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일본에 왜 왔어? "
" 어? "
" 그렇잖아. 한국에는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고 여러모로 더 편할텐데. "
" 아, 그냥. 예뻐서. 그래서 그땐 그냥 일본이 좋았어. "
그리고 김태형도. 뒷말은 하지 못 했다. 말하지 못 하고 삼켜버린 뒷말은 알지 못 하고 전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내 일본행의 대부분의 이유는 김태형이었다. 김태형 때문에 일본에 처음 오게 되었고, 같이 지낸 일본이 좋았고 그리고 태형이가 여기있었다. 곰곰히 생각할수록 김태형이 차지한 비중이 커져갔기에 나는 결국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너는? 너는 왜 왔어? "
" 나? 벌 받으러. "
" 어? "
" 농담이야. 난 운동 더 열심히하려고. "
" ... "
" 할 줄 아는게, 잘 하는게 유도밖에 없어. 내가 공부를 못 해서. "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정국의 마지막 말이 특히 내 공감을 얻었다. ' 나도 공부 못 해. '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정국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 그래보여. ' 뭐야, 그 반응은. 머리 나쁜거,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묘하게 자존심이 상해서 전정국에게 눈을 흘겼다.
" 장난이야. "
" 거짓말. "
" 아니야, 너 그림 잘 그리게 생겼어. "
" 진짜? 처음 들어봐. 사람들은 나 노래 잘하게 생겼다고 하던데... "
" 내가 그래도 노래는 좀 하는데 그건 아니고. "
" 이씨- "
" 보고싶어. 네가 그리는 그림, 예쁠 것 같아. "
전정국이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 내 마음을 쿡 찔렀다. 여린 꽃봉오리가 툭 건드려져서 터져 피어나는 것처럼, 얼굴에 열꽃이 피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금새 빨개져있는 내 얼굴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나는 혹여나 전정국이 그것을 보면 이상하게 느낄까 걱정이 되어 서둘러 말을 돌렸다.
" ㄴ, 너 이름도 예쁜 것 같아! "
" 어? "
" 카오루. 좋은 향기 맞지? "
" 응. 할머니가 지어주셨어. 예전에 잠깐 일본에 사셨어서 일본어를 잘 하시거든. "
" 어감도 너무 예쁘고 뜻도 너무 예뻐. "
" ...너 이름은 뭐야? "
이름에 대해 얘기를 꺼냈으니 나한테도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할 법도 한데 나는 또 그러지 못 했다. 그래서 전정국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냥 이름만 대답하면 되는데, 그게 언제나처럼 쉽지가 않아서. 나에게 그 이름이 정해졌던 그 순간부터 그랬다. 오래 전 정해졌지만 그 후에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았던 그 이름을 나는 오랜만에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꺼냈다.
" 이치카. [ いちか. ] "
' 이치카... ' 전정국이 나를 따라 작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그것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서 그런지 더 기분이 이상했다. 내 이름이지만 나도 뜻을 모르는 이름. 어느 날 갑자기 김태형이 짠- 하고 내게 지어준 이름. 맑게 웃으며 김태형이 내게 불러주었던 이름. 그리고 지금은 전정국이 나를 보며 불러주는 이름.
" 이치카. [ いちか. ] "
" ... "
" 예쁘다. "
연애학개론 03 : 하트의 의미
전정국과는 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헤어졌다. 나랑 같은 방향 쪽으로 오길래 이 근처에 사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집이 꽤 멀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했다. 괜히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전정국은 그냥 웃어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거의 집 앞에 도착했을 무렵,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김태형이 보였다. 푹 숙인 고개 위로 보이는 뒷통수가 제법 시무룩해보였다. ' 태형아! ' 하고 크게 부르니 축 늘어져있던 김태형이 나를 발견했고 이내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로 달려왔다. 한순간에 내 앞에 달려온 김태형에게 나를 그를 따라 웃으며 물었다.
