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127- Once Again
찬의 말이 마치 내 어딘가를 정확히 꿰뚫고 들어온 듯, 그 물음에 답을 못한 채 가만히 앉아있기만을 얼마나 지났을까, 내 옆얼굴을 제 집게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찬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김여주 대답해." 그제서야 내 시야에 들어오는 찬의 얼굴은 꽤나 침착해보였지만, 내게 말해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답지않게 불안한 모양새로 떨리고 있었다. 한참동안이나 찬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만 보다,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런 내 모습에 찬은 하,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제 손마디가 하얗게 보일정도로 책상 모퉁이를 꽉 쥔 채 말했다.
"내가 말했었지. 불쌍하던지, 미련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라고."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찬은 이내 교실문을 쾅, 소리나게 발로 열어제끼며 나가버렸다.
결국 종례시간까지도 교실에 돌아오지 않은 찬이 신경쓰여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방문을 걸어 잠궜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 둘 다시 되돌려 생각했다. 아침에 그렇게 환한 표정일 수가 없었던 지수오빠,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굳은얼굴을 해보였던 이찬. 내가 무언가 잘못한건가, 싶어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머리만 아플뿐,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 대체 나한테 왜이래! 방 천장을 바라보며 소리를 크게 질렀다. 한숨을 내쉬며 찬의 집에 찾아가기라도 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있을 때, 갑작스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석민이 노크도 다하네. 의아한 생각과 함께 문을 열면, 그곳엔 석민이 아닌,
"여주야, 무슨일 있어?"
지수오빠가 서있었다.
회장님이 보고계셔!
be mine!
06
고개를 기울이며 세상 순진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묻는 지수오빠의 모습에 놀라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무일도 없는데요. 내 대답에 지수오빠는 "그럼 다행이다." 하는 대답과 함께 한껏 웃어보였다. 얼굴에 웃음을 띄운 채,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않는 지수오빠 탓에 엉거주춤 서있으면, 지수오빠는 웃으며 내게 제 두손을 내저어 보였다.
"아니, 석민이랑 포스터 만들러 들렀는데 여주 너 안보고 가면 아쉬울거 같아서."
그 말과 동시에 얼굴쪽으로 피가 몽땅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불편한 기분에 무의식중에 손등을 볼에 가져가 대었다. 역시나 느껴지는 뜨뜻한 기운에 등 뒤로 애꿎은 주먹을 쥐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본건지, 작게 미소를 터트린 오빠는 별안간 침대에 걸터앉아 맞은편의 책상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 오빠가 앉다니. 갑작스레 몰려드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황급히 책상쪽으로 다가가 팔을 쭉 벌리며 오빠의 시야를 막았다. "갑자기 뭐하는..." 그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가 일어나 내 팔을 걷어내더니 내 뒷편에 놓인 빈 액자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제 손에 들린 텅 빈 액자를 잠시동안 멍하니 보더니, 오빠는 액자 테두리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조금은 가라앉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꽃혀있던 사진, 어디갔어?" 오빠의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게.." 변명하려 해도 나오지 않는 말에 내가 이내 고개를 떨구자, 오빠는 한숨을 작게 쉬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제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이거 내가 제일 아끼는건데." 그 말과 함께 지갑에서 사진을 꺼낸 오빠가 사진을 미련어린 손길로 어루만지더니 이내 액자 안에 끼워넣어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뒤돌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액자 안에는, 오빠와 내 사진이 끼워넣어져 있었다. 반지사탕을 든 채 세상을 다 가진 양 환히 웃고 있는 나와, 그런 내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는 오빠의 모습. 어렴풋이 다시 떠오르는 오빠와 내 어린시절에 잠시나마 이 상황이 편안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한참동안이나 뒤돌아 사진을 바라보는 내 어깨를 제쪽으로 돌린 오빠가 진지해진 눈으로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저 때 내가 여주한테 한 말 기억나?"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오빠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런 내 반응에 지수오빠는 다시 내 고개를 제쪽으로 돌리더니 한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여주랑 내 추억, 난 하나도 못버리고 다 가지고 있는데. 여주 너는 다 버렸어?"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묻는 오빠의 모습에 무언가 왈칵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일전에 느껴지던 그 욱신거림이 절정에 치닫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말도 못하고 애꿎은 땅만 바라보며 서있으면, 오빠는 "여주, 눈떠봐." 하고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그에 눈을 뜨면, 오빠는 다시금 웃는 표정을 해보인 채 내 머리를 조심히 쓸었다. "이제부터 여주에 대한거 하나 하나, 다 신경쓸꺼야." 그 말을 끝으로 문 밖으로 나가며 오빠는 뒤돌아 내게 웃어보였다.
