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 09 (부제:연애의 정의) 누구나 아침에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기분이 좋게 눈이 떠지는 날이 있지 않은가. 저절로 찌푸려지는 인상과 짜증 섞인 하품이 아닌 나도 모르게 신나는 휘파람과 개운한 기지개가 먼저 나오는 날.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아도 좋은 꿈을 꾼 것처럼 기분이 몽실몽실한 그런 날 말이다. 그 날이 그랬다.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하지만 눈이 부셔서 짜증이 나는 그런 햇빛이 아니라 따뜻하게 나를 감싸며 내리쬐는 그런 햇빛이었다. 흩뿌려지는 햇빛에 조심스럽게 눈을 떴고 기분 좋게 하품을 했다. 환기를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내 눈 앞에 보이는 낯선 상황에 나는 잠시 몸이 굳었다. 내 방 침대가 아닌 거실 쇼파에 누워있는 나와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쇼파에 기대 곤히 자고 김태형. 그런 김태형을 때문에 나는 일으키려던 몸을 다시 천천히 김태형에게로 구부렸다. 이 낯선 상황에 나는 두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고 나서야 어찌된 상황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난 밤 빗 속에서 김태형도 나도 홀딱 젖었기에 그를 그냥 그 상태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김태형을 집에 들였고 김태형은 여자친구 집에 처음 와본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나도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김태형이 신발을 벗을 때, 나는 머리가 마르고 옷이 다 마르면 가야한다고 그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김태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었고. 거실에 마주 앉은 김태형과 나 사이에 대화와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봤을 때,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있었고 곧 있으면 버스마저도 끊길 시간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김태형에게 이제 그만 가라며 그를 재촉했고 김태형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 이게 지금 뭐하시는걸까요, 태형아? " " 아아- 집에 안 갈래.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무서워서 못 가겠어. " " 씁, 왜 이래. 아까 분명 가겠다고 했잖아. " " 몰라. 나 무서워서 못 가니까 네가 데려다주던지. 아니면 안 가. " " 그래. 내가 데려다줄게. 같이 나가자. " 그럼 같이 나가자고 외투를 챙기려 걸음을 떼려던 찰나,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은 김태형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는 살짝 당기는 바람에 나는 김태형의 앞에 털썩 주저앉게 되었가. 왜 그러냐고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내게 김태형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 여자애가 이 밤에 가긴 어딜 가. 겁도 없이. " " ...그야 네가 안 간다고 하니까. " " 간다, 가. 이렇게 찬밥신세로 나도 있을 마음 없네요. " " 아니 그게 아니라... " " 대신, " " ... " " 너 자는 것만 보고 갈게. " " 진짜 나 잠들면 가는거다? " " 알았어. 몇 번째 물어. 빨리 코 자. " " 내가 무슨 애야. " " 근데 왜 침대에서 안 자고 쇼파에서 자? " " 너 나 잘 때까지 옆에 있을거라며. 내 방 오늘 너무 더러워서 안돼. " " 에이, 괜찮은데. 내 방은 더 난장판이야. " " 아무튼! 절대 안돼. 그니까 너 절대 내 방 들어가지마. 나 잠들면 그냥 바로 가야해, 알았지? " 김태형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가에 환한 웃음을 띄웠다. 뭐가 그렇게 좋냐며 그를 타박하던 나도 결국 새어나오는 웃음을 이기지 못 했다. 김태형이 그 큰 손으로 내 손을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김태형의 온기와 손길을 느끼며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마 김태형도 내 옆에 앉아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잠이 들었나보다. 비를 맞아 몸이 피곤한 것은 김태형도 마찬가지였을테니 미쳐 누울 정신도 없이 그렇게 쇼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꽉 잡고 놓지 않은 손이 고마웠다. 김태형이 꽉 붙잡고 있는 우리의 손에 남은 손을 올려 김태형의 큰 손을 감쌌다. 두 손으로 가려야 겨우 다 가려지는 김태형의 큰 손에 감탄을 하다가 무심코 김태형의 얼굴에 시선이 닿았다. 새삼 잘생겼다고 생각을 하며 넋 놓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 김태형이 느리게 눈을 떴다. " 엄마야! " 화들짝 놀라 김태형에게 구부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김태형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혼자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어설픈 말을 꺼냈다. 