한마디씩 뱉을 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렸고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난 곧 격한 반응을 보일 예정이었다. 그런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며 눈썹을 씰룩이든, 마음대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여주든. 아님 항상 그랬듯 예상치도 못 할 말을 뱉어내든. 

 

 


"아미야." 

"네?" 

"한번만 안아봐도 돼?" 

 

 


지금과 같이.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한번 안아버리고 끝내려고 하는 것인지. 정확한 관계를 원하는 나와는 달리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인지. 뭘 유치하게 그런 걸 물어보냐며 날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미웠지만 그런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울었다. 실은 눈치를 보느라 그의 표정도 잘 모르겠고. 

그는 항상 날 먼저 생각해주었다. 뭘 하기 전에 앞서 내게 허락을 구했다. 해도 돼냐고. 너 괜찮냐고. 사소한 거 하나하나 신경 써주었다. 방금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턱대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괜찮은지 그래도 되는지. 휙휙- 주위를 몇 번 돌아본 뒤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난 그가 좋았으니까. 앞서 판단해버린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난 김태형이 좋았으니까. 굳이 확실한 관계에 대해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날 좋아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난 족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한번 또 크게 웃어주며 날 꼭 안아주었다. 그런 그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주위를 신경 쓰는 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는 뭘 하든 남들 신경 쓰지 않고 항상 날 위해주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데. 그런 그가 부러웠고 미안했다. 만약 카페 안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를 신경 쓰고 있었다면 조금은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어떤 대화가 오고 갔고 그 대화의 시작점이 나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보면 난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는 무슨. 분명 그런 관계가 정의 내려지고 나면 이런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아무 곳에서나,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부대끼는 그런 것들을. 꼭 연인 사이란 것이 그런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정당한 이유와 자격이 생기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 스스로 스킨십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김태형이라면. 아니, 나 때문에 그러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지. 남자친구란 것은, 내가 너무 나간 것이다. 

 

 

 
"나는 니가 좋아." 

"...." 

"그런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말 못했거든." 

"... 무슨 생각이요?" 

"내가 니 남자친구고, 니가 내 여자친구라는 거." 

"...."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좋아서 말을 못 했어." 

"...." 

"그렇게 묶어버리면 니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 못 했어." 

 

 


하- 숨을 내쉬며 안심을 하는 것도 잠깐, 심장이 더 크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나만 원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고.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원하는걸. 

 

 


"우리 사귈래?" 

"...." 

"내가 니 남자친구 해도 돼?" 

"...." 

"다른 사람이 너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 여자친구라고. 그렇게 말해도 돼?" 

 

 


아니. 내가 많이 노력해야겠다. 아직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서 절대 무르고 싶지 않았다. 매번 상상만 했던 것이었는데. 실제 김태형의 입에서 꺼내어지고 나니 그 감정이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날 꼭 안은 채로 내게만 들릴 듯 속삭이며 말해주는 김태형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그럴 수 있으면, 허락해준다면 백 번이고 그렇게 하겠다고. 내가 노력해야지. 김태형을 위해서. 내가 노력할 거야. 다른 보통 여자들처럼 될 수 있게. 노력할 거야. 

 

 


"네." 

 


 

 

 

 

 

 

 

 

 

 

 

 



"야 혜주야." 

"왜." 

"나 그 사람이랑 사귄다고 하면," 

"이런 미친!" 

 

 


예상을 못 했던 반응이 아닌지라 별 감흥은 없었지만 그러면 섭섭하다는 듯 혜주는 더욱이 팔팔 날뛰어주었다. 미쳤냐며 내게 다가와 등짝을 몇 번 가볍게 쳐주었다. 말이 가볍게지, 꽤나 아팠다고. 혜주는 제 손이 얼마나 매운지 모른다. 자기가 안 맞아봤으니까. 맞아본 나만 징징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지. 

 

 


"왜. 뭐가 미쳤어. 결국 해피엔딩인데." 

"이제 시작인데 해피엔딩 같은 소리 하네." 