"생각해봐, 여주 네 마음은 어떤지."
그리고 오빠의 그말에, 난 한참동안 아무것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전날 내게 그렇게나 모진 모습을 보여줬던 이찬은, 거짓말처럼 다음날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현관 앞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왜이렇게 늦어." 장난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제 집게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툭 건드리던 이찬은 이내 빨리 가자며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아프지 않게 쳤다. 그에 떠밀려 아무말 없이 어색하게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덜굳은 길가의 시멘트를 발로 툭툭 차며 찬이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 내 이름을 불렀다. "김여주." 조금은 어색한 그 목소리톤에 내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자 찬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어제, 미안해. 신경쓰지마." 얼굴엔 태연한 표정을 띄우며 말하고 있었지만, 이 말을 꺼내기까지 수십번은 고민했을 녀석의 속내를 생각하며 그와 똑같이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찬은 이내 얼굴에 웃음을 함빡 띄운 채 내 목을 끌어안았다.
"아오, 우리 김여주 진짜."
그에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찬에게 주먹쥐는 시늉을 해보이면, 찬은 웃으며 내 머리칼을 흐트렸다. 서로 장난을 치느라 조금 벌어진 찬과 내 사이의 틈으로 갑작스레 누군가 지나갔다. 그에 의아해 앞을 바라보면, 지수오빠가 내쪽으로 뒤돌아본 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주야, 오늘 석민이랑 선거 포스터 만들러 여주네 집 갈껀데, 뭐 먹고싶은거 있어? 가는길에 사가게."
그 말을 하며 은근한 웃음을 흘리는 지수오빠를 찬은 가만히 노려보다, 이내 내 팔목을 잡고 교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찬의 발걸음에 이끌리는 대로 정신없이 도착한 교실 안에서, 찬은 시종일관 허,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가만 있질 못했다. 그런 찬의 모습이 신경쓰여 고개를 돌린 채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자꾸만 어제 오빠가 제 지갑에서 꺼내 액자에 넣어준 사진이 머릿속에서 한참을 아른거려 눈을 몇번이나 깜빡여도, 그 잔상을 사라질 생각을 않았다. "저 때 내가 여주한테 한 말 기억나?" 오빠의 그 물음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감기를 하듯, 곳곳에서 울려댔다. 사실 생생히 기억나는 그 말이었지만, 애써 내 자신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어보인 나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이면 오빠에게 안기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사실은 말하고 싶었는데, 다 알고 있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못이겨 잠에 빠지려 할 때 즈음, 무언가 툭, 끊어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어린 오빠의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오빠랑 결혼하자!"
사실 일부러 오빠를 밀어내는 걸지도 몰라.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허공에 수저질을 하다 이내 시야 위로 손으로 딱, 소리를 내는 찬의 모습에 정신을 가까스로 차리면, 내 맞은편에 보이는 찬의 모습은 불만을 가득 가진 모습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이질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찬의 손등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왜그래, 너." 그런 내 물음에 날 올려다보며 찬이 되물었다. "너야말로 왜그래, 아까부터 뭐 잃어버린 사람마냥." 그 말과 함께 다시 제 식판에 시선을 고정하는 찬의 모습에 괜히 속상해져 마음에도 없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요즘 왜 괜히 나한테 화내는건데, 너." 원망어린 목소리에 찬이 당황한 듯,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인상을 구긴 채, 일어서려 하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애써 다시 자리에 앉히려는 녀석의 노력에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으면, 찬은 답답한 표정으로 제 와이셔츠 앞섶을 헤쳤다. "아니, 신경쓰여 죽겠잖아." 억울한 표정으로 말하는 찬의 모습에 뭐가, 하고 되물으면 찬은 당연한걸 물어, 하며 대답했다. "저 형, 너한테 하는 행동 하나 하나 다 신경쓰인다고." 제 머리를 헤집으며 말하는 찬에게 웃기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머리를 장난스레 건드렸다. "그건 내가 신경써야지, 왜 니가 신경쓰고 있어, 괜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는 내 모습에 찬이 갑작스레 의자를 끌어 제대로 앉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내가 왜 신경을 안써." 턱을 괸 채 묻는 찬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해 말을 버벅였다. 그야, 별일도 아니고. 이건 내 일이니까...? 찬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자 녀석은 아까보다 조금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제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에 갖다대며 말했다. "나한텐 별일인데." 찬의 대답에 의아해져, 고개를 들어 찬에게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이게 왜 너한테 별일인데, 이찬."
그리고 돌아온 찬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내가 너 좋아하는거 뻔히 알면서 저러는거니까."
꽃봉오리 |
드디어...내가....여기까지...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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