되도 않는 호통까지 동원하여. " 내... 내가 어제 가랬잖아! 왜 안 가고 이러고 있어! " " ... " " 아니, 그렇게 졸렸으면 말을 하던가! 막 잠이 쏟아진다해도 왜 이렇게 쭈그리고 자고 있어. 내 방에 침대도 있는ㄷ, " 그러다가 문득 절대 내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내 말이 떠올랐다. 이럴 땐 또 말을 잘 들어요. 스스로의 멍청함에, 그리고 김태형의 순수함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다시 내 손을 꽉 잡은 김태형이 나를 끌어당겼다. 덕분에 김태형과 나는 아까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 또 나 훔쳐봤지. " " 어? " " 저번에도 그러더니. 솔직히 말해봐. 몇 번째야? " " ...세, 세번 정도? 아니, 훔쳐보긴 누가! " " 와, 아주 상습범이다. 이제 무서워서 너 앞에서 잠이나 자겠어? " " 뭐가! 뭐가 또 무서워? " " 나 자는거 보고 반해서 네가 뽀뽀라도 하면 어떡해. " " 얼씨구! " 터져나오는 헛웃음과 함께 김태형에게 가벼운 박치기를 선물했다. 박치기를 당한 김태형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 별로 쎄게 박지도 않았는데 엄살은! '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김태형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거울을 보았을 때, 내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치겠네. 얼굴만 본건데 왜 이렇게 떨려. 김태형은 애정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숨기는 것보다도 오히려 과감한 편에 속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카페였다. 카페에 안 나올때가 더 많았다는 김태형은 이제 늘 카페에 나왔고 매일 보는데도 불구하고 보고싶었다며 내게 안겨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서둘러 김태형을 밀어냈다. 일하는 중이기도 하고 워낙 김태형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는 카페에서는 김태형을 조금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 씁, 나 카페에서는 일 해야한다니까. 너 청소 다 했어? " " 응! 아까 다했는데. " " ...그래? 그러면 창고 청소는? " " 그것도 다했는데. " 당당하게 이어져나오는 김태형의 대답에 턱-하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에게 뭘 더 시켜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김태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 나랑 놀아줘. " " 안돼. 지금 일하고 있잖아. 저리가. " " 이따가 하고. 응? " " 안돼. 땡땡이 치다가 나 잘리면 어떡해. " " 안 잘려. 절대 안 잘리니까 놀자. " 김태형의 칭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나 그러시겠지. 사장님이 오구오구 예뻐라 하신다니까. 단호한 내 거절에 김태형의 얼굴은 금새 시무룩해져서 풀이 죽었다. 밀쳐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입술을 툭 내밀고 뾰로퉁해져 있는 그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져 눈치를 보며 뒷말을 덧붙였다. " 그럼 나 이거 다 할 때까지만 여기 있어. " 김태형은 언제 삐졌었냐는듯 얼굴 표정을 풀고 내가 있는 계산대 쪽으로 달려왔다. 내 옆에 선 김태형은 정말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선에 부담스러워진 내가 뭐하냐고 묻자 김태형은 이게 제일 재밌다며 입을 헤벌쭉하고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에 결국 나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계산대 주변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내게 김태형은 언제 슬금슬금 걸어온건지 결국엔 나를 뒤에서 안아버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내가 김태형을 밀쳐내지도 못 하고 굳어버리자 김태형은 내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 잠깐만. " " ... " " 잠깐만 이러고 있다가 갈게. 딱 1분만. 응? " 김태형은 내 뒤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몸을 꼿꼿하게 세우자 김태형은 나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결국 간지럼에 무너진 내가 몸을 축 늘어뜨리며 웃고 떠드는 바람에 김태형과 내가 계산대 앞에서 희희낙락 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었다. '딸랑-'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여고생 몇명이 무리지어 들어왔다. 미소 지으며 '어서오세요.' 라고 말하려던 순간 내 옆에 멀뚱히 서서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김태형이 떠올라 아차싶었다. 