 

 


아예 시작을 하지 않으면 끝 또한 없지 않을까,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때가 얼마나 지났다고. 나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결국 시작점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 혜주 말처럼 이건 엔딩이 아닌 스타트일 지도 모른다. 이미 오랫동안 달려온 것 같지만, 이게 시작일 지도 모른다고. 게다가 난 처음으로 남자와 연애라는 것을 해본다며 멋도 모르고 당당히 시작점에 올라섰는데 어쩌면 혜주가 걱정하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것도 평범한 남자가 아닌, 벌써 내게 조금의 집착 어린 행동을 보이는 남자와. 아니 조금이 뭐야, 내 속을 뒤집어 놓을만한 행동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던 사람인데. 

하지만 난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물론 난 남자를 무서워하는 남성 공포증 환자고, 그는 어쩌면 애정결핍증 환자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꽤 많이 나아졌고, 김태형 또한 다신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 도장까지 꾹 약속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그 누구 때문도 아닌 서로에 의해서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 혜주도 그런 말을 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좋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우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게 아닐지라도 지금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일 거라고. 어쩌면 오직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기에 아예라고 하지 못 하고 '별로'라는 말을 붙였지만. 난 분명 김태형 덕분에 많이 나아진 것이 맞다. 그로 인해 날 바꿔보자, 의지가 생긴 것도 맞았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하지만 김태형을 생각하면. 그는 나로 인해 상처만 받고 죄다 터져 수술 단계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었다. 결과는 반반. 좋은 결과일지 나쁜 결과일지는 의사조차 모른다. 그저 환자나 의사나 무던히 노력을 할 뿐. 난 물론 성공적이길 바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이제 또 하나의 내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참 웃기지. 한 남자에 대해 이렇게 깊어지게 되었다니. 어찌 되었든 난 괜찮다고 해도 김태형, 그 남자가 걱정이었다. 내게 약속을 해주었지만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 

 

 


"너 그럼 박지민은?" 

 

 


왜 안 나오나 했지. 어떻게 내겐 한마디도 해주지 않을 수 있냐고, 미리 말해줬으면 서로 덜 힘들지 않았겠냐고. 혜주와 박지민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처음 나와 함께 밥을 먹다 박지민을 보았을 때는 전혀 알아보지 못 했다고 말했다. 살짝 보인 사원증으로 이름 석자를 머릿속에 집어넣긴 했지만 별생각하지 않았다고. 그러다 얼마 뒤 중학교 동창을 만났고, 학창 시절을 탈탈 털어놓으며 수다의 장을 펼치고 있을 쯤 그 이름이 얼마나 입이 벌어질 단어였는지 깨달았다고. 내가 전학을 간 뒤, 적지 않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혜주는 그걸 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때 날 구해주었던 사람이 박지민이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이름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타고 그의 연락처를 손에 넣어 연락을 했다고. 박지민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게 남성 공포증이란 증상이 생겼다는 것은 혜주를 만나고서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때 박지민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고. 당장 그 새끼들 찾아내서 뿌리까지 털어버린다는 것을 겨우 말렸다고 했다. 

 

 

 
"내가 끼어들 게 아니긴 하다만. 너도 알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는데 모를 리가 있나. 넌 뻔히 알면서도..., 하긴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긴 하지." 

 

 


혜주 역시 알고 있었다. 늘 내게 자신의 감정을 때려댔던 아이인데, 혜주에게 당연히 말해주었겠지. 아니, 굳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보였을 것이다. 그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몇 년을 너만 바라보고 산 앤데. 곁에 없을 때도 너만 그리던 앤데. 참,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됐냐." 