" 잘 다녀왔어? "
" 응. 근데 너 왜 이제 와? 학교 끝난지 한참인데? "
" 어? "
김태형의 물음에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그게 있잖아, 태형아. 그 짧은 찰나에 수차례 고민했다. 말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까? 더 나중에 알면 서운해하겠지? 앞으로 모를수도 있는건데 괜히 말했다가 삐지는건 아니겠지? 김태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고 나는 한참을 우물쭈물대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사실은 방금 전ㅈ, "
" 아! "
" 어? "
" 나 아까 오다가 그 때 그 강아지 봤어! "
" ...아. "
" 너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너 엄청 귀여워했잖아. "
김태형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서 자전거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끌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서서히 멀어지는 뒷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서둘러 김태형에게 따라붙었다. ' 나도 전에 봤는데. ' 하고 중얼거리니 김태형은 ' ほんとに. [ 정말? ] ' 하며 놀랐다.
" 근데 오늘도 혼자 있더라. 아무래도 주인이 없는거 같아. "
" 응. 그래 보였어. "
" 다음에 또 보면, 우리가 데려다 키우자. 엄마가 반대하고 화낼까봐 걱정되지만 내가 싸워서 이길게. "
김태형이 히- 하고 웃었다. 네모처럼 벌어진 입에, 타원을 그리며 휘어진 두 눈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자. 다음에, 다음에는 꼭. 네가 싫어하고 화를 낼까봐 겁이 나고 걱정되지만 다음에는 꼭 하자.
" 아, 너 유도부에 아는 애 있어? "
저녁을 배불리 먹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려는 김태형을 끌어다앉혀 같이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투덜거리다가도 이내 얌전히 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뜨끔할 만한 내용이라서 나는 ' 으어? 아,아니! 왜? ' 하고 바보같이 말까지 더듬었다. 다행히 내 이상함을 눈치채지는 못 했는지 김태형은 아까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아까 검도부 친구 만났는데 오늘 유도부에서 우리 이야기가 나왔나봐. 나 유도부에 아는 애 없는데. "
" ...어? 뭐, 뭐라고? "
" 나도 모르지. 누가 우리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랬다는데? 특히나 너에 대해서. "
" ... "
" 너도 모르는 일이야? 그럼 내일 한번 가봐야겠다. "
" 아니야! "
나는 들고있던 빨랫감까지 내던지며 김태형의 두 팔을 꽉 잡았다. 다급하고도 거친 내 손길에 김태형은 그대로 얼어붙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 뭐, 뭐가 아니야? ' 김태형이 물었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전정국일 것이다. 아니, 분명 전정국일 거라고 확신한다. 유도부라고 그랬으니까. 김태형이 찾아갔다가 거기서 전정국을 보게 되면 어찌되었든 상황이 복잡해질 것은 불보듯 뻔했다.
" ...나, 나 아는 애 있어! "
" 누구? "
" 근데 안 친해! 그냥 이리저리 친구 통해서 얼굴만 아는 애야. 아까 복도에서 스쳤는데 그래서 말이 나온거 같아. "
" 뭐야. 그게 더 기분 나빠. 안 친한데 왜 없는 사람 얘기를 해. "
" 그... 그러게! 근데 괜찮아. 그러니까 가지마. "
" 그래도, "
나는 꽉 잡은 김태형의 두 팔을 흔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최대한 있는 힘을 다해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태형이가 거절할 수 없을 만한. 효과가 있을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다행히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던 김태형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쨋든 다행이었기에 나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숨을 내쉰 순간, 후회했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다. 과연 태형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숨겨야하는 일인가, 싶었다. 미루면 미룰수록 더 큰 배신감이 들 수도 있다. 어쩌면 차라리 내일 알게 된다면 배신감이 조금 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나는 그래서 또 후회해야만 했다.
" 내일 날씨 완전 좋대. "
" 그래? 그럼 우리 내일 놀러갈까? 지난번에 못 간거. "
" 내일 안돼. "
" 왜? 또 거기 가? "
" 바보야. 지난주에 얘기했는데, 나 이번에 당번이야. 내일 미술용품 사러가야돼. "
" 아, 맞다. 그러면... 내일 모레 갈까? "
더는 미루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놀러가서 태형이의 기분을 좋게 해준 다음에 때를 봐서 슬쩍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에 말을 한건데 김태형이 갑자기 가자미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당연히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했던 태형이의 반응에 내가 당황했다. ' ... 왜. ' 바보같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니 김태형이 그 말에 응했다.