하필이면 계산대와 문이 마주 보고 있어 우리는 그들에게 대놓고 노출되어 있었다. 이 근방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기에 그 학생들 중 한명이라도 김태형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상황이 곤란해질게 뻔하였다. 인지에 따라 이어진 판단은 서둘러 김태형의 팔을 잡아당겨 계산대 아래로 구부려 앉게 밀어넣었다. " 어서오세요. " " 자몽주스 2잔이랑 아이스티 1잔이요. " " 네. 드시고 가세요? " 다행히 김태형을 보지 못한 것인지 주문이 순조롭게 끝나자 옆으로 시선을 돌려 힐끗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구석진 곳에 구겨져서 그 큰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김태형은 ' 다리 아파. '라고 입을 벙끗거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그에 대응하여 나도 입모양으로 조금만 참아라고 일러두었다. 주문한 것을 받아든 학생들이 계산대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좁은 곳에서 한참을 구부려있었어야 했던 김태형을 보고 나 역시 허리를 굽혀 그 앞에 마주 앉았다. 구겨져 있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태형의 얼굴을 마주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다리 괜찮아? " " ... " " 아, 진짜 미안해서 어떡하지. 이제 빨리 일어나자. 응? " 먼저 일어나 김태형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려고 했다. 손을 뻗자 마주 잡아오는 김태형의 손을 당기려고 했는데 반대로 작용하는 힘에 나도 모르게 김태형 앞으로 다시 주저 앉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저 당황함에 눈만 크게 뜨고 있는 내 앞으로 김태형의 얼굴이 빠르게 닿았다가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다. 김태형의 입술이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입술에 머물렀다. 그 짧은 순간의 여파로 김태형과 마주 닿았던 입술이 떨렸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만지지 않아도 두 볼이 무척이나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벙쪄서 나는 서둘러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 아씨, 이렇게 몰래몰래 숨어서 도둑고양이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 " ... " " 너무 귀여운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 " ... " " 그러게 누가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래. " " ... " " 방금꺼는 나에 대한 너의 미안함에 대한 보상. " " ... " " 그리고 이건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에게 주는 특별상. " 김태형은 입을 막고 있는 내 두 손을 잡고 내렸다. 꼭 마주잡은 손에 내가 두 눈만 꿈뻑이자 입술에 다시 한번 아까보다는 더 길게 김태형의 온기가 닿았다. 두 눈이 동그럏게 커졌다. 김태형은 자기도 부끄러운건지 괜히 내 손만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보며 웃었다. 김태형과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맨날 이러면 나 정말 얘랑 어떻게 연애해야 하는거지. " 아니야. 진짜 이건 아니야. " "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지. " " 이게 어떻게 첫키스야! 그냥 뽀뽀지! " " 뽀뽀나 키스나 입 맞추는건 똑같지 뭐. "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방금 전 김태형의 기습적인 행동에 대해 때 아닌 열띤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김태형의 입맞춤을 받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 내게 김태형은 말했다. 이건 절대로 첫키스가 아니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첫키스인지 첫뽀뽀인지 그저 얼이 빠져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초조해보이면서 꽤나 단호한 말투로 말하는 김태형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애써 덤덤한 척 김태형에게 말했다. " 나는 그냥 이거 첫키스로 생각할게. " " 아, 아니라니까! " 그 후로 김태형이 저렇게 길길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뻔뻔함이 극에 달했고 김태형이 뭐라하던지 귀를 막고 못 들은척 하는 나 때문에 김태형은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김태형은 결국 내 팔에 매달려 온 몸과 얼굴 가득한 표정으로 애처로움을 표현했다. " 어떻게 뽀뽀랑 키스랑 같아? 응? " " ... " " 이건 좀 아니지. 그치? 네 생각도 그렇지? " " 아니? 모르겠는데? " 내 나이가 몇개인데 뽀뽀랑 키스랑 구별도 못하겠는가. 