 

 


앞서 걱정했던 대로 그럴 거라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김태형의 질투는 꽤나 심했다. 사무실에서 각자 자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냐부터 시작해서 집이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까지.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되냐고 징징거렸지만 어느 곳으로 옮겨도 남자는 있을 거라며 아예 그만두고 나랑 놀아주면 안 되겠냐고 농담 섞인 투정도 몇 번 부렸다. 그 날을 마지막으로 박지민은 더 이상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았고 대신 김태형이 마중을 나왔다. 회사 앞까지 데리러 온다는 것을 어찌나 말렸는지. 괜히 그랬다가 또 한번 박지민의 멱살을 잡진 않을까, 겨우 말렸던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박지민을 더욱 챙겼던 것 같다. 분명 내가 좋아하고 항상 고마운 김태형이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소중한 존재를 끊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미안했던 것도 있었고. 일부러 자제하는 것도 잘 보였고. 그래서 내가 더욱 다가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은 있었다. 딱 거기까지 그 선을 넘지 않고. 그게 박지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선을 넘어 더욱 다가가려 할수록 그는 반대로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니까. 

내겐 한 번도 이성친구라는 것이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지금의 박지민과 내 관계였겠지. 갑자기 밝히는 것도 웃기고 해서 아직까지 사무실에 나와 박지민이 중학생 때부터 안면이 트여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전엔 조금씩 회사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면 요즘은 그런 허물은 없어진 것 같았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게. 그러길 바랐다. 

 

 


"뭐, 니가 알아서 하겠다만. 제발 일찍 일찍 좀 알려줄래?" 

"니가 또 이럴까 봐 그랬다, 왜." 

"하여간 이건 날 제 담당의로 보기는 하는 건지. 너 지금 완전 나아진 거야. 그거 다 내가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건데, 은혜를 모르네." 

 

 


하며 끌끌 혀를 찼다. 어디서 니 덕을 얹으려고 들어. 자기가 나한테 해준 게 뭐라고. 하여간 돌팔이. 실은 혜주를 의사로 생각했던 적은 별로 없다. 그저 가장 편하고 의지하고 싶은 친구.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이해해줄 것만 같은 친구. 방금처럼. 내가 이미 저질러버린 일에 대해 너도 생각이 있겠지, 말은 저렇게 해도 항상 날 이해해주었다. 그리고 저런 말들 속에 꽁꽁 숨어있는 말들은 다 내 걱정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안 되겠어. 너 그 사람 좀 나한테 데려와봐! 내가 봐야지." 

"니가 그러는데 무서워서 데려올 수 있겠냐." 

 

 


언젠가, 김태형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을까.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그 그림이 썩 나빠 보이진 않았다. 분명 혜주는 그 앞에선 방긋방긋 웃으며 대하겠지만 후에 뒤에서 툴툴거리겠지. 제 마음에 들었음에도 혜주라면 꼭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널 알지. 김태형은 혜주에 대해 내게 소중한 사람이면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또한 아껴주겠지. 

 

 


"무엇보다," 

"또 뭐." 

"이제 행복해라, 좀."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 인스티즈

 

 

 

 

"요즘 박지민씨랑 자주 붙어 다니던데."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넘치게 떨어진 업무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팀장이 부르기에 아직도 멀었냐며 또 한소리를 늘어놓을까 잔뜩 준비를 하고 앞에 섰더니 딴 소리를 늘어놓았다. 갑자기 팀장의 입에서 박지민이란 이름이 왜 나오냐고. 게다가 날 앞에 두고. 물론 요즘 들어 박지민과 자주 붙어 다니는 것은 맞았다. 이젠 다른 회사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았기에. 하지만 꼭 박지민과 둘만 다닌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여직원들과 함께였다. 원하진 않았지만 그의 곁엔 항상 여자들이 돌고 돌았으므로. 

 

 


"둘이 사귀는 겁니까?" 

"네? 아니요. 그런 거 아닌데...." 

"그럼 뭡니까. 부쩍 말도 많이 하는 것 같고." 

"...." 

"또 차별하지." 