" 그동안 생전 이런 일이 없더니, 이번에는 왜 먼저 놀러가재? "
" 날씨가 좋, 좋잖아! "
" 날씨는 작년에도 좋았고 지난달에도 좋았고 저번주에도 좋았는데? "
" ...싫음 말아! 그러면 안 갈거지? "
왠지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이유를 들킨 것만 같아 괜히 찔려서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김태형이 덥썩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당겨서 내 얼굴 바로 앞에 위치하여 붙어 앉았다. 김태형이 또 한번 훅 들어왔다. 순식간에 나와 김태형 사이가 가까워졌다. 태형이의 큰 눈 안에 내가 다 담길 만큼.
" 누가 싫대. "
" ... "
" 좋아. 완전 좋아. "
" ... "
" 꼭 가자, 데이트. "
김태형이 또 예쁘게 네모 웃음을 지었다. 내가 생각하는 태형이의 가장 예쁜 웃음. 너무 예뻐서 나에게만 웃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하는 웃음. 보고있으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워지는 웃음. 김태형은 그렇게 웃고는 멀어져 다시 빨래를 개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도 나는 한동안 자꾸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김태형이라는 바람 때문에 그 자리에 얼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나기가 내렸다. 여름의 끝자락에 시원스레 쏟아지던 비가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꼭 자기가 시내에 나갈 때면 비가 온다고 투덜대던 김태형은 비가 그치자마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올 때 떡볶이 사올게. 우리 오랜만에 그거 먹자. ' 작은 마을인 우리 동네에는 분식집이 없었기에 김태형과 나는 시내에 나갈 때면 같이 떡볶이를 사먹곤 했었다. 떡볶이를 사오겠다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져 나는 혼자 가는 하교길도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잠겨있는 자전거 자물쇠를 풀었다. 요즘 같이 더운 날싸에 걸어다니기는 무리라서 아침에 먼저 가야한다는 핑계를 대고 김태형 몰래 자전거를 타고왔었다. 지금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걸 태형이가 알면 아마 놀라서 펄쩍 뛰겠지만.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김태형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요 며칠 타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이 나서 한참을 씽씽 달리다가 작은 삐끗함과 함께 단번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 어어- "
어떻게 손쓸 시간도, 방법도 없이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까 내린 비 때문에 길이 살짝 미끄러웠고 그래서 미끄러짐 때문에 불안하던 체인이 꼬여버린 것이었다. 살짝 엉켰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체인이 이번에는 제대로 엉망으로 꼬여서 제어할 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길 한복판에서 넘어진 것도 모양새가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닥에 넘어지면서 발목을 삐끗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살짝 아릿했는데 움직이려고 하니까 욱씬거리는 그대로 통증이 전해졌다. 어쩌지, 아직 집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는데. 잘게 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아무래도 집까지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누구보다 익숙한 김태형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대로 멈칫했다. 아, 지금 태형이 없지. 김태형이 지금 멀리 있다는 것을 금새 깨달을 것이면서도 나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김태형을 떠올렸다. 그래도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인지라, 나는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뭐, 어떻게든 가봐야지. 이를 꽉 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보려고 하는데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 ...어? "
내 눈에 가장 처음으로 보였던건 하얀 운동화였다.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얀 전정국의 운동화. 곧이어 고개를 들자 전정국의 얼굴이 보였다. ' 넘어졌어? 괜찮아? ' 나를 일으켜세운 전정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얼굴이 세상의 모든 근심이 담긴 것 마냥 심각해보여서 나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아, 응. 자전거 체인,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꼬여서. "
" 삔거야?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
" 응! 당연ㅎ, 아아..."
전정국의 물음에 호기롭게 발을 들었다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을뻔 했다. 다행히 전정국이 잡고있어서 그러지는 않았지만. 전정국에게 괜찮은척 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다. 내가 앓는 소리를 내자 내 발목을 한번, 나를 한번 쳐다보던 전정국이 바로 내 팔을 놓고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 눈 앞에 나타난 널찍한 등판을 보고,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전정국이 결국 그 설마를 현실로 만들었다.