김태형의 말이, 저 태도가 뭘 의미하는지 다 알면서도 나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래야 김태형의 저 강아지같은 끙끙거리는 모습을 더 볼 수 있을거 같아서. 나는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김태형에게 말했다. " 이제 가서 일해. 곧 손님들 많이 올 시간이야. " " 와, 나 진짜 미치겠다. " 김태형은 결국 탄식을 내뱉으며 휴게실로 향했다. 답답함에 자기 손으로 잔뜩 헝클여서 부시시해진 머리가 그의 귀여움을 더 부각시켰다. 나는 김태형이 휴게실로 들어가고 나서야 조용해진 카페를 둘러보다가 휴게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그 안에서 억울함을 이기지 못했을 김태형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져 나는 결국 웃음이 터져나왔다. " 태형오빠. " " 응. " "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요? "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기운이 하나도 없는 손놀림으로 대걸레질을 하는 김태형과 그 옆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한 소녀가 있었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의 주인공은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 그냥. ' 시큰둥한 김태형의 대답에도 그 소녀는 눈에 걱정을 한 가득 달고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김태형이 카페에 나오는 날이면 꼭 저렇게 김태형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김태형은 참 꾸준하게 인기가 많았다. " 별거 아니야. " " 별거 아닌게 아닌거 같은데? " " ...있잖아. " " 응! 뭔데? " 신경 안 쓰는척 하면서도 김태형과 소녀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꽤나 친밀하게 말을 붙이는걸 보니 아무래도 자주 찾아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듯 싶었다. 얘기하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김태형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큼- 머쓱해진 내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옮겼고 김태형과 여자아이의 대화가 다시금 내 귓가에 닿았다. " 어떻게 뽀뽀랑 키스랑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 미쳤지 김태형. 저건 단단히 돌은거지 김태형. 아무리 속 상하다고 해도 그렇지,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그렇지! 저게 지금 중학생 애한테 할 질문이냐고.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짓이겨물었다. 애 부모님이 근처에 있으면 어떡하지? 애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김태형 멱살이라도 잡으면? 그건 큰일인데 정말. 나는 서둘러 손에 들고있던 컵을 내려놓고는 김태형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마디라도 더 하기 전에 저 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김태형에게 다가가려는데 다음 내 귀에 들려온 목소리는 김태형의 것이 아닌, 사뭇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 에이, 그건 아니지. " " 엉? " " 어떻게 뽀뽀랑 키스가 같아요. 그건 요즘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도 다 알걸요? " " 그치! " " 누군지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분이네. " 아이의 말을 끝으로 김태형의 원망 섞인 시선이 내게 닿았다. 뭐, 뭐 어쩌라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 하고 나도 지지않고 김태형을 노려보았다. 김태형 특유의 강아지 같은 모습들이 내가 어쩌다 시작해버린 이 장난을 끝내지 못하고있는 이유였다. 김태형과 내가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데 그 여자아이가 대뜸 김태형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 뭐야. 근데 오빠 그거 왜 물어봐요? " " ...어? " " 오빠 설마 여자친구 생겼어요? 그래서 그런거 물어본거에요? " 서로를 노려보던 김태형과 나의 시선이 동시에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이를 어쩐다. 김태형은 입을 어버버거리며 그 아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고 나는 그저 두 눈만 동그랗게 뜨고 김태형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김태형이 여전히 토라진 눈으로 작게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그대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었다. " 아니. " " ... " " 내가 여자친구가 어딨어. " " ... " " 없어. 키스해주고싶은 그런 여자친구. " 얼씨구? 시계 바늘은 어느덧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제 카페에 남은 손님은 없었다. 