 

 


내가 무슨 차별을 했다고. 그리고 또는 뭐야 또는. 마치 내가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투의 또는 뭐냔 말이다. 방금 차별이란 말을 꺼내면서는 내내 서류들에 꽂았던 시선까지 내게 슬쩍 주었다. 대체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요 며칠 내가 업무를 잘못 보았거나 실수를 한 것이 있으면 날 괴롭히고 싶어 억지로 무슨 핑계라도 만들어내는 것인가 더럽고 치사해도 상사의 발악이니 참아주겠지만 저건 무슨 투정인지를 모르겠다. 

 

 


"지민, 아니 박지민씨랑 저는," 

"와. 이제 호칭까지." 

 

 


괜한 오해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리 둘 사이를 밝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그렇게 입이 가벼운 타입도 아니었고 말한다고 한들 사무실 전체에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입을 어렵게 열었지만 결국 팀장에 의해 다시 닫히고 말았다. 그게 중요한 건가. 차별이 어쩌니 하더니 그렇다고 내가 팀장에게 석진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놔두지도 않을 거면서. 하여간 팀장은 성격이 조금 웃기다. 혹 제 사무실 내에 사내연애를 허락하지 않는 편이었다면 중점을 그곳에 두면 안 되지. 

 

 


"됐습니다. 그만 가보세요." 

"...." 

"안 갑니까." 

"혹시 그거 물어보려고 부르셨는지...." 

"아닙니다. 아까 보니까 일도 열심히 안 하고 있는 거 같던데. 열심히 좀 합시다." 

"... 네." 

 

 


뭐 중요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니고, 그러지 않아 준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또 다른 업무를 준 것도 아닌데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에 기가 찼다. 설마 저게 끝은 아니겠지 하며 물어본 내게 돌아온 대답이란. 맹세코 어디 다른 곳으로 눈 한번 안 돌리고 일에만 열중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팀장이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날 불러 잔뜩 괴롭힐 건 뭐야. 

 

 


"저, 팀장님." 

"아직 할 말 남았습니까." 

"그러니까, 박지민씨 말고... 저, 남자친구 있습니다." 

 

 


혹시 내게 제대로 된 대답을 못 들었다고 후에 박지민을 불러내 나와 같은 질문들을 하지 않길 바랐다. 잔뜩 당황을 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릴 박지민이 안 봐도 뻔했기에. 그리고 그때 그가 느낄 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역시 꽤나 어렵게 뱉어낸 내 말에 팀장은 못 볼 거라도 본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쑤셔댔다.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저 남자친구 따로 있습니다." 

 

 


다시 한번 똑바로 강조하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마른 세수를 몇 번 했다. 들고 있던 서류까지 내려놓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라 저런 행동을 보이는 건지. 그리고 그제야 팀장 또한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걸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뭐라고 생각할까. 남성 공포증이 있는 내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잘 되었다고, 다행이라고 해주길 바랐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물론 팀장은 내가 원하는 반응 보여주지 않을 테지만. 그래서 조금 예외로 두기도 했다. 

 

 


"혹시 지난번 그 친구입니까?" 

"네? 아... 네." 

 

 


그리고 팀장은 김태형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도 그랬었지. 혹시 남자친구냐고. 그땐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어느새 현실이 되어 김태형은 정말 내 남자친구가 되어있었다. 정말 신기하지. 

 

 


"가보세요." 

"... 네." 

 

 


팀장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건, 내가 원했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건. 박지민과 내 사이에 하고 있었던 잘못된 오해는 풀어놨으니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박지민을 따로 불러내 방금과 같은 질문들은 늘어놓지는 않겠지. 그로 인해 박지민의 기분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5 完 | 인스티즈

 

 

 

 

"오늘 지민이한테 말했어요." 

"뭘?" 

"김태형씨가 누군지. 나랑 무슨 사이인지." 

 

 


하지만 박지민은 곧 팀장이 왜 불렀냐며 물어왔고 우물쭈물 다른 주제로 넘겨버리려 했지만 궁금했던 그는 계속해서 물어왔다. 혹시 또 괴롭히냐고. 업무를 폭탄으로 떨어뜨려줬냐고. 거짓말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왜 입이 멋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는지. 결국 박지민에게도 털어놓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그저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줄로만 알았지, 김태형과 내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팀장에게 말을 꺼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끌어올려 입을 뗐다. 그 사람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아프긴 하다고. 애써 그는 웃어 보였다. 너가 행복하면 되는 거지, 왜 그렇게 죽을 상이냐고. 난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니가 아픈 게 아니라 행복해서 좋다고. 