" 업혀. "
" 어? "
" 너 지금 그 발로 못 걸어. 일단은 집에 가던지 병원에 가던 해야할거 아니야. 그치? "
" ...응. "
" 한 발자국도 못 떼고 그렇게 아파서 끙끙대는데 어쩌려고 그래. "
" ... "
" 괜찮으니까 업혀, 빨리. "
전정국은 자기 어깨를 툭툭 두드렸지만 나는 그 등에 쉽게 업힐 수가 없었다.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전정국의 동그란 뒷통수에서 어쩐지 자꾸만 김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여기서 업히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서있었는데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본 전정국이 결국 내 팔을 끌어당겼다. 나는 이상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전정국 쪽으로 끌려갔고 전정국이 단번에 나를 업었다.
" 이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어. "
" ... "
" 친구가 좀 업어줄 수도 있지. "
" ... "
" 되게 서럽네. "
전정국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만 있는데도 전정국의 얼굴에 ' 나 삐졌어요. ' 라고 써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웃음이 나와 웃었더니 전정국이 왜 웃냐며 또 투덜거렸다. 사실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아니 어색하다기보단 기분이 묘했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업혀있다는 것도 그런데 게다가 그 상대가 전정국이니 더 그랬다. 그래도 신기하게 금새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카오루. 그의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좋은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내게 전해졌기 때문에.
꽤나 오랜시간을 전정국에게 업혀서 걸어가다가 문득 전정국의 목에 시선이 닿았는데 그 주위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이렇게 빨갛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대었더니 전정국이 화들짝 놀랬다. ' 아, 미안. 너 여기 목이 빨개서. '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전정국은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내게 말했다.
" 더워서 그래. "
" 아... 나때문에 더 그렇겠다. 많이 힘들지? "
" 아니야.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고보니 땀도 좀 나는거 같은데... "
" ...너 지금 미안하지. "
" 어? "
" 너 나한테 되게 미안하지, 그치? "
전정국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니, 나때문에 더워서 이렇게 빨개진 목을 보고 있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을 들은 전정국은 슬쩍 웃더니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정국의 그 반응에 민망해지는건 아무래도 내 몫인 듯 했다.
" 내일 모레 나 시합이야. "
" 어? "
" 보러와. 아니, 꼭 보러와줘. "
" ... "
" 내가 너한테 원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싶어서, 지만. 그래도 핑계는 오늘 일이 고마워서로 하자. "
전정국이 또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왔다. 속수무책으로 그의 말에 폭격을 맞은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랬더니 전정국이 다시 고개를 슬쩍 돌렸다. ' 올거지? ' 전정국과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어? ' 재차 묻는 전정국의 말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정국은 아까보다 크게 웃으며 그제야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 와서 응원해줄 사람이 없어. "
" ... "
" 네가 와주면 진짜 좋을 것 같아. "
그 마지막 말에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에 자물쇠를 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어도 나는 갔을 테지만. 그 와중에도 시합이 내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태형과 전정국,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선택 받지 못 한 쪽이 어느 쪽이라도 분명 서운해할 것이 뻔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다행이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김태형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얘는 어디쯤 왔으려나.
그 순간, 익숙한 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전정국이 내게 물었다. ' 전화? ' 나는 맞다는 대답과 함께 전정국이 목에 걸고있는 작은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가방 끈이 길어서 나는 전정국의 앞 쪽으로 손을 길게 뻗어야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찾아서 딱 꺼내들었을 때, 떡하니 발신자 이름에 하트 표시가 자리잡은 핸드폰 화면이 내 눈 앞에 보였다. 덩달아 전정국 앞에도.
" 하트...가 누구야? "
" 어? 아, 태형이! "
" ...걔가 왜 하트인데? "
" 어? 그거? 어... "
" 일단 전화부터 받아. 조용히 해줄게. "
김태형이 하트로 저장되어있는 것은 정말 별 뜻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뜻이라고 할 것도 없이 김태형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 제멋대로 저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순간에 나오지가 않았고 아무래도 그래서 전정국의 오해 아닌 오해를 산 것 같았다. 가라앉은 전정국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일단 태형이의 전화를 받았다.