슬슬 집에 가야지. 마무리를 하며 슬쩍 김태형의 눈치를 봤다. 정말 유치하게도 김태형과 나는 지금까지 서로 말 한마디 하지않았다. 김태형은 아까의 그 뽀뽀사건때문에, 나는 김태형의 여자친구가 없다는 발언 때문에 김태형은 김태형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삐져서 누구도 먼저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 저기, " " ... " " 김태형선배님, 집에 안 가세요? " 김태형이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말을 놓기로 한 후에는 한번도 부른 적이 없는 선배님이란 호칭을 붙였으니 김태형의 반응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김태형선배님이라는 깍듯하기 그지없는 내 호칭은 나름대로의 반항이었는데 그것이 먹혔는지 김태형이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이내 경직된 미소를 보이며 김태형도 맞받아쳤다. " 가야죠. " " ... " " 지금 가요, 후배님. " 둘 다 굽힐줄 모르는 자존심 때문에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좋아서 딱 달라붙어있던 우리는 지금은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길을 걷고있는 중이다. 게다가 한발자국 이상 멀찍이 떨어져서. 어색한 분위기에 괜히 입을 삐죽거리며 걷다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김태형도 멈춰서 나를 돌아봤다. 괜시리 열불이 났다. 이게 뭐라고, 토라진 김태형도 나도 그리고 별거 아님에도 불구하고 먼저 굽힐줄 모르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꾹꾹 눌러왔던 속상한 마음이 터지며 김태형에게 소리치듯 외쳤다. " 어? 여자친구가 없어? " " ... " " 그럼 난 뭐야? 그냥 후배야? " " ... " " 후배님? 후배님은 무슨. 내가 선배님이라고 했다고 그걸 그렇게 받아치냐. " " ...비밀로 하자며. " 내 투정을 잠자코 듣던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 한마디에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사귀기로 한 바로 그 날 김태형과 약속했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은 비밀로 하기로. 김태형은 대체 왜 그래야 하냐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에게 그것은 아주 중요한 방어막이었다. 김태형을 사모하여 따라다니는 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김태형을 죽어라 설득해서 비밀로 하기로 약속을 받아냈었다. 그랬는데 김태형은 그 약속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살짝 더해진 도발성 행동이 내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어쨋든 그 부분에 대해 화를 낸 것은 내 잘못이었다. 김태형은 나랑 한 약속을 지킨거니까. " ...미안. " 결국 내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거의 기어들어가다 싶은 목소리를 짜내어 김태형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 집에 가, 빨리. '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태형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끌었다. 덕분에 멀찍이 떨어져있던 우리 사이의 간격이 메워졌지만 살짝 어색한 분위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걷다보니 어느새 저멀리 우리 집이 보였다. 이거 이러다가 제대로 화해도 못 하게 생겼네. 그제야 초조해지기 시작한 나는 김태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면서 걸음을 멈추자 김태형도 나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 김태형. " " ... " " 태형아. " " ...왜. " " 나 봐봐. 응? 나 좀 봐. " 결국 내가 김태형의 두 볼을 잡고 돌리고 나서야 김태형의 처진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얼굴 가득 시무룩함을 매달고 있는 그 표정을 제대로 마주하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고 김태형도 나도 집에 가서 두 발 뻗고 편히 자려면 아무래도 이 토라짐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았다. " 나 너 좋아해. " " ...어? " " 너 좋아해. 많이 좋아해. 너가 뭘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예쁘게 보여. 사랑스럽게 보여 나한테. " " ... " " 그래서 네가 아까 입 맞췄을 때 나 너무 떨렸어. 떨려서 그대로 굳어버릴뻔 했어 정말. " " ... " " 그게 뽀뽀인지 키스인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나한테 제일 중요한건 너야. 너랑 같이 해서 나한테는 그게 중요한거야. " 내 말을 듣고있던 김태형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풀어졌다. 정말 눈이 녹듯이 사르르, 서운함, 토라짐, 슬픔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쩜 이리도 표정이 솔직한지. 