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의 아침이 분주하다. 이 나라 군주, 태양 차씨의 탄신일이 머지 않아 성대한 축제로서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온 길에 벚꽃이 흩뿌려지고, 은행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빗자루로 황성 내부의 담벼락을 깔끔히 가꾼다.
청소를 하는 나인들을 재촉하는 상궁들의 입술이 빠르게 열렸다 닫힌다.
가히 태양의 탄신일을 하늘도 기리는 것인지, 청명한 하늘이 더욱 높게 푸르르다. 하물며 구름 한 점 없었다.
길을 걷기 위해 낸 흙 길 조차 꽃으로 메워버렸구나. 홍빈의 발치에 머무르는 자두빛의 꽃이 위태로이 흩날린다.
홍빈이 입고 있던 청색의 의복또한 그에 맞춰 움직였다. 온통 꽃 향 천지로구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태양의 탄신일에서, 택운을 선 보일 것이다. 분명 그의 넋을 빼앗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꽃이 될 것이다, 택운은.
예의 습관처럼 미소를 지어 보인 홍빈이 등을 돌려 다시금 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것은 한 때 뿐이다. 그 매혹적인 외양에 속아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유년시절 귀가 닳고 닳도록 읽은 서책의 한 부분이었다.
과연, 태양께서는 어떠시련지요. 아름다움에 속아 제 본분을 잃지는 않으시렵니까?
택운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매만져지고, 온 몸에 벚꽃 향을 닮은 향유가 덧발라진다.
붉은 빛이 감도는 의복에 팔을 꿰어 넣은 택운이 한숨을 쉬었다.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것만 같을 정도로 자신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 너는 태양의 축제에서 그의 혼을 빼앗아야 한다. 가객광대가 되어-. '
홍빈은 태양과 제가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지 못한다. 만약 태양이 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보고서 아는 체라도 한다면, 홍빈은..
아니, 아니야. 한 나라의 군주가 일개 광대에게 시선을 줄 리 없다. 착각에 허우적대어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구나.
온 얼굴에 발라지는 하얀색의 분과 눈가에 칠한 검은색의 염료가 답답했다.
안 그래도 붉은 택운의 입술 위에 연지가 발려졌다. 틀림 없는 광대의 모습으로, 이렇게.. 태양의 앞에서 거짓 노래를 부르고, 거짓 춤사위를 행하고.
문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 보니, 낯선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텅 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희망이었다.
* * *
태양의 탄신일.
오색 음식들이 모양 좋게 올려져 그 향긋한 냄새가 황성 내부를 울렸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다.
홍빈이 시키기라도 한 것인지, 시종이 직접 택운을 안내했다. 이 곳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춰 계십시오. 곧 태양께서 행차 하실 겁니다.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였다. 택운이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주변을 살피었다.
자신은 신경 조차 쓰지 않은 채 수염을 매만지는 대신들의 모습과, 화려한 장신구로 꾸민 악사들과 여인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저 혼자 동떨어져 다른 곳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 곳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홍빈의 심중이 과연 무엇인지 하나도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 ..아. "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택운의 눈에 익숙한 사람 한 명이 잡혔다.
그 어느 때 보다 푸르르게 물들여진, 청하 이홍빈. 홍빈이었다.
대신들의 중앙에 자리를 잡은 홍빈은 입가에 완연한 미소를 띄우고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숨이 막히게 아름다워, 택운은 잠시 호흡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무서워 가슴을 부여잡는다.
저릿하다. 고통스럽다. 아리다. 그러나 따스하다.
.. 머리맡으로 내리쬐는 햇빛 때문일까.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소란스럽던 공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타국에서 건너 온 사신들은 물론 아름다운 무희들이 기다란 소매를 바닥에 늘어뜨리고 앉았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났으니, 악사들이 소리쳤다.
" 태양 납시오! "
태양의 행차를 알리는 악기들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맞춰 온난하게 울려 퍼지고, 그와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청룡문이 열렸다.
어마어마한 행렬이었다. 황금으로 수 놓아진 가마가 태양의 빛을 받아 화려하게 번쩍였다.
희미한 인영을 보기 위해 택운이 눈을 찌푸렸다. 점점 또렷이 보이는 저 사람은, 역시나 태양이 맞았다.
황성의 주인이자, 그 날 자신이 마주했던 그 남자.
당당하게 살짝 눈을 치켜 뜬 채 자신의 밑을 천천히 훑는 그 모습이 태양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모두들 고개를 숙여야 했고, 몸을 더욱 낮춰야 했다.
그 누구도 거역해서는 안 될, 이 나라의 하나뿐인 주인이었다.
행렬을 끝 마친 가마에서 내린 학연이 옥좌에 앉았다. 날이 참 따스해서 다행이구나. 바람이라도 세게 불었다면 정말로 곤욕이었을텐데.
만족스러운, 그러나 흥미 없는 웃음이 학연의 입 안에서 맴돌았다.
매년마다 행해지는 이 축제가 참으로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똑같은 무희들의 똑같은 춤사위, 똑같은 간신배들의 똑같은 아첨. 똑같은 하늘에 똑같은 햇발.
그러나 이 길을 온통 메운 꽃 향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태양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택운도, 홍빈도 마찬가지였다.
" 다들 자리에 앉게. "
온화한 음성이 흐르자, 그제서야 자리에 착석했다.
택운이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태양의 위치란 이런 것이었다. 말 한 마디로 수 천을 다스릴 수 있는.
감히 자신이 똑바로 바라 봐서는 안 될 그런 인물이었다.
택운의 앞 쪽에 앉아 있던 대신들의 수장급으로 보이는 노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학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향하였고, 택운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 태양의 탄신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
" -고맙네. "
" 앞으로 더욱 태평성대를 이루시옵고 어진 군주가 되시어 이 나라를.. "
" 아아-. "
" ... ... "
" 날이 참 화창하지 않소? "
태양에 의해 언이 중단 되어 버린 노인이 미묘하게 표정을 비틀었다. 건방진 놈..!
학연이 노인을 향해 웃었다. 그런 뻔하디 뻔한 축사는 흥미 없습니다.
홍빈의 눈이 택운을 찾아 내었다.
부드러운 의복에 휩싸여 있는 택운의 모습이 단번에 보였다.
꼴 사납게 바들바들 떨고 있구나. 저래서야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나 할 수 있으련지.
무표정으로 노인의 옷자락에 살짝 가린 택운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홍빈이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태양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차학연을 무너뜨리는 특별한 축제 또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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