" 응, 태형아. "
' 어디야? '
" 나 지금 집에 가는 중. 너는? 잘 사왔어? "
' 당연하지.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
" 근데 너 지난번에 빠뜨려서 혼났잖아. 뭐였지? "
' 각도기. 나 참, 나는 왜 그림 그리는데 각도기가 필요한지 모르겠어. 그림은 느낌, 느낌이지. '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 내뱉는 김태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런 내 웃음 때문이었는지 계속해서 움직이던 전정국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멈췄다. 뚝- 하고 끊겨버린 걸음에 나는 깜짝 놀라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김태형에게 말을 이어갔는데 그 때까지도 전정국은 움직이지를 않았다.
" 있잖아.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전화할게. 지금 전화하기 좀 그래서. "
' 왜? 너 오는 중이라며. 어디쯤인데? '
" 나? 나 거의 다 왔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
' 그래? 그럼 곧 만나겠다. 나 지금 너 쪽으로 가고 있거든. '
" 뭐? "
그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벌떡 들었다. 오고있다고? 이 쪽으로? 지금 나랑 전정국이 있는 쪽으로? 생각만해도 아찔해지는 상황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 응. 왜? ' 핸드폰 너머로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전정국의 등 뒤로 숨었다. 아니,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 여보세요? ' 김태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어떻게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전히 그대로 서서 앞만 바라보고 있는 전정국을 툭툭 치고 앞을 가리켰다. 일단은 빨리 가자는 내 나름대로의 간절한 신호였다.
왼손으로 들고있던 핸드폰 너머로 더이상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전정국의 어깨 너머로 뻗은 내 오른손에, 앞을 향해 쭉 뻗어진 내 손가락이 위치한 곳에 김태형이 서있었다.
- 오늘은 사담 대신에 댓글에서 만나요. 항상 감사합니다❤
암호닉 |
숫자 0207 / 0331 / 0831 / 10041230 / 1013 / 1102똑 / 1다다 / 74 / 818 영어 eeggg / P해밀 / Rosebud ㄱ 간장밥 / 강여우 / 고구마 / 고룡 / 고작보내준게김밥두세줄 / 골드빈 / 골룸 / 골뱅 / 국정전 / 금붕어 / 김러브 / 김밥의미학 / 김태태 / 김형제 ㄲ 꽃구름 / 꽃꿍 / 꽃소녀 / 꽃오징어 / 꾸기단 / 꾸기밥 / 꾸기워니 / 꾸깆꾸기 / 꾸잉 / 꾸꾸 / 꾸쮸뿌쮸 / 꾹 / 꾹꾹이 / 꾹뀨 / 뀨기 / 낑깡 ㄴ ㄴㅎㅇㄱ융기 / 나의별 / 남준이보조개에빠지고싶다 / 내일 / 녹는중 / 녹차잎 / 누가보면 / 눈누랄라 / 늘봄 / 늘품 / 니뿡깝민 ㄷ 다송 / 단미 / 달리기 / 달콤윤기 / 돌고돌아서 / 돵돵 / 덤보 / 델리만쥬 / 두뷔두뷔둡 / 둘리여친 / 듀크 / 듬 / 디지몬정국 / 딘시 ㄸ 따라라라 / 딸기 / 딸기빙수 / 또또 / 뚜치와 꾸리 / 뚱이 / 뜌 ㄹ 라온하제 / 라일락 / 라코 / 레몬사탕 / 레이첼 / 로봇시계 / 루이비 / 룬 / 룰루랄라 ㅁ 마리스코티 / 막꾹수 / 말랑 / 맙소사 / 망개떠억 / 망무망무 / 매직핸드 / 멍순 / 모닝쿨피스❤ / 모찌 / 모찌섹시 / 몽마르뜨 / 몽자몽 / 몽또몽또 / 무네큥 / 무민 / 물결잉 / 물고기 / 미니꾸기 / 미니미 / 미니미니 / 미자 / 미자탈출 / 민설탕수육 / 민슈프림 / 민윤기 / 민윤기당긴윤기 / 민윤기의현모양처 / 민트 / 민트초코칩 / 민피디 / 밍뿌 ㅂ 바람에날려 / 바우와우 / 바카 0609 / 박력꾹 / 박여사 / 박지민 / 발꼬락 / 밤비 / 밥먹자 / 방소 / 방학이다아 / 배고프다 / 벌스 / 보호 / 복숭아꽃 / 복숭아츄 / 본시걸 / 불낙 / 붕붕카 / 붉은딸기 / 뷔밀병기 / 뷔켜 / 뷔타민 / 브이백 / 블라블라왕 / 비데 / 비비빅 / 빅시 ㅃ 빠나나아 / 빠밤 / 빡찌 / 빵빵 / 뽀뽀로 / 뽀야뽀야 / 뿡뿡이 / 삐삐걸즈 / 삐요 ㅅ 사과맛포도 / 사랑사랑사랑 / 산들코랄 / 새벽공기 / 새싹 / 서프라이즈파티 / 설탕 / 섬혜 / 세성년자 / 세젤예세젤귀 / 소금 / 소진 / 솔랑이 / 솜구 / 수수태태 / 쉬림프 / 슈가나라 / 슈놀 / 슙슙이 / 슙큥 / 스고이전정국 / 스위스미스 / 스타일 / 시카고걸 ㅆ 썩은촉수 ㅇ ㅇㅇㅈ / 아몬드 / 아이스 / 아이스망고 / 아이태형유 / 아꾹 / 안돼 / 야쓰야쓰 / 엘런 / 여우별 / 연이 / 예화 / 오뉴월 / 오레오 / 오예스 / 오징어먹물 / 오타 / 오허니 / 오호라 / 올옵 / 와조스키 / 외딴섬 / 요괴 / 요정국 / 우니꾸기 / 우와탄 / 우유 / 웃웃웃 / 웃음망개짐니 / 원블리 / 월드콘 / 유니 / 유은 / 유자청 / 윤기는슙슙 / 윤기의 봄 / 윤기자몽 / 융융힝 / 이다 / 이월 / 이월십일일 / 인연 / 일곱시칠분 / 입틀막 ㅈ 자몽워터 / 자몽쥬스 / 쟌디 / 전아장 / 전정꾸기꾸깃한 종이 / 정국이만나느라 샤샤샤 / 정콩국 / 정꾸 / 정꾸야 / 젤리 / 종구부인 / 주나 / 주주뉴 / 즁이 / 지금당장콜라가먹고싶다 / 지블리 / 지민윤기 / 지민이랑 / 지민이바보 / 지호 / 진리 / 진아 / 짐절부절 / 짐짐 / 징징이 ㅉ 짜몽이 / 쩌리 / 쫑냥 / 쮸뀨 ㅊ 참기름 / 천하태태평 / 청록 / 청보리청 / 청춘 / 체리마루 / 초코생크림 / 초코퍼지 / 춍춍 / 추억 / 침침보고눈이침침 / 침침이의하루 ㅋ 카와이요 / 캉탄 / 코코링 / 코코몽 / 콧구멍 / 쿠앤크 / 쿠우쿠우 / 쿠키 / 큐큐 / 크런키바 ㅌ 탄둥이 / 태태 / 태태마망 / 태태한 침침이 / 탱탱 / 테형이 / 토끼정 / 토끼풀 / 트리 ㅍ 팥빵 / 포카칩 / 폭탄초코 / 퐁퐁 / 플랑크톤 / 피카피카 / 핑슙 ㅎ 하늘 / 하늬바람 / 하루 / 핫초코 / 헤융 / 현구 / 현이 / 호비 / 호비요정 / 호비의 물구나무 / 호비호비 / 호빗 / 호어니 / 홍삼 / 화양연화 / 흥흥000 / 흥흥 / 흩어지게해 / 히동 특수문자 ❤여지❤ / ❤민군주❤ / ❤지개매❤ / ☆샛별☆ / ●달걀말이● / ❤심슨❤ / #침쁘# / #현 / ❤틸다❤ / ♡율♡ / ❤미적분❤ 드디어 암호닉 정리를 끝냈어요.(격한기쁨)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앞으로 함께 씽씽 달려요: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