김태형은 나한테 절대 거짓말은 못 하겠구나 싶었다. 어느새 슬슬 올라가려고하는 그 광대를 다시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그리고는 김태형의 얼굴을 끌어당겨 내가 먼저 입을 맞췄다. 내가 입을 맞추고있는 동안에도, 내가 슬그머니 입술을 떼었을 때도 커진 김태형의 눈은 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정말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네가 신경쓰인다면, " " ... " " 이걸로 하자, 우리 첫키스. " 김태형의 두 눈 안에 가득 담긴 나를 맞이한 순간 내가 먼저 웃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예뻐서 그리고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내가 웃으니 김태형도 나를 따라 웃었다. 내가 슬그머니 김태형의 두 볼을 잡고있던 손을 떼고 멀어지려던 순간 김태형의 두 팔이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덕분에 김태형과 나는 멀어지지 못 하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 " " 어? " " 그리고 유치하지만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불러주고 싶었어, 너한테. " " ... " " 조명이 딱 너만 비추면 내가 그런 너에게 걸어가서 너를 안아주고 입을 맞추고. 그런 첫키스였으면 했어. " " ... " " 계획했던 그런 조명이 아니라 가로등 등불이지만 괜찮아.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니까. " " ... " " 너가 제일 중요해. 나한텐, 너가 제일 소중해. " 김태형이 팔에 힘을 주어 나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 남아있던 어떠한 작은 틈도 허락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로맨틱하다고 말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원했던 김태형의 계획 속의 어떤 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도 케이크도 피아노도 오직 나만을 위한 조명도 없었다. 하지만 마치 우리를 위해 켜져있는 것만 같은 가로등 아래에서의 우리의 첫키스는 그 어떠한 순간보다도 특별하고 소중했다. [ 보고싶어. ] 이렇게 딸랑 문자만 보내놓고 김태형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보고싶으면 좀 찾아오던지. 맨날 말로만... 한동안 성실하던 김태형이 카페에 나오지 않은게 벌써 3일째였다. 첫날에는 무슨 일이 있나하고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는데 바쁘다길래 빨리 끊었다. 어제는 아예 전화가 꺼져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오늘 그것도 해가 뜨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이렇게 딸랑 문자 하나만 보낸 것이다. 아무래도 괘씸했다. 네가 이렇게 문자를 보내면 내가 ' 나도 보고싶어, 태형아. ' 이렇게 답장할 줄 알았겠지. 나도 3일동안 묵묵부답인 너때문에 속 많이 끓였다 이거야. 단호하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답장 안해. 안할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아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래도 보고싶다는데... 사실은 나도 보고싶은데... 아니야, 됐어. 이러다가 정말 전화라도 해버리겠다, 싶어서 다급한 손놀림으로 김태형의 번호가 나타난 화면에서 벗어났다. 딴짓이나 해야지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눌렀다. 익숙한 초록창이 뜨고 의미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무언가에 홀리듯 그것을 눌렀다. " ...어? " 작은 핸드폰 화면에 동그란 얼굴이 가득 찼다. 이젠 하루에도 수십번 입으로 말해 익숙한 이름, 수십번 떠올려 너무나도 익숙해진 얼굴, 이제는 내가 절대로 잊지 못할 예쁜 웃음까지. 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 위치한 단번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의 헤드라인에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눈을 다시 감았다 떠도 믿기지 않았다. 그 문장은 내가 속으로 곱씹고 아무리 다시 읽어도 놀라웠고 그만큼 예상하지도 못했으며 전혀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인기 바리스타 김태형 핑크빛연애중. 김태형의 그녀는 누구? ] 현재 연애의 온도 : ?
너무나도 오랜만입니다ㅠㅠㅠ |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간간히 생존신고만 하고 이렇게 글로 찾아온건 거의... 3개월만이네요. 이렇게 덜컥 사라져버렸던 작가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연애의 온도는 곧 완결이 날 것 같아요. 기다려주셨던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가끔 독방에 검색을 해보는데 그 때마다 정말 감동에 또 감동이에요ㅠㅠㅠㅠㅠㅠ 항상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