 

 


"근데 아미야." 

"네?" 

"걔는 왜 지민이고 나는 김태형씨야?" 

 

 


딴소리였다. 팀장도 그렇고 김태형도 그렇고. 참 속을 알 수 없고 다음 반응에 대해 예측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늘 나를 놀라게 했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논점은 항상 어딘가 이상한 곳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온다는 것.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응. 난 그게 중요해." 

"나 지금 지민이한테 많이 미안한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난 아까부터 얼마나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는데. 그 말을 꺼내기 전에도, 꺼낸 후에도 계속해서 미안했는데. 어쩌면 이 말을 김태형에게 꺼낸 이유에는 괜찮아, 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였는지는 모르겠다. 죄책감이 들었으니까. 너무 많은 잘못을 등지고 있는 게 힘들었으니까. 누군가 괜찮다고 니 잘못 아니라고 말해주면 조금이라도 덜 할까 싶었다. 그래서 꺼낸 말이었는데. 

 

 


"너가 왜 미안한데." 

"그야...." 

"걔가 너 좋아한다고, 니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귀고, 그래야 해?" 

"그런 건 아닌데. 아니," 

"미안해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 걔도 니가 미안해하는 거 싫을걸." 

"...." 

"니 잘못 아니잖아. 니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거, 나를 좋아하는 거. 그건 니 잘못이 아니잖아." 

"...." 

"괜찮아. 미안해 하지 마, 응?" 

"네." 

 

 


그래도 겨우 끌어다 놓으니 따라와 주기는 하네. 전에도 생각했던 것이긴 했지만. 넘치게 착한 박지민은 김태형 말처럼 내가 미안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했다. 직접 내게 그러지 말라고도 해주었고. 

조금 늦게야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었기에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아까부터 체하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꽉 막혀있더니. 이제야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 왜 나는 김태형씨냐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제 논점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도 해결해줘. 내게 중요한 건 이거야, 하면서. 뭐, 원하는 말도 들었고. 조금은 참여를 해주자 싶었다. 

 

 


"김태형씨니까." 

"나도 태형이라고 불러줘." 

"어떻게 그렇게 불러요. 나보다 나이도 세 살이나 많으면서." 

"치. 내가 삼 년만 더 늦게 태어날걸." 

 

 


다 큰 어른이. 내가 엄마 뱃속에서 막 빛을 보며 태어날 때 그는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고. 그런 그에게 태형이라니. 잠꼬대라도 그렇게 못 하겠다. 

 

 


"그럼 오빠라고 불러주던가. 김태형씨가 뭐야. 정 없어." 

 

 


툭하고 건드리면 탁- 터질 것만 같은 통통한 입술을 불뚝 내민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 지금 몹시 서운해, 라는 뜻은 그와 함께 찌그러져있는 미간 주름 사이에 가득 담겨있었다. 그놈에 오빠라는 소리가 왜 그렇게 듣고 싶어. 

 

 


"김태형씨." 

"...." 

"김태형씨-." 

"뭐, 말 걸지 마." 

 

 


저렇게 투정을 부릴 때면 마치 7살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면 몇 번이고 귀엽다고 입 밖으로 불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나가지 않은 채 속에서만 웅웅 거렸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호칭에 내게 등만 꼿꼿이 보여주었다. 그 뒤로 빼꼼 보이는 그의 입술은 그 어느 때보다 귀엽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행동 역시 나를 좋아해서, 내게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이제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태형 오빠." 

 

 


나는 늘 혼자였다. 그쪽에서 밀어내든, 내가 밀어내든. 단단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웅크리고 제 자신을 감추고 살았다.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해만 갔고 어느새 내게선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주위는 제각각 화려한 색들이 칠해져 있었지만 내가 속해있는 그 그림은 무색. 회색. 흑백. 따뜻한 온기 없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외로움마저 익숙해져 뜯어지고 있는 상처가 무뎌딜 때쯤,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밀어내고 싶어도 밀리지 않더니, 당기려고 하면 멀어지는 그런 남자였다. 온통 까맣게 칠해져 보이지 않는 길을 함께 걷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두렵고 무서워서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손을 내밀어도 더 이상 찢어지기 싫어 도망치기만 하는 내게 지쳤는지 다가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내게 멀어져 갔다. 뒤늦게 그걸 잡으려 해도 이미 멀어진 그 사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늦어버려서, 이미 놓쳐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역시 안 되는구나. 

하지만 그는 결국 내 손을 잡아주었다. 차갑게 식어가던 내 손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어둠만 가득하던 내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사랑해." 

 

 


내게도 다른 사람처럼. 

봄날이라는 것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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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시작하면 암호닉 다시 받겠습니다!

 

통통 / 눈부신 / 태태 / 인사이드아웃 / 령아 / 초딩입맛 / 슙디 / 태형오빠 / 군주님 / 민트 / 태태이즈뭔들 / 이현☆ / 똥맛카레 / #RealV / 소녀 / 침을태태 / 김석진 / 거창왕자태태 / 개학전날밤 / 코코팜 / 슙숨 / 공감 / 태태야 / 슈탕 / 두부 / 딸기빙수 / 요정 / 카라멜 / 태형이안에♡ / 미니언 / 피카피카 / 침침 / 알라 / SAY / 이부 / 깨알 / 다람이덕 / 민피디 / 김치만두 / 태정태세 / 갈매빛 / 쌀떡 / 현지짱짱 / D.시걸O. / 방치킨 / 천재짱짱맨뿡뿡 / 드뷔시 / 핫초코 / 아기 / 여하 / 워더아이 /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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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시즌2는 이 뒷내용인가요???
7년 전
독자2
와우 시즌1이 끝났네요!!! 시즌2 시작하면 바로 암호닉 신청할께요 ㅎㅎㅎㅎ
7년 전
독자3
헐 으아우어어으오으ㅓㅇ 시즌 2 시작하면 얼른 암호닉 신청해야겠어요!!!! 너무 잘 읽었어요!!!
7년 전
독자4
작가님 너무 잘읽었어요ㅜㅜㅠ 꾸준히 연재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8ㅅ8 그럼 시즌2로 뵈요 작가님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7년 전
독자5
와 드디어 재작업이 다끝낫네여 진쩌 다시읽어도 너무 재밋어요 작가님 포인트 없이 재업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해요 저 인사이드아웃이에요 ㅋㅋㅋㅋ 나는 당최 언제쯤 핑크빛이 생기려나 ㅋㅋㅋㅋㅋㅋㅋ 죽을때까지 검ㅋ 정 ㅋ 뷫? ㄸㄹㄹ 잘있어라 세상아 ㄸㄹㄹ ㅋㅋㅋㅋㅋㅋㅋㅋ
7년 전
비회원86.99
대박...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너무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서 이틀만에 정주행했네요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6
드디어 시즌 1이 끝났네요
초판부터 함께 해온 것은 아니지만
1화부터 주행하며 읽어오고 이렇게 시즌 1이 끝난 화를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사랑받고 싶어 하는 태형이와 남성 공포증 여주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드디어 이어졌을 땐 진심으로 기쁜 마음에 육성으로 소리 내어 감탄한거같아요ㅠㅠ

석진이가 여주를 좋아하는 거 같아 보이는 건 제 착각 일까요ㅎㅎ 어떻게 보면 여주도 참 많이 사랑받는 거 같아요 하필 대상이 여주가 무서워하는 남자라 그렇지.. 여주 미모도 한 미모 하나 봅니다. 시즌 2에서 봬요 작가님!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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